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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내가 정말로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앨리스가 알아냈다는 그 정보가 어떤 정보인지, 나는 나대로 유추해볼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내 머리 한구석에 그대로 들어 있었으니까.

        

       특히, 내 얼굴을 주먹으로 짓뭉개던 그 사람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주먹 아래 있던 것이 내 얼굴이 아니었다면 분명 클레어의 얼굴이었을 거고, 그런 생각까지 추가로 해보면 더욱 잊을 수 없다.

        

       나 나름대로 그 인간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했다. 다만,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는 않았다. 앨리스처럼 황권을 이용해서 우악스럽게 비틀어 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움직였다는 소리다.

        

       그리고 찾지 못했다. 사실 그렇게 오래 찾아보지는 않았다. 바뀐 시간대에서는 애초에 나와 엮인 적도 없는 인간이었으니 찾아서 뭐 하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앨리스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여기, 알고 있어?”

        

       마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앨리스가 나에게 물었다.

        

       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영지였다. 양귀비밭이 펼쳐진 것도 아니었고, 길가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지도 않았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끔하게 차려입은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넓다고는 할 수 없는 하천이 하나 흐르고 있었고, 그 위를 지나는 돌다리가 있었다. 다리 너머에 산업혁명기 배경의 작품에서 언제나 나오는 획일적인 디자인의 벽돌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 주택가의 끄트머리를 향해 마차가 향하고 있었다. 마치 하천이 경계선이라는 것처럼, 저 너머에는 벽돌집이 잔뜩 있었고 이쪽은 거의 개발이 되지 않은 초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장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언덕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높다란 나무가 하나 있을 것이다. 나무는 누군가가 베어갔을지 몰라도 언덕은 여전히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나무 위에서 망원경으로 백작의 마차가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 마차 안의 인간들이 육편이 되는 것도. 죄 없는 말 몇 마리도 함께 폭발에 휘말리는 것도.

        

       지금은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하천 너머의 벽돌집의 개수가 훨씬 늘어났다. 일부 건물은 내 기억 속의 모습과 달랐다. 그걸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 건물들의 사이를 이미 여러 번 돌아다녀 봤기 때문이다. 일부 건물은 그 내부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특히, 저 가운데 있는, 다른 건물들보다 유독 관리가 잘 된 것 같은 곳.

        

       나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아직도 저 건물은…… 그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을까?

        

       “…….”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앨리스 옆에 앉은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다소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미아 크로우필드는 우리와 나이가 비슷했다.

        

       자기 아버지가 죽던 날의 기억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나이였으니, 이 장소가 어떤 장소인지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는 않았다.

        

       왜 이런 곳으로 자기를 데리고 왔는지 물어볼 법도 했는데.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대로, 마차는 그 깨끗한 건물 앞에서 멈췄다.

        

       건물 입구에는 이미 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마 건물 안쪽도 똑같을 거다. 경찰들도 나와 있었지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기사와 경찰들 너머에서 다시 황실 기사와 영지 기사들이 대립하는 것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수는 황실 기사 쪽이 더 적었지만, 기백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근거는 전혀 없지만, 왠지 이대로 양쪽이 전투를 벌이더라도 황실 기사 쪽이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마차가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건 그 기백 덕분이리라.

        

       “아버지도 참 대단하셔.”

        

       마차에서 내린 앨리스는 다소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시선은 황실 기사들과 대립 중인 영지의 ‘기사’들에게 향해있었다.

        

       “자길 그렇게 싫어할 게 뻔한 영지가 이런 사병을 꾸린 것을 그냥 두다니.”

        

       “……크로우필드 영지는 벨부르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앨리스에게 미아 크로우필드가 반박했지만,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저 모습이 제국군을 ‘보조’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

        

       그 말에는 미아 크로우필드도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쏘아보거나, 적대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냥 학교에서 보던 표정 그대로였다.

        

       오히려, 미세하게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이라고 하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앨리스는 고개를 돌려서 건물을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려서 미아 크로우필드를 보면서 말했다.

