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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제국 수도 크라운홀 ‘원 안쪽’.

       

       벤스톤 백작의 별장. 식별명 『마약굴』.

       

       오후 10시 30분 경.

       

       “⋯⋯⋯⋯.”

       

       벤스톤 백작의 연회는 더없이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아들의 생일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저 먼 곳에 있는 귀족들까지도 초대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2배 가까이 규모가 컸다.

       

       크라운홀을 중심 거점으로 삼는 벤스톤 백작은 지방 귀족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수도 귀족과 지방 귀족 사이에는 묘한 알력이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 약을 ‘권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몸의 거리가 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 순리 아니겠는가.

       

       또한, 백작의 연회라고 하여 지방 귀족이 몰려들 만큼의 권위는 없었다. 보통이라면 바쁜 일이 있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 점잖게 씹었을 터.

       

       그러나 이번에는 시기가 좋았다. 

       

       곧 1황녀 일레인이 동부전선으로부터 귀환한다. 그녀는 최근 직속 부대인 『청풍기사단』과 함께 큰 전공을 올렸고, 잠시 수도로 귀환하여 황제의 치하를 받을 예정이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전국의 귀족들이 수도로 몰려들었다. 다음 황제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인물에게, 서둘러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였다.

       

       벤스톤 백작은 그 틈새시장을 노렸다. 미리 상경해서 1황녀를 기다리는 귀족들은, 크라운홀에 온 김에 겸사겸사 백작의 연회에도 참석해 볼 것이 아닌가.

       

       백작에게 있어서는 사업 확장의 기회였다. 

       

       이번 연회에서 지방 귀족들 사이에 약을 퍼트릴 수 있다면, 그들에게도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계획에도 도움이 될 테고⋯⋯ 물론 돈도 벌어들일 수 있을 테지.

       

       하하하. 호호호.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무도회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사이를 거니는 시종이 있었다. 시종치고는 눈빛이 송곳처럼 예리하였으나, 모자를 깊이 눌러써 가려 둔 덕분에 눈에 띄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로데루스였다.

       

       작전은 간단하다.

       

       벤스톤 백작의 방, 또는 『약쟁이』 즈위디 벤스톤의 집무실에 숨어들어 증거를 수집한다. 분명 그 안에는 유의미한 자료가 있으리라.

       

       그러려면 위장이 필요하다. 로데루스에게는 다행히도 성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를 이용한다.

       

       기회를 노리다가 -> 적절한 타이밍에 오대수로 변신한 뒤 -> 저택을 청소하는 메이드 한 명을 기절시키고 의복을 갈아입은 후 -> 잠입한다.

       

       작전이 이루어지는 시간 동안에는 『분신』능력을 이용해 알리바이를 챙긴다. 로데루스의 모습을 한 마력 분신을 남겨,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한다.

       

       계획대로만 풀린다면 깔끔하게 자료를 빼낼뿐더러, 의심의 시선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분명히 위험성은 있었지만,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은 무도회가 종료되기 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로데루스가 추측한 예상 종료 시간은 오전 2시 경.

       

       앞으로 3시간 30분 남았다.

       

       우선은 작전의 1단계⋯⋯ 기회를 잡는 것. 

       

       즈위디 벤스톤이 지방 귀족에게 수작을 부릴 때가 적절한 타이밍일 것이다. 로데루스는 시종들 사이에 섞여 와인잔과 음식을 나르며, 틈을 노렸다.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다. 들으면 알 수 있다.

       

       “영애, 나와 한 곡 추시겠소? 아니, 영애⋯⋯ 일부러 멋진 망토까지 차려입고 왔건만!”

       

       “아무래도 저 남자는 꽝인 것 같아. 부유하면 뭐 하니, 저렇게나 독선적인데.”

       

       “하하하! 그렇다니까요. 제가 아주 귀중한 약재를 구했는데, 이걸 입에 대니 밤낮이고 가릴 것 없이⋯⋯.”

       

       “크흠, 흠⋯⋯.”

       

       군중들의 소란 속에서 혓바닥을 놀리는 소리가 들린다. 집중한다. 독사가 먹이를 무는 순간, 로데루스 또한 움직일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멋진 기사님이 나를 바라봐 줄까?”

       

       “하지만 부작용이 있지는 않소?”

       

       “뭣하면,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경. 파티와 침대의 공통점은⋯⋯ 아리따운 여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원하신다면 오늘 밤에──”

       

       “아으, 드레스는 익숙하지를 않네⋯⋯.”

       

       아직이다. 하지만 타이밍이 가깝다. 저 거래가 성사되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

       

       방금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로데루스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군중들 사이에는, 한껏 꾸민 드레스 차림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꼼지락대는 김루루가 있었다. 

