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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그래서, 공자께서 제게-”

        ​

        “정말, 곤란하다니까요.”

        ​

        “혹시 —영애께서는-”

        ​

        황궁이 귀족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했다. 성인식이 치러지기 전 벌어진 연회판인 만큼 온 수도의 귀족이 다 모여들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

        시종이나 기사, 혹은 연로한 어르신들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모든 귀족이 여기 모여들었다고 들었다.

        ​

        물론 내가 알고 싶어서 따로 알아본 적은 없었다.

        ​

        “황제가 참석하는 연회에 빠질 사람들이라면 굳이 비싼 돈 들여서 마음대로 권세도 부리지 못할 수도에 거주하지도 않았을걸요.”

        ​

        “그래?”

        ​

        마리아가 하루종일 내 옆에 붙어 그리 궁금하지 않은 TMI를 계속 알려주고 있었다.

        ​

        한참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다 물었다.

        ​

        “그런데, 너는 저기 안 가봐도 돼?”

        ​

        마리아의 시선이 내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했다. 영애와 공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1층 홀이 그녀의 눈에 비쳤다.

        ​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

        “뭐, 떠들만한 것들은 이미 진작에 다 이야기를 나눠뒀어요. 따로 연을 맺어둘 필요가 있는 사람들도 다 분류를 끝내놨고.”

        ​

        굉장히 사무적으로 청춘남녀들의 즐거운 담소를 평가하는 그녀의 태도에 너 친구 없는 거 아니냐는 나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사교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사실, 사교성을 기를 기회도 잘 없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

        하지만, 그건 그거고.

        ​

        “네가 안 가면 사람들의 주목을 다른 사람이 가져갈 텐데, 괜찮겠어?”

        ​

        결국 이 식의 주인공은 마리아다. 황실 주최의 행사에, 황녀가 참가하는데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

        그렇기에 최대한 그녀를 띄워주기 위해 이 연회나 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신경을 썼을 거다. 문제는 그 당사자가 그걸 누릴 생각 없이 그저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다는 거다.

        ​

        “뭐 어때요. 당신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여기 앉아만 있는데.”

        ​

        “그건 내가 애초에 이 식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그런거고….”

        ​

        애초에 이 행사는 올해 성년이 되는 귀족들을 황제가 축하해주는 게 핵심이다. 당연히 올해 열아홉이 되는 사람들이 주연이지 스물이 진작 넘은 나는 덤일 뿐이었다.

        ​

        애초에 참여하는 것도 성인식이 아니라 식이 다 끝나고 황제를 알현하는 순서에만 참가하는 것뿐이었다.

        ​

        그런 만큼 식에 참가하는 마리아와는 상황이 달랐다.

        ​

        “상관없어요. 그런 거.”

        ​

        물론 마리아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계속 내 옆에 앉아 있었다.

        ​

        ‘씁, 곤란한데.’

        ​

        마리아가 돌아다니며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저기서 식의 시작을 준비 중인 대주교와 친한 척을 해야 했는데, 이래서야 짬을 낼 수 없었다.

        ​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그녀는 식이 시작하면 내려가야 했고, 대주교는 처음 식이 시작할 때 애국가 제창하듯 기도로 행사 시작을 알리고 빠져나오는 역할이었다.

        ​

        그 틈을 노리면 귀족들에게 대주교와 내가 친하다는 소문을 퍼뜨리긴 충분하겠지.

        ​

        “아무튼, 그래서-”

        ​

        내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마리아가 다시 TMI를 늘어놓았다. 괜히 주변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틈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나도 이상한 사람이 꼬이는 것보다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훨씬 나았기에 그녀의 말을 받아주었다.

        ​

        한동안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저 멀리서 누군가 외쳤다.

        ​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

        그 말에 서로 웃고 떠들던 귀족들이 모두 동작을 멈췄다. 다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황제의 등장을 기다렸다.

