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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129화. 마지막 시련 ( 2 )

       

       

       

       

       

       세상에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해가 뜨면 낮이 된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꽃이 시들면 열매가 피어나고, 눈이 오면 날이 추워진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러한 것들이 한순간 눈앞에서 파괴된다면.

       아침에 일어났는데 태양 대신 달이 뜬다면.

       

       무슨 심정이겠는가?

       

       

       “무, 무슨…” 

       

       

       지금 케니스는 눈 앞에서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목도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충격.

       마치 세상의 일부가 무너지는 듯한 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

       

       그녀가 알고 있는 성도와는 조금씩 다른 이곳.

       인파 속에서 데모닉을 찾아낸 것 까지는 좋았는데…

       

       데모닉의 옆에 여자가 있었다.

       

       

       “팔라딘 님 옆에… 여자가…?”

       

       

       너무 놀란 나머지 옛날의 호칭이 튀어나올 정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케니스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려왔다. 

       그녀가 알고있는 데모닉이라면 여자는커녕, 동성 친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느낌이 왔다.

       

       저것은 진짜 데모닉이 아니다. 환영 같은 것으로 그녀의 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필시 그녀의 시련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샥. 샤샥.

       

       인파와 거리의 장식물에 숨어가며 몰래 저 둘의 뒤를 따라간다. 한 손으로는 유사시를 대비해 언제라도 검을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혀가며 가짜 데모닉과 여자의 대화를 엿들었다.

       

       데모닉의 얼굴을 한 가짜가 붉은 머리 여자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작은 장미. 이제 어디로 갈까?”

       

       “으음. 나는ㅡ”

       

       “크으욱!”

       

       쿨럭.

       

       몰래 엿듣던 케니스는 사레가 들려 크게 기침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나팔 소리를 들은 듯하다.

       

       뭐? 뭐라고?

       

       

       ‘자, 자자자자 장미? 장미이?’

       

       

       저 느끼하기 짝이 없는 호칭은 뭐란 말인가? 저렇게 다정하게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짓이며,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이라니!

       손이 덜덜 떨려오고 얼굴의 핏기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환영을 이용한 정신 공격이라면, 아주 크게 성공한 것이다.

       

       

       ‘시, 신이시여… 정녕 이것이 저의 시련입니까?’

       

       

       생부의 모습을 한 가짜의 행동은 케니스에게 아주 큰 혼란을 줬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데모닉은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시련이란 말인가. 

       

       케니스는 머리를 싸매고 크나큰 혼돈에 빠졌다. 마치 심연을 엿본 고양이 같은 표정이 된 케니스.

       

       

       “음?”

       

       ‘아차!’

       

       

       낭패다.

       기침 소리를 들은 가짜 데모닉이 케니스가 숨은 방향을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가까운 덤불을 향해 몸을 날리고 숨을 죽인 케니스. 바짝 엎드려서 인기척을 죽인다.

       

       

       “왜 그래, 닉?”

       

       “아니. 누가 뒤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뒤에? 음… 아무도 없는데?”

       

       “…기분 탓인가.”

       

       

       케니스가 숨은 덤불 바로 앞까지 다가온 가짜 데모닉. 주변을 조금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돌아갔다.

       십년감수한 케니스는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ㅡ

       

       다시금 여자에게 돌아간 가짜 데모닉. 둘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는, 으레 연인들이 할 법한 장난질을 하며 대로를 걸었다.

       

       그러니까… 서로 손가락을 얽히며 장난친다던가, 상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돌돌 말기도 하는.

       시답지 않지만 애정이 묻어있는 행위를 하면서 말이다.

       

       

       “아이 참! 닉! 내가 머리카락 엉킨다고 하지 말랬지!”

       

       “걱정마 내 장미. 넌 머리카락이 엉켜도 아름다워.”

       

       “아니. 내가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쿠궁ㅡ!

       

       케니스는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눈을 부비고 다시 한번 바라봐도, 여전히 데모닉이다.

       저 은빛 머리칼, 은빛 눈동자에 특유의 무뚝뚝한 눈매.

       

       그녀가 알고 있는 얼굴보다는 젊어 보이지만, 데모닉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설마?’

       

       

       번개처럼 내리꽂힌 하나의 가정.

       케니스의 바로 앞선 차례, 라이언하트는 과거로 돌아가는 시련을 겪었다.

       

       그렇다면.

       그녀도 과거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데모닉이 매우 젊고, 그녀의 어머니가 살아있던 시절로? 