       

       “쟤가 왜 여깄어⋯⋯?”

       

       로데루스는 잠깐 눈을 끔뻑대다가, 즈위디 벤스톤 쪽을 바라보았다가, 루루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잠깐의 고민이 있었다.

       

       기회와 친구.

       

       로데루스는 친구를 챙기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인파 속을 미끄러지듯 헤집으며 루루의 옆으로 이동했다. 이윽고 눈이 마주쳤다.

       

       이런 위험한 곳에는 왜 왔냐며 입술을 떼려 할 때.

       

       그 순간, 루루의 눈동자에 반가움과 기쁨이 꽃이 피어나듯 움텄다. 그리고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두 팔을 쭉 뻗으면서 외치는 것이다.

       

       “오대수!!”

       

       로데루스는 검지를 세워 입술에 붙였다.

       

       “조용히.”

       

       “⋯⋯오대수⋯⋯!”

       

       “앞으로 조용히 하라는 거지, 굳이 음량 낮춰서 반복할 필요는 없어. 그, 대체 여긴 왜 온 거냐?”

       

       “그러니까, 우리가 디저트 카페에서 만난 다음에, 3차 추격전까지 한 다음에 있잖아, 수도기사단에 로널드라고 한 명 있는데, 알지? 콧수염. 내가 요즘 걔랑⋯⋯.”

       

       김루루는 자신이 여기에 온 경위를 A부터 Z까지 설명하려다가, 로데루스한테 입이 막혔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일단 따라와라.”

       

       로데루스는 루루를 데리고 자연스럽게 무도회장을 빠져나갔다. 

       

       ===============================================================

       

       벤스톤 백작의 별장 2층, B-3 발코니.

       

       오후 10시 50분 경.

       

       로데루스와 루루는 사람 없는 발코니에 도달했다. 소란과도 멀고,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썩 낭만적인 곳이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심야의 정원에는 술에 꼴은 인간들이 배회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를 낮춰 얘기하면 아래까지 들리지는 않을 터.

       

       루루는 콩닥콩닥 뛰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로데루스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저어⋯⋯ 안녕? 좀 꾸며봤는데, 어때?”

       

       “⋯⋯지금 그런 말 할 때 아닌 거 알지?”

       

       “그럼 뭐 하는 때인데?”

       

       “너 여기 왜 온 건데.”

       

       팔짱을 끼고 엄근진 모드로 들어간 로데루스의 모습에, 루루는 짜게 식은 표정으로 툴툴거리면서 대답했다. 이 모드의 로데루스는 잔소리력이 높다.

       

       일장 연설을 피하려거든 순순히 대답하는 편이 좋을 터.

       

       “로널드가 그러는데, 여기가 되게 수상하대. 그래서 걔네가 조사할 건데⋯⋯ 일이 잘 안 풀리면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여차하면 뒤집어엎어 달라고 잠입해 있으랬어.”

       

       “일이 겹쳤군⋯⋯ 나도 개인적으로 자료를 빼내려던 참이야. 여기는 마약 소굴이거든.”

       

       “자경단 활동?”

       

       “비슷해. 김루루, 내가 이번 건에 대해서 협력 요청을 하면⋯⋯ 수도기사단에서 받아줄까?”

       

       루루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많은 사건을 겪은 현재, 마법소녀 퓨어 나이트와 수도기사단 사이의 앙금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상태였다. 

       

       로데루스가 추적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아주⋯⋯ 끔찍한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루루는 숙연하게 말했다.

       

       “네가 로널드 콧수염만 안 태워 먹었어도 됐을 텐데, 저번 추격전에서 민수염이 되고 나서⋯⋯ 화가 많이 났거든.”

       

       “더러운 수염을 밀어줬는데 감사는 못 할망정.”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린 중년의 원한은 오래 갔다. 이번 작전에서 협력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모양이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 합의되지 않은 작전 투입은 트러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수도기사단은 그를 잡으려고 들 테고, 로데루스는 저항해야 할 테니.

        

       그렇다고 수도기사단을 보이지 않게 서포트할 재주도 없었다. 완전히 발을 빼는 것도 영 찜찜한 선택지였다. 

       

       손님의 수가 많아져 번잡하고, 경비에 공백이 발생한 지금. 지금이야말로 벤스톤 백작의 마약 밀매를 분쇄할 완벽한 타이밍이었으니까. 너무나도 아까운 기회다.

       

       시계를 확인하면 남은 시간은 3시간 언저리.

