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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129 – 동기부여>

     

    나이는 어린 친구지만 실력은 자신보다 뛰어나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또 질투하는 학년수석.

    호불호는 갈려도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오크노디는 인기인이다.

    그것도 일거수일투족을 주목받는 인기인.

    그런 오크노디와 함께 먹을 걸 찾아 돌아다닌다.

     

    ‘어라? 이거 완전 데이트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모브에게도 있었다.

     

    “살려줘…”

    “어딜 도망가? 아직 접시를 다 못 비웠잖아, 모브!”

    “배가 터져 죽을 것 같애…”

     

    모브의 테이블 위에는 <감자샐러드>, <회오리감자>, <감자전> <감자조림> <감자볶음>이었던 것들의 잔해가 조금씩 남아있었다.

     

    “아직 ‘감자’로 시작하는 메뉴를 다 먹지도 못했잖아. 이 정도로 엄살을 부리면 안 돼!”

    “누가 데이트를 이따구로 해!”

    “데이트?”

    “아, 아니. 데이트가 아니라 교육! 멘토링 교육!”

    “흐음.”

     

    접시를 들고 쫓아오던 오크노디가 턱에 손을 얹고는 범인을 보는 경비병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도 식고문을 당하다보니 말실수가 나왔다.

    모브는 자책했다.

    자기를 돕겠다는 아이를 상대로 데이트 기분이나 내고 있으니 이런 말실수가 나오지!

    생각이야 자기 맘이지만 그게 입 밖으로 나오면 자기 발언의 책임을 져야 한다.

     

    “헤에. 모브는 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따라오고 있었구나.”

    “미, 미안. 오크노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오크노디는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

    그런 애를 상대로 같은 10대라도 데이트 운운한 것은 소아성애자라며 매도를 당하거나 변태라며 혼쭐이 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모브의 눈이 애처롭게 떨렸다.

    오크노디가 울기라도 하면 어쩌지?

    이대로 성범죄자라며 학생회에 끌려가는 건가?

    설마 이대로 퇴학까지?!

    벌벌 떠는 그에게 툭 던지듯 오크노디가 말했다.

     

    “괜찮아.”

    “…뭐가?”

    “데이트라고 생각해도 괜찮다고!”

     

    ──잠시 뇌정지가 왔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여자아이가 남자한테?

    적은 차이도 아닌데.

    십대 초반과 십대 후반의 차이가 있다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는 건가?

    전과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요동치는 모브.

    그의 옆구리를 손가락이 쿡 찔렀다.

     

    “으아악!”

     

    무시무시한 괴력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근데 운동으로 배부터 꺼뜨리고 해!”

     

    설렘도 잠시.

    메챠쿠챠 달리기를 하게 된 모브.

    기진맥진하고 나니 데이트고 나발이고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데이트 소리 한 번만 더하면 쓰러지겠다.

    다시는 입에 담지도 말아야지.

     

     

    * *

     

     

    [하급반 모브를 수련시켰습니다.]

    [달리기 경험치+2]

    [착한아이 경험치+1]

     

    먹고 뛰고 먹고 뛰고.

    옆에서 덩달아 수집을 안했던 요리들을 같이 먹다보니 도감작도 수월했다.

     

    [칭호 <감자요리 애호가>를 습득합니다.]

     

    *감자요리 애호가* : 감자로 만든 요리를 25종이나 먹어치운 당신은 감자요리 애호가를 자처할 자격이 있습니다.

    -칭호장착효과 : 감자감지능력 조금 상승

    -칭호보유효과 : 감자감지능력 아주 조금 상승

     

    근처에 있는 감자의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하는 칭호다.

    능력치를 주지 않는다고 우습게 볼 칭호는 아니다.

    포인트 충동구매로 식당을 이용할 포인트도 없는 자발적 기아체험도중에 야생감자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은 여분의 목숨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판타지산 감자는 어디서든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식물.

    식량수급이 필요한 야외활동 도중에는 한 번쯤은 꼭 찾게 되는, 있으면 물려서 안 먹는데 없으면 그거라도 찾고 싶은 계륵 같은 식물이다.

    취급의 안습함과는 별개로 얻어두면 언젠가 식량난 속에서 일용할 양식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나쁘지 않은 칭호였다.

    비슷한 애호가 칭호를 많이 모으면 칭호가 통합되기도 하는데, 장기적으로는 이걸 노리고 있다.

     

    ‘감지능력을 올려주는 칭호가 합쳐지면 종합감지능력 상승으로 이어지지!’

     

    뉴비들은 생각지도 못할 식품도감작으로 얻을 수 있는 고성능 기능!

    이쪽 세계에선 괜히 강자들이나 상류층이 미식을 즐기고 다양한 요리를 먹으러 다니는 게 아니다.

     

    “어때, 모브? 오늘 훈련은 도움 좀 됐어?”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아…”

    “걱정 마!”

