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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리브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

         

       다만 짧게 신음했다.

         

       “프란츠 경.”

         

       달빛이 리브가의 얼굴 옆면에 짙은 음영을 드리웠다.

         

       리브가는 눈길을 돌려, 속삭이듯 말했다.

         

       “가서 대악마와 관련된 자료를 가져와 주세요.”

         

       언제나처럼, 조곤한 목소리였다.

         

       “…….”

         

       프란츠는 마른침을 삼키며 리브가를 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리브가의 복장은 언제나처럼 정갈했다. 그녀의 몸짓 또한 차분하고 단정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미소를 짓지 않는 성녀를 보며, 프란츠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일도, 없습니다.”

       “그럼 어서 가보세요.”

         

       천막에 더욱 깊은 밤이 찾아왔다.

       바깥은 고요했다. 그 흔한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인기척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아무 것도 모르는 벌레들조차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일까.

         

       리브가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키엘을 응시했다.

         

       “…….”

         

       사실, 키엘은 악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가 아는 악마라고는 전생에 마주쳤던 대악마 벨페고르 뿐이었다.

         

       그래서 키엘은 올리비아를 ‘마기를 가진 여성형 악마’가 납치해갔다고만 했지, 누구라고 특정짓지는 못했다.

         

       ‘아직……몰라.’

         

       리브가가 아직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순간 리브가의 뇌리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서, 지금 당장 도망치렴.]

       [엄마는 괜찮아.]

       [곧 뒤따라 갈게.]

         

       프란츠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 또한 커져만 갔다.

         

       정말로, 또 아스모데우스의 짓일 것만 같았다.

         

       리브가는 크게 심호흡했다. 그러자 기억이 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워낙 흐릿하게 퇴색된 옛 기억인 탓에,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망각이 신의 축복이라는 것을, 이럴 때마다 실감하고는 했다.

         

       하지만.

         

       [어때, 구해낼 수 있겠니?]

         

       잊을 수 없는 기억도 있다.

         

       [이건 시합이야. 내가 빼앗을지, 네가 지킬지.]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

         

       그날, 리브가는 패배했으며.

         

       아스모데우스는 빼앗은 올리비아의 몸을 이용하여, 무수한 죄악을 저질렀다.

         

       그런 짓을 다시 반복하게 둘 수는 없었다.

       

       곧 프란츠가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고 왔다. 리브가는 그중에서 정확히 종이 한 장을 뽑아냈다. 대악마 아스모데우스가 그려진 삽화였다.

         

       그건 리브가가 직접 그렸던 삽화였다.

         

       아스모데우스를 마주하고도 살아남은 인간은, 그녀 한 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리브가는 짧게 숨을 들이켠 뒤 말했다.

         

       “……이렇게 생겼었나요?”

         

       한동안 삽화를 응시하던 키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리브가의 몸이 마비에 걸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리브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다시 봐주세요.”

       

       리브가가 원하는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침묵이 있었다.

         

       끔찍하기 그지 없는 고요 속에서, 리브가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키엘 공작님, 제발……제발 다시 봐주세요.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아니여야만 한다.

       

       종이를 든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종이에 그려진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갈수록 구겨지고 뒤틀려갔다.

         

       “……미안하다.”

        “제발!”

         

       사과 따위를 들으려고 당신을 살린 게 아니다.

       그러면, 정말로 언니를 잃어버린 것이 되니까.

         

       사람은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을 때 사과한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안 돼. 제발.’

       

        리브가는 연신 종이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리브가는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파.’

         

       심장이 아프다. 숨이 막힌다.

         

       “아……. 아아…….”

         

       바닥을 터질 듯 움켜쥐었다.

         

       까드득.

         

       손톱 사이로 돌가루가 파고들어 피가 흐른다. 자애로 가득했던 두 눈에, 지독한 원독이 차올랐다.

         

       왜 또 아스모데우스인가.

         

       왜. 왜. 왜.

         

       리브가의 턱이 떨렸다. 달빛을 따라 천막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니 잿더미로 변한 나무들이 보였다. 몇몇 나무에는 두꺼운 화살이 박혀 있었다.

         

       ‘……’

         

       리브가는 덜덜 떨리는 몸을 이끌고 화살이 틀어박힌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화살을 붙잡는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뽑아낸다.

         

       “읏, 아아…….”

         

       언어조차 잃은 리브가는 떨리는 손끝으로 화살촉을 더듬거렸다. 날카로운 화살촉 끝에는 피와 살점이 가득 맺혀 있었다.

         

       “아……. 아아아……. 아아…….”

         

       어찌하여 인간의 탈을 쓰고도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팔아넘겼다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악마에게.

       그것도 올리비아에게 지독한 죄업을 떠넘긴 그 망할 아스모데우스에게.

         

       – 칭찬 받으면 기분 좋잖니.

         

       – 언니라고 불러도 된단다.

         

       그것도 한 때 동료였다는 작자들이.

         

       “어떻게, 어떻게…….”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말이 이어지질 않는다. 시야는 자꾸만 흐려졌다.

         

       리브가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웅크렸다.

         

       날카로운 돌가루들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를 흩뿌린다.

       

       터질듯 깨문 입술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언니.

         

       언니가 뭐래도, 저는 도저히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하늘이 찢어질 듯 오열하는 리브가를 지켜보던 키엘이 차마 더 보지 못하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성녀와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올리비아가 소중한 사람이었듯, 리브가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가족. 어쩌면 그보다 더.

         

       ‘……결국 이렇게 되는가.’

         

       복수는 결국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나지막히 한숨을 내쉰 키엘이 짓씹듯 입을 열었다.

