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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스캐너로부터 뿜어진 붉은 안광이 상대방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낱낱이 살핀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상대방의 전력을 가늠해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 그런 의미에서 제로의 안목은 단연코 믿을 만했다.

         

         딱히 무수한 전장을 넘어온 것도 아니고, 내가 머리만 덩그러니 챙겨다 의식을 옮긴 탓에 유실된 자료가 좀 있다고는 해도.

         총책임자였던 닥터가 애한테 연구소 메인 프레임 접근 권한을 보장한 데다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헤이롱의 전투 교리까지 따로 구해주었기에 실질적으로 대인전 부문 데이터라면 메가 코프 중 1, 2위를 다투는 두 기업의 정수가 합쳐진 게 바로 요녀석이다.

         

         …내가 괜히 가끔씩 살인 기계라고 농담하는 게 아니라니까?

         

         “음…….”

         

         – ……. –

         

         어쨌든 그런 제로가 세상 진지하게 상대방을 평가한다.

         전신 스캐닝으로도 수집된 정보가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않은 듯, 심사숙고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주변을 한바퀴 맴돈다.

         

         옷매무새 하나하나, 무기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 정도, 긴장된 채로 따라오는 시선마저 일일이 파악하며 대상의 전투력을 가늠한다.

         

         과연 자신과 동일한 전장에 설 자격이 있는지 만약 없다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또 보완하려면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지를 고민하다가… 이쯤 하면 충분하다고 여기고는 합격 통지를 내렸다.

         

         – …좋습니다. 앞치마 끈은 다시 묶어드려야겠지만 이만하면 일할 준비가 끝나신 것 같군요. –

         

         “와아!!”

         

         메리가 신나서 폴짝이니 덩달아 앞치마와 두건도 흔들렸고 자그마한 청소용 솔을 쥔 손이 파닥였다.

         가혹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집에 그런 게 있으면 안 되겠지만- 청소업계에 발을 내디딘 걸 환영한다는 듯, 케어봇의 머리가 거만하게 치켜들어졌고 음성 모듈도 한층 더 낮은 음역대로 맞춰진 채 중얼거렸다.

         

         – 메리 아가씨, 지금부터 저의 호칭은 ‘대장’으로 통일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오늘 집안의 모든 쓰레기와 먼지를 박멸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

         

         “……!! 네! 대장!”

         

         눈망울이 유래 없을 정도로 초롱초롱해진 메리를 목마 태운 제로 녀석이 창고방으로 사라졌다.

         매일같이 쓸고, 닦고, 털어내며 정리해서 청소할 게 남아있을까… 싶었지만 핑계 삼아서 놀아주는 거라 생각하면 저만한 것도 없으리라.

         

         탐험하는 기분이 들었는지 꺄르륵 거리는 공주님의 목소리가 간신히 거실까지 흘러 들어온다.

         

         “…잘들 노네.”

         “어머나, 어머나!”

         

         실비아 씨가 입가를 가리고 조신하게 웃으셨다면, 나는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그야 기특하지. 기특하고 말고.

         성실한 제로의 반복행동에 흥미를 가진 게 발단이라 해도, 아직 어린 애가 스스로 집안일을 도울 생각도 하고 저렇게 행동으로 옮기는데 고깝게 볼 어른이 어디있겠나?

         

         단지… 오늘은 신경이 다른 곳에 쏠린 데다가 어울려줄 기력이 좀 부족해서 마냥 흐뭇하게 지켜보기 뭐해서 이러는 것뿐이다.

         

         싱글벙글한 실비아 씨의 얼굴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덤으로 아이스 큐브가 동동 띄워진 음료수도 한 잔 내밀어졌고.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게 분명하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렴?”

         

         “아니…… 감사합니다. 네.”

         

         손가락에 감기는 서늘한 촉감.

         갖은 변명을 늘어 놓으려 했지만 이미 위로할 생각으로 만만한 그녀에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얌전히 잔이나 받아서 목을 축였다.

