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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커다란 뱀이었다.

       북유럽 신화 속 세계를 한 바퀴 휘감는 거대한 뱀이자, 신과도 맞서던 뱀과는 달리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분명 나는 강하다.

       지금 이 사슬도, 수천 명의 목숨을 대가로 바친 봉인 사슬도 내겐 아주 약한 모래로 만든 사슬 만도 못했다.

       

       파스스….

       

       자그마한 움직임.

       그것만으로 완전히 부숴진 사슬을 가만히 내려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하늘을 날 수 없었다.

       거대한 질량 탓일까, 혹은 그건 신화 속 요르문간드도 해내지 못했던 일 탓일까.

       

       초월적인 힘을 지녔음에도 나는 여전히 커다란 뱀에 불과했다.

       

       뭐가 부족할까.

       수많은 세월 동안 생각했다.

       

       수련이 부족했나?

       잡아먹은 적들의 힘이 부족했나?

       

       내가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걸까?

       

       능력을 깨우치는 법을 알지 못했나?

       

       그래.

       그 모든 게 맞다.

       

       나는 아직 성체가 되지 못했고, 스스로의 육체를 온전히 다루는 법을 몰랐으며, 비교적 온건하게 산 탓에 잡아먹은 적도 많지 않았고, 신적 존재가 지니는 능력도 깨우치지 못했다.

       

       노력했다.

       더 강해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벽을 마주해도, 그리고 그 벽을 뛰어넘어도.

       

       나의 힘 만으로는 영원히 벽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정신을 집중하자, 나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느껴졌다.

       

       이 행성이 곧, 나의 영역이었으니.

       

       용사가 마족과 싸운다.

       그 둘은 분명히 치열했다.

       

       하지만, 아직 못 미친다.

       저 마족은 적어도 마왕의 분신보다 강했으니까.

       

       마왕의 분신도 힘든 햇병아리 용사인 아스가르드에게, 숙련되고 완숙한 마족을 이기기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패배는 예정된 순리였다.

       

       부러진 검이 바닥을 나뒹굴고, 엘리세르데의 절망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더 강해지려면.

       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려면.

       

       다시 한 번, 이 허물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신화 속 이야기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이 세계에도 존재하는 신이란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온전히 그들의 힘 만으로 신이 되었을까?

       

       닭이 먼저일까, 계란이 먼저일까와 비슷한 소리다.

       

       신은 숭배 받고, 숭배 받는 이들이 늘어날 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강해진다.

       

       그 즈음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 내게 부족한 건.

       더 이상 내가 채울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나를 위한 신앙이, 숭배가, 경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채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약한 척 했다.

       엘리세르데가 한없이 소중한 척 했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한 평생을 같이 살아온 친구라 한들, 선뜻 목숨을 내줄 수 없는 성품을 지녔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남을 위한 희생?

       

       그래 좋다.

       하지만 고작 본 지 한달 된 왕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인정한다.

       

       호감 정도는 있다.

       예전으로 따지자면 친구 정도는 될 수 있겠지.

       

       그렇기에 기회를 주려 한다.

       그녀에게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나의 존재가 무엇인 지 깨달은 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때부터, 심장 어림에 내재된 가능성을.

       

       요르문간드는 난생 처음으로, 크기에 대한 한계를 완전히 해제했다.

       

       

       * * *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모든 게 혼란스럽다.

       그 강하던 요르문간드가 자신 때문에 고개를 숙였고, 자신을 위해 나서주던 용사도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증오스러웠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들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무능이 증오스러웠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럼에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나약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왕녀에 불과했다.

       

       감옥이 덜컹거린다.

       어느새 트렐리니아의 성벽이 코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 성벽 위에는, 수많은 트렐리니아 왕국의 군대와, 자신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그 앞에서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당장이라도 자신의 소중한 왕녀를 괴롭히려드는 악한들을 죽여버리려는 강렬한 의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내 딸을 내놓아라!!”

       

       그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그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왕녀는,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조롱.

       

       자그마한 손짓 하나만으로 왕녀의 목숨을 자신의 손에 쥐락펴락 할 수 있다는, 그런 가벼운 조롱에도 그 수많은 군대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피가 튄다.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칼리바르고의 병력에 휩쓸리고,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으면서도 입술을 짓씹고 계셨다.

       

       그 모든 소리가.

       점점 자그맣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모든 게 고요해지고.

       두근 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엔 자그마한 고동이었다.

       

       쿵, 쿵, 쿵….

       

       하지만 이윽고.

       

       쿵! 쿵! 쿵!

       

       그건 거대한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되어 전장을 울렸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이토록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선명한데, 어찌 아무도 듣지 못한단 말인가.

       

       심장에 무언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건 단순한 저주 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자그마한.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강하고 순수한….

       

       마치 누군가의 눈동자를 닮은 듯.

       

       한없이 따스하고 푸른 기운이었다.

       

       “아…….”

       

       그 기운이 뭔지 눈치 챈 순간.

       

       엘리세르데는 탄식을 뱉었다.

