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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으엑. 퉤!!”

         

         입안에 섞여 들어간 것 같은 피를 뱉고, 반동으로 인해 저릿저릿한 어깨를 주무른다.

         

         당장 눈앞에 닥쳤던 위협을 모두 제거하고 나자, 엉망인 가게와… 거의 마찬가지인 몸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물리적인 공격을 허용한 것도 아닌데, 좀 문질러졌다고 묘하게 화끈거리는 하복부. 거의 최소화된 총기반동에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상반신. 축축한 핏자국.

         

         “두고 보자, 진짜로…!!”

         

         적합도나 부작용 문제로 이식이 실패할 리도 없으니. 크레딧에 여유만 생기면 아낌없이 개조와 업그레이드에 투자하리라 마음먹으며 흐트러진 옷을 똑바로 정리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시체 두 구.

         

         연구소에서 흩어진 총들을 박박 긁어올 때도 느꼈지만, 게임처럼 한번에 소지품 목록을 쫘라락 보여주거나 가상의 인벤토리에 쏙쏙 집어넣는 기능이 없으니 전리품을 회수하는 것조차 고역이다. 심지어 착탄한 총알이 유용한 물건들을 다 박살냈을 수도 있고.

         

         찌이익…!!

         

         저질스러운 근력으로는 몸을 뒤집거나 옷을 벗겨 내기도 힘든 만큼, 그냥 거한의 목에 꽂혀 있던 스테이크 나이프를 뽑아서 주머니를 뜯고 외투를 잘라낸다.

         ……겨우 식사 도구의 절삭력이 이정도라면. 근접 빌드 캐릭터인 사무라이나 저거너트 같은 애들이 쓰던 무기들은 대체 얼마나 위험한 걸까…?

         

         부디… 몸으로 체감할 일 같은 게 안 생긴다면 좋겠다.

         

         딸그락….

         

         “이런 미친…?!”

         

         사이버웨어의 분석을 바탕으로 잡동사니들을 골라내던 중. 뜯어낸 안주머니에서, 딱 봐도 존나 잘 터지게 생긴 뭔가가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 M85 Frag Grenade. Black Dragon Corp. ]

         

         이백 년은 지난 미래세상인데도, 여전히 살 떨리게 생겨먹은 녹색 파편 수류탄이 툭 튀어나왔다.

         

         총은 무슨 공사장비를 개조해 놓은 거지 같은 걸 들고 있던 주제에. 시발 왜 폭발물은 흑룡 기업산 정품을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잘못 쐈으면 다같이 사이좋게 황천길 건넜다는 거 아냐…!

         

         일단은, 이 몸의 체력이나 내구성…. 까놓고 말해서 보유한 탄약이 떨어지기 전에 팔이 먼저 지칠 것 같았기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수류탄은 소중하게 챙겨 두었다.

         

         죽은 두 놈의 몸이 눈에 띄지 않도록, 가게 문을 확실하게 닫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괜히 쓸데없는 이목을 끌기 싫어서, 샵에 취직한 뒤로 정착지를 따로 돌아다닌 적은 없지만… 메카닉 할배가 자주 찾던 식당의 위치 정도는 알고 있다.

         

         사박… 사박….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멀리서는 총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지만. 지랄난 정착지의 현상황을 대변하듯, 거리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있다면 그건 문자 그대로 이 황무지에 적응한 곤충형昆蟲 생물이거나….

         

         “이 씨벌…… 존나 무겁…… 엉?”

         

         타당—!!

         

         “……살판나셨네, 아주.”

         

         …벌레만도 못한 무법자 새끼들이거나.

         

         지가 어둠의 산타클로스라도 되는 것 마냥, 남의 집 살림살이를 모조리 보따리에 쓸어 담아 낑낑거리며 끌고 나오던 시꺼먼 놈을 쏴 버렸다. 간단한 손가락 운동만으로도 생명을 끊어 버릴 수 있어서 불안하던 찰나에, 저렇게 피아식별이 쉽도록 티를 내주니 나야 고마울 따름이다.

         

         뒤로 넘어간 놈에게 다가가 머리를 발로 툭툭 밀어본다.

         끈적한 생명수가 모래에 서서히 스며드는 걸 확인하고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계속 이런 상황만 반복된다면, 총을 견착하고 방아쇠만 딸깍거릴 줄 아는 어린애도 적들을 무찌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목적했던 가게는 총성의 근원지와 멀지 않은 듯했다.

         

         드르륵!! 드르르르륵—!!

         탕! 타다당…!!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격한 전장의 공기에 식은땀이 난다.

         

         

         죽음이 두려워서?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와서 두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낮과 밤을 보냈어도. 매일 밤이 지나고 아침에, 혹은 최후를 맞이한 다음 눈을 뜨면 익숙한 내 방 천장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나비의 꿈을 꿀 때는 자신이 인간인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진정으로 두려운 건 무엇일까.

         

         내가 주제넘게 행동해서. 또는 반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모든 것을 그르치는 것이다.

         

         연구소의 수술실에서 잠깐이나마 접신했던 평행세계의 신호는 쉽사리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지금 내 행동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결과-해피 엔딩-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뿐이다.

         

         

         “이 씨…년…!! 딱 걸렸……!!”

         “%^&^&…!!”

         

         “?!”

         

         총성에 섞여 들려온 거센 말소리에, 급하게 벽을 등지고 숨었다.

         격전지와는 반대편… 아니, 방금 막 지나친 집 중 하나다. 등뒤가 위험할 뻔했다.

         

         “무슨 놈의 집구석에 이중바닥이 설치 돼있어?! 하마터면 이런 미인을 얼굴도 못 뵙고 갈 뻔했네…!!”

         “엄마한테서 손 떼 이… 이 돼지야…!!”

