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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고통을 직감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주사를 맞기 직전의 아이처럼, 앞으로 닥쳐올 고통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러나 눈을 감기 전 보았던 그 흉기로 찔리는 고통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

       

       

       그에 의문을 느껴 두 눈을 파르르 떨며 살짝 뜬 나의 눈동자는, 눈앞의 광경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우가, 나의 앞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를 향해 날아든 공격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를, 시우가 감싸주었다.

       

       나를 대신해 상처 입었다.

       

       

       “왜, 왜···. 아니, 어떻게···.”

       

       “쓰으읍···. 아, 이거 좀 아프네···.”

       

       

       어깨를 뚫고 들어간 공격에도, 그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분명 아플 텐데.

       

       옆구리에 멍이 든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울 텐데.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르테.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파 보이네.”

       

       “어, 어떻게 여기에···.”

       

       “말했잖아, 아르테.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라고.”

       

       

       그리 말하며 웃는 시우의 손목에 걸린 팔찌가 눈에 띄었다.

       

       

       “위험한 곳에 혼자 가면 안 돼. 알겠지?”

       

       “너는 또 뭐야? 방해하지 마. 방해한다면···!”

       

       “조, 조심···!”

       

       

       다시금 손을 변형시켜 시우를 공격하려는 소녀의 모습에 경고하려던 찰나.

       

       빠악, 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소녀가 저 멀리 날아갔다.

       

       

       “야! 어디로 가는지 말은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어느새 이곳에 나타난 걸까.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아멜리아가 순식간에 소녀를 창으로 후려쳤다.

       

       그리고 시우를 향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말도 없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미안. 이쪽은 꼭 와야 할 것 같아서.”

       

       “와야 할 것 같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를 바라본 아멜리아가 바람이 빠지듯 힘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 좋은 시간 보내···? 너 취향 참 대단하구나.”

       

       “그런 거 아냐, 아멜리아. 너도 잘 알잖아.”

       

       “알았어, 알았어. 농담 한 번 한 거 가지고 왜 그래?”

       

       “농담할 때가 아니니까 그렇지.”

       

       

       아.

       

       ···그러고 보니 나, 알몸이었구나.

       

       부끄러움보다 통증이 너무 심한 나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 아르테. 일단 이거라도 입어. 피에 젖어서 조금 더러운 건 미안해.”

       

       “···가, 감사합니다.”

       

       

       이상하다.

       

       아까부터 심장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전투 직후의 흥분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억제하기 위해 몸이 화학물질을 내뿜고 있기 때문일까.

       

       시우가 자기가 입던 옷을 벗어서 덮어주자, 심장 소리가 더욱 커졌다.

       

       두근, 두근.

       

       작가님이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심장 소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근, 두근.

       

       

       “···야, 유시우. 설마 저게 그 탐색 대상이야? 우리가 죽이려던?”

       

       “응. 아마도.”

       

       “우와, 끔찍해라. 인간은 맞아? 나 진짜 죽일 각오로 때렸는데···.”

       

       

       저 멀리 날아간 소녀가 다시금 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팔 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들도 불규칙적으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소녀가 더는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든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길 방법은 있어?”

       

       “아니.”

       

       “뭐?!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소녀가 육상선수가 달릴 준비를 하듯 자세를 낮추었다.

       

       크라우칭 스타트라고 불리는 자세.

       

       우리를 빤히 바라보던 소녀가 발을 떼자마자, 시우는 나를 끌어안고 몸을 돌렸다.

       

       

       “도망가야지.”

       

       

       -콰아앙!

       

       

       제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는 걸까.

       

       소녀는 시우가 공격을 피하자 그대로 벽을 뚫고 지나가고, 그 자리에는 흙먼지만이 가득했다.

       

       

       “도망치는 건 좋아! 내 특기니까! ···그런데, 계속 도망쳐서 어쩌려고?! 다들 그 거미 떼를 막느라 바빠! 도로시도 사람들 도와주느라 바빠! 지금 우릴 도와줄 사람은 없어!”

       

       “누가 그래?”

       

       “···뭐?”

       

       “도와줄 사람이 없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콰앙, 콰아앙!

       

       

       시우와 아멜리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소녀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우리를 공격하고자 달려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소녀의 시도는 언제나 소녀가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도와줄 사람이 있다니.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걸까.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우우우우우우우우!”

       

       “?!”

       

       “아, 왔다.”

       

       

       계속되는 실패에 짜증이 난 걸까.

       

       아니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다시금 커다랗게 몸을 변형시켜 우리를 후려치려던 소녀의 목덜미를,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대한 늑대가 물어뜯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걸까.

       

       귀찮다는 듯 주먹질을 하려는 소녀의 몸짓에 늑대는 황급히 우리가 있는 장소로 도망쳐오더니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퉷, 왜 이렇게 질겨? 으, 이빨 아파.”

       

       “뭐, 뭐야. 너. 죽은 거···아니었어? 그 모습은 또 뭐야?”

       

       “그렇게 됐네, 부잣집 아가씨. 이 모습은···. 능력이라고 해둘게.”

       

       “···아, 몰라! 나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해야 할 거야! 나 지금 머리 아프거든?!”

       

       “그래, 그래. 나중에 다 이야기해줄게.”

       

       

       ···라이라가 왜 여기에 있지.

       

       멍하니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걸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비웃듯이 웃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비웃는 게 아니라는 것은, 그녀와 함께 살았던 경험으로 인해 알 수 있었다.

       

       라이라는 그저 웃는 게 서투를 뿐이니까.

       

       

       “꼴이 말이 아니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그야 너 구해주러 왔지.”

       

       “당신이 왜?”

       

       “응?”

       

       

       이해가 가지 않았다.

