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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현대로 돌아온 후 나는 많은 창작물들을 접했다.

       

       무림에서 시인들이 읊는 시조나 주정뱅이들이 제멋대로 부르는 노래 같은 것만 듣다 현대의 문물을 접했으니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속에서 꾸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아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나?’ 같은 대사를 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었다.

       

       허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눈이 없는 것은 아니니 집에서 나왔을 적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을 안다.

       

       말끔하게 정돈된 머리칼은 내 하얀 피부와 어울린다.

       

       하얀 셔츠와 그 위에 걸쳐진 검은색 천 옷. 다리의 선을 드러내는 청바지.

       

       지금 내 모습은 뭇 영상물에 나오는 미소년. 혹은 미소녀라는 것과 비슷했다.

       

       옆에 선 엔리가 내 모습을 보며 만족하는 걸 보면 이 판단이 객관에 가까운 듯 했다.

       

       문제는 내가 이 아름다움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거겠지. 나는 미인보다는 폐인으로 사는 게 마음 편한 인간이었으니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몸이 근질거렸다. 있어선 안 될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

       

       빙궁에서 지냈을 적을 떠올리면 이것도 적응이 되기는 할 터였으나 굳이 적응을 해야 하는 걸까.

       

       “아라씨. 이제 밥 먹으러 갈까요?”

       “드디어.”

       

       이제야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간다면 녹초가 되어서 한참 동안 늘어져 있을 게 분명했다.

       

       내 여태 고민만 하고 있던 사안이다만 아무래도 껴안고 있을 것을 하나 사야겠어. 보드랍고 푹신하고 풍족한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 위해선 그런 것이 필요해.

       

       생각에서 빠져나오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엔리가 보였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제멋대로였죠?”

       “괜찮습니다.”

       

       알아 준 것만으로도 고맙구나. 보통 자신의 흥에 따라 움직이는 이는 다른 이들의 얼굴을 살피지 않거든.

       

       엔리는 이 근방에 자신이 잘 아는 가게가 있다며 나를 이끌었다.

       

       엔리가 잘 아는 가게라. 서국의 음식인 걸까. 나는 거기에도 흥미가 있었다.

       

       현대에 온 후 먹은 것 중에 맛없는 음식은 없었다. 무엇을 가져다놔도 무림과 비교한다면 천당의 맛을 자랑했다.

       

       즐거운 경험이 되겠구나.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가던 중 엔리가 길 한켠에 선 동상을 보고는 발을 멈췄다.

       

       “여기에 이런 게 있었나?”

       

       황동으로 칠해진 것은 얼핏 보면 실력 있는 조각가가 섬세하게 깎은 상처럼 보였다.

       

       허나 자세히 보면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차오르는 가슴팍이나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 같은 것 말이다.

       

       동상을 연기하는 자는 사람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려 했으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을 속이려면 잠시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수밖에 없으니.

       

       왜 저러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엔리에게도 알려 줘야지. 조금 있으면 호기심에 건드려 볼 것 같았으니까.

       

       입을 열려던 순간 동상이 움직였다.

       

       “우와아아악!”

       

       엔리는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주접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나다 보도블럭에 발이 걸렸다. 내가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엉덩방아를 찍었으리라.

       

       연기자는 모자를 벗어 미안함을 표시하고는 다시 처음의 자세를 취했다.

       

       “허억. 허억. 사람. 사람이었어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엔리가 그리 외치자 동상은 다시 한 번 몸을 움직여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네. 사람이네요.”

       “아니. 사람이 왜 저러고 있어요!”

       “그러게요. 왜 그러고 계시나요?”

       

       물었지만 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특이한 사람이군.

       

       “흐어. 놀랐다아…”

       

       엔리는 울상이었다. 심장을 부여잡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이 많이 놀라긴 한 모양이야.

       

       “아라 씨는 어떻게 침착한 거에요.”

       

       알고 있었다고 말하면 성을 내겠지. 그래서 난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안 놀랐으니까요.”

       “강심장이시네요.”

