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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완전 수상쩍은 시종인은 완전완전 수상쩍은 증거품과 주소지만을 남기고 떠났다.

         

       파스텔은 창백하게 질렸다.

         

       “황제 폐하! 황제 폐하! 제가 총대 메고 최고 존엄을 찌른 게 아니에요!”

         

       왕당파나 귀족파 그런 거 하나도 모르고 금화 1개 해명하러 온 순수한 소녀일 뿐이라구요!

         

       으아아!

         

       왜 내게 이런 오해가아!

         

       우왕좌왕하며 병실을 뛰어다녔다.

         

       “악마님! 이건 큰일! 완전 큰일! 특정 사안에서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과 대놓고 적대 세력에 가담하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라구요!”

         

       권력자로서 폐하의 마음을 적극 공감할 수 있어!

         

       만약 파스텔 각하라면 친구가 한 번 배신 때리는 건 울상으로 끝나겠지만 친구가 적대 세력에 본격적으로 가담하는 건 무표정으로 변하게 될 거다.

         

       무표정!

         

       으아아!

         

       파스텔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야아!

         

       『일단 진정해라. 상황 파악은 앉아서 하는 게 좋다.』

         

       악마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파스텔 때문에 곤혹스러워했다.

         

       “진정! 진정! 안 진정!”

         

       파스텔은 그냥 뛰어다녔다. 분홍 머릿결이 휘날렸다.

         

       “어떡해요! 어떡해요!”

         

       변방에서 사리사욕 없이 착하게 지내던 파스텔 각하에게 온 대위기!

         

       위험 신호가 팍팍 왔다.

         

       평생 한치의 두려움도 가지지 않았던 용감한 파스텔로서 위험 신호를 감지한 게 아니다. 파스텔 각하로서 공포심이 번쩍였다.

         

       중앙정계에 지지기반도 없고 인적자산도 존재하지 않는 불쌍한 파스텔 각하.

         

       파벌이 열세인 황제일지라도 준비 없이 적대하는 순간 정치력으로 압살되고 말 거다. 본래 크래프트 가문이 왕당파였으니 일단은 배신자나 다름없다. 이 사안과 별개로 황제가 다른 정략을 준비해 본보기 삼을 거라는 것쯤은 알기 쉽다.

         

       지지기반이 변방 하늘섬에 있는 파스텔 각하는 제국 수도에서 벌어질 정략에서 속수무책!

         

       하늘섬에서 착하게 있었는데 제국 수도에서 대뜸 반역죄 혐의로 체포령이 날아올 수도 있었다.

         

       세력 큰 귀족파에 가담했건 뭐건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크래프트 가문은 본래 왕당파였으니 귀족파 내부와 끈끈히 연결된 것도 아니다. 귀족파 수뇌부에서 황제와 정치 거래를 한 뒤 파스텔 각하를 스리슬쩍 대가로 내밀 수도 있는 거다.

         

       귀족파는 원래 귀족파도 아닌 애를 제물로 바치고 원하는 걸 손에 넣었으니 이득.

         

       황제 폐하는 배신자를 손쉽게 처리해 위엄을 세웠으니 이득.

         

       이런 모략을 계속 단속하기엔 파스텔 각하는 수도와 떨어진 하늘섬에 있어서 거의 불가능할 테고.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앙!”

         

       진짜 진짜 있을 만한 사건!

         

       무서워!

         

       중앙정계의 심모원려가 너무 무서워!

         

       순진순진 파스텔은 감당 못 할 정략가들이 수두룩하겠지! 벌써부터 준비된 정략들이 내 목을 조르고 있을 거야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귀족파가 건네준 이 후추통이 사실은 가짜라거나?!

         

       제국 수도니 파스텔이 기절해 있을 동안 후추통을 그대로 복제해서 만들 시간과 기반은 충분.

         

       그러면 복제품은 파스텔에게 건네줘 안심시키고 진짜 증거품은 귀족파가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해두면 차후에 필요할 때 증거품 후추통을 꺼내서 자작극 혐의를 다시 제기하겠다고 순진한 파스텔을 협박하는 게 가능하다. 혹은 증거품을 황제에게 넘기며 정치 거래를 하던가.

         

       허억.

         

       생각하고 보니 정말 그랬을 거 같아!

