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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제가 927 작가입니다.”

         

         

       …….

         

       서은우의 말을 끝으로 순간 회견장 안은 침묵에 빠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쥐죽은 듯 조용했다.

         

       누군가는 방금 들었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누구는 서은우의 말에 의심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서은우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어찌 보면 기자로서 당연했다.

         

       세간에서 최고라고 평가받고 지금껏 한 번도 대외선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신비주의 작가.

         

       그런 대단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당연히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되는데…….

         

       어째서 눈앞의 소년은 자신이 한 말에 한 치의 거짓이 없는 듯,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거지?

         

       그때 기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발언했다.

         

         

       ─그… 저희가 서은우 학생의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좋은 질문이에요. 그리고 이번 걸 포함해서 이제부터 927 작가로서 몇 가지 질문을 받을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질문에 관한 대답을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927 작가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이 자리에 모셨거든요.”

         

         

       서은우의 시선이 회견장의 입구 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어느샌가 이곳에 들어선 스튜디오엔믹스 기획제작 1팀의 리더, 나영진 PD가 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서은우가 서 있는 단상으로 걸어갔고, 서은우는 그가 말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예. 927 작가님의 부탁으로 이번 기자 회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러운 나영진 PD의 등장은 기자들을 술렁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927 작가가 은퇴하기 전, 그의 오른팔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 바로 나영진 PD 아니던가?

         

       심지어 청상예술대상 같은 시상식 자리에서 항상 대리 역할을 수행했을 정도로 927 작가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기자들에겐 나영진 PD는 제법 익숙한 얼굴이었으며, 동시에 그가 927 작가의 부탁으로 이 자리에 참여한 순간부터 서은우의 말이 거짓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말하겠습니다. 우선 제 옆에 있는 서은우 학생은 927 작가님이 맞습니다. 만약 믿기 힘드시다면 가장 확실한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나영진 PD가 가져온 것은 흰 종이 뭉텅이였다.

         

       그것은 스튜디오엔믹스와 927 작가가 나눈 역사적인 첫 계약서.

         

       당연히 그 계약서의 끝에는 박용오 국장과 927 작가의 싸인이 적혀있었다.

         

         

       “여러분들이 정말 좋아하는 필적 조회를 한 번 해보시면 바로 답 나올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스튜디오엔믹스의 공식 서명입니다. 저희는 서은우 학생이 927 작가인 것을 입증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며, 만약 이 사실을 끝까지 믿지 않으시는 분들에겐……”

         

         

       스튜디오엔믹스와 927 작가에게 정말 큰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서명문이었으며, 누가 이런 뻔뻔한 멘트를 생각했는지는 뻔했다.

         

       스튜디오엔믹스의 경영 사업 국장.

         

       ……유연정.

         

         

       “아, 아.”

         

         

       이윽고, 나영진 PD가 단상에서 내려가고 서은우가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그럼 다시 기자 회견을 시작해 볼까요? 우선 제목부터 조금 수정하죠. 서은우가 아닌 927 작가 기자 회견으로요. 이견이 있으신 분은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로 나가주시면 되겠습니다.”

         

         

       서은우가 싱긋 웃으며 말을 끝내자 회견장 안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그렇게 서로의 눈치를 잔뜩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진 기자들.

         

       다만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은 눈앞의 소년을 일단 927 작가로 인정한다는 뜻이었고, 동시에 서로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마 대부분의 기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이번 기자 회견에 참여했을 것이다.

         

       기껏 해봐야 이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애송이 고등학생 아닌가?

         

       대충 이런 식의 안일한 생각으로.

         

       하지만 눈앞의 기자 회견 대상이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그 927 작가인 것을 깨달은 순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현장이 역사적인 927 작가의 첫 기자 회견이란 것과 심지어 이 모든 과정이 실시간으로 생방송 중이라는 것.

         

       뭔가 927 작가가 그려놓은 판에 제대로 떨어진 것을 깨달은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말이든 행동이든 실수라도 했다간 진짜 나락 간다……

         

       라고.

         

       물론 이미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실수를 저지른 기자가 있긴 했다.

         

       서은우가 스스로를 927 작가라고 밝히기 전, 그의 말에 다짜고짜 끼어든 한 여기자.

         

       그 여기자는 서은우가 스스로를 927 작가라고 밝힌 순간부터 계속 침묵했다.

         

       이런 부분에선 나름 눈치가 있던 모양인지 곧바로 이상함을 느끼고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아, 그전에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는데……. 제가 그 기자분 말씀처럼 그릇이 작아서 말이에요. 분명 되도록 질문은 받지 않는다고 사전에 고지까지 했는데 말이죠.”

         

         

       그 말에 회견장 안에 있던 기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당연히 서은우 역시 그들의 시선이 자신의 말에 끼어든 그 여기자에게 향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물론 뻔뻔하게 모른 척을 했다.