       

       놀란 심장을 다스리기 위해선 맛있는 걸 입에 넣어야 한다는 괴이한 논리를 펼친 엔리는 아예 나를 잡아 끌듯 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에요?”

       “네! 맛있겠죠?”

       “…그래 보이긴 해요.”

       

       엔리가 나를 데려온 곳은 부대찌개 집이었다.

       

       시뻘건 국물에 여러 햄과 라면사리. 콩. 두부 같은 걸 넣고 한 번에 끓이는 그 음식 맞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음식이었다. 부대찌개가 싫다는 건 아니었다. 난 얼큰한 걸 좋아했고. 햄과 라면사리는 더 좋아했다. 나의 애정은 가히 사랑이라 불러도 좋았다.

       

       그렇지만 소녀스러운 이미지의 서양인인 엔리가 소개해주는 맛집이 부대찌개 집이라는 건 좀 괴리감이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외국에서 온 엔리가 한국에서까지 외국의 음식을 찾을 이유가 없긴 하구나.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머니께서 어머? 또 왔어? 라며 엔리를 맞아주었다. 예쁜 아가씨가 멋진 아가씨를 데리고 왔네. 라는 너스레는 덤이었다.

       

       “항상 먹던 걸로 할 거지?”

       “네. 부탁드릴게요.”

       

       아주머니가 떠나간 후 엔리가 기지개를 켰다. 그 동작에서 엔리가 이 가게를 집처럼 편안히 느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라 씨.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무서운 거 잘 보세요?”

       

       무서운 거라. 글쎄. 잘 모르겠군. 나는 보통 겁을 주는 쪽이었지 겁을 먹는 쪽은 아니었으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니 엔리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찾아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건 마이 튜브의 영상이었다.

       

       한 여아가 춤을 추고 있었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을 듯 절묘한 균형감이 눈을 끌어들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재능이 있어 보이는 구나. 크게 될 아해야.

       

       그러다 실수를 한 듯 여아가 넘어지려던 때에.

       

       비명소리와 함께 허여멀건한 얼굴을 한 여성이 튀어나왔다. 눈가에 묻은 피와 검은 눈동자를 보아 사술에 당한 사람이거나, 한을 가진 채 죽은 여성처럼 보였다.

       

       보기에 썩 유쾌한 얼굴은 아니었기에 영상을 껐다.

       

       “엔리 씨. 춤추는 아이의 영상은 더 없나요?”

       

       난 그 뒷부분이 궁금하다만.

       

       고개를 드니 엔리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어냐. 왜 저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야. 저것은 마치 교인들이 나를 구세주로 여길 때의.

       

       엔리는 내 손을 붙잡고는 평소 한 번도 쓰지 않던 참으로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아라 씨.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무슨 부탁인가요?”

       “공포게임 좀 같이 해주세요! 제발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자 엔리가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자신이 방송을 켜야하는 시간에 지각을 했고. 그 벌칙으로 VR공포게임을 하게 되었다고.

       

       자신은 겁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걸 혼자 할 자신이 없는데. 자기 주변에는 다 겁쟁이 밖에 없어서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고 도망쳤다고.

       

       무서운 것에 담담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면서. 자신을 살려주는 셈 치고 한 번만 어울려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엔리의 말은 부탁이라기 보단 애원에 가까웠다.

       

       “방송에 나오는 게 부담스러우시겠지만 제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도와드릴게요.”

       

       그 공포게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기에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엔리에게 여태 받은 은헤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 도움은 줄 수 있다.

       

       방송에 출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나는 이전에도 수천명 앞에 서 본 경험이 있었다. 내 관객은 때로는 교인이었고. 때로는 전장의 적이었지.

       

       방송 같은 것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의 시선에 익숙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정말요?! 약속한 거에요? 꼭이에요?”

       “걱정마세요.”

       “와아!”

       

       환하게 웃는 그녀는 해맑은 어린 아이처럼 보였지만 그 눈은 달랐다.

       

       그것은 지옥으로 사람을 끌고가는 아귀의 눈이었다.

