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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진성은 좁디좁은 우물의 안으로 순식간에 미끄러졌다. 축축하고 이끼가 가득 껴 있는 미끄러운 우물의 벽은 기름칠이라도 된 것처럼 그를 아래로 밀어 넣었고, 항상 같은 수위를 유지하며 찰랑거리는 물은 쿠션이 되어 진성을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금 갑옷의 무게에 순식간에 바닥까지 가라앉자 우물 자체가 그의 목숨을 노리는 적이 되었다.

       황금의 갑옷을 뚫고 엄청난 냉기가 엄습한 것이다.

         

       우물의 틀을 이루고 있는 버드나무의 차가운 성질이 냉기라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어 그에게 쏘아진 것이다. 게다가 벼락을 맞았다는 성질이 더해져 냉기가 열기로 뒤바뀌기도 하였고, 진성은 뼛속까지 찌르는 바늘 같은 냉기와 자신의 살을 통째로 익히려는 듯한 뜨거운 열기를 차례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생명체는 물론이고 무생물조차도 저 끔찍한 담금질에 순식간에 제 성질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 분명했으나, 진성은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는 황금 갑옷과 몸 안에 있는 불과 냉기의 힘을 이용해 그것을 어렵지 않게 받아내었다.

         

       뼛속까지 냉기가 침투한다고 한들 바이칼 호수에서 얻은 냉기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으며.

       살 속으로 파고들고 싶다고 한들 삼매의 불꽃과 불꽃을 머금고 내장에 자리한 기생충들이 있으니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담금질을 견디자 또 다른 기운이 엄습해오기 시작했으니.

       이는 우물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기운이며, 우물에 냉기와 열기를 주입하고 있는 근원이었다.

         

       ‘강렬한 목기(木氣)로다.’

         

       진성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몸 주위를 흐르고 있는 목기에 집중했다.

         

       예로부터 나무는 크게 자라나고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는 위로 솟구쳐 오르는 나무의 성질에서 기인한 것인데, 이러한 나무의 성질은 나라가 건국을 하고 크게 일어나는 것을 뜻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어나는 것은 불과 비슷하며, 불에 장작이 들어가는 것처럼 화기를 크게 일으키니 참으로 좋은 기운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는 봄이 찾아오면 생명이 크게 일어나고 여름에 번성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진성은 넘치는 목기를 몸 안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목기를 몸에 받아들이고 오행의 균형을 이룬다면 분명히 좋을 것이다.

       오행의 기운을 이용하는 주술은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당장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한 주술을 사용했으며, 서양에서 역시 4원소설을 기반으로 한 주술 역시 엄청나게 많았다. 게다가 숲이나 농사에 관련된 주술은 목(木)의 기운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성장과 회복과 관련된 것이기에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진성에게 목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크게 득이 될 것이 없는 행위였다.

         

       이는 그의 몸 안에 양기와 음기가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양.

       

       뜨거운 가운데 차가움이 있고.

       차가운 가운데 뜨거움이 있다.

       서로가 꼬리를 물고 움직이며 균형을 이루니,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라.

       이를 음양이라 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오행으로 변질이 되는 순간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하게 된다.

         

       나무가 필요해지고.

       금속이 필요해지고.

       대지가 필요해진다.

         

       물론 여러 가지 요소가 들어간 만큼 힘을 더 세부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안정성 역시 폭발적으로 올라갈 것이 분명하기는 할 것이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그가 동양의 주술만을 익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행의 빈자리야 다른 주술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메울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오행이니 균형이니 하는 것에 눈을 빼앗겨 지금 당장 위기를 초래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수생목(水生木).

       물은 나무를 키운다.

         

       목생화(木生火).

       나무는 불을 키운다.

         

       음양의 사이에 목이 들어와 오행으로 변질이 되면 그 순간 나무는 물을 빨아들이며 자라나 불을 강하게 할 것이니.

         

       서로 형상을 바꾸어가며 간신히 균형을 이루고 있던 그의 몸이 화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마치 화염술사가 가지고 있는 신체처럼 말이다.

         

       진성은 황금을 슬라임처럼 만들어 제 몸으로 파고들려는 목기를 쳐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금속은 나무와 상극.

       약간의 힘만 더해져도 나무에 능히 맞설 수 있으며, 차가운 쇠에 물이 맺히고 담기듯 쇠는 수기(水氣)를 강하게 만드니 키워지는 화기를 억누르는 것도 가능하였으니까.

