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

법진 스님의 도움으로 천만다행히도 소녀는 노트북을 익히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이어질 실전이었다.
     
     
   꿀꺽.
     
   노트북 앞에 앉은 소녀를 바라보며 해인과 법진이 마른침을 삼킨다.
     
   인터넷으로 아무 곳에서나 교육 받을 수 있다는 거?
     
   좋다, 반길 일이다.
     
   하지만, 빙구의 ‘이 아줌마는 무료로 해줍니다’ 같은 일반적인 수위를 아득히 벗어난 인터넷상의 정보들이 문제였다.
     
   혹시나 소녀가 이상한 사이트를 들어가진 않을까 전전긍긍.
     
   속세에서 초탈해야 할 스님들이 소녀의 행동에 손발을 구르고, 눈조차 제대로 깜빡이지 못한 채 빤한 시선을 유지한다.
     
     
   딸깍-
     
   마우스 눌리는 소리에 움찔.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강의 화면이 떠올랐다.
     
   [청성 길드 – 학생반 온라인 강좌]
     
   화면은 꽤 간단하다.
     
   좌측에 떠오른 커다란 동영상 화면과 오른쪽에 떠오른 채팅창.
     
   마치 인터넷 방송을 보는 듯 스님들에게조차 익숙한 인터페이스였다.
     
     
   그런데….
     
   “헉! 저, 저 입구에서 붙잡혀 버렸어요!”
     
   [성함과 부여받은 코드를 입력해 주세요.]
     
   청성 길드의 강의를 아무나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연하게도 길드장에게 부여받은 코드는 쉽게 입력했지만.
     
   “그러고 보니 우리 꼬맹이 이름을 못 들었구나…?”
     
   덩그러니 텅 비워진 이름 입력창만큼은 두 스님이 도와주지 못했다.
     
   “아… 이름….”
     
   그들이 바보라서, 소녀에게 무관심해서 이름을 묻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가, 우리가 아가를 뭐라고 불러야 할꼬?”
     
   첫날 자명 스님이 그렇게 물었고.
     
   -“죄인에게 이름은 없어요.”
     
   소녀는 그리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이후로는 그 누구도 소녀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분명… 부모가 있는 아이라면 무슨 이름이라도 받았을 텐데.
     
     
   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 소녀가 멍하니 텅 빈 입력창을 바라본다.
     
   깜빡, 깜빡, 깜빡.
     
   소녀를 재촉하듯 연신 점멸하는 입력창의 커서.
     
   특별한 반응을 보인 것도, 정면에서 소녀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두 스님은 점차 묵직한 불편함에 짓눌렸다.
     
   얼굴을 보지 않고도 감정을 알 수 있다던 게 거짓이 아닌 듯.
     
   소녀의 가녀린 어깨를 통해 수없이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 탓이었다.
     
   “…이름, 꼭 입력해야 하나요?”
     
   결국 소녀의 물음에 두 스님은 태연한 거짓말을 내뱉는다.
     
   “이건 상대가 널 어떻게 부를지 묻는 거란다.”
   “아… 그럼,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거죠?”
     
   “그래.”
     
   그렇게 소녀가 스스로 입력한 이름은 죄인.
     
   스스로 생각해 낸 명칭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음울한 단어였다.
     
     
   소녀가 강의장에 입장한 이후, 강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띠링-! 알림음과 함께 채팅창 위로 글자가 떠오른다.
     
   김성영 : 1빠!
     
   그로부터 약 5초 뒤.
     
   김성영 : ???
   김성영 : 누구야? 누가 나보다 먼저 들어왔어?
   김성영 : 죄인이 누구야? 신입이면 형한테 인사해야지
     
   연이어 알림음이 울리며 우다다- 글자들이 쏟아져 올라왔다.
     
   “어… 어어… 커, 컴퓨터가 말을 해요!”
     
   당황한 소녀가 이도 저도 못 하던 때.
     
   안타깝게도 두 스님이 소녀에게 ‘채팅’을 가르쳐줄 시간은 없었다.
     
     
   띠링-!
     
   박이선아 : ㅎㅇㅎㅇ
   김성영 : ㅎㅇㅇ
     
   띠링-!
     
   우나라 : 안녕!
   박이선아 : ㅎㅇㅎㅇㅎㅇ
   김성영 : ㅎㅇㅇㅇㅇ
     
   띠링-!!
     
