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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깨달음의 단초는 우연한 곳에서 찾아왔다.

         

        도적부흥운동의 성공 덕분에, 나오나 갤러리에서는 새싹 도적들이 파릇파릇하게 피어나고 있더랬다.

         

       그리하여 베스트 게시글에 올라온 도적 체험담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지던 중.

         

        [도적 이렇게 하는 거 맞냐?]라는 글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첨부된 짧은 영상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판금 갑옷으로 도배한 도적이 나무늘보처럼 움직이다가 광전사한테 참수당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체력이 낮아서 방어력이라도 높여 봤는데 이렇게 하는 거 맞냐?]라는 본문에는, 항상 그렇듯이 댓글로 원색적인 비난과 웃음이 잔뜩 달려있었으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에, 화를 낼 겨를도 없었다.

         

       전신 판금 도배라는 아이디어 때문은 아니다.

         

        난 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빌드는 물론이고, 양심적으로 도적으로 해선 안 되는 빌드도 모두 실험해봤다.

         

        판금도적은 이미 여러 가지 특성과 조합해서 사용해보고, 실용성 부족으로 폐기했던 빌드다.

         

        나오나에서는 갑옷의 재질과 무게에 따라 캐릭터의 움직임에 부위 별로 보정이 걸린다.

         

        도적 같은 캐릭터로 판금 갑옷을 입으면, 적을 마주치고 아무리 빠르게 반응해도 반드시 선공을 내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선공을 내어주고 반격을 하는 빌드도 성립은 하겠지. 하지만 반박자씩 느린 움직임으로는 상대의 이지선다, 삼지선다 심리전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라고는, 5대 맞고 죽을 것을 6대 맞고 죽게 해준다는 정도고.

         

        확실한 단점을 대가로 미미한 생존력을 얻는다는 건, 정상적인 나오나 유저가 할 선택은 아니다.

       

       사제라면 몰라도.

         

        하지만.

         

        애초에 단점이 목표라면 얘기가 다르다.

         

        판금 갑옷의 효과로 약간씩 움직임이 굼떠진 도적은, 내가 넣는 커맨드에 반의 반박자씩 느리게 반응했고-

         

        이는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기능이었다.

         

        부위 별 갑옷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반응 타이밍을 급하게 조율하며 세팅을 마친 결과, 모습이 약간……특이했지만, 괜찮다.

         

        도적은 원래 멋지니까.

         

        응.

         

       

         

        [아크(마법사)님이 처치되었습니다!]

        [먹아따(도적)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먹아따(도적) → 아크(마법사)]

         

        [(전체)화이트머신건(궁수): 법사 어뷰임?]

        [(전체)화이트머신건(궁수): 법사 어뷰임? 2번째 물어봄]

        [(전체)화이트머신건(궁수): 법사 어뷰임? 3번째 물어봄]

        [(전체)화이트머신건(궁수): 어케 시12팔 리스폰되면 하는게 달려와서 도적한테 대주는 거 밖에 없냐?]

        [(전체)화이트머신건(궁수): 법사 어뷰임? 4번째 물어보]

         

        [화이트머신건(궁수)님이 처치되었습니다!]

        [먹아따(도적)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먹아따(도적) → 화이트머신건(궁수)]

         

        [(전체)화이트머신건(궁수): 아니 @$*( 이거 뭐하는 @(!*야]

         

       

       

       그리고 무엇보다, 성과가 보여주지 않는가.

       

        내게 익숙한 타이밍을 되찾았다는 것을.

         

        심지어, 예측이 아니라 반응으로.

         

       

       

        [아크(마법사): 첨탑 지원]

        [아크(마법사): 궁수님 첨탑]

        [아크(마법사): 수호병 뚫려요]

        [아크(마법사): 마지막]

         

        [아크(마법사)님이 처치되었습니다!]

        [먹아따(도적)님이 전장을 휩쓸고 있습니다!]

        [먹아따(도적) → 아크(마법사)]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팔다리에 무게추를 단 듯한 외관도 마음에 든다.

         

        뭔가 힘을 숨겼는데도 강한 느낌이잖아.

         

        이기고 나서 갑옷을 바닥에 던졌을 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연출도 가능하면 더 좋았을 텐데.