         

       진성은 목기를 쳐내며 그 기운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찾았다.

       눈을 감자 목기의 흐름이 느껴졌으며, 돌 사이에서 솟아나는 물에 실려 오는 희미한 나무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와중에도 그사이에 실린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며, 벌레도 물고기도 하나 없음에도 비늘 달린 것을 활기차게 하고 곤충의 번식을 돕는 생명의 힘이 느껴졌다.

         

       ‘찾았다.’

         

       진성은 목기의 근원지를 찾자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황금 갑옷의 모양을 바꿔서 벌레의 다리처럼 만들었으며, 그 다리를 이용해 우물의 틈새에 끼워 넣으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올라갔을까.

         

       이끼가 잔뜩 낀 벽면의 틈바구니에서 강렬한 힘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진성이 이끼를 대충 걷어내자 거기엔 다 낡아빠진 나뭇조각이 돌에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조각은 분질러진 지팡이 형상과도 닮아있었는데, 부러진 자리에는 불상의 형태가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불상 형상은 이끼를 이불처럼 덮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입매가 은은한 미가 있어 가만히 보고 있자면 절로 마음이 평온해지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자. 흠. 이 지팡이를 묘목으로 삼아 우물 전체에 뿌리를 뻗게 하고, 돌 틈바구니에서 흘러나오는 청명한 수기(水氣)를 양분으로 삼았다? 거기에 벼락 맞은 버드나무를 천기를 읽는 안테나 역할로 삼고, 물의 기운을 받아 끊임없이 솟구치는 목기를 만들고. 과도하게 부풀어 오르려는 목기는 자연스럽게 천기를 읽는데 사용함으로써 억제하고…. 허. 대단하구나.’

         

       진성은 잘 만들어진 예술품을 보는 것처럼 그것을 몇 번이고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손으로 치워냈던 이끼를 잘 덮어주었다.

       그러자 이끼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벽에 착 달라붙어 순식간에 자라났고, 아까 전 보았던 모습 그대로의 형상을 만들었다.

         

       지팡이 조각에서 넘쳐흐르는 생기로 인한 효과였다.

         

       ‘훌륭한 주술이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고. 내 손을 거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또한, 이런 것은 보존되어야 하니 여기서 그 무엇도 건드리면 안 될 것인즉. 허, 좋은 구경을 하였다.’

         

       진성은 벽에서 멀어졌다.

       그리곤 갑옷의 형상을 바꿔서 때로는 촉수의 형태로, 때로는 벌레 다리의 형상으로 바꾸어가며 미끄러운 우물의 벽을 손쉽게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우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수많은 군인이 총구를 들이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군인들의 얼굴은 파릇파릇해 보였다.

       하나같이 계급이 작대기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근처 군부대에서 출동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즉, 정예가 아니라는 이야기.

         

       그렇다면 정예는 어디에 있는가?

         

       진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겨누고 있는 군인에게 눈을 떼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보자. 저기에 있구나.’

         

       그는 금세 자신을 노리고 있는 다른 총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물 근처에 있는 집에서 작살총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작살의 끄트머리에서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그려진 회로를 따라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나선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는 방어 수단을 그대로 꿰뚫어버리기 위한 관통력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는 드론이 날고 있었다.

       드론은 무화과를 닮은 듯한 구체를 매달고 있었는데, 그 구체에서는 기묘한 파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능력자 제압용 마력 폭탄.’

         

       터지는 순간 충격파를 일으키며 사람의 내부를 흔드는 폭탄.

       일반인은 근거리에서 맞으면 사람의 몸 안이 곤죽이 되어 죽을 수 있으며, 경지가 낮은 능력자라면 내장 파열이나 뇌출혈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이었다.

         

       ‘보자. 그리고 저 멀리에서는 전기 그물이 있고. 저어기에는 저격용 총이 보이고. 저기에서는 차가 오고 있구나.’

         

       진성은 자신을 노리는 수많은 무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갑옷에서 거미 다리와 닮은 것을 빼 우물의 위에 걸치곤, 거기서 가만히 선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레토나가 거칠게 앞에 서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내렸을 때.

         

       진성의 얼굴이 굳었다.

         

       ‘허. 어찌하여 저자가 왔나.’

         

       그의 기억에 따르면 이즈음에 우물을 관리하던 것은 호국회여야만 했다.

         

       ‘검귀(劍鬼) 김종수.’

         

       그런데 지금 차에서 내리는 것은 홍익애국단에 속한 능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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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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