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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아가르타가 말하고, 몇 분 정도 정적이 일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든 생각은 ‘…뭐?’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기보다는, 정말 뜬금없이 나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거의 ‘내가 네 아빠다.’ 급으로 충격적인 발언을 해놓고 물음표를 띄우며 아가르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당신이… 뭐라고… 했더라?”

         

         

       제발 이야기를 돌려줬으면 하는 심정에 살짝 장난스러운 농담을 해보았지만 아가르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말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이미 들었으니까 자랑인 것처럼 얘기하지 마라.”

         

         

       사냥꾼도 황당한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인상을 쓰면서 아가르타의 말을 저지했다.

         

       나와 사냥꾼은 당연한 반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가르타는 뭐가 웃긴지 털털한 웃음을 터뜨렸다.

         

         

       “들었으면 반응을 좀 해달라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면서 기지개를 켰다.

         

         

       “정말, 둘 다 말을 안 하니까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말을….”

         

         

       세상에 어떤 사람이 심심하다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갑자기 툭, 별거 아닌 것처럼 던진다는 말인가.

         

       변종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아가르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뭐, 전 그리 신경 쓰고 있지 않거든요. 외신이 들이닥친 이후로 죽어버렸으니까요.

         

       차라리 잘 됐죠. 사실 어머니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엄.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덤덤하게 얘기하고 있어서 이 사람이 자신의 지인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너스레를 떨고는 아가르타가 나를 아련한 미소를 지으면서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탄튼 씨의 죄목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아요. 뭐 미수면 다행인 거죠. 실제로 한 건 아니니까.

         

       오히려 외신을 겁박하려 한 거면 정의로운 행동 아닌가요? 키킥.”

         

         

       아.

         

       설마 아까 그 죄명 때문에 말수가 줄었다고 생각해서 나름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이런 말을 꺼낸 걸까.

         

       …너무 극단적이라는 게 문제기는 했지만 아가르타라서 할 수 있는 말이긴 했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이따금 사냥꾼과 농담 따먹기라도 한 번씩 했었는데, 오면서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세 명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의도는 참 좋긴 한데, 차마 대답할 수 없는 말들이 이어지니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냥꾼도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뭔가를 회상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음.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제 죄는 태어난 잘못이었죠. 살아남기 위해서 배운 게 이것뿐이었거든요.

         

       몰라요, 혹시 이 방법 말고 제가 먹고 사는 방법이 있었을지도.

         

       그런데 개구리 자식은 어차피 개구리더라고요. 부모가 그런 사람들이니 저도 이런 식으로 살아남는 방법밖에 몰랐죠.”

         

         

       언뜻 들으면 자신의 처지를 남 탓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스노우 캐슬 세계관에서는 이해가 되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이 세상에서 고아가 되어버리면 답이 없는 것이었다.

         

       자신들도 너무 불행해서, 남을 챙겨 줄 여건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다크 판타지, 스노우 캐슬의 현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도둑질을 하든, 어두운 세계의 킬러가 되든, 아니면 더 으슥한 무언가가 되든….

         

         

       “그렇게 살아남다 보니, 결국 붙잡혀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혼자 도망쳤으면 저는 혼자 죽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막강한 외신이 있었으니까요.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덕분에 살았어요.”

         

         

       의외로 자기통찰이 빠른 그녀였다.

         

       아니지, 자기 통찰이 빠른 거니까 지금까지 도적질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겠지.

         

         

       그렇게 실컷 얘기하다가 갑자기 회상에 빠진 것인지 아가르타가 답지 않은 무표정으로 잠시 멍때리더니, 곧 다시 웃는 상으로 돌아와서는 사냥꾼을 가리켰다.

         

         

       “아잇, 눈치 좀 챙겨요! 제 얘기 끝났으면 파바박, 하고 치고 나와야죠!”

         

         

       아가르타의 말에 사냥꾼은 그저 눈만 끔뻑, 거릴 뿐이었다.

         

         

       설마 사냥꾼이 순순히 말해줄 거로 생각하나?

         

       원작 게임에서도 베일에 싸인 캐릭터라는 설정이었는데 설마….

         

         

       “나를 포함한 4인 가정.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아버지 덕에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말해버리는구나, 응.

         

       하긴 사냥꾼도 어쨌든 사람일 테니 이런 분위기에는 약해지는 거려나.

         

         

       덤덤하게 시작했던 사냥꾼의 목소리에 점차 감정이 섞이기 시작하더니 분노로 휩싸여 성대를 긁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스 한 마리를 잡아서 우리 먹을 것도 남길 수 있겠다며 기뻐하셨지.

         

       그날 밤, 그렇게 기뻐하던 남자는 밤에 급습한 외신에게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살해당했다.

         

       나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사냥꾼은 숨을 한 번 고르고는 덤덤한 톤으로 다시 얘기했다.

         

         

       “…그뿐이다. 그 뒤로 외신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일 뿐이었다.

         

         

       오늘도 저 지하 감옥에 외신의 냄새를 맡고 박살 내기 위해 왔을 뿐이다.”

         

       이야기를 들은 아가르타는 감탄을 하면서 말했다.

         

         

       “우, 우와 진짜 또라이신가?”

         

         

       제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사냥꾼의 눈은 내게 향했다.

       

       

       그 눈빛을 보니 그제야 자신에 관해 솔직히 말한 이유를 알았다.

        

       나에 대해 알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아직도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구나.

         

       ‘외신 강간 미수’ 라는 범죄는 어떻게 보면 외신에 대해 호감이 있다는 이미지로 보이니 사냥꾼에게 바로 ‘컷’ 당할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이 이야기를 기점으로 나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정하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뭐, 그건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난 ‘레이단 탄튼’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아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원작 게임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꼭 내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인물처럼 뜬금없이 이 감옥에 들어오는 것으로 나온 것이니까.