         

        =레드팀이 중앙 거점을 점령하였습니다!=

         

        뒷라인을 2번 클리어해주자, 자연스럽게 우리가 역으로 중앙 거점을 점령하게 되었다.

         

        이게 캐리지.

         

        * * * *

         

        VR로 나오나에 처음 접속한 사람은 대부분, 게임을 즐기기에 앞서 전장의 현장감에 압도당한다.

         

        둥- 둥- 둥- 하고 고막을 울려대는 북 소리와, 집결을 알리는 나팔 소리.

         

        갑옷의 복색만 엉성하게 통일했을 뿐, 제각각인 무기를 꼬나 쥐고 굳은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는 병사들과,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듯이 황량하고 휑한 성 내의 마을의 모습. 그리고, 성벽 위에서 힘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들.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서면, 허름한 민가의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꼬마의 두려움 서린 눈과 마주하게 된다.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성문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동료 기사들이 들고 있는 무기에서 느껴지는 예기에 흠칫하고 나면-

         

        그제서야 비로소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살피고, 여느 VR게임에 처음 접속한 사람이 그러하듯 자기 손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움직여볼 여유가 생긴다.

         

        나오나는 섬세한 움직임까지 구현하여 반영한 현실적인 전투 시스템으로 매니아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VR게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자부한 그래픽으로는 모두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저들은 입을 모아 중앙 거점을 점령하고 첨탑이 나타나는 순간에야말로 그 그래픽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칭송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상대를 모두 처치하거나 몰아내고, 전락적 요충지를 탈취해냈다는 강렬한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에,

         

        굉음과 함께 눈 앞에서 12미터가 넘는 건물이 마법처럼 소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흡사 로봇이 합체하듯이, 허공에 하나씩 소환된 벽돌들은 1초 가량 공중에 부유하다가 쿵- 소리와 함께 순차적으로 제 자리로 끼어 들어간다.

         

        그렇게 최상층의 망루부터 시작하여 1층의 문까지 생겨난 첨탑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이제 이 곳을 근거로 적을 압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능감까지 샘솟는다.

         

         

         

        그러나 게임적으로 첨탑의 진정한 위용은 그 앞에 서있는 수호병에서 나온다.

         

        온몸에 판금갑옷을 두른 채 서있는 수호병의 키는 2미터가 넘고, 그조차 작아 보이게 만드는 할버드는 3.5미터에 육박한다.

         

        원거리에서 요격하거나, 최소한 법사의 씨씨기와 함께 뚫는 것이 정석일 정도로 강력한 이 문지기는, 3.5미터에 달하는 할버드를 수수깡 휘두르듯 다루며 어설픈 침입자들을 손쉽게 격퇴한다.

         

        브론즈에서는 성기사 셋이 달려들어서 3:1로 처형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괜히 유저들이 농담삼아, 그냥 수호병을 적 성채로 진군시키면 이길텐데 왜 쓸데없이 기사고 마법사고 사용하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벌써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한 아크로서는, 회색빛으로 물든 시야로 직접 보면서도 수호병이 이렇게 무력하게 뚫린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보아도 해괴한 몰골로 접근하는 도적이, 판금갑옷을 두른 손으로 단검을 집어던진다.

         

        수호병이 가소롭다는 듯이 할버드를 휘둘러 이를 걷어내지만, 도적은 이미 그 틈새를 타서 할버드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한 걸음 빠르게 뒤로 물러난 수호병이, 병기를 길게 고쳐잡으며 횡으로 크게 휘두른다.

         

        거리를 벌리는 여러 패턴 중 하나이자, 피하느라 자세가 흐트러지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속도의 찌르기 공격이 이어지는 연계기.

         

        함부로 수호병에게 접근하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평소라면 들려왔을, 부웅-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은 콰앙-하고 목표물을 가격하는 굉음 대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청명한 소리가 들려온다.

         

        패링.

         

        상대가 공격을 시전할 때, 피하거나 막는 대신 완벽한 타이밍에 반대 방향으로 병기를 휘둘러 상대 무기의 정확한 타점을 가격하는데 성공하면, 공격자의 무기를 반대로 튕겨내며 순간적으로 행동불가 상태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다만, 실패하면 카운터를 맞은 것으로 판정된다.