        

       “저 안에는, 네가 원하지 않을 정보가 있을 거야.”

        

       “제가 원하지 않다뇨?”

        

       앨리스의 말에 미아 크로우필드가 표독스럽게—적어도 시도는 했다—앨리스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내가 듣기로, 너희 아버지는 아버지로서는 내 아버지보다 훨씬 더 아버지다웠으니까.”

        

       앨리스는 감정을 숨긴 평탄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크로우필드 백작님이, 그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렇게 말하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는 더 표독함에 가까워져 있었다.

        

       나라도 그러긴 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가 어떤 나쁜 일을 했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그저 자상하고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을 뿐이라면. 게다가 부당하게 살해당하기까지 했다면.

        

       그 살해 의뢰를 한 사람의 딸쯤 되는 사람이 자기한테 와서는 ‘너희 아버지는 네가 생각하던 것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미아 크로우필드는 정말 온 힘을 다해 자제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자제심을 발휘하는데 눈앞의 황녀와 우리를 둘러싸고 서 있는 황실 기사단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하지만 앨리스는 전혀 돌리지 않은 말투로 그대로 대답했다.

        

       “…….”

        

       미아 크로우필드의 표정이 표독함의 정점을 넘어서 다시 초기화되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런 말을 하는 앨리스를 보고, 문득 불안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미아 크로우필드도 지난 몇 개월간 앨리스와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살았다. 그리고 몇 개월이라는 시간은 어떤 사람의 성격이 대략 어떤지 판단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앨리스가 이런 것으로 농담할 인간은 아니라는 것은, 미아 크로우필드도 잘 알고 있으리라.

        

       “그래도 함께 들어가겠어? 너에게 큰 상처가 될지 모르는데.”

        

       “…….”

        

       미아 크로우필드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다가, 갑자기 위로 확 치켜들어 졌다.

        

       눈매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입가는 조금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얼굴은 평소보다도 훨씬 창백했다.

        

       하지만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귀족다운 당당함이었다.

        

       “좋아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미아 크로우필드가 말했다.

        

       “당신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저도 당당하게 피하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

        

       앨리스가 아주 살짝 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앨리스가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나도, 미아 크로우필드도, 그 뒤를 따랐다.

        

       문 옆에 서 있던 기사가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건물 안은…… 분명 창문이 제대로 달린 건물이었는데도, 너무 침침했다.

        

       *

        

       우리가 걷는 내내 들리는 소리는 오래된 나무계단을 밟을 때마다 나는 끼익 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와 우리 발소리뿐이었다.

        

       안에서 기사들한테 제압당한 사람이 있다면 뭔가 불평하는 소리라도 들릴 텐데, 그런 소리조차 없으니 다소 불안했다.

        

       좁은 복도 중간중간 서 있는 황실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낼 법도 한 복장이었는데도 다들 부동자세로 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얼마나 훈련이 잘된 사람들인지.

        

       내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다행히 여전히 ‘그런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쪽입니다, 황녀님.”

        

       2층의 한구석, 가장 작아 보이는 방의 문 앞에, 기사가 서 있었다.

        

       앨리스와 나, 미아 크로우필드가 말없이 다가가자, 기사는 우리가 이 건물 입구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때.”

        

       방 안으로 들어가며, 앨리스가 내 쪽으로 얼굴을 조금 돌렸다. 완전히 돌아본 것은 아니라 옆머리에 표정이 가려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경멸의 감정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방 안에는 한 중년 남성이 기사의 무릎 아래 깔린 채 엎드려 있었다. 양팔은 등 뒤로 모여서 기사 무릎 아래 있었다. 비교적 나이 들어 보이는데도 덩치가 여전히 건장했지만, 판금 갑옷을 입은 근육 덩어리를 밀어내며 일어날 정도의 힘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 어렸던 시절에 봤을 때는 정말 무시무시해 보였는데.

        

       바닥에는 책이 몇 권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고전문학으로 칭송받는 소설들이었다.

        

       그리고 그 책의 옆쪽에, 안경알 하나가 금 간 채로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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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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