   박판재 : 할롱
   우나라 : 안녀엉!!
   박이선아 : ㅎㅇㅎㅇㅎㅇㅎㅇ
   김성영 : ㅎㅇㅇㅇㅇㅇㅇ
     
     
   오, 젠장.
     
   뭐라도 도와주고자 모니터 앞에 붙어있던 두 스님이 이마를 탁- 치며 물러났다.
     
   이건….
     
   그들이 끼어들 판이 아니다.
     
     
   박판재 : 게이시 어제 업뎃 뜬 거 봄? A급 보스 레이드 추가된대
   박이선아 : 그거 그냥 게임이잖아?
   김성영 : 뭐래? 길드장님도 게이트 시뮬레이션은 ‘진짜’라고 인정하셨거든?
   박이선아 : 길드장님이 직접 올린 사냥 영상이 더 낳다고 하셨거든?
   김성영 : 긁? 긁? 에베베베
   박판재 : 선아한테 그러지 마;; 너 우리 오기 전에 누구랑 얘기하고 있던 거야?
   김성영 : 아! 맞아 신입 들어왔더라!
   박이선아 : 오올~ 박판재~~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차원이 다른 발랄함에,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대화 주제에.
     
   “이, 이거 어, 어떻게 해요?!”
     
   소녀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어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아이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출석 인원만 서른 명이 넘은 상황.
     
   “얘들은 공부하러 온 거야, 아니면 채팅을 치러 들어온 거야?”
   “그나마 온라인이라 다행입니다. 우리 꼬맹이가 저 사이에 끼면 적응 못 했겠어요.”
     
   “역시 꼬맹이가 혼자서 적응하도록 놔두는 게…”
     
   김성영 : ㅋㅋㅋㅋ그런데 어떻게 사람 이름이 죄인임?
   박판재 : 이름으로 놀리지 마.
   박이선아 : 근데 죄인은 진짜 이상하잖아? 어떤 부모가 이름을 그렇게 지어줘.
     
   그러던 도중 일이 터져버렸다.
     
   김성영 : ㄹㅇ엄마랑 아빠가 범죄자인가?
     
   소녀의 닉네임 ‘죄인’을 두고 떠들기 시작한 아이들.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제각각 한 마디씩 올리기 시작하니, 자연히 소녀의 정체나 부모에 관한 이야기도 뒤섞여 나왔다.
     
     
   “…….”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던 소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울컥-
     
   두 스님의 얼굴에 야차가 깃들었다.
     
   감히, 내 새끼를 울려?
     
   길드장님이 가르치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좋은 친구가 될 거라 생각했더니!
     
   해인 스님이 다급히 소녀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 올렸다.
     
   “…스님?”
     
   울먹이는 목소리에 뿌득 이를 갈면서도 소녀에게만큼은 나긋나긋 설명한다.
     
     
   “꼬맹아. 지금부터 복수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아! 이교도들의 저주 방법 같은 건가요?”
     
   소녀가 순식간에 두 눈을 부릅뜨고, 환해진 채 해인을 되돌아본다.
     
   어….
     
   사실 키보드 워리어질이랑 다중 분신술이 좀, 사특한 짓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스님인 그가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지 않은가?
     
   박이선아 : 야! 아무리 그래도 부모 욕은 너무 심하지!
   김성영 : 응 뭐래~ 너도 엄마만 둘이잖아?
   박판재 : 너 길드장님한테 전화한다?
   김성영 : 젼화핸댸~ 해봐ㅋㅋㅋㅋ 뷰웅딱아~
     
   …채팅창을 보니 ‘그렇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야 저놈들은 인두겁을 타고 태어난 마라일 뿐이니.
     
     
   “그래. 이건 우리들이 인터넷의 악마를 때려잡는 방법이지.”
   “이교도들의 인터넷 악마 사냥 비법!”
     
   “자, 이게 엔터라는 거고, 이건 스페이스인데….”
     
   해인 스님의 초 속성 단기 과외가 시작됐다.
     
   키보드를 치는 방법, VPN을 사용해 추적을 피하고 분신술 하는 방법.
     
   그리고 사람의 속을 효과적으로 긁는 방법 등등까지.
     
   그 결과.
     
     
   타다다다다다닥-!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는 소녀.
     
   그리고 그녀 너머의 모니터 위로 장문의 채팅이 떠 오른다.
     