       

       따라서 실패해도 일부 방어 판정이 나오는 방패로 하는 것이 상식이며,

        굳이 무기로 한다면 타점을 다소 후하게 평가해주는 거대 무기로 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시도하는 사람조차 없지만, 0.0몇초 단위의 타이밍을 요구하는 단검으로 시도할 경우- 이내 회색빛 시야를 통해 자신과 부모님의 안위를 묻는 팀원들의 채팅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도적의 단검은 정확하게 할버드의 타점을 가격했고, 연계기를 준비하던 수호병은 비틀거리며 세 걸음을 더 물러섰다.

         

        그 세 걸음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도적의 단검이 걸음마다 일격씩, 판검 갑옷의 틈새로 3 차례 우겨 넣어졌다.

         

        상대의 숨통을 끊겠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수호병의 거체를 물어뜯던 도적은, 뽑히는 단검에서 비산하는 핏방울이 채 땅에 닿기도 전에 미련 없이 다시 뒤로 훌쩍 뛰듯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도적이 조종하는 실에 이끌리기라도 하는 듯이, 수호병은 이미 비어버린 공간을 향해 좌하단에서 우상단으로 힘차게 할버드를 휘둘렀으나- 당연하게도, 그 창 끝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도적의 몸을 비껴 지나갔다.

         

        큰 공격을 헛친 대가로 빈틈 투성이인 자세로 몸이 흔들리는 수호병을 보면서도, 도적은 거리를 좁히지 않고 자세를 웅크린 채 천천히 호흡을 회복하고 있었다.

         

         

        마치 그 틈이 함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과연, 이내 비상식적인 속도로 빠르게 밸런스를 회복한 수호병은, 오른발을 크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멀리 떨어진 도적을 추격하듯 꽂아 넣는 찌르기를 시전했다.

         

        제3자로서 싸움을 바라보던 아크조차 제 때 포착하지 못한 일격.

         

        그러나 분명 복부를 향하고 있었던 창 끝은 한참을 빗나간 채 도적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타점 흘리기.

         

        판금 갑옷을 두른 도적의 오른팔이 할버드의 창대와 맞닿아 있는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아크는 도적이 찌르기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옆으로 돌며, 팔로 타점을 흘려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단검을 사용한 패링조차 손쉬워 보이게 만드는 묘기.

         

        헛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강제로 비집어 연 빈틈으로 다시 파고든 도적은, 수호병이 내뻗은 할버드를 채 회수하기도 전에 다시 두 차례 단검을 찔러 넣고는, 이어질 반격을 이미 예지하였다는 듯이 뒤로 물러선다.

         

        첨탑을 무적의 포대로 만들어주던 철벽이, 투우사 앞의 황소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피흘리는 황소 앞에서 여유있게 주변을 살피던 도적이 풍경에 녹아드는 듯이 흐릿해지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수호병은 병기를 고쳐잡으며 살기가 감도는 눈빛으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지만, 이미 그 결말이 뻔히 보이는 아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 * *

         

        [화이트머신건(궁수)님이 처치되었습니다!]

        [먹아따(도적) → 화이트머신건(궁수)]

         

        [(전체)화이트머신건(궁수): 오픈요]

         

        =레드 팀이 블루 팀 거점을 점령하였습니다!=

         

        [(전체)비르먹(광전사): 하 시12발 진짜]

        [(전체)비르먹(광전사): 법사 씨1발아 방송을 쳐 하니까 방플 당해서 이런 거 아니야]

        [(전체)비르먹(광전사): 아 진짜 *같네]

         

        =승리!=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손맛.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게임 채팅으로 쏟아지는 찬사를 구경하며, 나름 긴장했었는지 굳은 어깨를 빙빙 돌려 풀어주었다.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게임을 한게 얼마 만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최소한 이예나로서는 처음이었다.

         

        게임의 마무리로 상대방 광전사의 아이디를 클릭하고 ‘욕설’ ‘비하’ ‘차별적 발언’을 순차적으로 기입하여 신고한 후,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최선을 다했고, 결과도 얻어냈으니-

         

        -따다다 딴.

         

        -딴따단 딴딴

         

        -딴따단딴.

         

        -딴따단 딴 딴

         

         

        이제 승리의 과실을 취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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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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