         

       파스텔 각하가 귀족파 수장이었다면 당연히 했을 기초 정략!

         

       본래 왕당파고 배신으로도 악명이 높은 크래프트 가문이니 관리 차원에서 약점 하나쯤은 챙겨놓는 게 맞았다!

         

       “으아아앙!”

         

       파스텔은 후추통을 확인하며 떨었다.

         

       평소에 들고 다니던 것과 완전 똑같다. 하지만 중앙정계의 어두운 심연을 생각하면 도저히 안심할 수 없었다.

         

       설마 나조차 알 수 없게 똑같이 복제했구나!

         

       그런! 그런!

         

       이 사람들 너무 무서워!

         

       정치적으로 죽기 직전을 맞이하자 권력 본능이 파바박 일을 시작했다. 무수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가 하나씩 소거됐다.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핫! 맞아!”

         

       착한 파스텔의 약점이나 챙기는 나쁜 귀족파 말고 왕당파에 기대는 건 어떨까?

         

       파스텔은 악마님을 삿대질했다.

         

       “크래프트는 원래 근왕파잖아요!”

       『전통적으로 왕당파지.』

       “네! 왕당파요!”

         

       파스텔은 충신의 표정으로 변했다.

         

       “사실 저는 황제 폐하를 어렸을 때부터 존경했어요! 그런 제가 왕당파가 아닐 수는 없는 거죠!”

         

       가문이 폭삭 몰락하며 정치 자산이 증발됐지만 어쨌든 크래프트 가문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정통 왕당파다. 왕당파에 들어가면 동정표와 함께 지지받을 수 있을 거다.

         

       황제 폐하는 불편해하겠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크래프트 가문을 나쁘게 대할 수 없다. 배신당하고도 기어코 왕당파로 돌아온 충신 가문을 황위 위협같이 그나마 정당한 이유도 없이 내치면 진짜 정치적 깨꼬닥 행위니까.

         

       허억.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나 완전 똑똑!

         

       악마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놈은 네가 존경할 정도의 가치가 있진 않다.』

       “뭐라구요?!”

         

       파스텔은 악마를 삿대질했다.

         

       “위대한 황제 폐하의 충신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가만있을 수 없어요! 야압!”

         

       파스텔은 달려가 악마의 정장 가슴팍을 툭툭툭 두드렸다.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언제부터 충신이었다는 거냐. 객관적으로 넌 귀족파보다도 더 황실에 존경심이 없다. 귀족답지가 않지.』

       “그런 모욕을! 용서할 수 없어요! 얍! 얍!”

         

       솜방망이 주먹질이 악마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악마가 고개를 젓다가 파르페 수저를 수거했다.

         

       『아직 배고플 테니 먹을 걸 가져오겠다. 아프진 않아도 일단 병상에 누워있어라. 쓰러졌다면 쉬는 게 좋아.』

       “네에!”

         

       악마가 떠났다.

         

       파스텔은 착하게 병상에 누웠다.

         

       그리곤 일단 한번 누워서 악마님 말은 들었으니 일어나 병실을 돌아다녔다.

         

       팔짱을 끼고 진지한 표정이 됐다.

         

       “자작극 혐의는 배신당하고도 왕당파에 재가입하며 황실의 권위를 세워준 대가로 황제 폐하께서 무마해 주시면 이상 없음!”

         

       진품 후추통 무섭지 않다!

         

       응응!

         

       나, 완전 똑똑!

         

       문에서 노크 소리 울렸다.

         

       “앗! 악마님 벌써?”

         

       문을 열자 낯선 금발의 남자가 호위 기사를 대동하고 서 있었다. 남자의 금색 눈동자가 찰나 동안 파스텔을 관찰하고 훑었다.

         

       으엣.

         

       “누구세요?”

         

       남자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보이네? 내가 일이 바빠 미쳐 만찬을 챙기지 못한 동안 쓰러졌다길래 걱정했는데.”

         

       파스텔은 맹해졌다.

         

       내가 일이 바빠 챙기지 못했다?

         

       설마 설마!

         

       금발 금안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황실!

         

       거기서 얼굴이 동안이긴 해도 대략 서른 대인 부모 세대 나이대면 황제!

         

       황제 폐하!

         

       으아아!

         

       갑자기 최고 권력자와 마주친 파스텔은 파르르 떨었다. 분홍 눈동자가 동그랗게 되고 소동물처럼 얼었다.

