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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1살]

         

        이세린.

         

        그녀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뭐 부족할 거 하나 없는 그런 집안에서 말이다.

         

        [2살]

         

        아버지는 판사였고.

         

        어머니는 의사였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부모는 언제나 그 아이에게 친절했다.

         

        [3살]

         

        행복한 나날이었다.

         

        부족함 없는 식사.

         

        건강한 삶.

         

        언제나 따뜻한 부모.

         

        이세린은 기뻤다.

         

        [4살]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이 바빠서 육아 도우미와 지내는 시간이 대다수였다.

         

        그러던 도중, 육아 도우미가 바뀌었다.

         

        그녀는.

         

        부모 몰래 바뀐 도우미에게 학대를 당하기 시작했다.

         

        [5살]

         

        어느 날 새로운 소꿉친구를 사귀었다.

         

        아버지 변호사 친구의 딸이었다.

         

        이름은 박지원.

         

        새로운 친구가 생겨서 처음으로 너무나도 기뻤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죄악감에 젖은 표정일까.

         

        후회하는 표정일까.

         

        아니면 그냥 힘든 걸까.

         

        그녀를 보는 아버지의 눈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6살]

         

        부모님에게 그녀가 학대 받았다는 사실을 들켰다.

         

        눈앞에서 육아 도우미의 뺨을 때리고 넘어뜨려 발로 두들기는 아버지.

         

        육아 도우미는 형사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판사의 힘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된다며 안도했다.

         

        [7살]

         

        그 이후.

         

        이세린은 학대를 다시 받아왔다.

         

        이번에는 도우미가 아니었다.

         

        부모였다.

         

        특히나 아버지.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가정의 규칙 생겨났다.

         

        [8살]

         

        맞았다.

         

        맞았다.

         

        또 맞았다.

         

        겨우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

         

        그녀는 중학생들도 어려워할 법한 문제들을 강제로 풀어 나갔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근은커녕 채찍만을 받아왔다.

         

        [9살]

         

        “너는 엄마와 아빠 둘 다 닮았으니까 머리가 좋아야 해.”

         

        이것이 그녀의 부모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너는 절대 실수해서는 안 돼.”

         

        이것이 그녀의 부모가 밥 먹을 때마다 했던 말이다.

         

        “무조건 착하게. 무조건 말 잘 듣기. 알았지?”

         

        이것이 그녀의 부모가 남들 앞에 섰을 때 강조하던 말이었다.

         

        “착한 아이! 착한 아이가 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이것이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학대하면서 외쳤던 말이었다.

         

        [10살]

         

        착한 아이.

         

        실수하지 않는.

         

        남들 앞에서는 항상 잘 보여야 하는.

         

        그런 착한 아이.

         

        그럴 때마다 이세린은 대답했다.

         

        “앞으로는 더, 말 잘 들을게요… 차, 착한 아이가 될게요…!”

         

        [11살]

         

        얼굴과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더라도 그녀는 애써 웃어 보이며 착한 아이가 되었다.

         

        남들에게 친절한.

         

        그러면서 실수하지 않는.

         

        그러면서 남들보다 우월한.

         

        그런.

         

        착한 아이가 되도록 노력했다.

         

        그럼에도.

         

        학대는 끝나지 않았다.

         

        [12살]

         

        온몸에 멍이 들었다.

         

        그날 따라 기분이 더 이상했다.

         

        첫.

         

        첫 월경을 시작했다.

         

        그녀는 무서웠다.

         

        그녀는 서러웠다.

         

        세 번째 월경이 시작되던 날.

         

        유독 더 심하게 맞아왔던 그날.

         

        크리스마스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녀는 물었다.

         

        왜 그렇게 착한 아이에 집착하냐고.

         

        서러워서 울면서 물었다.

         

        그 착한 아이가 뭐라고.

         

        도대체 뭐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아버지의 구타 뿐이었다.

         

        [13살]

         

        그날 밤, 그 답을 못 들어서 그랬을까.

         

        평소보다 더 심하게 맞아서 아파서 그랬을까.

         

        몇 일 간, 잠을 제대로 못 이루던 그녀는 제 아비와 어미가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저희가 애를 너무 엄하게 키우는 걸까요?”

         

        “아니야. 이거면 충분해.”

         

        아버지의 말은 담담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했다.

