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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9

       사락.

         

       이한은 자신이 만든 나무 정자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간간히 레이라가 만든 레모네이드를 마시기도 했고, 혹은.

         

       “자, 드세요.”

       “…제가 직접 먹으면 됩니다.”

       “네엥?”

       “……그냥 먹겠습니다.”

         

       순진무구한 눈빛을 발산하는 그녀의 눈빛에 못 이겨 레몬 타르트를 받아먹기도 했다.

       여성에게 음식을 받아먹는 생전 처음 받는 호사, 이런 상팔자 노릇을 보내도 되는 걸까 싶다.

         

       그래도.

         

       ‘…맛있네.’

         

       왠지 지금껏 먹은 어떤 타르트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더 드실래요?”

       “네에….”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고, 이한은 타르트를 다시금 받아먹으며 때 아닌 호사를 누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네.’

         

       본의는 아니지만 그는 왕국에서 일어나는 사건 등에 밀접하게 관여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왕국에서 일어나는 혼란이나 화제 등이 어떤 식으로 일어난 건지 대부분 알고 있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사락.

         

       “…금쪽이 녀석, 사진빨이 좋네.”

         

       [금일 백은사자 제1기사단장 아렌 팬드래건은 땅굴에서 벗어난 죄수들을 잡기 위해 몸소 움직이며, 1기사단과 2기사단을 전부 동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왕족다운 명예롭고도 위대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며 평가받는 중이다. 한편 이로 인해 귀족 의회에서 ‘권한을 남용한다’는 망언을 내뱉는 것으로 귀족 의회는 백성들에게 질타를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건수를 잡은 길드 의회는 귀족 의회에 대한 불편한 유감을 전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쪽이 왕자 녀석의 사진이 신문 일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단장의 권한으로 1기사단과 2기사단을 움직인 것이 확실히 큰 주목을 이끌고 있긴 한 모양.

         

       “으음, 잘하겠지?”

         

       솔직히 믿음은 안 간다.

       한 번 망나니는 영원한 망나니란 게 이한의 지론이며, 말로 떠드는 건 누구나 떠들 수 있으니까.

       그러니 중요한 건 행동과 성과다.

         

       그런 의미에서.

         

       ‘성과를 내면 두 번 구박할 거, 한 번으로 줄이는 거지, 뭐.’

         

       약간의 기대감 정도를 가지는 선에서 기대를 그치는 그였다.

         

       사락.

         

       신문을 넘길수록 그와 관련 있거나 대충은 사정을 아는 이들의 소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만 요약하자면.

         

       ‘왕도의 새로운 유행을 선도 중인 살롱의 주인은 라이오넬의 소공자?!’나, ‘용병총합의 총수, 용병왕은 후계자를 결정한 것인가?’, ‘귀네비어 가의 영애는 연애 중?!’ 등등.

         

       어쩌다 보니 다 안면이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제국 마탑의 후계자와 술탄의 방문은 갈라하드의 수양녀를 만나기 위해서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는 당사자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여, 왕실과 갈라하드는 어떠한 자세를 취할지 주목을 받고 있다. 참고로 주목을 받은 갈라하드의 수양녀 아이린 윈들러는 아직 어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대표할 마법계의 신성으로 주목받는 중이다.]

         

       ……저기 혼자 구시렁거리며 타르트를 야금야금 먹는 중인 마법계의 신성이라 떠받들어지는 이웃집 병아리까지.

         

       “쳇, 나도 먹여줄 수 있는데, 잘 먹여줄 수 있는데, 진짜 잘할 자신 있는데….”

         

       “…….”

         

       음…. 저 녀석을 보려고 이만한 거물들이 몰려오는 거라고?

         

       스읍!

         

       ‘이 새끼들은 할 일이 그렇게 없나?’

         

       이한은 마탑의 후계자니 술탄이니 하는 인간들이 어째 할 일 없고 돈 많은 놈팡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 * *

         

       오는 날이 장날인 걸까, 아니면 그동안 집을 비워두고 있었기에 때문일까.

         

       달그락.

         

       “사부님!”

         

       그동안 보지 못한 얼굴들이 연이어 방문하는 것으로 보아 이한은 제 집이 소란스러워지고 있음을 몸소 체감했다.

         

       따르릉!

         

       마치 프랑스 고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엔틱함과 소박함이 유독 인상적인 자전거를 탄 여성이 그를 힘차게 불렀다.

         

       싱그럽지만 어딘가 애달픈, 하지만 순수함이 돋보이는 것이 길가를 걷다 보면 누구나 되돌아보며 사랑스러움을 느낄법한 여성이었다.