       

       슬슬 계획을 추진해야 늦지 않을 터다. 여유가 있다고 늦장을 부리기에는, 시간이 갈수록 위험해지는 형국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귀족들이 술에 취해서 하나둘 잠들거나 무도회장을 떠나면, 저택에는 벤스톤 세력과 그들에게 포섭당한 자들의 비율이 늘어날 것이다.

       

       보는 눈이 적어진다는 건── 과격하게 굴 수 있다는 것. 

       

       움직여야 한다. 루루에게는 파티를 즐기는 선에서 멈추라고 언질을 해 두고, 작전을 진행하자. 

       

       로데루스가 그렇게 결심하고 품 안에서 변신장치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발코니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시종이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다과가 필요하실까 싶어.”

       

       “⋯⋯⋯⋯!!”

       

       젊은 시종과 단둘이 발코니에 있는 귀족 영애라니. 어쩌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었다. 신분을 넘은 밀회라든가. 

       

       로데루스는 빠르게 자세를 정돈하고, 어디까지나 시종인 척 굴었다. 귀족의 명령에 잠깐 수행하러 자리를 빠져나온 것처럼.

       

       “⋯⋯⋯⋯.”

       

       “어, 어? 내가 말해야 해? 어, 아. 우리 과자는 필요 없⋯⋯ 어라?”

       

       로데루스와 루루는, 시종의 낯익은 이목구비에 미간을 좁혔다. 육감적인 몸매와 분홍색 포니테일. 야수 같은 사나움을 숨기고 있는 노란색 눈동자.

       

       두 사람은 그녀의 이름을 알았다.

       

       “⋯⋯유리 프로스트러버?”

       

       “너, 네가 어떻게 여기에?!”

       

       척-!

       

       로데루스는 김루루를 지키듯이 한 발짝 내디디며 변신장치를 손에 쥐었다. 루루 역시, 파워 아머 호출기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주먹을 쥐었다.

       

       긴장감이 고조될 때, 악의 조직 사천왕은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품 안에서 천천히 신분증을 내밀었다. 차르륵.

       

       제국수호방위국에서 쓰이는 마법 처리된 인장.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유리 랜스터. 여기서는 방위국 요원입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퓨어 나이트』.”

       

       “⋯⋯바, 방위국 요원!!”

       

       “악의 조직 간부들은 전원 이세계인이라고 했었지⋯⋯ 우리와 같은 세상이었던 건가. 유리 프로스트러버.”

       

       한때 적대했던 자의 등장에 김루루와 로데루스는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그러나 유리 랜스터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고는.

       

       “꿈에서 일어난 일 아닙니까. 게다가, 우리들은 패배한 쪽입니다. 승리를 가져가 놓고도 원한을 잊지 않으셨다면야⋯⋯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

       

       “벤스톤을 노리고 계시겠죠. 저희 방위국도 그렇습니다. 아마,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어오는 것이었다.

       

       루루의 죽음에 기여한 『이터널 다크』라면,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증오했겠으나. 『유리 프로스트러버』는⋯⋯.

       

       촉수로 마법소녀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음흉한 짓을 한 것을 제외하면, 인명피해를 내거나 시민들을 습격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정말 방위국 요원이라면 이 상황은 기회였다. 벤스톤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기회. 하지만, 하지만⋯⋯.

       

       “아, 혹시 촉수에게 당한 기억 때문에 망설이신다던가.”

       

       로데루스는 발작버튼이 눌려 언성을 높였다.

       

       “⋯⋯닥쳐! 수상한 짓을 하면 머리를 깨버리겠어!”

       

       “그렇게 날을 세우셔도, 당신의 성감대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암코양이의 교성으로밖엔──”

       

       “죽여버리겠다⋯⋯!!”

       

       “참아, 참아 대수야!! 만날 때마다 마사지해 주는 착한 언니잖아!!”

       

       남자의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가 난 로데루스의 분노를 김루루가 겨우겨우 억제한 끝에, 그는 머리카락을 연신 뒤로 넘기며 한숨을 쉬고는. 납득했다.

       

       “어쩔 수 없군⋯⋯ 이번만큼은 임시동맹이다.”

       

       “발목을 잡지나 마십시오, 마법소녀.”

       

       남은 예상 한계 시간, 3시간.

       

       극적으로 임시동맹이 완성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차멀미를⋯⋯ 좀 했ㅅ씁니다⋯⋯.
    쪼매 늦었죠? 그래도 달이 노래할 때 잘 온 것 같애요, 머리가 빙 도는 거 보니까⋯⋯.
    그럼 내일 또 봐요, 마이 프렌즈. 저녁 꼭꼭 챙겨드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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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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