         

         솔직히 내가 크게 기여한 건 없긴 한데, 그 망할 조별과제 시험은 꽤 잘 통과했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이 거의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마무리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터라 금고 내부를 자세히 살피진 못했지만.

         

         합격이던 불합격이던 추후에 통지가 올 거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돌아와서 침대에 몸을 내던진 게 바로 어젯밤.

         

         아직… 아직은 점심 무렵에 불과하니 탈락한 건지 뭔지도 모를뿐더러, 세부적인 경과는 나도 아는 바가 없었기에 여태 연락이나 마중을 기다리면서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녀의 눈에는 일이 잘 안 풀린 것처럼 보였는지 계속 이렇게 챙겨주시려 한다.

         

         설마 뒷세계 용병들의 자존심을 걸었던 사투를 일반적인 취업 면접 같은 걸로 착각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 일자리를 알아보느라 늦는다고만 말씀드렸지 정확하게 뭐하다 왔는지는 설명 안 하긴 했는데.

         

         “그래서. 애아빠한테 직접 말하는 게 불편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상담하고 가게로 출근해도…….”

         

         “아하하….”

         

         영락없이 정답이었다.

         일단 어색한 웃음으로 종업원 자리는 정중히 사양해 두었다. 거기는 제가 일하기에 좀 곤란합니다 실비아 씨…!

         

         톡. 토독.

         

         비명은 어디까지나 마음속에서만 지르는 걸로 만족한 나는.

         한 손으로는 턱을 괸 채, 다른 손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해산하기 전에 돌아오는 길에 간략하게 조사한 흔적 자료와 메타데이터에 관한 설명을 떠올렸다.

         

         흔적 자료라는 건 파일의 저장 위치가 이동되거나 삭제되었을 때 남은 자취.

         그러니까… 레지스트리에 남은 기록이라던가, 다른 응용프로그램에서 해당 자료를 참조하거나 열람한 기록을 뜻하는 용어라고 한다.

         

         또 메타데이터는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어지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자료를 설명해주는 물건으로 접근 권한이나 수정된 시기, 이용에 대한 제약 혹은 관계성을 기록한. 결국 글의 각주 같은 물건이라 했으니.

         

         그런 명확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켄은 재빨리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에게 물었던 거였다.

         어차피 성적도 우리가 가장 좋았겠다 다 끝나가는 와중에 그런 걸 굳이 찾아볼 필요가 있냐고.

         

         “…쩝.”

         

         이럴 줄 알았으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가~ 하고 사양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금고를 정밀 검사해봐야 한다고 주장할 걸 그랬다.

         

         만약 몰래 염탐한 내용대로 흔적 자료를 찾아내서 어찌저찌 해보는 게 진짜 시험이었고, 앞선 참가자 중에 바이러스에 머리 깨져서 실려가면서도 그걸 눈치채고 수행해서 가산점을 받은 인간이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 아닌가?

         

         금방이라도 정규 계약을 맺고 업무에 투입될 줄 알았는데 반나절 어치 아르바이트 비만 정산받고 무작정 기다리게 되는 상황에 놓이니 자꾸 부정적인 가정만 하게 된다.

         

         합격 여부야 보는 눈이 많으니까 피차 얼굴 붉히지 않게 넌지시 알려준다 쳐도, 불합격이면 재깍재깍 알려줘야 다른 일거리를 찾던가 말던가 할 거 아니야!

         

         잘 생각해보니… 집에서 기다릴 때는 안내인이 안 찾아온 것도 그렇고, 이 새끼들 사실 내 거주지를 정확히 모르는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사후 서비스가 이렇게 엉망일 수가 있나.

         

         “대장님! 저기 아빠의 장난감 상자가 있습니다! 열어봐도 될까요!”

         

         – ……상자 바깥부분만 깨끗이 청소하도록 하죠. 그럼 미스터 슈나이더도 메리 양을 칭찬해주실 겁니다. –  

         

         “…! 네!”