       

       일리 있는 추측이다.

       단골 식당의 주인이 바뀐 것도, 그녀가 자주 먹던 메뉴가 없는 것도. 묘하게 일부분이 다른 성도의 거리도.

       그녀가 과거로 온 것이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저 사람이 내 엄마라고?’

       

       

       데모닉과 팔짱을 낀 채 서로 귓속말을 하며 사랑의 밀어를 주고받고, 남들의 시선을 피해 뽀뽀를 하는 저 사람이?

       

       

       “으, 으음…”

       

       

       언젠가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부모님의 연애사를 알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따라가 봐야겠어.’

       

       

       부모님의 연애사를 보고 싶지는 않지만, 어머니에 대해서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데모닉은 유독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했기에. 

       이번 기회에 직접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샥. 샤샤샥.

       

       대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든 데모닉과 어머니. 케니스는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며 둘을 따라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데모닉이라면 미행을 금방 눈치 챘을 테지만, 아직 실력이 무르익기 전인지 미행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닉. 가서 오늘은 뭐 먹을 거야?”

       

       “거기 가서 먹는 건 매일 똑같은 거지. 네가 매일 아름다운 것처럼.”

       

       “으. 내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저 연애질에 한눈 팔린 것일 수도 있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익숙하게 누비는 연인. 그 뒤를 따라가는 케니스는 어딘가 낯이 익은 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찰랑~

       

       골목길에 위치한 음식점의 문이 열리며 경쾌한 종소리가 울린다. 데모닉과 케니스의 어머니는 자주 와 본 가게인지, 익숙하게 들어갔다.

       

       

       “여기는…”

       

       

       간판에 그려진 고기 모양의 그림.

       

       언젠가 데모닉의 추천을 받은 루엘이 케니스와 함께 왔던, 바로 그 가게였다.

       

       

       

       

       

              *       *       *        *        * 

       

       

       

       

       

       파아아앗ㅡ!

       

       케니스의 시련은 눈부신 빛과 함께 시작됐다. 결투장의 모든 이가 눈을 가려야 했을 정도의 강렬한 빛.

       마치 태양이 지상에 임한 듯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며 빛이 사그러지자, 결투장 가운데에 조용히 누워있는 케니스가 보였다.

       

       마치 잠을 자는 듯 평온한 얼굴의 케니스. 데모닉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보다 못한 안토니오가 데모닉에게 말했다.

       

       

       “팔라딘 데모닉. 도대체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건가. 그렇게나 걱정되나?”

       

       “죄송합니다, 대사제 님. 걱정… 예, 걱정됩니다. 앞선 도전자들의 시련은 하나같이 신화 속에서 나올 법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네. 용과 거인, 미궁의 지옥과 과거의 혼령들… 하나같이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것들이었지.”

       

       “사도분들의 시련이 그 정도일 텐데. 여섯 번째 신께서 용사에게, 케니스에게 얼마나 가혹한 시련을 주실지… 저는 그것이 너무나 걱정됩니다.”

       

       

       데모닉의 얼굴은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무뚝뚝한 인간이 딸 이야기만 나오면 팔불출이 되니.

       안토니오는 껄껄 웃으며 데모닉을 안심시켰다.

       

       

       “하하! 걱정하지 말게. 용사님은 자네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강인한 분이시니까.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굳세게 이겨낼 수 있을 분이야.”

       

       “…그렇겠지요?”

       

       “그럼! 신께서는 항상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을 주신다는 걸 기억하게. 용사님은 분명 이겨낼 수 있을 테지.”

       

       “…예. 참으로 그렇습니다.”

       

       

       안토니오의 말을 들은 데모닉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케니스를 바라봤다. 

       

       안토니오의 말대로였다. 신께서는 항상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을 준비하시니, 굳건한 마음과 함께라면 꺾이지 않을 터이다.

       

       

       ‘힘내거라, 케니스.’

       

       

       속으로 케니스를 향한 짧은 응원을 보낸다. 부디 신께서 그녀를 보우하시기를.

       

       파아아앗-!

       

       결투장의 공중에 떠 있던 거대한 거울이 빛나며 한 풍경을 비추기 시작한다. 앞선 도전자들과 같은 모습이다.

       이제 저 거울은 케니스가 치르고 있는 시련에 대해 보여줄 것이다.

       

       꿀꺽.

       

       데모닉은 마른침을 삼키며 거울에 집중했다. 과연 그녀는 무슨 시련을 치르고 있을 것인가.