         “메리…! 엄마는 괜찮으니까…. 응? 가만히 있으렴…?”

         

         “으…….”

         

         조심스럽게 접근한 집의 안쪽으로부터 상당히 열 받는 대화가 들렸다.

         판단하기는 쉬운 상황이다. 단지, 상대해야 할 적의 구체적인 윤곽이 아직 보이지 않았을 뿐.

         

         천이 살을 스치는 소리, 바닥에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엄마…! 엄마!!”

         

         짜악…!!

         콰당…!

         

         “거 존나 정신 산만하네!”

         “!! 애는 건드리지 말라고…!!”

         

         도도도 뛰어가던 작은 아이가 맞고 쓰러지는 소리까지.

         ……곧 뒤질 새끼가 선을 넘네?

         

         망막에 표시되던 온갖 잡다한 정보를 지워버리고 시야를 최대한 맑게 한 뒤, 장전된 라이플 총구와 함께 고개를 들이밀어 집안을 살폈다.

         

         바지춤을 끌러 내리느라 바쁜 덩치의 더러운 궁둥짝이 가장 먼저 보였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한, 주근깨가 귀여운 작은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라도 애가 엉뚱하게 주의를 끌라,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세워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와 동시에 한쪽 눈을 깜빡여 보였다.

         

         “와아…….”

         

         순식간에 아이의 눈에서 물기는 쏙 들어가고, 눈망울이 초롱초롱 해진다. ……귀여운 외모만큼이나, 정신력도 보통이 아닌 꼬맹이다.

         그보다도… 적이 이 멍청한 새끼 하나라면 진작 움직일 걸 그랬다. 그랬다면 괜히 꼬마가 맞을 이유도, 애 엄마가 몸을 내미는 흉내를 낼 필요도 없었을 텐….

         

         “!!”

         “……?”

         

         상반신을 숙인 덩치의 어깨 너머로 옷을 벗던 붉은 머리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안도한 기색보다는 다급해 보이는 표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고개가 왼쪽, 내 오른편으로 돌아간다. 그 신호를 이해하기도 전에, 출입문 바로 옆 벽으로부터 시커먼 손이 뻗어져 나와 라이플 총구를 움켜쥐더니. 억지로 잡아당긴다…!

         

         “씹…!!”

         

        같은 갱단원이 번식활동을 하겠답시고 저 지랄을 하고 있는데, 말 한마디 안 하고 그 꼴을 묵묵히 지켜보던 새끼가 진짜 있었다고?!

         

         압도적인 근력차이에, 무력하게 소총을 빼앗긴다. 우위를 점한 걸 확신한 무법자가 권총을 겨눈 채로 몸을 내민다.

         

         “역시, 자경단원 같은 게 남아있을 줄 알았……?”

         

         ……아나스타샤의 키를 살짝 작게 만들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내가 네오 헤이븐 폐인이어서 더더욱 다행이고…!

         

         철컥!

         

         건장한 성인을 예상하고 들이밀어진 녀석의 총구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겨눴다. 반면 총을 빼앗긴 나는 FPS 게이머라면 누구라도 그렇듯 본능적으로. 1번 무기가 안 되면 2번, 부무장인 피스메이커 권총을 뽑아 들었고. 그 작은 판단과 시간차가 승부를 갈랐다.

         

         탕!!

         

         쏘아진 탄환이 턱을 뚫고 머리를 지나쳐 천장에 꽂힌다. 일부러 점발사격을 할 필요도 없을 만큼 확실한 치명상에, 즉사한 몸이 허물어진다.

         

         “으엉……?”

         

         쿠당탕! 하고 요란하게 쓰러진 동료에, 어정쩡하게 굳은 덩치가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의 정서교육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 건 진짜 죄송하지만, 우선 상황부터 마무리하겠습니다…?

         

         방아쇠가 꾸욱 당겨지고.

         쏘아진 권총 탄환들이 자비없이, 우락부락한 돼지의 상반신에 틀어박힌다. 머리를 조준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방심했다가 죽을 뻔한 게 5초전인데, 또 그러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후우…… 후아!”

         

         언제부터 멈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참았던 호흡을 터트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언니!! 언니도 우리 아빠처럼, ‘발톱을 숨긴 매’ 같은 거야? 응?!”

         

         애 엄마가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품에 껴안은 뒤, 감사인사와 함께 연신 고개를 숙이신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으시는 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뇌리에 떠오른다.

         

         게다가 꼬마 숙녀님도… 너무 강철 멘탈이 아닌가 싶다. 호칭이 언니인 건 조금 심란하긴 한데, 마땅한 대체어도 없으니….

         

         “……영특한 꼬마 아가씨네. 그런데, 이럴 때는 어머님부터 챙기는 거란다…?”

         

         “아?! 엄마!! 미안해에에……!!”

         

         쓴웃음과 함께, 그녀도 철없는 딸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한데… 발톱을 숨긴 매…?

         최근에, 그것도 아주 많이 들어본 표현이다. 네오 헤이븐에서 저런 고풍스러운 표현을 쓰는 인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

         

         방황하던 내 시선이, 엉망이 된 집안에서 가족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

         아직 어린 딸과 그 부모의 모습을 담은 흔한 사진이지만…. 아버지 쪽의 생김새가 너무 눈에 익었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에, 중후한 인상. 턱시도가 잘 어울릴 것 같은 풍채까지.

         에메랄드 시티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계셔야 할 슈나이더 씨가 왜 이런 곳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수류탄은 ‘진짜 존나 재수없지 않는 이상’ 권총이나 소총의 총격 정도로는 폭발하지 않습니다.
    빨리 주인공을 서브 히로인으로 만들어서 원작 시간대에 던져 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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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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