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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지식을 탐하는 족속이다.

       

       질 좋은 마도서를 탐독하는 것도, 뛰어난 스승 밑에서 배우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다.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더 혁신적인 마법을 구축하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상황은 그들에게는 꿈이나 다름 없었다.

       

       납치당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마도서에 몰입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터억.

       

       로 페르난디가 탄식을 내뱉으며 마도서를 덮었다. 

       

       “저, 전부 진품이야. 말도 안 돼…….”

       “지, 진짜?”

       

       제이나의 물음에 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300년 전, 마법의 부흥을 이끌어냈던 대마법사, 발타 크라나가 직접 저술한 마도서. ‘발타 크라나’ 시리즈.

       

       ‘황실에도 세 권 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그 보물이 지금 눈 앞에 다섯 권이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거기에 난생 처음 보는 아티팩트까지 등장하니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꿀꺽.

       

       ‘탐 난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읽어보고 싶다!’

       

       그 아라미스조차도 이 순간만큼은 마도서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백탑에서 ‘고서 판독기’라고 불렸던 페르난디가 진품이라고 했으면, 그건 진품이다.

       

       그러니 산처럼 쌓인 이 마도서들은 전부 진품이다.

       

       ‘도대체가…….’

       

       아라미스가 슬쩍 눈길을 돌렸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보물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여준단 말인가.

       

       꽁꽁 숨겨도 모자랄판에.

       

       범인(凡人)과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건 확실했다.

       

       타악!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마도서들이 아공간으로 빨려들어갔다. 눈 앞에서 사라진 마도서를 보며 백탑 마법사들이 입맛을 다셨다.

       

       “아…….”

       “자, 맛보기는 여기까지. 더 보고 싶으면……알지?”

       “겨, 결정하기 전에 몇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난 보기보다 관대한 사람이거든.”

       

       아…….

       

       관대하셨구나.

       

       그래서 사람을 그렇게 개처럼 패셨구나.

       

       제이나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정말로 마법사시면, 탑주님께 정중히 허락을 구하고 데려오셨어도 되지 않았나요? 굳이…….”

       

       이렇게 험악하고 잔인하게 데려와야만 했냐, 이거다.

       

       음, 말에 뼈가 있구만.

       

       사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느그 탑주가 퍽이나 허락하겠다.’

       

       목이나 안 따이면 다행이지.

       

       호감도 마이너스 80에는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 

       애초에 ‘정중하게’ 부탁해서 데려올 수 있었으면 황실 아카데미에 가지, 뭐하러 구석진 변방 백탑에 가나?

       

       ……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에둘러 말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내 저주 때문에 안 돼.”

       “……네?”

       “말 그대로야. 평범한 사람이 날 보면, 내게 살의를 품게 돼. 백탑주가 날 죽이려 했던 것도 같은 이유고.”

       

       다들 대답 없이 입을 다물었다. 적잖이 충격 받은 모양이었다.

       

       거짓은 말하지 않았다.

       약간 각색했을 뿐이다.

       

       솔직히, 호감도가 작살 난 것보다 차라리 저주가 낫다.

       

       “……그럼 저희는요?”

       “가끔씩 너희처럼 저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애들이 있더라고. 원인은 나도 몰라.”

       

       음, 잘 알지. 

       아주 잘 알지.

       너희들은 나한테 안 죽어서 그렇게 된거거든.

       

       “가끔 있는 특이체질 셋이 전부 백탑에 있었다니, 그거 참 기막힌 우연이군.”

       

       아라미스가 시비거는 듯한 투로 말했다. 올리비아가 그런 아라미스에게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네가 아직 덜 맞았구나?”

       “아, 아니. 그건 아니다. 내 말투가 원래 이렇다.”

       

       아라미스가 깜짝 놀라 손사래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비아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형식적이라고 한들, 제자는 제자.

       심지어 나이도 이쪽이 많으니, 적어도 존댓말은 듣는 게 이치에 맞다.

       절대로 꼰대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절대로.

       

       “아니야, 아직 덜 맞은거야. 저 옆에 누구누구씨도 평생 존댓말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데, 이제는 잘만 쓰더라.”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쪽으로 돌아갔다.

       

       “…….”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들을 향해 글레이시아가 눈을 부라렸다. 

       

       ‘눈 깔아 이 자식들아!’

       

       잠시 머뭇거리던 3인방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뭐. 우리가 그렇게 잘못했나?’

       ‘그냥 쳐다만 본건데. 예민하게시리.’