     
   죄인 : 부모를 모욕한다는 건, 마음속의 분노와 결핍으로 인한 것이니 너는 필히 어려서 양가 부모를 잃었나 보다. 네가 말로써 남을 아프게 하는 거로 보아, 네 부모 역시 말로써 너를 아프게 했을 테고. 악의 대물림이 일찍이 끊겨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악마는 너 하나이니 창문을 열고 참회의 투신을 해 보는 건 어떨까?
     
   “……….”
     
   해인과 법진이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이걸… 웃으면서 썼다고?
     
   심지어 엔터를 누를 때까지 아주 작은 망설임조차 없었다.
     
   마치 30년 인생 부모 등골을 빨아 먹으면서 인터넷질만 한 폐인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타자 속도, 그리고 미리 생각했다는 듯 쏟아져 나오는 비난.
     
   어쩌면….
     
   오늘 해인은 잠들어 있던 악마를 깨워버린 걸지도 모른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털을 쥐어뜯는다.
     
   그러다가 뒤늦게 제가 삭발하고 중이 되었음을 깨닫고는 열반에 이른다.
     
     
   아!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상대의 악의에 소녀는 웃으며 진심으로 대답한 것일 뿐이니.
     
   이 행동 어디에 잘못이 있단 말인가!
     
   “허허허허.”
     
   두 눈 위로 현기가 깃든 해인과 법진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버릇 나쁜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자 채팅창을 확인한다.
     
   그러자-
     
   박이선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판재 : 흠 그 정돈가?
   우나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성영 : ㅋㅋㅋㅋㅋ 좀 친다? 딸피 템플릿 어디서 얻음??
     
   왠지 모르게 애들이 좋아하고 있다.
     
   심지어 당장 멱살 잡고 싸워대던 김성영이란 아이조차도 말이다.
     
     
   “…해인 스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욕이고, 깨달음이 아닙니까?”
   “그래. 욕을 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화의 의의를 둔 거지.”
     
   역시 애들의 심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녀의 마음속에 잠든 악마를 깨운 게 아니라서 다행…
     
     
   죄인 : 어색하게 따라 웃는 걸로 보아 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함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과 하나 없다는 건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는 긁혔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쫄은 거라면 꼬추 떼고 나가 뒈지시길
     
   “……어.”
     
   김성영 : 개#끼가? 야 너 어디 살아? 진짜 뒤지고 싶냐?
   죄인 : 긁?
   김성영 : 나 서울시 도봉구에 산다. 나와라.
   죄인 : 내가 왜? 네가 와.
   김성영 : 와 씨# 진짜 너 내가 진짜 찾아간다?
   죄인 : 씨게 긁혔네 부모님이 이런 거 안 가르쳐주었구나? 아, 일찍이 부모를 여의어 배움 받을 시간이 없었겠구나.
     
   “해인아, 나는 이만, 볼 일이 있어… 가 봐야겠구나.”
     
   상황을 지켜보던 법진 스님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나갔다.
     
   이 일을 자명 스님께 들키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아, 아! 법진 스님!!”
     
   죄인 : 그리고 너 서울시 도봉구 아니잖아.
   김성영 : 뭐야? 너 뭔데?
   죄인 : 너 서울시 강북구 수유2동이잖아.
     
   심지어 소녀의 반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해인 스님이 보기엔 소녀가 때려 맞춘 것으로밖에 안 보이지만.
     
     
   ‘…부모를 욕하고, 모욕 주는 건 악마나 할 짓이야.’
     
   소녀는 이미 응징을 위해 혈안이 된 상황이었다.
     
   그야 얻어맞고 욕먹는 건 익숙하지만, 그런 막 나가는 지하에서조차 소녀를 향한 부모 욕만큼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자칫 소녀가 폭주라도 했다간 진짜 온 세상이 뒤집어 질 수도 있었으니.
     
   부모에 대한 자책감을 가진, 패드립에 면역력이 없던 소녀가 결국 손톱 하나를 희생해 김성영의 주소를 캐내고야 만 것이다.
     
   물론, 겨우 주소 하나 캐는 데 손톱을 희생한 건 아니었다.
     
     
   죄인 : 아빠는 김송철. 엄마는 김모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김성영이 정말 조실부모한 아이라서 교육받지 못해서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팬티 색깔마저 털어버린 소녀였고.
     