       

       

       ‘사악하고 끔찍한 괴물? 아니면, 잔인하고 교활한 악마? 그것도 아니면 함정으로 가득한 미궁?’

       

       파앗!

       

       거울 속 풍경을 본 관중들이 술렁거렸다.

       

       

       “저건…”

       

       “성도야? 성도 맞지? 여기 만신전 앞 사거리 같은데.”

       

       “그러게, 성도네?”

       

       “시련이 성도랑 관련이 있는 건가?”

       

       

       거울은 성도의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성도 특유의 흰색 건물이 가득하고, 만신전의 문양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다.

       

       

       “저게 무슨…?”

       

       “허허. 신께서 용사님께 어떤 시련을 주시려는고?”

       

       

       안토니오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더욱 거울에 집중했다. 데모닉도 눈을 부릅뜨며 거울 속 풍경을 바라봤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응원과 기도뿐이지만, 그것이라도 케니스에게 미약한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눈에 신성력을 두르기까지 했다.

       

       흠칫!

       

       ‘저건!’

       

       

       거울 속 성도를 샅샅이 훑어보던 데모닉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거울이 보여주는 성도는 지금과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시간이 다르다.

       거울 속 성도는 과거의 모습.

       

       케니스는 지금 과거의 성도에 가 있었다.

       

       

       “대사제 님, 저건 과거의…!”

       

       “나도 방금 막 알았네. 옛날인 건 확실한데, 몇 년 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군.”

       

       

       안토니오도 과거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거울을 바라봤다.

       

       신께서는 무엇을 위해 케니스를 과거로 보냈을까. 무언가 가르치고자 하는 게 있으심일까?

       

       

       거대한 거울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케니스를 따라 풍경을 바꿨다. 낯익은 대로와 가로수길, 사거리의 식당까지.

       시간의 흔적이 묻어난 장소를 지나갔다.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변해버린 풍경들.

       

       

       – “아ㅃ…”

       

       “음?”

       

       

       그리고.

       

       거울은 낯익은 머리를 보여줬다.

       시린 은빛 머리카락의 남자. 

       

       데모닉.

       

       그가 케니스의 시련에 나타났다. 정확히는 과거의 데모닉이지만.

       

       

       “허?! 잠시. 잠시만… 지금 제, 제가 지금 저기 나오고 있는 것입니까?”

       

       “어허… 흠. 으흠… 자네가 맞는 거 같은데…? 저기에 자네가 왜 나오고 있나?”

       

       “제가 묻고 싶습니다! 저건 도대체…”

       

       

       좋지 못한 예감이 스친다. 끈적한 진흙 같은 불길함. 본능이 어서 이 자리를 피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거울은 천천히 움직이며 거울 속 데모닉의 옆을 비춘다. 낯익은 붉은 머리카락.

       데모닉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온 시야가 붉은색으로 가득 찬다.

       

       찰랑이는 머리카락, 살짝 구불거리는 특유의 곱슬과 정열적인 붉은 머리칼.

       어떻게 잊을까. 어떻게 감히 너를 잊을까.

       

       꾸욱.

       

       저도 모르게 목에 걸린 로켓을 움켜쥔다.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잊을 수 없었다.

       

       데모닉은 멍하니 거울 속 여인을 바라봤다. 안토니오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그. 괜찮나?”

       

       “…괜찮습니다. 이렇게라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다니… 참으로 은혜입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심이네.”

       

       

       데모닉은 거울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다. 참으로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이었다. 과거의 데모닉은 그녀와 함께 온 성도를 누비며 뜨거운 사랑을…

       

       

       ‘잠깐만.’

       

       

       저 거울이 과거를 비춘다면, 과거의 데모닉이 했던 말도 그대로 나온다는 소리 아닌가?

       스멀스멀 발끝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의 이름은 불행이라.

       

       아닐 테지. 아니어야 한다. 제발.

       

       데모닉은 거울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제발, 아닐 것이다.

       

       이윽고 거울 속의 데모닉이 천천히 입을 열며 말한다.

       

       

       – “내 작은 장미. 이제 어디로 갈까?”

       

       “으아아아아악!”

       

       

       데모닉은 거울을 향해 날아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이건 꿈일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신선우’님!! 귀중한 후원!! 감사합니다!! 굳세어라 케니스..!! 힘내라 케니스…!! 월남쌈도 맛있죠…!! 비록 저는 회사 구내 식당이지만…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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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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