         

        뭐가 충분하다는 것일까.

         

        뭐가 됐다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아픈데.

         

        “그래도… 이러다가 애가 엇나가겠어요…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가 정말로 듣기 싫었다.

         

        자신도 똑같이 나를 때렸으면서.

         

        자신도 똑같이 아버지에게 동조했으면서.

         

        이제 와 걱정을 해?

         

        사춘기의 그녀는 부모의 말을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저 위선.

         

        나에게는 선하게 행동하라 말해 놓고는 정작 자신들은 시도도 안 하던 이들의 위선.

         

        그녀는 삐뚤어졌다.

         

        “아니야… 지금은 이렇게 해야 돼… 이게 맞아… 때가 되면… 그때 알려줄게…”

         

        그래서 그럴까.

         

        그녀는 자신의 아비가 하는 말에서 묻어 나오는 죄책감을 느낄 수 없었다.

         

        [14살]

         

        중학생이 된 그녀는 한동안 제멋대로 행동했다.

         

        공부도 안 하고.

         

        담배도 입에 대보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렸다.

         

        천성 자체가 선한 그녀였지만, 그녀는 그걸 최대한 억누르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훨씬.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맞았다.

         

        하지만.

         

        부모를 엿 먹였다는 생각에 그녀는 기뻤다.

         

        [15살]

         

        중 3까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그녀와 어울리던 남자 무리가.

         

        그녀를 강간하려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몰래 데려가.

         

        그녀의 사지를 붙잡고 옷을 벗겼다.

         

        큰 배신감.

         

        그리고 두려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더러운 성욕.

         

        거역할 수 없는 커다란 힘 차이.

         

        엄청난 두려움과 함께, 그녀에게는 그 상황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강간 당하기 직전의 그 상황.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무력한 상황.

         

        그 트라우마에.

         

        박지원이 간섭했다.

         

        “이이 미친 씹새끼들!!!”

         

        입이 험하고 키가 큰 그녀.

         

        그럼에도 여러 격투술을 배워 남자애들보다 힘이 세고 용감했던 그녀.

         

        어릴 때, 잠깐 소꿉친구로써 지내다 중학교로 올라오면서 변한 이세린에 의해 서먹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

         

        그녀는 이세린을 구해주었다.

         

        폭력.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남자애들 몇 명은 코뼈와 팔, 다리뼈가 박살 났다.

         

        박지원 역시 팔이 부러졌지만, 그녀의 얼굴은 후련했다.

         

        학교는 뒤집어졌다.

         

        몇 일 동안.

         

        판사 신분인 그녀의 아버지는 이세린을 강간하려 했던 그 남자아이들을 강력하게 처벌했고, 변호사 신분인 박지원의 어머니는 그 폭력 사태를 단숨에 진정시켰다.

         

        그날.

         

        눈이 펑펑 쏟아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한 그날.

         

        박지원과 이세린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그날.

         

        뼈가 시릴만큼 욱신거리듯 추운 그날.

         

        아버지는 그녀를 수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팼다.

         

        가장 그녀가 아팠던 날이었다.

         

        [16살]

         

        온몸이 아려 오고 서러웠던 그 새벽.

         

        잠이 안 오던 그녀는 다시금 그녀의 부모가 나누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약간은.

         

        아니 조금은 많이 몽롱한 채로.

         

        “이번에는 너무 심했어요…”

         

        어미의 걱정 어린 말.

         

        이세린은 이번에도 화가 났다.

         

        몇 시간 동안 때려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주제에.

         

        이제 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하지만.

         

        울먹거리듯 내뱉은 아버지의 말에 이세린은 잠시 그 원망을 뒤로 밀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얼마 전까지 끔찍한 일을 당할 뻔한 아이에요… 아직 그 트라우마가 심각하게 남아있을 아이인데. 그렇게 심하게 때릴 이유가 있었어요?”

         

        “미안… 미안해…”

         

        “사과는 저한테 하지 말고 딸한테 해야죠…”

         

        “…”

         

        그 아버지의 침묵이.

         

        굉장히 길었다.

         

        그녀가 아비의 슬픔을 느낄 수 있을 정도 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울음을 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 침묵을 깨고, 힘겹게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내가… 당신한테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한 거… 기억나…?”

         

        “기억하죠… 그때도 딱 지금 시간이었을 텐데. 정확하게 3년 전.”

