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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단출하다.

         

       이 말만큼 섬서백가의 가주전에 어울리는 단어는 또 없으리라.

         

       돈이 없어서? 아니다.

         

       돈이라면 오대세가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벌고 있다.

         

       가신들이 가주전은 가주의 위엄을 상징하는 곳이라며, 조금 더 꾸미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모든 영광은 오대세가의 자리에 올랐을 때 누리겠다는 말과 함께.

         

       굳은 의지가 그대로 투영된 휑한 가주전을 보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신념이랄지, 광기랄지.’

         

       좋게 말하면 신념이요, 나쁘게 말하면 광기에 가까운 수준.

         

       이에 감화된 가신들은 그에게 목숨 빼고 다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글쎄.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아니던가.

         

       가문에 대한 집착은 가주로서의 그를 최고로 만들었을지 모르나, 아비로서의 그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왔느냐.”

       “예.”

       “앉거라.”

         

       상석에 앉아 있는 백영학은 가히 좋은 모습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화산파에서 백하현까지 사력을 다해 신법을 운용하여 부리나케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장보도를 손에 넣었다고 들었다.”

       “예.”

       “그 과정에서 매화검수들과 마찰을 빚었다고.”

       “예.”

       “처음부터 네가 누구인지만 밝혔어도 됐을 일인데 굳이 마찰을 빚은 이유는 무엇이냐.”

       “한 판 붙어보고 싶어서요.”

         

       백우진이 가주전에 들어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 자식과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있던 백영학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눈가에 덕지덕지 붙은 호승심이 장난처럼 던진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내가 없는 사이 흑풍대와 청룡단을 안으로 들인 게 너라고 들었다.”

       “예.”

       “앞으로 어쩔 셈이냐.”

       “혈수마녀가 남긴 유산이라는 걸 찾아봐야죠.”

         

       무림맹과 사흑련.

         

       두 조직은 배타적인 느낌이 강하다.

         

       자신들의 세력에서 고수가 나오는 건 좋아해도, 신진 고수나 세력이 등장하는 건 싫어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강성해지는 만큼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걸 빼앗길 염려가 생길 테니까.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혈수마녀의 유산을 개인이 온전히 차지하도록 두겠는가.

         

       ‘절대 그럴 놈들이 아니지.’

         

       백영학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가문을 이렇게까지 키우기 위해 정파의 추악한 면을 수도 없이 봐온 그였다.

         

       제법 강성해진 지금도 오대세가 중 일부는 섬서백가의 힘을 억누르기 위해 암암리에 방해 공작을 펼치고 있지 않던가.

         

       ‘독식은 물 건너간 상황이다.’

         

       조용히 몰래 먹을 수 있다면 모를까, 정보가 퍼질대로 퍼진 상황에서 혼자 먹으려 들었다간 몸집 커다란 두 호랑이에게 배가 찢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러니 백우진이 두 세력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주도권을 가져온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지닌 주도권을 이용하여 상황을 조율한다면 유산을 나누더라도 가장 큰 걸 차지할 수 있을 터.

         

       “그래, 알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제 아들의 얼굴을 살폈다.

         

       “…이만 나가 보거라.”

       “예,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밖으로 나가는 백우진.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주전에 혼자 남은 백영학은 생각에 잠겼다.

         

       타박하려 했다.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고 있는 화산파와 척이라도 지게 되면 어찌할 셈이었냐고.

         

       그러나 할 수 없었다.

         

       ‘기괴할 정도로 빠르다.’

         

       용봉비무제 이후로 처음 본 둘째의 성장세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그러다 문득, 둘째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쏟아진 가신들의 찬사가 떠올랐다.

         

       뛰어난 무재를 지녔다고, 둘째 도련님은 반드시 고수 중의 고수가 될 거라는 말들이.

         

       그와 동시에 백우진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리디 여리고, 자그만 일에도 눈물을 터뜨리던 유약한 아이.

         

       무가의 자식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투쟁심이나 호승심이라곤 조금도 가지지 못한 실패작.

         

       “실패작…, 이라.”

         

       그래, 실패작.

         

       그는 아내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여겼다.

         

       평소 정이 많아 두루두루 잘 챙기지만, 무를 대함에 있어서 놀랍도록 순수한 투쟁심과 상승욕이 강한 첫째는 보기만 해도 흡족한 아이.

         

       제 평생을 바쳐 반석 위에 올려둔 섬서백가를 맡아 오대세가의 위치에 올려줄 성공작.

         

       반대로 고수가 될 거란 모두의 기대를 배반한 둘째는 실패작으로 여겼다.

         

       속 빈 강정.

         

       겉모습은 그럴싸하니 정략혼인을 통해 다른 가문과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 정도의 쓰임새.

         

       그게 백영학이 가지고 있던 백우진의 전부였다.

         

       분명 그랬는데.

         

       “내 손아귀를 벗어났군….”

         

       전혀 다른 사람이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

         

       성격만 달라졌다면 또 모르겠으나, 무력도 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자신과 비무를 펼쳐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허, 허허.”

         

       첫째에 대한 소식은 꾸준히 전해 듣고 있다.

         

       무림맹에서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윗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던가 하는.

         

       그런 대견한 첫째를, 둘째가 뛰어넘었다.

         

       “복수심인가, 울분인가….”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저토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또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찌감치 실패작이라 여긴 아들이 대성한 모습을 보고 후회하며 피눈물을 흘려야 할까.