   열심히도 올라오던 김성영의 채팅이 뚝 끊겨버렸다.
     
   화나서 기절한 건 아니겠지?
     
   아니면, 무서워서 신고라도 하러 간 건가?
     
   별걱정이 다 치밀었다.
     
   그러나 해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다급히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는 소녀의 손을 잡아 모으며 말했다.
     
   “우, 우리 이제 채팅은 그만 칠까? 이제 수업 들어야지.”
   “네에.”
     
   정작 그렇게 열심히 긁어대던 소녀는 아주 작은 감정의 변화조차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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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진 스님의 도움으로 천만다행히도 소녀는 노트북을 익히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이어질 실전이었다.

꿀꺽.

노트북 앞에 앉은 소녀를 바라보며 해인과 법진이 마른침을 삼킨다.

인터넷으로 아무 곳에서나 교육 받을 수 있다는 거?

좋다, 반길 일이다.

하지만, 빙구의 ‘이 아줌마는 무료로 해줍니다’ 같은 일반적인 수위를 아득히 벗어난 인터넷상의 정보들이 문제였다.

혹시나 소녀가 이상한 사이트를 들어가진 않을까 전전긍긍.

속세에서 초탈해야 할 스님들이 소녀의 행동에 손발을 구르고, 눈조차 제대로 깜빡이지 못한 채 빤한 시선을 유지한다.

딸깍-

마우스 눌리는 소리에 움찔.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강의 화면이 떠올랐다.

[청성 길드 – 학생반 온라인 강좌]

화면은 꽤 간단하다.

좌측에 떠오른 커다란 동영상 화면과 오른쪽에 떠오른 채팅창.

마치 인터넷 방송을 보는 듯 스님들에게조차 익숙한 인터페이스였다.

그런데….

“헉! 저, 저 입구에서 붙잡혀 버렸어요!”

[성함과 부여받은 코드를 입력해 주세요.]

청성 길드의 강의를 아무나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연하게도 길드장에게 부여받은 코드는 쉽게 입력했지만.

“그러고 보니 우리 꼬맹이 이름을 못 들었구나…?”

덩그러니 텅 비워진 이름 입력창만큼은 두 스님이 도와주지 못했다.

“아… 이름….”

그들이 바보라서, 소녀에게 무관심해서 이름을 묻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가, 우리가 아가를 뭐라고 불러야 할꼬?”

첫날 자명 스님이 그렇게 물었고.

-“죄인에게 이름은 없어요.”

소녀는 그리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이후로는 그 누구도 소녀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분명… 부모가 있는 아이라면 무슨 이름이라도 받았을 텐데.

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 소녀가 멍하니 텅 빈 입력창을 바라본다.

깜빡, 깜빡, 깜빡.

소녀를 재촉하듯 연신 점멸하는 입력창의 커서.

특별한 반응을 보인 것도, 정면에서 소녀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두 스님은 점차 묵직한 불편함에 짓눌렸다.

얼굴을 보지 않고도 감정을 알 수 있다던 게 거짓이 아닌 듯.

소녀의 가녀린 어깨를 통해 수없이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 탓이었다.

“…이름, 꼭 입력해야 하나요?”

결국 소녀의 물음에 두 스님은 태연한 거짓말을 내뱉는다.

“이건 상대가 널 어떻게 부를지 묻는 거란다.”

“아… 그럼,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거죠?”

“그래.”

그렇게 소녀가 스스로 입력한 이름은 죄인.

스스로 생각해 낸 명칭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고 음울한 단어였다.

소녀가 강의장에 입장한 이후, 강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띠링-! 알림음과 함께 채팅창 위로 글자가 떠오른다.

김성영 : 1빠!

그로부터 약 5초 뒤.

김성영 : ???

김성영 : 누구야? 누가 나보다 먼저 들어왔어?

김성영 : 죄인이 누구야? 신입이면 형한테 인사해야지

연이어 알림음이 울리며 우다다- 글자들이 쏟아져 올라왔다.

“어… 어어… 커, 컴퓨터가 말을 해요!”

당황한 소녀가 이도 저도 못 하던 때.

안타깝게도 두 스님이 소녀에게 ‘채팅’을 가르쳐줄 시간은 없었다.

띠링-!

박이선아 : ㅎㅇㅎㅇ

김성영 : ㅎㅇㅇ

띠링-!

우나라 : 안녕!