       마치, 학창 시절 만인의 첫사랑을 연상케 했고, 자신과 잘 어우러지는 밀짚모자와 흰색 원피스, 샌들과 피크닉용 바구니까지 착용한 것이 누군가는 감탄이 절로 나올 화보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화보 찍는 줄.”

         

       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옆에 딱 붙어 착석 중인 빙의자 병아리도 속삭이듯 혼잣말을 내뱉는다.

       확실히 수국을 연상케 하는 파란 머리를 흩날리며 자전거를 타는 것이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니….

       다만, 수긍하는 건 수긍하는 거고, 한 가지 어이없는 건.

         

       ‘얘는 자기 정체를 숨길 생각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가만 보면 태창이보다 자기 정체를 더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건 그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아님, 그냥 바보처럼 솔직하거나 어설픈 걸지도 모르고.

         

       ‘…셋 다려나?’

         

       이한이 그렇게 어깨를 으쓱이고 있자니, 어느새 현관까지 온 여성은 자전거에서 내려 힘껏 달려왔다.

       마치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주인을 반기는 충성스러운 강아지처럼.

         

       “하아, 하아아! 자, 잘 지내셨어요, 사부님-!”

       “일단, 숨부터 돌리자, 곰순아.”

       “네에? 저, 저는 괜찮은데요, 하아, 하아아…!”

       “…아무리 봐도 안 괜찮은 것 같아서, 그래.”

         

       곰순이, 아니 레비는 아무래도 후작가에서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급박하게 온 게 아닐까 싶었다.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차림으로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왔냐?”

         

       힘들게.

         

       그러한 뒷말을 삼키며 걱정을 내보이자, 그녀는….

         

       “아!”

         

       자신의 꼴이 아가씨 몰골(?)인 것을 깨달으며 입가를 가렸다.

         

       “죄, 죄송해요, 모, 못난 꼴을 보였죠? 그, 그냥 오늘 각하께서 휴가를 주셔서 뭘 할까 싶다가 혼자 피크닉을 갈까 싶었거든요. 가, 가만히 있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요….”

       “그러냐.”

       “이, 이 옷도 제가 준비한 건 아니에요! 메, 메이드 분들이 준비해주신 건데, 아, 안 입고 갈 수도 없어서….”

       “그래.”

       “…사부님?”

       “그래.”

       “??”

       “…미안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래.”

       “네에?”

       “스읍, 갱년긴가…?”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지려는 건가?

         

       이한은 제자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으려니 어딘지 울컥거리는 게 있었다.

         

       첫 만남 때부터 항상 주눅 들어 있고, 항상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며,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녀를 기억하기에.

         

       하지만 이제는….

         

       ‘애가 여유가 생겼어.’

         

       낯빛부터가 활력이 감돈다.

       눈빛 또한 총명했으며 입은 옷 또한 깔끔하다.

       좋은 보살핌을 받는다는 증거이며, 후작이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이겠지.

         

       하여 뭉클하다.

         

       날개를 쓰는 법을 모르던 백조가 사실은 제게도 날개가 있고, 그 날개를 힘차게 휘저을 수 있음을 깨닫고 날아오르기 시작한 걸 목도했을 때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 날개가 펼쳐질 수 있도록 노력한 당사자 입장에선.

         

       ‘고생한 보람이 있었네.’

         

       ……벅차오르기 마련이었다.

         

       이한은 제자의 긍정적 변화가 기뻐 가슴으로 울었다.

         

         

       …여름이었다.

         

       * * *

         

       앞서 솟구치는 벅차오름을 참아내느라 어색한 기류가 감돌긴 했으나, 레비는 곧 종달새마냥 쉬지 않고 지저귀듯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다.

         

       마치 자랑하듯이.

         

       “최근에는 각하에게 활을 배우고 있어요. 형식적이라도 트리스탄의 이름을 받게 됐거든요, 그러니 활 정도는 기본으로 다룰 수 있게 되는 편이 좋다고 했어요. 저도 열심히 익히는 중이고요.”

         

       “가, 감사하게도 트리스탄의 성을 받긴 했지만, 아직 정식으로 받은 건 아니에요. 아마, 며칠 내로 공식 연회에서 성을 하사받을 것 같아요. …호, 혹시 그때는 사부님께서 파트너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 마, 맞다. 이 파니니(Panini) 좀 드셔 보세요. 제, 제가 만든 거예요.”

         

       이한은 제자의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줬다.