         

       “……아마 그들 뒤에는 황녀가 있었을 것이다.”

         

       리브가의 고통스러운 심장 박동이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울려퍼졌다.

         

       “네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

       “그것이 올리비아를 팔아넘긴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라면, 나도 기꺼이 힘을 보태겠다.”

         

       리브가는 한참이나 말 없이 키엘을 바라보았다.

         

       왜 리브가가 말이 없는지를 짐작한 키엘이 결의에 찬 눈동자로 리브가를 바라보았다.

         

       “물론, 가장 먼저 올리비아부터 구할 것이다.”

         

       꿈에서, 키엘은 보았다.

         

       꿈속의 자신은 강했다. 단순히 검과 합일(合一)을 이루는 수준을 넘어서, 검이라는 기물에 구애받지 않았다.

         

       공간을 자르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세계를 이루는 모든 개념을 제 입맛대로 유린했다.

         

       그것이 검의 끝이라는 것을, 키엘은 직감했다.

         

       – 키엘 대공. 지금부터 나와 올리비아가 나눈 대화는 기억에서 지우게.

         

       사실 꿈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너무나도 생생했다. 마치 그 자리에 직접 있던 것 같다고 느꼈을 정도로.

         

       꿈속의 자신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 아니. 황녀와 올리비아가 나누는 대화를 묵묵히 들었다.

         

       – 그래도 다행이구나.

       – 뭐가?

       – 네 비밀을 들킨 것이, 이번 회차가 처음이라는 뜻이니.

         

       굳이 귀를 막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전부 잊을 생각이었기에.

         

       하지만…….

         

       ‘그것은 정말 꿈이었는가?’

         

       아주 예전에, 올리비아가 생각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설마…….’

         

       키엘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예상이 틀렸기를 바라며, 꿈속의 자신이 했던대로 자세를 잡았다.

         

       중단세(中段勢).

         

       모든 검술의 기본이자, 가장 이상적인 자세.

         

       키엘은 검을 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그가 곧 검이었으니.

       

       이내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검 한자루가 나타났다. 다른 누구도 볼 수 없는, 오직 키엘의 눈에만 보이는 검이었다.

       

       심검(心劍).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키엘은 조금도 기뻐하지 못했다.

       오히려, 손에 들린 이 검이 환각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의 검이 베라고 소리친다. 베어야 한다. 뭐라도 베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래서.

         

       키엘은 바닥을 향해 양손을 내리그었다.

         

       “…….”

         

       다음 순간.

         

       땅이, 나무가, 하늘이, 달빛이.

         

       고요히 잘려나갔다.

         

       동시에 키엘은 깨달았다.

         

       꿈이 아니었다.

       

       ‘……왜.’

         

       키엘이 비통한 얼굴로 숨을 내뱉었다.

         

       깊은 한탄과 회한이, 하이얀 숨에 묻어 흘러나왔다.

         

       [내가 키우는 제자들 있거든. 아는 분한테 걔들 좀 부탁하고 왔어.]

         

       키엘은 북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야할 곳이 있었다.

         

         

       *****

         

         

       마신의 잔재를 찾아 나선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올리비아는 가장 먼저, 제 상태부터 다시 확인했다.

         

       아무래도 10년 동안 잠적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올리비아]

       – 레벨 : 100

       – 직업 : 혹한과 뇌전의 대마법사

       – 칭호 : 황제의 절친, 마신 살해자, 대현자…….

         

       하지만 이상하다 할 만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상태창에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일단 그런 경우는 배제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키엘이었다. 상태창을 다시 확인한건 물론이거니와 며칠에 걸쳐서 밀착 감시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리브가는 조사할 것도 없었다. 완숙한 성인이 된 그녀는 아직도 성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여 직접 만나보기까지 했지만, 예상대로였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

       

       올리비아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유도시 마키나.

         

       단순히 눈에 보이는 정경만 보면, 산업혁명 시대의 유럽이 떠오르는 그런 비주얼이었다.

         

       물론 석유와 석탄 대신, 마법 공학이라는 학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올리비아는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는, 범인들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슬슬 미끼를 물 때가 됐는데.’

         

       올리비아의 자리에는 텅 빈 잔들이 몇 개씩 쌓여 있었다. 주인장의 눈치가 보여 주문했던 커피들이었다.

         

       앞으로 몇 시간이나 더 이 짓을 하고 있어야 되는건지 고민하던 그때.

       

        갈색 헌팅캡을 쓴 청년이, 올리비아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올리비아를 유심히 보더니,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이게 누구야?”

         

       웃음기 가득한 얼굴.

       이제 보니 청년보다는 청소년에 조금 더 가까웠다.

         

       도대체 누가 저 서글서글한 얼굴 너머에 괴물이 숨겨져있다고 생각할까.

         

       “그래, 제국의 대현자님께서 여긴 무슨 일이시래? 설마 나 잡으러 온거야? 응?”

       “징그러운 새끼.”

        “……음?”

         

       올리비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나름 숨긴다고 숨긴 모양인데, 올리비아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걸릴 작정으로 왔을 수도.

         

       “……몇 명이나 죽였냐?”

         

       피 냄새가 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

    키엘의 Ai 삽화를 뽑아보려는 시도를 해봤는데

    AI는 제가 원하는 다부진 체형을 잘 못뽑더군요.

    대검사인지라 호리호리할 수가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무왕으로 돌렸는데

    그 특유의 광기어린 미소를 표현을 못하덥니다.

    (씨익)

    이걸

    그래서 같은 이유로 에스티도 못뽑고 있습니다.

    둘다 한 광기 하는 녀석들인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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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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