박이선아 : ㅎㅇㅎㅇㅎㅇ

김성영 : ㅎㅇㅇㅇㅇ

띠링-!!

박판재 : 할롱

우나라 : 안녀엉!!

박이선아 : ㅎㅇㅎㅇㅎㅇㅎㅇ

김성영 : ㅎㅇㅇㅇㅇㅇㅇ

오, 젠장.

뭐라도 도와주고자 모니터 앞에 붙어있던 두 스님이 이마를 탁- 치며 물러났다.

이건….

그들이 끼어들 판이 아니다.

박판재 : 게이시 어제 업뎃 뜬 거 봄? A급 보스 레이드 추가된대

박이선아 : 그거 그냥 게임이잖아?

김성영 : 뭐래? 길드장님도 게이트 시뮬레이션은 ‘진짜’라고 인정하셨거든?

박이선아 : 길드장님이 직접 올린 사냥 영상이 더 낳다고 하셨거든?

김성영 : 긁? 긁? 에베베베

박판재 : 선아한테 그러지 마;; 너 우리 오기 전에 누구랑 얘기하고 있던 거야?

김성영 : 아! 맞아 신입 들어왔더라!

박이선아 : 오올~ 박판재~~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차원이 다른 발랄함에,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대화 주제에.

“이, 이거 어, 어떻게 해요?!”

소녀가 도움을 요청하지만, 어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아이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출석 인원만 서른 명이 넘은 상황.

“얘들은 공부하러 온 거야, 아니면 채팅을 치러 들어온 거야?”

“그나마 온라인이라 다행입니다. 우리 꼬맹이가 저 사이에 끼면 적응 못 했겠어요.”

“역시 꼬맹이가 혼자서 적응하도록 놔두는 게…”

김성영 : ㅋㅋㅋㅋ그런데 어떻게 사람 이름이 죄인임?

박판재 : 이름으로 놀리지 마.

박이선아 : 근데 죄인은 진짜 이상하잖아? 어떤 부모가 이름을 그렇게 지어줘.

그러던 도중 일이 터져버렸다.

김성영 : ㄹㅇ엄마랑 아빠가 범죄자인가?

소녀의 닉네임 ‘죄인’을 두고 떠들기 시작한 아이들.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제각각 한 마디씩 올리기 시작하니, 자연히 소녀의 정체나 부모에 관한 이야기도 뒤섞여 나왔다.

“…….”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던 소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울컥-

두 스님의 얼굴에 야차가 깃들었다.

감히, 내 새끼를 울려?

길드장님이 가르치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좋은 친구가 될 거라 생각했더니!

해인 스님이 다급히 소녀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 올렸다.

“…스님?”

울먹이는 목소리에 뿌득 이를 갈면서도 소녀에게만큼은 나긋나긋 설명한다.

“꼬맹아. 지금부터 복수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아! 이교도들의 저주 방법 같은 건가요?”

소녀가 순식간에 두 눈을 부릅뜨고, 환해진 채 해인을 되돌아본다.

어….

사실 키보드 워리어질이랑 다중 분신술이 좀, 사특한 짓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스님인 그가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지 않은가?

박이선아 : 야! 아무리 그래도 부모 욕은 너무 심하지!

김성영 : 응 뭐래~ 너도 엄마만 둘이잖아?

박판재 : 너 길드장님한테 전화한다?

김성영 : 젼화핸댸~ 해봐ㅋㅋㅋㅋ 뷰웅딱아~

…채팅창을 보니 ‘그렇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야 저놈들은 인두겁을 타고 태어난 마라일 뿐이니.

“그래. 이건 우리들이 인터넷의 악마를 때려잡는 방법이지.”

“이교도들의 인터넷 악마 사냥 비법!”

“자, 이게 엔터라는 거고, 이건 스페이스인데….”

해인 스님의 초 속성 단기 과외가 시작됐다.

키보드를 치는 방법, VPN을 사용해 추적을 피하고 분신술 하는 방법.

그리고 사람의 속을 효과적으로 긁는 방법 등등까지.

그 결과.

타다다다다다닥-!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는 소녀.

그리고 그녀 너머의 모니터 위로 장문의 채팅이 떠 오른다.