       마치 이 모든 게 하나의 거대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상황을 요르문간드가 계획한 걸까?

       

       정확히는 알 지 못한다.

       하지만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모든 장면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 맞춰지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가 힘 없이 쓰러진다. 사슬에 봉인된 그의 눈동자는 총명했고, 군사를 압박하는 그의 격은 마치 신과 같았으며, 그를 위한 제물이 되어 그에게 바쳐진 그 순간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그래.

       거대한 의식.

       

       더 정확히는.

       세계를 거대한 알처럼 삼아.

       

       마침내 그 세계를 깨트리고 다시금 태어나는 의식과도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가장 고귀하고 순결한 여인이, 신적 존재가 될 가능성을 품었으나, 신이 되지 못한 이에게 제물로 바쳐진 순간부터 운명은 두갈래 길로 나뉘어 있었다.

       

       처음의 운명은.

       어떠한 이어짐도 없는 운명이었다.

       

       그저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 되고.

       요르문간드와 왕녀가 아무런 접점도 잇지 못한 운명.

       

       왕녀는 다시금 용사의 호위를 받아 돌아가고.

       

       그렇게 저주가 발동되어 트렐리니아 왕국은 적군의 손아귀에 집어삼켜진 채, 칼리바르고 왕국은 인간계의 배신자가 되어 마계가 인간계를 침략한다.

       

       결국 요르문간드가 그걸 막았으나.

       이미 모든 걸 잃은 상태였기에, 아무런 의미 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세계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왕녀가 처음으로 요르문가드를 만나 호기심을 품었으며, 용사의 호의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 채 요르문간드와 추억을 쌓았다.

       

       비록 매우 얇고, 아주 가느다란 인연일 뿐이었지만.

       

       세계를 변화시킬 운명은, 그런 자그마한 인연을 계기로 벌어지는 것이었다.

       

       “…….”

       

       왕녀는, 트렐리니아 왕국의 유일한 왕녀.

       

       엘리세르데 트렐리니아.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모두가 침묵을 자리한 전장에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의 문을 열었다.

       

       마치 운명이라는 것처럼.

       혹은 어떠한 상냥한 존재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문은 잠겨있던 적이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열렸다.

       

       전장의 시선이 오직 왕녀 하나만을 향한다.

       

       이제 그녀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은, 그 누구도 없었다.

       

       작지만 강한 그 울림.

       그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알리는 울림은, 어느새 전장을 가득 메우다 못해 넘쳐흐르고 있었다.

       

       엘리세르데는 생각했다.

       어째서 자신이 제물로 바쳐졌을까.

       

       단순히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수많은 이들 중에서.

       하필이면 자신의 왕국 근처에서 발견되어, 하필이면 드래곤에 대한 전설을 알던 용사에게 발각되어, 하필이면 그 제물에 대한 소리를 자신이 우연찮게 찾아내서.

       

       그 모든 게 정말 우연이었던 걸까?

       

       어쩌면, 필연은 아니었을까.

       

       “…요르문간드.”

       

       신에게는, 신도가 필요하다.

       오로지 신만을 따르고, 경외하고, 숭배하는 이들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요르문간드는 완벽하지 못했다.

       

       그 순수한 격은 신에게 닿았으나, 그 격을 신격으로 바꿔낼 힘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신앙이, 숭배가, 경외가.

       그 모든 걸 해주어줄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렇기에.

       요르문간드는, 신이 되지 못했다.

       

       “제가 당신의….”

       

       전장의 모든 이들이.

       트렐리니아 왕국의 왕녀를 쳐다본다.

       

       칼 레디엄스가, 용사 아스가르드가, 마족 칼리팍이, 그의 아버지 레스벨리고가.

       

       그리고.

       알을 깨지 못한 존재.

       

       “신녀가 되겠습니다.”

       

       요르문간드가.

       

       그 모든 시선 앞에서.

       왕녀는, 신녀는 경건하게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없이 경건한 모습.

       그녀의 목소리에는, 짙은 맹세가 담겨 있었다.

       

       “저의 육신을, 정신을, 영혼을, 이 미천한 저의 모든 것을 바쳐. 온전히 당신만을 위한 무녀이자, 신녀가 되겠습니다.”

       

       하늘은 격동하지 않았다.

       

       대지는 침묵만을 지켰다.

       

       바람은 고요한 숨을 삼켰다.

       

       바다는 부드러히 파도쳤다.

       

       그리고.

       

       

       

       

       쩌적, 쩌저적——!

       

       하늘이, 갈라지며, 그가 드러났다.

       

       필멸의 육신을 벗어난 채.

       새카만 묵빛의 신성을 두른 채.

       

       거대한 하늘을 한없이 가득 메우며, 지평선의 끝에서 끝까지 모든 장면을 거대한 육신으로 채우며.

       

       하늘에서,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

       

       거대한 포효가 하늘을 뒤틀었다.

       

       중력이 어그러지며, 세계가 새로운 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

       

       그가, 필멸의 육신을 벗어나, 신으로 다시금 태어난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상작가 특: 고구마 연참으로 넘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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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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