         

        “…”

         

        “그래서… 무슨 이야긴데요…?”

         

        또다시 찾아온 아버지의 침묵에 어머니는 무언가 심각한 주제라는 것을 느꼈다.

         

        잠시 표정 관리에 실패한 어머니는 아버지를 닦달할 수밖에 없었다.

         

        “말해봐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데요?”

         

        그리고.

         

        진지한.

         

        아주 진지하고 어두운.

         

        어둡다 못해, 깊어 버린 그런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내가… 사건 하나를 맡았었어… 그러니까… 세린이가 5살일 때 쯤이었을 거야. 내 표정 안 좋았을 때. 그때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하죠… 그게 그 사건이랑 연관 돼있어요…?”

         

        “응… 많이 연관 돼 있지… 왜 그 사건 있잖아. 세린이 다섯 살 때 벌어졌던 그 아동 성범죄자 사건.”

         

        “… 그 사건을 당신이 맡았어요?”

         

        “응… 다들 그때 난리도 아니었지. 얼마나 잔인하게 살해했는지… 참…”

         

        “이건 알죠… 신문 기사에 엄청 크게 났었잖아요… 그래서요…? 이게 하고 싶은 말이에요?”

         

        “아니… 아직 많이 남았지… 하…”

         

        “그럼 한숨만 쉬지 말고 빨리 이야기 해봐요.”

         

        ”… 이 사건이 참 웃긴 게 뭔지 알아?”

         

        “뭔데요…?”

         

        “그거 누명이야.”

         

        “네…?”

         

        “누명이라고. 싹 다… 싹 다 조작된 거야…”

         

        “그럼…”

         

        “그 범죄자라고 누명 쓴 놈만 불쌍한 거지…”

         

        “하…”

         

        “그런 게 있어… 이 업계가 말이야… 몇 번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놈이 진짜로 범죄를 저지른 건지, 아닌 건지 정확하게는 구별은 못 하지만 적어도 이상하다는 건 눈치챌 수 있어…”

         

        “…”

         

        “범죄 사건만 수천 번을 맡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야. 당연히 그 정도는 알지…”

         

        “…”

         

        “참… 싹 다 조작됐더라고. 이 증거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딱 나타나고. 저 증거 필요하다 생각나면 딱 나타나고. 숨길 생각도 없을 정도로… 참…”

         

        “…”

         

        “당신도 사건 재현하는 거 알지…? 막, 그 당시 상황이랑 똑같이 재현하게 범죄자 데리고 현장 방문하는 거.”

         

        “…”

         

        “이, 이 누명 쓴 머저리 같은 놈은 아무것도 못 했어. 내가 직접 봤어.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계속 얼 타더라고… 그게 연기면… 할리우드 가도 될 정도로 말이야… 정말 억울해 보이더라.”

         

        “…”

         

        “근데, 거기서 사람들은 이상하다 생각하지도 않아. 명확한 증거 하나 만으로 단편적인 것만 보고 그 머저리 같은 놈을 몰아치더라고… 나는 그때 알았어. 이놈은 진범이 아니라고…”

         

        “… 그래서요…? 결국에는 감옥에 들어갔잖아요…?”

         

        “맞아… 내 손으로 직접 넣었지… 하… 나는 계속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저놈이 진범이 아니면 도대체 누구일까. 도대체 누가 저 짓을 저지르고 상황을 조작한 걸까. 계속 의심했어.”

         

        “…”

         

        “근데 말이야… 그 의심을 계속 못하게 하는 게 뭔지 알아…?”

         

        “… 뇌물… 이군요…”

         

        “맞아… 우리 세린이 나중에 크면 하나 새로 주자고 샀던 그 집 있지? 그 40억 짜리.”

         

        “…”

         

        “그게 뇌물이야…”

         

        “… 도대체 왜…”

         

        “어쩔 수 없었어…”

         

        “…”

         

        “진짜로 어쩔 수 없었어…”

         

        “…”

         

        “진짜라고…!”

         

        그 죄악감이 묻은 외침 그 이전까지의 말을.

         

        이세린은 그저 잠결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 입장에서는 다행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비가 저지른 천하의 쓰레기 짓을 알고 자라는 것 보단, 모르는 채 자라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비밀이 드러나기 전까지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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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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