         

       적어도 이 게임에 ‘외신 강간미수’ 라는 죄명을 가진 등장인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강렬한 설정이라면 커뮤니티에서도 제법 떠돌아다녔지 않았을까 싶었다.

         

       결국 아는 건 전무하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나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더듬더듬, 단어를 고르면서 천천히 말했다.

         

         

       “그냥… 저는 제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일단 전 ‘레이단 탄튼’이 아니에요.”

         

         

       이 세계에 온 지 아직 하루도 안 됐다.

         

       그저 당장 일어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잊고 있을 뿐이었지만, 혼란스러운 것들뿐이었다.

         

         

       “사실 제가 왜 이렇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눈을 떠보니 감옥 안이었고요.”

         

         

       그런 상태에서 당황스러운 일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해?

       

       그런 억울함에 점점 목소리에 감정이 섞여 들었다.

       

       

       “전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고요.”

         

         

       슈퍼 겁쟁이 모드가 아니었다면 진작 주저앉아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난, 겁쟁이에 게임을 좋아했던 것 뿐인데, 그냥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에요.”

         

         

       가볍게 웃어넘기려면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결국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에게는 절망밖에 남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절차라는 것.

         

         

       횡설수설 하는 내게 아가르타는 말했다.

         

         

       “이중인격? 정신 분열? 기억 상실증? 아무튼, 뭐 그런 걸까요? 자기가 자신으로 느껴지지 않는 증상이라니.”

         

         

       같이 고민이라도 해주려는 듯 손가락으로 턱을 괴며 ‘흐음.’ 같은 소리를 내는 아가르타.

         

       네가 내 상황이 되어본다면 어떤 것인지 바로 딱 알 수 있을 텐데.

         

         

       그때, 사냥꾼이 일어나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냥 가까이 오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나한테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슬쩍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뭐, 뭐하려는 거에요.”

         

         

       아무리 그래도 남자한테 당하는 건 취향이 아닌데….

       

       혼자 별생각을 하고 있으니, 사냥꾼은 내 목덜미에 코를 가져다 대었다.

         

       갑자기 몇 번 킁킁대길래 식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니, 진짜 뭐하는 거예요!”

         

         

       내가 뭐라 하건 신경도 쓰지 않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 하면서 말했다.

         

         

       “이번엔 거짓말을 말하는 냄새가 아니군.”

         

       “…네?”

         

       “널 믿겠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거겠지.”

         

         

       후각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냄새로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고?

         

       아니,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해?

         

         

       라고 하기에는 내 헛소리를 별 스스럼 없이 믿어주던 사냥꾼의 행동이 갑자기 떠올랐다.

         

         

       사냥꾼은 누군가를 함부로 믿지 않는다.

         

       확실한 근거와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행동하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맡아온 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냄새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우린 살아남았지.”

       

         

       감옥 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소름 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얄팍한 수는 진작에 전부 꿰뚫고 있었다는 뜻인가.

       

       

       “그러니 이번에도 속아주마.”

       

         

       사냥꾼은 그렇게 말하며 내 호주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호주머니에 숨겨놓은 것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것을 느꼈는지, 소외신이 몸을 떨었다.

         

       아.

         

       안 들키는 게 이상하긴 했는데.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 혐오스럽더라도 상관없겠지.

         

       그 눈알개를 쓰러뜨리는 데에 일조하기도 했고. 네가 원하는 대로 다루던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내 귓가에 속삭인 후, 갑자기 내 어깨를 잡고 팍팍팍 흔드는 것이 아닌가.

         

         

       “으브븝.”

         

         

       …어라.

         

       이거 왜 낯설지가 않지?

       

       

       “하지만 언제든 널 사냥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아두도록.”

         

         

       벙찐 표정으로 사냥꾼을 마주해주자, 가만히 나를 보던 사냥꾼이 코웃음을 치면서 그냥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자 떠올랐다.

         

         

       …지금 이거 설마 감옥 나갈 때 어깨 흔든 거 복수한 거야?

         

       아니, 그 사냥꾼이 이런 장난을 친다고?

         

         

       마치 고기를 먹었는데 사탕 같은 맛이 난 것처럼 당혹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를 느꼈길래?

         

         

       그렇기에 더 당황스럽게 만든 건 소외신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그냥 봐주는 점이었다.

         

         

       외신만 보면 닥치는 대로 부수고 싶어 하던 양반이 대체 왜?

         

       그냥 지금 사냥꾼의 모든 행적이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 너무 반대되는 것들이 많아서 회전하던 뇌가 그대로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모르겠다.

         

       

       지금은 다른 거 더 생각했다가는 머리가 지끈거릴 것 같으니, 동료애를 느껴서 유해졌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사냥꾼은 기사단의 말을 믿진 않았던 것 같다.

       

       내 품에 있던 소외신을 느끼고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오직 자신만의 주관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

       

       그렇기에 외신을 사냥할 수 있는 초인.

       

       

       그것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느꼈다.

       

       젠장, 멋지잖아.

       

       

       “탄튼 씨, 호주머니에 뭐가 있어요? 봐요 봐요!

       

        까악! 아니 미쳤어요? 이걸 왜 들고 왔어요!”

       

       

       눈치 없이 손을 뻗어 소외신의 감촉을 느낀 아가르타는 화들짝 놀랐고 그렇게 조금 나아진 분위기에 감싸인 채 스노우 캐슬에서의 하루를 끝마쳤다.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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