         

       아니면 백우진이 섬서백가의 자식인 건 변하지 않으니 가문의 격이 높아질 것을 기대하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춰야 하는가.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감정과 혼란을 품은 채, 백영학은 시름에 잠겼다.

         

         

       * * *

         

         

       섬서백가의 가주 백영학이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청룡단주 만승은 조금 기대했다.

         

       ‘백우진은 말이 통하지 않을 녀석이다.’

         

       어떻게든 좋은 분위기로 첫날을 장식했으나, 그는 느꼈다.

         

       근자에 떠도는 또라이라는 소문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라면 모든 일은 백우진이 주도하고, 청룡단과 흑풍대는 그의 뒤를 졸졸 따르는 신세가 될 터.

         

       ‘백 가주님이라면 무림맹의 뜻을 충분히 이해해줄 터.’

         

       막무가내인 백우진과 달리, 백영학이라면 같은 정파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이번 일에 대해서 나는 나설 생각이 없소이다.”

         

       이른 아침, 만승과 도경을 맞이하여 차를 내어준 백영학은 그리 말했다.

         

       “우진이에게 모두 일임하였으니, 차후의 일은 모두 녀석과 상의하도록 하시오.”

         

       기대는 덧없이 저물었다.

         

       백우진이 커다란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이상에야, 이제는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조금 강압적으로 나가는 것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림맹과 사문인 청성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잃어버린 주도권을 회복해볼까 생각도 했으나.

         

       ‘느낌이 불안하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깨달은 백우진이라면.

         

       어쩌면 자신들을 온전히 배제하고 사파와 일을 꾸밀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마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는 포기했고, 이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

         

       만약 만승이 그런 식으로 나왔다면 백우진은 정말 사파와 어깨동무를 할 인간이었으니.

         

       정오 즈음에는 첫 회의가 시작되었다.

         

       참석 인원은 신룡조장 백우진과 그의 참모인 제갈연지, 흑풍대에선 도경과 잔추, 청룡단에선 만승과 그의 부단주까지 총 여섯이었다.

         

       “자아, 이제 슬슬 장보도를 찾을 때가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가슴에 고이 모셔둔 장보도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다들 한 번씩 살펴보십쇼.”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만승은 장보도를 손에 쥐어 펼쳐보았다.

         

       거무튀튀한 양피지에 짙게 새겨진 지도.

         

       일부 선이 흐릿하지만, 확실했다.

         

       “이건 섬서를 나타낸 지도로군….”

         

       그를 시작으로 장보도를 한 번씩 확인한 모두가 확신했다.

         

       섬서 어딘가에 혈수마녀의 유산이 잠들어 있음을.

         

       도경까지 거친 후, 장보도를 돌려받은 백우진이 말을 이었다.

         

       “여기를 대충 우리 유능한 참모양과 함께 특정을 해봤는데.”

         

       백우진과 눈을 맞춘 제갈연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 꼬옥 안고 있던 하얀 종이를 탁자 위에 펼쳐보았다.

         

       커다란 종이 위에는 섬서 지역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붉은 점이 콕 찍혀 있다.

         

       “여기가 바로 장보도에 나온 위치인데….”

         

       섬서의 북동쪽.

         

       감숙성과 인접해 있는 지역이 바로 혈수마녀의 유산이 잠들어 있다고 표시된 곳이었다.

         

       이곳은 무언가 숨길만 한 건덕지라곤 없는 광활한 평야 지대였다.

         

       만승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혹 잘못 특정한 것은 아닌가? 이를테면 이곳 인근의 산인데 잘못 짚었다거나 말일세.”

         

       그러자 백우진은 제갈연지의 어깨를 붙잡고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유능한 참모가 그런 실수를 저지를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남녀의 은밀한 거리감과 불이라도 뿜어져 나올 듯한 눈빛에 만승이 입을 닫았다.

         

       대신 도경이 코웃음을 치며 두 사람 사이를 끼어들었다.

         

       “흥,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는 법 아닌가.”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말투.

         

       백우진은 이를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

         

       하지만.

         

       “내 사람은 안 해.”

       “배, 백 공자아….”

         

       애틋한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그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린 도경은 고개를 휙 돌렸다.

         

       “그…, 크흠.”

         

       만승이 언짢음 가득한 헛기침 소리를 내고 나서야 떨어지는 두 사람.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된 후, 그가 말을 이었다.

         

       “만약 정말 이곳이라면….”

       “예.”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평야 지대에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지저(地底).

         

       “땅 파야 할 듯?”

         

       

       물론 내가 아니고 당신들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질 마스터 청룡단과 곡괭이질 마스터 흑풍대,,, 이거 귀하거든요,,,

    여러 고민을 하면서 조금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너무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생각하면서 빨라야 할 때와 느려도 될 때를 구분해보려고 합니다.

    다만 별 내용이 없는 부분이더라도 그다지 재미없게 읽히지 않도록 스스로 읽어보면서 보다 맛있게 쓰도록 노력 하겠습니당.

    눈꼴시린 커플들에 고통받는 도경의 모습은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슬며시 젖어가는,,,크흠,,,

    화요일 정도면 어느 정도 복잡한 일이 해결될 것 같네요.

    연참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사실 곧 있을 공모전에 19금 소설로 도전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고 있어서 그것도 한번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언제나 남는 시간에 할 예정이니 연재가 박살 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여러분께 소소한 재미를 더할 작품 하나 더 만들어 보잔 생각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보고 싶은 소재 있으시면 추천 좀,,, ㅎㅎ,,,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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