       

       라이라는 나를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

       

       강제로 부하로 삼은 건 둘째 치더라도, 나는 그녀를 죽이려고 했었다.

       

       죽이려고 한 것마저 둘째 치더라도, 나는 그녀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평범하게 생활하던 그녀를 열등감에 찌들어 빌런 조직에 투신하게 한 게 바로 나였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나를 구해주러 올 리가 없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탓일까.

       

       나는 라이라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로 말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라이라는 열등감에 빌런 조직으로 향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

       

       “나만 아니었으면. 작가님만 아니었으면, 라이라는 평범하게 영웅이 되어서 즐거운 삶을 살았을 텐데.”

       

       

       그래.

       

       나만 아니었다면.

       

       작가님만 아니었다면.

       

       히로인 후보라고 말할 정도면 어느 정도 잠재력은 있지 않았을까.

       

       평범하게 영웅이 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걸 모두 비틀어버린 것은 나였다.

       

       내가 작가님에게 권유했다.

       

       라이라를 다른 방식으로 써먹어 보는 건 어떠냐고.

       

       빌런으로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무슨···! 당신의 인생이 바뀌었어요! 평범하게 살 수 있었던 인생이, 이런···!”

       

       “그게 뭐가 문제인데?”

       

       

       말문이 턱하고 막혀왔다.

       

       라이라는 내 말을 근본부터 부정했으니까.

       

       

       “뭐, 뭐가 문제냐니. 그야 전부···.”

       

       “전부? 왜? 나는 내 인생이 이따위라는 걸 잘 알고 있어.”

       

       “그치만, 그치만···. 평범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그건 내가 아니잖아.”

       

       

       그녀는 내게 단언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정말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너희한테 질투해서 빌런에게 손을 빌린 건 나야.”

       

       “하, 하지만 그건 작가님이···. 작가님이 손대지 않았다면 라이라는 평범하게···.”

       

       “나는 처음부터 평범한 걸 바란 적 따위 없었어.”

       

       

       그러니까 이 모양으로 변했지.

       

       그렇게 말하며 머리 위의 늑대 귀를 매만진 그녀가 쓰게 웃었다.

       

       

       “너,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의 나를 본 적 있던가? 왜 내가 평범하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야···!”

       

       “예언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이야.”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예언이라고 말해도 딱히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히로인이 될 운명이었으니까.

       

       

       “···뭐야, 진짜야?”

       

       “비슷해요.”

       

       “허. 그럼 내가 빌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거지?”

       

       

       골치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던 라이라의 등 뒤로, 새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멜리아의 목소리였다.

       

       

       “야, 언제까지 이야기만 하고 있을 거야?! 도와주러 온 거 아니었어?!”

       

       “거기 뱀년 하나 갔잖아! 조금만 기다려!”

       

       “이 여자 도움 하나도 안 돼! 네가 훨씬 낫다고!”

       

       “너무해?!”

       

       “얘부터 죽여, 얘부터! 으꺄아아아악!”

       

       “히이이이이익! 죽, 죽, 죽을 뻔 했잖아요! 무슨 짓이에요!”

       

       “살았으면 됐지!”

       

       “이 쓰레기가! 네가 그러고도 영웅이냐!”

       

       

       라이라는 머리를 긁으며 무언가를 잠깐 생각하더니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원래는 내가 영웅이 될 운명이었고?”

       

       “네.”

       

       “네가 그걸 빌런으로 틀어버렸다? 뭐 대충 그런 이야기야?”

       

       “···맞아요.”

       

       “···그게 뭐가 문제인데?”

       

       “하, 하지만···.”

       

       “아니, 나는 정말 영웅이 되고 싶다고 깊게 바란 적은 없으니까.”

       

       

       라이라는 그렇게 말하고도 찜찜했는지, 내게 몇 가지를 더 질문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하나만 더 묻자. 네가 그 예언이라는 걸 뒤틀어 버린 게 언제인데? 초등학생 때? 중학생 때?”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이 주 안팎이었을 거에요. 정확히는 잘···.”

       

       “너,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의 나 알아?”

       

       “아니요.”

       

       “만난 건 아카데미 입학하고 나서, 검술 배우는 곳에서 처음?”

       

       “···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는 이미 그 예언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정확해요.”

       

       “이 년 진짜 쓸데없는 생각 하고 있었네···.”

       

       “?!”

       

       

       이런 식의 반응은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휘둘리기만 할 뿐이었다.

       

       ···인생을 돌려달라며 저 괴물에게 던져도 할 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만난 놈이 내 과거가 어쩌고 미래가 저쩌고 재단했다는 게 참···.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단장은 멍청하네.”

       

       

       라이라가 내 머리를 검지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사람은 첫인상으로 모두 결정하면 안 돼. 알겠어?”

       

       “그게 지금 일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있지. 너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영웅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잖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질투가 심했거든?”

       

       “하, 하지만 그건 작가님의 설정 변경 탓에···.”

       

       “이것 봐라?”

       

       

       슬슬 짜증 난다는 듯, 라이라가 내 옆구리를 콕콕 쑤셔댔다.

       

       

       “아으으으윽···!”

       

       “그게 진짜라고 확인할 방법은?”

       

       “···없는데요.”

       

       “잘 들어, 멍청한 단장.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왔고, 이게 내 인생이야. 마지막으로 말할게.”

       

       

       슬슬 정말로 버티기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한 걸까.

       

       자꾸만 뒤를 돌아보던 라이라가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내 선택이야. 네 그 시답잖은 예언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으면, 한번 보는 게 아니라 오래 봐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런 내용을 쓸 때마다

    제가 독자님들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네요

    라이라의 생각이 잘 전해졌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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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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