        ​

        끼이익.

        ​

        이윽고 홀의 가장 깊숙한 곳,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꼭대기에서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께 인사를 올립니다.”

        ​

        우리 근처에서 자리 잡고 앉아 홀로 술을 홀짝이던 재상이 일어나 계단에 다가가 무릎 꿇고 인사를 올렸다. 그를 따라 귀족들도 각각 무릎을 꿇거나 치마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

        ​

        나 또한 마리아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

        잠시 그 상태로 기다리니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들 고개를 들거라.”

        ​

        그렇게 크게 말한 것이 아닐 텐데도,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건물 전체를 울렸다. 고개를 드니 화려하게 빛나는 복장을 갖춰 입은 황제가 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다들 연회는 즐기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

        황제의 말에 저 밑에서 누군가 호기롭게 외쳤다.

        ​

        “폐하의 성은이 하펠강을 채우고도 넘칠 것 같습니다!”

        ​

        그 말에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황제도 한번 피식 웃었다.

        ​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

        하지만 그는 이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오늘까지는 마음껏 즐기거라. 이제 성인식이 끝나고, 내일부터 그대들은 엄연히 한 사람의 성인이자 제국의 귀족으로서 그대들의 의무를 다하고 제국의 번영을 위해 언제나 고민하고 살아야 할 것이니.”

        ​

        그러자 홀이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마리아는 당연한 말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힐끗 곁눈질하는데, 그게 마치 내게 그래서 너는 뭘 하고 있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

        괜히 찔려 핑계를 둘러댔다.

        ​

        “아니, 나도 제국의 안정을 위해 열심히 몬스터도 사냥하고 귀족도 호위하고 다녔어.”

        ​

        “누가 뭐래요?”

        ​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한 마디를 툭 던졌다.

        ​

        “그래서 약혼도 팽개치고 도망 다닌 건 뭐라고 변명하실 건가요?”

        ​

        “크흠.”

        ​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코너에 몰린 채 라운드를 시작하는 꼴이었기에 대답을 피했다. 마리아는 싱글싱글 웃으며 날 바라봤다.

        ​

        젠장.

        ​

        도저히 말싸움으로 이길 수가 없다…!

        ​

        “거, 좀 있으면 식이 시작할 것 같은데, 이제 슬슬 가봐야 하지 않겠어?”

        ​

        “또 말 돌린다.”

        ​

        “…….”

        ​

        마리아는 기어이 날 K.O 시켰다. 

        ​

        뭐라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녀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당신 말이 맞아요. 슬슬 시작할 때가 됐으니 가봐야겠죠.”

        ​

        그녀는, 홀을 향해 걸어가다 갑자기 돌아와 내 어깨를 잡고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

        “어디 도망치지 말고 딱 여기서 기다려요. 식만 끝나고 바로 돌아올 거니까.”

        ​

        “…아니, 진짜 끝까지 네 또래랑 안 어울릴 거야?”

        ​

        “누가 보면 당신은 뭐 엄청 연상인 줄 알겠어요?”

        ​

        …정신까지 따지면 아마 여기 있는 대부분보다 최소 2배에서 2.5배까지 될 것 같긴 한데.

        ​

        아무튼, 굳이 그녀의 말을 거절할 이유도 없기도 하겠다, 어차피 황제를 알현할 순서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기도 해야 하겠다, 그녀의 말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

        “알았어. 별일 없으면 여기서 기다릴게.”

        ​

        “별일 있어도 기다려요.”

        ​

        “…그건 억지 아냐?”

        ​

        푸흡.

        ​

        내 반응이 뭐가 재밌는지, 살짝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회장으로 향했다.

        ​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

        진짜 저 이야기 하나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얼굴을 들이밀었던 거야?

        ​

        ‘…뭐, 예쁘긴 하니 눈호강이긴 했지만.’