       

       공포게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렵기에 저런 눈을 한단 말인가. 묻고 싶었지만 엔리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무작정 일정을 잡았다.

       

       흐음. 뭐어. 괜찮겠지. 기껏해야 도사 놈들이 펼치는 사술과 비슷한 거 아니겠는가.

       

       *

       

       다음 날 저녁. 나는 엔리의 VR룸에 초대되었다.

       

       횡한 하얀색 공간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내 VR룸과는 달리 엔리의 VR룸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핑크색 벽에다 여러 봉제인형들과 말끔한 조명으로 장식된 것이 여성의 방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다소 과장스럽다 싶을 정도로.

       

       “어서오세요. 아라 씨. 제 방 멋지죠?”

       “그렇군. 좋은 곳이야.”

       “천마 롤 플레이에 너무 심취하신 거 아니에요?”

       

       VR세계에서 한상 하던 대로 한국어가 아닌 무림의 언어로 말을 꺼내니 엔리가 웃음을 흘렸다.

       

       연기 같은 게 아니라 이쪽이 내 본연의 모습에 가깝다마는.

       

       이상하게 한국어를 쓸 때면 전생의 흔적 때문인지 공손한 존대가 먼저 튀어 나온다.

       

       굳이 교정할 이유도 없어 신경 쓰지 않았다만 그 어투가 진짜 취급을 받고 지금이 가짜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미묘했다.

       

       “연기 아니었어요?”

       “아니다. 그저 내 본래 쓰던 대로 말을 할 뿐이야.”

       “중국어가 이런 식으로 번역되는 거구나. 죄송해요. 착각했네요.”

       “신경 쓰지 말거라. 오해를 할 수도 있는 게지.”

       

       천마로 살며 쓴 언어이기도 하니 마냥 오해라 할 수도 없지.

       

       “그런데 아라 씨. 저. 방송에서는 되도록 한국어를 써주실 수 있나요?”

       “왜지?”

       “아라 씨가 아피스 커뮤니티에서 너무 유명해서요. 제가 초대한 사람이 아라 씨라는 걸 들키게 되면 공포게임이고 뭐고 난리가 날 게 분명해요.”

       

       그 정도로 내 이름이 알려진 것인가. 별로 한 것은 없다만.

       

       그 검은 것과 싸울 때는 꽤 진심을 다했으니 그게 사람들 사이에 퍼진 걸지도 모르겠군.

       

       패배의 영상이 퍼지다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만 이미 퍼진 것을 어쩌겠느냐. 다음에 승리의 영상으로 덮으면 그만이기도 하고 말이야.

       

       “어투는 한국어로 하면 전혀 달라지니까 괜찮고. 얼굴은 이걸로 가리면 될 거에요.”

       

       엔리가 건넨 것은 귀여운 여우의 가면이었다. 줄이 없어서 어디에 걸어야 하는가 싶었으나 얼굴에 대면 자동으로 부착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에 껴보았다.

       

       과연. 얼굴에 대자마자 바로 달라붙는 건가.

       

       툭툭. 꽤 강하게 두드려 보았지만 떨어질 기색이 없다.

       

       “벗을 때는 벗겠단 생각을 하면서 손을 데면 떼어져요.”

       

       그리 하니 정말로 벗어졌다. 신기하구만. 이것도 VR세상이라 가능한 묘기인가.

       

       “착용감은 어땠어요?”

       “괜찮더구… 아니. 괜찮았어요.”

       

       시야를 가리는 것도 아니고. 얼굴에 이물감이 크게 드는 것도 아니니 착용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오래는 안 끼고 있어도 괜찮을 거에요. 오늘 하는 공포 게임 분량이 세네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거든요.”

       “빠르게 끝내죠.”

       “저도 그러고 싶어요.”

       

       해실거리며 웃던 엔리는 자신이 공포게임을 해야 한단 사실을 떠올린 건지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는 길게 심호흡을 하더니 자신의 뺨을 강하게 두 번 때리고는 다시 미소를 띄웠다.

       

       “그럼 이제 방송 시작할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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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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