     

    두 번은 안할 거야.

     

    “주 3회 할 거거든!”

    “실화냐…”

     

    주 3회 뉴비 괴롭히기 절대 못 참거든요.

    히히.

    고인물의 들박 맛을 받아라!

     

     

    * *

     

     

    모브를 실컷 괴롭혀 주다보니 어느덧 한 주가 훌쩍 지나갔다.

     

    ‘앗, 넷째 주다.’

     

    내 집처럼 맘 편하게 드나들던 아카데미지만 넷째 주는 조심해야 한다.

    매달 마지막 주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간이벤트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아카데미에서 기획한 이벤트가 아닌 주조연 캐릭터들에게도 영향이 닿는 ‘사건사고’가 벌어진다.

    첫 번째 달의 넷째 주는 뉴비들을 위한 맛보기.

    대체로 하급반 학생이 일으키는 돌발사건이다.

     

    ‘원래는 하급반에는 인맥이 없어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 회차는 특이하게 됐네.’

     

    하급반에 모브를 친구로 두고 있으니 상급반과 하급반의 사이가 멀고 평판작이 꼬이더라도 모브를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쟤가 걔야?”

    “불쌍하기도 하지.”

    “함부로 눈 마주치지 마. 암살자는 3초만 눈을 마주쳐도 상대를 죽인대.”

     

    모브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사이.

    복도를 지나가던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중앙귀족영애들과 척을 졌을 때처럼 노골적으로 적대관계를 만들지는 않지만 더욱 음습하게 확대재생산 되는 뒷소문과 따돌림이다.

    흥. 하찮기는.

    뉴비들 주제에 겁도 없어.

    시간을 들여서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들에게 관심을 끄고 손에 든 젓가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가지고 놀았다.

    오늘따라 늦네.

    지난 강의가 늦게 끝나기라도 하는 걸까?

    모브를 기다리느라 그늘이 드리운 기둥 옆에 서 있다가 기둥에 등을 기댔다.

    창문 밖에서 뽈뽈뽈 날아다니는 나비를 눈으로 쫓고 있자니 어디선가 킥킥 비웃는 소리도 들렸다.

     

    ‘던져버릴까.’

     

    손에 든 젓가락을 고쳐 쥐면서 근처에 감점을 줄 교관이 있는지 눈치를 보다가 교관 한 명과 정확히 눈을 마주쳤다.

     

    “…”

    “…”

     

    교관은 말없이 내 손에 들린 젓가락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젓가락을 쥔 손의 자세를.

    투척자세를 풀고 던지려던 거 아닌뎅? 하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챱챱챱스틱~”

     

    창밖의 나비를 젓가락으로 잡는 시늉을 하니 교관이 콧방귀를 뀌며 눈에 힘을 준다.

    지나가는 애들은 속여도 제 눈은 못 속인다고 벼르는 것이 보여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다다.

     

    다음 강의 시작하는데 모브는 언제 오는 거야.

    속으로 투덜거릴 무렵, 마침내 모브가 나타났다.

    급히 복도를 달려온 그가 내 손을 덥썩 붙잡았다.

     

    “바보야! 이런 곳에서 혼자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왜 바보야? 바보는 낙제 위기인 모브지!”

    “…쓸데없이 착하기만 해서는.”

    “내가 착해?”

    “됐으니까 따라와.”

     

    모브가 내 팔을 붙잡고 끌고 가는 시늉을 하기에 몸에 힘을 풀고 끌려가주었다.

    어린애 하나 힘으로 못 끌고 가는 경험을 하면 멘토링은커녕 학습의욕이 뚝 떨어질지도 모르지.

    크으.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나, 대견해!

    완전 프로 튜터야!

     

     

    * *

     

     

    월요일 3교시 <연계스킬 익혀보기>강의가 예정과 다르게 제법 길어졌다.

     

    “스킬은 정해진 규격의 능력을 발동하는 것으로 마법과 궤를 같이 합니다. 다만 신체스킬은 마법스킬의 등장 이후에 주목받았죠. 마법스킬 발동에 필요한 정형화의 법칙을 신체에 접목시킨 것을 신체스킬이라 정의하는데, 발동의 편리함을 대가로 시전동작의 고정이나 위력고정 같은 단점이 발생합니다.”

    “신체스킬의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도 있는데요. 누가 말해보겠습니까? 거기, 모브 군?”

     

    오크노디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원거리 병기숙달 강의 전 쉬는 시간에 만나자고 했는데.

    하필이면 앞자리에 앉은 탓인지 교수님의 질문도 끝나질 않았다.

     

    “스킬은 숙련도를 올리면 시전동작이나 영창주문이 간편화되며 특정동작과 연결시켜서 즉시발동을 하는 이런 현상을 <간이연결Instant Link>이라 부릅니다.”