       

       글레이시아가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했다.

       

       드래곤의 위엄이 언제부터 이 꼴이 났단 말인가.

       

       그 훈훈한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올리비아가 말했다.

       

       “아라미스.”

       “……왜 부르지?”

       “지? 지이이이?”

       

       아라미스가 입술을 악물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손아귀에서 익숙한 파직거림이 들려오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크흡!”

       “크크큭!”

       

       웃음을 참는 동기들을 보며 아라미스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한 김에 스승님이라고 해봐라.”

       “스, 스, 스…….”

       

       아라미스의 머릿속에 인자한 로이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갈 곳 없는 고아였던 자신을, 백탑의 제자로 받아주었던 은인이었다.

       

       아무리 아라미스가 감정 변화가 적고 이해타산적인 성격이라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알았다.

       

       ‘내 스승님은 한분 뿐이다. 그건 영원히 바뀌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또 다시 뇌가 전류에 절여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부류의 고통이었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는 수치를 다시 겪는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어지러웠다.

       

       아라미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올리비아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스태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무, 무슨 눈빛이……!’

       

       올리비아의 초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도무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얼굴.

       그건 진짜 광기였다.

       

       아라미스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눈 앞에서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셨던 로이드가 아른거렸다. 

       

       – 끄르르르륵!

       

       결심했다. 올리비아의 밑에서 실력을 키운 다음, 로이드의 복수를 하겠다.

       

       ‘절대 무서워서 이러는 건 아니다.’

       

       그래. 절대로 아니다.

       백탑주님도 충분히 이해해 줄거다.

       차기 백탑주도 일단 살아야 할 수 있는거니까.

       

       “……스승.”

       

       거기까지 말한 아라미스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코 앞까지 다가온 올리비아의 얼굴을.

       그 섬뜩함에, 아라미스는 결국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려놓았다.

       

       “……님.”

       “오냐.”

       

       올리비아가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자존심을 내려놓는 건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쉽다. 

       

       ‘아라미스 쟤는 자존심을 좀 내려놓을 줄 알아야 돼.’

       

       상대가 강하면 굽힐줄도 알아야 한다. 그걸 못하겠다면 적어도 제 주제는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면 죽는다.

       

       ‘그래서 부러졌지.’

       

       이전 회차의 아라미스는 올리비아가 몰살 루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죽었다.

       

       자기 친구 둘과 함께.

       

       침묵을 깨고 아라미스가 입을 열었다.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뒤에 뭐가 빠졌다. 제자야.”

       “스승……님.”

       

       말 할 때마다 입에서 이빨 으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매우 관대했기 때문이다.

       

       “스승님 밑에서 배우면 최고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니?”

       “……예?”

       

       아라미스가 새된 소리를 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이나와 로도 마찬가지였다.

       

       올리비아는 그들의 면면을 하나씩 확인한 다음 되물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중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너희들이 생각하는 최고가 뭔데?”

       “그건…….”

       

       사위가 정적으로 물들었다.

       

       최고라…….

       

       이토록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탑주가 되는 것, 마도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

       

       그리고 진리에 닿는 것.

       

       그것은 모든 마법사들의 꿈이자 목표였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최고인가?

       

       길면 수천 년, 짧으면 수백 년에 한 명씩 진리에 닿은 자들이 등장하고는 했다. 

       그럼 ‘최고’가 된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최고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평마법사가 추구하는 최고와, 마탑주가 추구하는 최고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라미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올리비아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최고가 아니라, 목표다.

       

       “스승님은, 아니.”

       

       아라미스는 방금과는 조금 다른 눈빛으로 올리비아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날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습니까?”

       

       올리비아는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네 목표보다 위로.”

       

       그 오만한 자신감에, 아라미스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하, 하하하하!”

       

       미친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는 미친 게 맞다.

       

       ‘내 목표가 어딘 줄 알고.’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이 여자는.

       올리비아는.

       일개 필멸의 육체로, 고고한 드래곤보다 높은 곳에 오른 마법사였다.

       

       아라미스는 백탑에서의 첫 가르침을 떠올렸다.

       

       [마법사는!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한 치도 물러나서는 안된다!]

       

       문득 거울이 보고 싶어졌다.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동기들의 얼굴을 본 순간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이 기회를 잡아서, 진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터억!

       

       백탑의 마법사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세상을 멸망시킨 마녀, 아니.

       

       세상을 구원할 마녀의 제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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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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