         

       조언할 수 있는 것은 조언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며, 고마운 건 고맙다고 일일이 대응하며.

         

       “그리고 또…!”

         

       하고 싶은 얘기가 얼마나 많은지 한 시간이 넘어도 끝날 기미가 없어 보였지만, 이한은 귀찮지 않았다.

       도리어 저토록 자유로워 보이는 것이 훨씬 보기 좋았고, 흐뭇하기만 할 뿐.

       아마 나이 차 많이 나는 여동생을 보노라면 이런 기특함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한동안 제자의 얘기를 듣던 중.

         

       “저, 저기 레비….”

       “응? 아이린 영애님? 언제부터 여기 계셨어요?”

       “…나는 보이지도 않았구나, 하여간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죄, 죄송해요…! 겨, 결코 아이린 영애님을 모른 척한 게 아니라, 어, 어쩌다 보니….”

       “…됐어, 내가 그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한창 좋을 때니까.”

       “…….”

         

       심술 난 병아리가 퉁명스럽게 순박한 곰순이를 쪼아댔고, 순박한 곰순이는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뭘까, 이건?

         

       ‘얘들은 왜 아저씨를 곁에 두고 이런 말싸움을 벌이는 걸까?’

         

       나 말고 잘생긴 애들 찾아가서 이래야지, 얘들아?

         

       이한은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저 둘이 그에게 연심과 동경, 혹은 그밖에 여러 감정이 섞인 호의를 보이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이한이 봤을 때 저건 약간 불장난 같은 감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 어리기에 보이는 치기어림.

         

       딱 그 정도고, 좀 더 성숙해지면 이 시기가 부끄럽고, 왜 자신 같은 아저씨를 좋아했을까 창피해하며 울상을 지을 날이 올 테지….

         

       ‘스읍, 내 스스로 이런 평가를 내리려니까 좀 서글프긴 하네.’

         

       허나 이한은 이런 제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마냥 세상을 좋게 보기엔, 그의 시선은 탁해져 있으니까.

       하여 누군가가 보내는 호감이 언제까지고 유지되리란 믿음이나 희망이 없었고, 저 두 사람이 보내는 호의가 여름날 피었다 빠르게 지는 연꽃처럼 보일 뿐이었다.

       어느 날 바싹 마르며 사라지는 허무한 감정이 아닐 수 없었….

         

       “-전 기사님이 언제까지고 멋질 것 같아요. 그리고 멋진 남자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항상 사랑받죠. 그런 의미에서 저분들은 멋진 남자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요.”

       “…….”

       “헤헤, 그냥 그렇다고요.”

       “호, 혹시 독심술이라도 익혔습니까?”

       “아니요, 그냥 표정 읽기가 쉬워서요!”

       “…이 말도 어디서 들은 건데.”

         

       어째 왕녀도 그렇고, 시녀도 그렇고.

       독심술을 안 익혔다고 주장은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익힌 게 맞는 것 같다.

         

       이한은 헛웃음을 흘리며.

         

       “제 생각이 너무 얄팍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왕 생각을 들킨 거 대놓고 물어봤고, 레이라는.

         

       “으음, 그보단 전 기사님이 본인 스스로를 저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충분히 멋진 분이신데.”

       “…….”

       “언젠가는 스스로를 지금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기사님은 충분히 스스로를 자랑해도 될 분이니까요.”

       “…시녀님은 항상 저를 너무 높게 평가합니다.”

       “전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건데요?”

       “…….”

       “헤헤, 쑥스러워하신다!”

       “…음료나 더 주십시오.”

       “네엥!”

         

       ……이한은 그녀의 미소를 마주하며 고개를 수그렸다.

         

       갑작스러운 생각이지만.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이 사람은 못 이길 것 같단 말이지….’

         

       눈부시기까지 한 해맑은 애정과 호의를 건네는 여인을 상대로 이한은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다 직감했다.

         

       …그러나.

         

       ‘져도 기분이 안 나쁠 것 같긴 해.’

         

       오히려 지고 싶다면, 그건 그가 이상한 걸까?

         

         

       사내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 앞에선 부끄러운 남자가 되지 말자고 작게 다짐했다.

         

         

         

         

         

         

         

       “-뭔가, 방문할 날을 잘못 잡은 느낌이군.”

       “그, 그러게 말입니다.”

         

       흑발머리 청년은 드물게 고개를 긁적였다.

         

       인사차 방문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눈치가 없었군.’

         

       회귀자는 계면쩍게 울타리 앞에서 서성거렸고, 진작 그의 존재를 눈치챈 기사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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