    “맞습니다. 간이연결을 마스터하면 <무영창>, <제로모션>으로 사전동작 없이도 즉시발동이 가능하죠. 그럼에도 한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즉발형 스킬은 10종을 넘기기 힘든데, 이는 사람의 인지와 암기가…”

     

    이론적인 부분은 다 알고 있다.

    노력으로 어떻게든 줄일 수 있는 것이 스킬숙련도라는 것도.

    재능이 뛰어난 놈들은 그 노력조차 비웃으며 엄청난 속도로 숙련도를 채워서 같은 강의를 들어도 진도는 저 멀리 슝 하고 지나간다는 것도.

    자신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는 것도.

    그래서 밤새 비밀훈련장에서 과제를 하고 스킬숙련도를 채우느라 애를 쓰고 있으며, 하루라도 게으름을 부리면 도태되리라는 사실마저도.

    전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강의를 듣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재능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팁’을 듣기 위해서.

    올바른 연습으로 적은 노력으로도 많은 숙련도를 채우는 ‘바른 길’을 걷기 위해서.

    그렇지만 이 강의는 너무 느리다.

    강의가 진행되는 진도도.

    교수님의 목소리도.

    심지어는 강의가 끝나는 시간마저도.

     

    “오늘 강의는 이상입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달렸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야겠지.

    화가 나서 먼저 강의장에 가있으면 어쩌지?

    기껏 하급반인 날 가르치겠다고 시간을 쓰고 있는데.

    학년수석의 시간을 헛되게 만든 미안함에 더욱 땀흘려 달리니, 다행히도 강의장으로 가는 도중의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는 오크노디가 보였다.

     

    오늘도 참 예쁘장하구나.

    말없이 묵묵히 창가를 바라보는 옆모습이 더 예쁘다.

    이 아이, 크면 남자를 몇 명이나 울릴까.

    반가움보다 앞서는 쑥스러움.

    의식하면 안 되는데도 조금 의식되는 마음에 괜히 부끄러워서 더욱 꿋꿋하고 의연하게 대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지던 도중이었다.

    그녀를 향해 다가가던 발이 점차 느려지고, 가쁜 호흡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오크노디 좀 기분 나쁘지 않아? 갑자기 챱챱챱스틱은 또 뭐야?”

    “몰라. 이상한 막대기나 들고 노래나 부르고. 좀 모자란 것 같아. 마탑에 있다는 그런 애들 같지?”

    “아~ 그거? 알지. 초점도 안 맞고 말도 어눌하고 나이가 들어도 이상하게 보이는 애들. 열 살이면 철이 들 나이인데 하는 짓이 딱 판박이네.”

    “남학생들한테 끼 부리는 걸지도 모르지. 어린 것이 벌써부터 발랑 까져서는 여우 짓이나 하고. 괜히 그렇고 그런 소문이 도는 게 아니라니깐.”

    “그런 교육도 받은 거 아니야?”

    “됐어, 그만 말해. 괜히 걸리면 롯토처럼 망신만 당하지. 마음에 안 들면 힘으로 때리는 애잖아.”

     

    오크노디의 흉을 보면서 지나가는 학생들.

    이렇게나 큰 소리로 하는 대화다.

    들리지 않을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자세히 보니 오크노디의 손이 초조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손에 든 젓가락을 어떻게 쥐어야 할지 모르겠는 것처럼 손이 떨리며 안절부절 못한다.

    다 들었을 텐데.

    어른이라면 말려야 할 텐데.

    아무도 오크노디를 돕지 않았다.

    교관마저도 그랬다.

    낙제생을 돕겠다고 주말도 반납해가며 돕던 오크노디이건만, 정작 그녀 본인은 아무도 돕지 않는다.

    홀로.

    쓸쓸하게.

    창밖의 나비나 쳐다보고 있을 뿐.

     

    “바보야! 이런 곳에서 혼자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왜 바보야? 바보는 낙제 위기인 모브지!”

    “…쓸데없이 착하기만 해서는.”

    “내가 착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크노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맑은 그녀의 손을 덥썩 붙잡아 끌어당겼다.

     

    “됐으니까 따라와.”

     

    화가 났다.

    속상했다.

    분한 마음까지 들었다.

     

    ‘나 때문이겠지.’

     

    이런 수치를 겪으면서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속장소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불쌍한 아이다.

     

    ‘보답하고 싶어.’

     

    이 아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올랐다.

    먹고 뛰기만 한다고 우습게 여겼던 마음가짐이 근본부터 달라졌다.

    투정 따위 부리지 마라.

    오크노디를 믿는 거다.

    결의를 다진 그에게 오크노디가 말했다.

     

    “있다가 저녁은 먹지 마!”

    “오늘은 뭘 먹으려고?”

    “돌을 먹을 거야!”

    “…알았어.”

     

    빠르게 수긍하는 대답에 오크노디가 더 놀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cornno님이 그려주신 <나쁜아이 만렙 오크노디> 팬아트가 공지에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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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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