죄인 : 부모를 모욕한다는 건, 마음속의 분노와 결핍으로 인한 것이니 너는 필히 어려서 양가 부모를 잃었나 보다. 네가 말로써 남을 아프게 하는 거로 보아, 네 부모 역시 말로써 너를 아프게 했을 테고. 악의 대물림이 일찍이 끊겨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악마는 너 하나이니 창문을 열고 참회의 투신을 해 보는 건 어떨까?

“……….”

해인과 법진이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이걸… 웃으면서 썼다고?

심지어 엔터를 누를 때까지 아주 작은 망설임조차 없었다.

마치 30년 인생 부모 등골을 빨아 먹으면서 인터넷질만 한 폐인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타자 속도, 그리고 미리 생각했다는 듯 쏟아져 나오는 비난.

어쩌면….

오늘 해인은 잠들어 있던 악마를 깨워버린 걸지도 모른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털을 쥐어뜯는다.

그러다가 뒤늦게 제가 삭발하고 중이 되었음을 깨닫고는 열반에 이른다.

아!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상대의 악의에 소녀는 웃으며 진심으로 대답한 것일 뿐이니.

이 행동 어디에 잘못이 있단 말인가!

“허허허허.”

두 눈 위로 현기가 깃든 해인과 법진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버릇 나쁜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자 채팅창을 확인한다.

그러자-

박이선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판재 : 흠 그 정돈가?

우나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성영 : ㅋㅋㅋㅋㅋ 좀 친다? 딸피 템플릿 어디서 얻음??

왠지 모르게 애들이 좋아하고 있다.

심지어 당장 멱살 잡고 싸워대던 김성영이란 아이조차도 말이다.

“…해인 스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욕이고, 깨달음이 아닙니까?”

“그래. 욕을 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화의 의의를 둔 거지.”

역시 애들의 심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녀의 마음속에 잠든 악마를 깨운 게 아니라서 다행…

죄인 : 어색하게 따라 웃는 걸로 보아 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함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과 하나 없다는 건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는 긁혔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쫄은 거라면 꼬추 떼고 나가 뒈지시길

“……어.”

김성영 : 개#끼가? 야 너 어디 살아? 진짜 뒤지고 싶냐?

죄인 : 긁?

김성영 : 나 서울시 도봉구에 산다. 나와라.

죄인 : 내가 왜? 네가 와.

김성영 : 와 씨# 진짜 너 내가 진짜 찾아간다?

죄인 : 씨게 긁혔네 부모님이 이런 거 안 가르쳐주었구나? 아, 일찍이 부모를 여의어 배움 받을 시간이 없었겠구나.

“해인아, 나는 이만, 볼 일이 있어… 가 봐야겠구나.”

상황을 지켜보던 법진 스님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나갔다.

이 일을 자명 스님께 들키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아, 아! 법진 스님!!”

죄인 : 그리고 너 서울시 도봉구 아니잖아.

김성영 : 뭐야? 너 뭔데?

죄인 : 너 서울시 강북구 수유2동이잖아.

심지어 소녀의 반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해인 스님이 보기엔 소녀가 때려 맞춘 것으로밖에 안 보이지만.

‘…부모를 욕하고, 모욕 주는 건 악마나 할 짓이야.’

소녀는 이미 응징을 위해 혈안이 된 상황이었다.

그야 얻어맞고 욕먹는 건 익숙하지만, 그런 막 나가는 지하에서조차 소녀를 향한 부모 욕만큼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자칫 소녀가 폭주라도 했다간 진짜 온 세상이 뒤집어 질 수도 있었으니.

부모에 대한 자책감을 가진, 패드립에 면역력이 없던 소녀가 결국 손톱 하나를 희생해 김성영의 주소를 캐내고야 만 것이다.

물론, 겨우 주소 하나 캐는 데 손톱을 희생한 건 아니었다.

죄인 : 아빠는 김송철. 엄마는 김모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김성영이 정말 조실부모한 아이라서 교육받지 못해서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팬티 색깔마저 털어버린 소녀였고.

열심히도 올라오던 김성영의 채팅이 뚝 끊겨버렸다.

화나서 기절한 건 아니겠지?

아니면, 무서워서 신고라도 하러 간 건가?

별걱정이 다 치밀었다.

그러나 해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다급히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는 소녀의 손을 잡아 모으며 말했다.

“우, 우리 이제 채팅은 그만 칠까? 이제 수업 들어야지.”

“네에.”

정작 그렇게 열심히 긁어대던 소녀는 아주 작은 감정의 변화조차 없어 보였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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