         

       “펴, 평소 존경! 그러니까, 제가 존경! 네!”

         

       으아아!

         

       뭔 소리야아!

         

       “응?”

         

       황제가 의아해하다가 웃었다.

         

       “고마워. 그런데 들어가도 될까? 이대로 서 있자니 민망하네.”

       “앗! 네! 네!”

         

       파스텔은 후다닥 문가에서 나왔다.

         

       황제가 호위 기사를 복도에 배치하더니 들어왔다. 금색 눈동자가 병실을 훑어보다가 파스텔에게 멈췄다.

         

       황제가 감탄했다.

         

       “정말 블로섬을 닮았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앗, 엄마?

         

       파스텔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옆머리를 만지며 안절부절못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황제의 손이 뻗어졌다. 파스텔의 턱을 잡아 올리더니 얼굴을 관찰했다.

         

       으에?

         

       금안이 차분히 시선을 줬다.

         

       어라라.

         

       이거 두려워하던 상황 아닌가아.

         

       파스텔은 움츠러들었다.

         

       황제가 신경 쓰지 않고 외견을 살펴보다가 감탄했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아쉬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손이 떼어졌다.

         

       파스텔은 후다닥 한 걸음 물러났다. 분홍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으에에.

         

       권력이 부족해.

         

       황제가 관찰하는 눈길로 보다가 싱긋 웃었다.

         

       “파스텔 후작? 오는 길에 듣기론 자작극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어떻게 생각해?”

         

       허억.

         

       적응할 시간도 안 주는 직설적 질문에 파스텔은 숨이 막혔다.

         

       “그게,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준비했던 방안들이 권력의 압력 차이 때문에 머릿속에서 휘리링~ 날아갔다.

         

       허억.

         

       바보바보로 돌아온 기분.

         

       “성격까진 아니지만 정말로 닮았네.”

         

       황제가 혼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뒷짐을 지고 넓은 병실을 거닐었다. 아련한 눈길이 과거를 짚었다.

         

       “블로섬도 오해를 많이 당했지. 가문의 악명에 힘겨워하고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되진 않았어.”

         

       으에?

         

       그 말씀은?

         

       황제가 생각에 빠졌다가 시선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웃었다.

         

       “친우로서 그 자녀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이 내 본분이겠지.”

         

       그러더니 윙크하며 말을 덧붙였다.

         

       “정확한 상황은 데모니우스에게 설명을 듣긴 해야겠지만.”

         

       정상인!

         

       정상이인!

         

       파스텔은 볼이 발그레졌다. 양 주먹을 꼭 쥐었다.

         

       “우와! 우와! 우와! 저! 저!”

         

       흥분하는 숨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외쳤다.

         

       “초면에 저를 제대로 직시해 준 사람은 처음이에요!”

         

       이렇게 착하고 순진한 파스텔을 바로 알아보시다니!

         

       악마님조차 못한 업적!

         

       파스텔은 감동해서 살짝 울상이 됐다. 분홍 눈동자에 물기가 찼다.

         

       “그래? 잘됐네.”

         

       황제가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의심도 고민도 필요 없는 보금자리에 어서 와.”

         

       양팔이 넓게 펼쳐졌다.

       

       “네에!”

         

       파스텔은 달려가 와락 안겼다. 든든한 품 안이 굉장히 포근했다.

         

       황제가 즐겁게 웃더니 손뼉을 쳤다. 병실로 요리를 든 시녀들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작은 뷔페가 마련됐다.

         

       “식사도 제대로 못 했을 거 같아 준비했는데, 먹을래?”

         

       허억.

         

       어떻게 나를 이렇게 잘 아시지?

         

       후추통을 꺼내 들었다.

         

       “먹을래요!”

         

       힐링되는 기분이야!

         

       황제 폐하 만세!

         

       내 인생 최고의 어른이셔!

         

       한편.

       

       악마는 양해를 구해 빌린 주방에서 파스텔이 배불러서 안 먹게 될 사과파이를 만드는 중이었다.

         

       파이 반죽 위에 사과 조각이 하나씩 정성스럽게 놓였다.

         

       『파이 하나로 될지 모르겠군. 그렇다고 기절했던 몸으로 과하게 챙겨 먹을 수도 없는 일이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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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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