        ​

        괜히 살짝 열이 올라 냉수를 들이켜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나는 마리아에게 또 당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내 주변에 있던 적당히 나이가 찬 중장년의 귀족들이 내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

        나는 이 시선을 알고 있었다. 이거, 아침 드라마를 볼 때 우리 어머니가 가끔 짓던 표정이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

        그렇다고 자리를 뜰 수도 없었기에 계속 냉수만 들이켜며 대주교가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

        “혹시 빌헬름 경 맞으십니까?”

        ​

        아마도, 황실의 시종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평범한 시종은 아니었다. 황제의 전속시종급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연회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과는 복장의 급이 남달랐다.

        ​

        “빌헬름 폰 브란덴을 찾는 것이라면, 그건 제가 맞습니다만.”

        ​

        시종은 내게 용건이 있는 것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황후께서 빌헬름 경을 찾으십니다.”

        ​

        그리고, 그의 입에서 가장 듣기 싫은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

        “이런 씨발.”

        ​

        그 이름을 듣자마자 욕이 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

        “…예?”

       ​

       “알겠다고 했습니다.”

       ​

       “어, 어어…, 예….”

        ​

        시종은 내 말에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헷갈려하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랬지, 황궁이라면 당연히 황후도 여기 있겠지.’

        ​

        황후.

        ​

        솔직히, 개인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이야말로 황실의 온갖 갈등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었다. 이전 황후가 마리아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소천하자 황제는 본래 정부로 있던 현 황후를 황후의 자리에 앉혔다.

        ​

        문제는, 그가 황제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자 제 아들을 황제로 올리고 싶어 하는 야망을 가졌다는 데 있었다.

        ​

        당연히 그녀는 전 황후의 아들들은 물론 명목상이라지만 계승권을 갖고 있는 딸들 또한 매우 경계했다. 그것도 마리아가 겪은 숱한 암살 모의 중 배후가 누구인지 잘 모르면 일단 황후를 찍으면 답이라고 해도 될 만큼.

        ​

        ‘선제후가 차기 황제를 선출한다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선제후들만 어떻게 구워삶을 수 있다면 장자니 계승 서열이니 하는 문제는 전부 무시해버릴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

        그리고, 매수 외에 선거에서 이기는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유력 후보들을 제거해버리는 것도 있었다. 황후는, 마리아에 대해서는 굉장히 강하게 이 방법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

        물론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내가 소개해준 기사단이 이런 시도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당장 여기 올 때 수상할 정도로 장비가 좋은 산적들의 습격이 있지 않았던가.

        ​

        하필 그런 사람이 나를 찾고 있었다.

        ​

        물론, 이 연회장에서 그녀가 대놓고 날 헤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지금 이 연회장은 오직 황제의 명령만을 듣는 근위기사와 황실 마법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제아무리 황후라고 해도 이들을 뚫고 수작질을 부릴 수는 없었다.

        ​

        그냥,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꺼려질 뿐이었다.

        ​

        “빌헬름 경?”

        ​

        시종이 나보고 빨리 따라오라 재촉했다.

        ​

        잠시 마리아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조금 전 나보고 여기 앉아 기다리라고 했었지만, 아쉽게도 그걸 지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한숨을 푹 쉬고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 냅킨에 메모를 적어두었다.

        ​

        ‘황후가 불러서 잠깐 다녀올게.’

        ​

        냅킨을 마리아의 그릇 앞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가봅시다.”

        ​

        “예, 따라오시지요.”

        ​

        그를 따라가니, 평범한 귀족들은 올라오지 못하는 3층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이곳은 오직 황제와 그의 심복들, 그리고 그의 친족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중앙의 뻥 뚫린 천장으로 홀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

        “직접 얼굴 보는 건 처음이지?”

        ​

        “…예, 처음 뵙는군요.”

        ​

        여유롭게 차와 다과를 즐기는 장년의 여성, 황후 요안니나가 나를 맞이했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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