         

       이 기자 회견을 좋은 분위기로 이어가는 데에 있어 제대로 본보기가 될 은인을 그리 미적지근하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어디 계셨죠? 제가 너무 긴장해서 얼굴까지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러니 카메라 감독님들께서 집중적으로 클로즈업을 해주시면 제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서은우의 그 말에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돌리기 시작하는 감독들.

         

       그 순간 다급히 누군가가 얼굴을 가리며 회견실 밖을 뛰쳐나갔다.

         

       서은우는 그 모습을 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전 세계적으로 얼굴이 팔리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이미 기자 참석 명단에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고, 저 상태로 돌아가 봤자 곧바로 다니던 직장에서 잘릴 가능성이 매우 크겠지.

         

       뭐… 어쩌면 더 큰 폭풍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을 테고.

         

       물론…….

         

         

       “자, 그럼 지성인들끼리 대화를 좀 나눠볼까요? 몇 가지 질문만 받고 기자 회견을 빠르게 끝내겠습니다.”

         

         

       내 알빠는 아니긴 하다.

         

         

         

       ***

         

         

         

       여기자를 내쫓으면서 분위기가 조금 다운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기자들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내게 질문을 해왔다.

         

       다들 지금쯤 자신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

         

       아니면 나한테 궁금한 점이 워낙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927 작가, 즉 나에 대해선 알려진 정보가 너무 적으니까 뭐…….

         

         

       ─혹시 다시 업계로 복귀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은퇴 의사를 밝혔을 때도 말했다시피 잠정 은퇴였죠. 제가 제일 잘하는 건 대본을 적는 거고, 일단 드라마를 만드는 것 자체는 재밌으니까요. 그러니 복귀 생각은 어느 정도 있습니다만.”

       ─……다만?

       “나이도 나이고, 저도 사람인지라 당연히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 부담감이 또다시 남아 있던 재미와 흥미마저 없앤다면, 그때는 완전히 은퇴해야겠죠. 이상입니다.”

         

         

       이것은 이 자리를 빌려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나한테 얼른 작품 내라고 개지랄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원하게 대본을 적는 일을 때려치우겠다는 것.

         

       물론 나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긴 하다.

         

       그래도 한번 927 작가의 은퇴를 겪었으니 이젠 조금 다르게 들리지 않을까 싶은데…….

         

         

       ─질문하겠습니다! 그럼 한빛예고 연극·영화부는 들어가신 이유가 뭡니까? 그 동아리가 창설된 이유가 은퇴하신 927 작가님의 가슴에 불을 피우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쓰으읍…….

         

       질문의 의도는 뭔지 알겠다.

         

       삼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도 연극·영화부의 상황이 이해가 잘 안 되겠지.

         

       어떻게 보면 927 작가의 복귀를 위해 927 작가가 스스로 직접 대본을 쓰게 된, 조금 아이러니한 상황이니.

         

         

       “그 질문에 관해서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저도 박하준 배우의 열정에 휘말려 그곳에 우연히 들어간 거여서요. 물론 그때 그는 제가 927 작가인 걸 모르는 상태였고요. 그냥 정말 우연과 우연이 겹쳤다고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 동아리에서의 활동이 작가님의 심정에 영향을 끼쳤습니까?

         

         

       이건 조금 예상 밖의 질문이다.

         

       과연 연극·영화부에서의 활동이 내 심경에 영향을 끼쳤나?

         

       사실 활동이라고 해봤자 대한청소년연극제밖에 없긴 하다.

         

       물론 그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돌이켜보면 그 과정이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결과도 딱히 나쁘지 않았고.

         

       또한, 설소영과 이다혜. 솔직히 그녀들이 누구를 위해 그렇게까지 열심히 연기했는지 지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고 싶은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긴 했죠. 주로 긍정적인 쪽으로요.”

         

         

       설마 이 말을 듣고 박하준이 오해하지는 않겠지?

         

         

       ─927 작가님. 그럼 설소영 학생과 이다혜 학생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이 문제로 최근 많은 논란을 겪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어쩌면 내가 이 기자 회견을 계획한 것도 우리의 관계에 관한 정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좋아하는 관계죠.”

       ─그… 누구랑 말입니까?

       “둘 다요.”

       ─……예?

         

         

       질문을 건넨 기자의 얼굴에 순식간에 의문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당연히 회견장 안에 있던 모든 기자들이 그러한 반응을 보였고, 아마 이 기자 회견을 보고 있을 시청자들 역시 똑같겠지.

         

       나 역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무슨…….

       “쉽게 말하면 제가 두 사람을 동시에 좋아하고, 그걸 그녀들도 허락해줬다는 뜻이죠. 당연히 한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지금처럼 판을 키운 것이고,

         

       이 방송을 보고 있을, 927 작가를 정말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도박을 한번 해보려고 한다.

         

         

       “그러니 제 친구인 무함마드 왕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이 아닌, 사우디에서 활동을……”

         

         

       탁-

         

       그 순간 회견장의 어딘가에서 볼펜을 떨어트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뭔가 저절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지금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과연 볼펜뿐일까?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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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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