         

         상자라…. 그래, 검은색 울퉁불퉁하고 매끄러운 총기 케이스도 상자의 일종이긴 하지.

         

         눈은 안절부절 못하는 제로와 열심히 보관함 위에 세정제를 짜내는 꼬마 숙녀님을 쫓아 힐링 받으면서도 머리는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를 맹렬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저 큰 건수라는 말만 믿고 보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일에 기웃거리다가 이게 무슨 낭비냐.

         네오 헤이븐이라는 무대의 한 켠에 얼추 자리도 잡았겠다. 지금부터는 가진 지식을 조금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써서 활동 기반을 다지도록 하자.

         

         그러려면 게임을 플레이하듯 이벤트나 퀘스트를 노려서 보상을 노리기보단 역시 위험부담 적고 수입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게 정답이다. 나는 재화가 쌓이기만 하는 게임과는 달리 현실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여러가지 유지비가 발생하니까.

         

         …잠깐만, 이 동네는 직업 선택지가 많은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따져보면 진짜 협소하지 않나?

         결국 기업 소속 회사원 아니면 전부 다 자영업자 아니야?

         

         “응?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여가 시간도 확실하고 급여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데다가 출퇴근도 자유자재인 직업이 있냐고 실비아 씨에게 여쭤보려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서라. 그런 걸 그녀에게 물었다간 당장 종업원으로 취직 당한다.

         안 그래도 ‘웨이트리스 복장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같은 불길한 혼잣말을 중얼거리시는 걸 들었다. 한 번도 아니고 일과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몇 번이나.

         

         나름 전장을 겪으며 숙련된 직감이 경고하기를, 오늘은 몸을 낮추고 사릴 때라고 하니. 괜히 근처에서 아른거리다가 잡혀가지 않도록 하자. 음.

         

         “아, 아빠! 대장님이랑 같이 청소했어요!”

         

         “…고생이 많군, 자네도.”

         – …이따가 치워 놓겠습니다. –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슬슬 가게를 오픈하러 가고자 일어난 슈나이더 씨가 젤이 뚝뚝 떨어지는 보관함을 보고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맥퀸 여사님께서는 그저 빙그레 웃으셨고.

         

         이런 느슨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굳이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잘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겨나던 찰나.

         

         기다리던. 어떤 의미에서는 절대 바라지 않던 손님이 찾아왔다.

         

         쿵쿵쿵—……!!

         

         초인종이 한 번 울리고 곧바로 문이 규칙적으로 흔들린다.

         

         딱히 무례하거나 위협을 가할 목적보단 방문을 확실히 하고자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집안 모두의 동작이 약속이라도 한 듯 우뚝 멈췄다. 정확히는 한 명과 한 기가 나머지 사람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지했으니.

         슈나이더 씨는 응답하려던 실비아 씨와 품 안의 메리를, 제로는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왜……?”

         

         그동안 이 집에 내 손님은커녕 집주인을 찾아온 방문객조차 없긴 했어도, 그렇다고 갑자기 이런 심각한 자세를 취하는 이유가 될까?

         

         불안은 의심으로, 의심은 확신으로 변질되었다.

         

         – 아무리 현관문이 사이에 있었다고는 해도, 계단 턱을 오르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습니다. 뒤늦게 인기척을 낸 만큼 적의를 가졌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어떤 훈련을 받았을 걸로 추정…. –

         

         허나 설명을 제대로 끝마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건너편에 있던 아직 얼굴도 본 적 없는 의문의 남자는 담담하게, 어떤 의미로는 굉장히 싱겁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에나마에서 나왔소이다.”

         

         

         “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컨드 컨택트.

    보통 쉬고 돌아오는 날에는 그래도 연재 시간을 지켰는데요. (화끈)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5월 9일 새벽경에 이전 에피소드 마지막 화가 2천자 가량 수정되었습니다.
    스토리는 거의 똑같지만 급하게 쓰느라 많이 생략했던 중간 과정을 보충했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낌없는 추천과 댓글도 너무 감사드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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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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