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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그리하여 저는 해당 수치 이상의 연산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면 컴퓨터가 스스로 지능을 갖게 되는 강인공지능이 구현됨을 확인했고, 이를 쿠로이-법칙이라고 부르기로……]

   [닥터 쿠로이! 해당 연산력을 구현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크기의 시설이 필요할 텐데요? 최근에 그런 시설이 건조된 적은 없으니, 아마도 당신이 사용한 건 이블스 사의 그 물건이겠죠?]

   [크흠,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최근 그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범죄 피해를 호소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세간에서는 당신이 그 범인이 아닐까란 의혹이……]

   [저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루트로 구매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제 이론의 실증 문제로, 이 자리에 해당 강인공지능이 사용된 안드로이드를 데려왔으니 얼마든지 질문을─]

     

   “우와아아…….”

     

   강인공지능을 개발했다고 밝힌 닥터 쿠로이의 발표회. 인터넷에서 떠들썩한 그 영상을 시청한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가 내가 만든 네모버스터의 회로를 이용해 강인공지능을 만들었단 사실이 어처구니없던 것이다. 물론 이 어처구니없음은 자신의 물건을 빼앗긴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 뒤섞인 기막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나는 저 사람이 고작 장난감 회로를 이용해 강인공지능을 만들었단 사실이 기가 막혔다.

     

   ‘이게 무슨…… 그런 장난감으로 왜 강인공지능을 만들어?’

     

   장난감 로봇에 들어간 회로는 말 그대로 장난감 수준이다. 어린아이들이 갖고 노는 수준의 회로. 그런데 저 사람은 그것만 갖고서 강인공지능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건 굳이 따지자면 주판을 가득 쌓아서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마인크래프트에서 레드 블럭으로 컴퓨터를 재현한 쪽이 더 세련된 기술이었다.

     

   ‘저런 게 가능하려면 구역질 나올 정도의 노가다나 천재적인 발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텐데…… 그렇게 구현하더라도 별 의미 없는 일이라 실용성은 하나도 없고.’

     

   애시당초 회로를 단순히 쌓아 올려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니 발전 가능성이 없다. 회로의 성능 한계 이상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게 불가능하다. 지구였더라면 돈 넘쳐나는 실험 유튜버가 재미 삼아서 한 번쯤 해보고 조회수 대비 마진이 나오질 않아 후회할 그런 영상감.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 보기에 저건 돈 낭비 시간 낭비 노력 낭비의 3종 세트란 뜻이었다.

     

   “진짜 과학 수업 마렵네…….”

     

   당장이라도 이 뒤떨어진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쑤셔 넣어 계몽시켜주고 싶다는 저열한 우월감이 피어오른다. 그러나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내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과학 지식을 가르치는 일? 충분히 가능하다. 내 지식을 전부 푸는 게 문제라면 세기에 한 번쯤 나오는 천재 과학자 연기를 하며 적당히 지식을 풀면 그만이다.

     

   그러나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 지식들이 내가 힘겹게 만들어낸 지식도 아니고, 무엇보다 평생 지식을 숨기고 살게 아니라면 할 짓도 못 된다.

     

   ‘어차피 내가 조금씩 과학을 끌어 올려봐야, 지구랑 비슷한 수준이 되기란 지난한 일……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평생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 충동을 한 번이라도 참지 못한 순간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 것이고.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가르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천재 과학자가 되면 뭐 하나?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주목받고, 빌런에게 노려지는 탓에 연구소 같은 데 반쯤 감금되어서 매일 연구나 하고, 그러고도 돈놀이하는 사업꾼들보다 훨씬 못한 돈을 벌면서 만족해야 할 텐데.

     

   지금보다 하등 나을 거 없는 삶이다.

     

   “아, 그래도 신분은 하나 만들어달라고 할까.”

     

   레비탄의 경우를 떠올린 나는 사회에서 쓸만한 직업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디 가서 누굴 만났을 때 ‘반갑습니다. 악의 과학자입니다.’라고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 생각한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보스에게 연락을 보냈다. 내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게 아닐까 호다닥 전화를 받은 듯, 연락은 순식간에 연결되었다.

     

   ─……과학자? 무슨 일이지?

   “아, 보스.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괜찮으신지.”

   ─괜찮네. 회장실로…….

     

     

     

   이블스 기업 최상층. 기업 총수의 집무실에 도착한 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 앞을 가로막은 비서진이요 경호원들은 미리 이야기를 받았다는 듯 내 얼굴을 보자마자 흔쾌히 길을 비켜주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허락을 받은 뒤 안쪽으로 들어서자, 레갈리아가 웬 신문을 읽고 있는 게 보였다. 이쪽에서 보이는 1면에는 요 근래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사가 끄적여 있었다.

     

   [이블스 사社 「당사의 제품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 그러나 장난감에 불과하다─」 발언해 큰 화제가─]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 이블스 사社 특허 낼 생각 없어……]

     

   “─왔는가.”

     

   이쪽을 발견한 레갈리아는 신문을 덮고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슬쩍 얼굴을 보아하니 피로에 찌든 것이 이 문제로 상당히 시달린 듯 보였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고작해야 만 원짜리 장난감에 그만한 회로를 넣은 것이다. 단순히 고객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임직원들또한 난리가 났을 것이 분명하다.

     

   대체 어떻게 그런 걸 만들었느냐는 추궁과 이제 다음 제품에는 그 정도 수준의 제품이 기본이 되지 않을까란 고객들의 기대까지. 

     

   안 그래도 골치 아픈 마당에 그 장난감 회로를 이용해 강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단 사실이 밝혀졌으니 이제는 온갖 나라와 도시, 기업들에게까지 시달릴 것이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아아, 누구 덕분에. 그래도 정말 못 버틸 정도는 아닐세. 이게 있으니까.”

     

   레갈리아는 그리 말하며 노란색 액체가 가득 든 컵을 흔들었다. 한눈에 봐서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퍽 어려웠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게 이블스 사의 에너지 드링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피곤하면 이제 10대에 불과한 그녀가 저런 걸 달고 사는지…… 나는 퍽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 마시면 키 안 커요.”

   “푸흡-! 쿨럭, 쿨럭-! 그, 그 말 진짜인가!? 아니, 왜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야……!”

   “예? 상식이잖아요. 그거 먹으면 밤에 잠 안 올 텐데. 어린애가 밤에 잠 설치면 키 안 크죠.”

   “아아…… 그런 얘기였나. 여는 또-.”

     

   어째서인지 격렬히 화를 내다가 또 갑자기 안심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그녀를 보며, 나는 지금이 이곳까지 달려온 용건을 꺼내기에 적당한 타이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일거리 하나만 하고 싶은데요.”

   “소일거리?”

   “예. 뭐, 바깥에서 남들한테 소개할 만한 신분이 필요해서.”

   “원한다면 연구소장 자리도 만들어줄 수 있다만?”

   “그 정도로 거창한 건 조금.”

   “하긴, 그것도 그런가.”

     

   지구에서 이세계로 떨어진 이방인에게 위조 신분증 하나 만들어주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은 그녀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위조 신분증에 위조 학력까지 만들어서 연구소장으로 취임시키는 건 퍽 부담 가는 일이었다.

     

   괜히 나와 레갈리아의 관계를 파헤쳐보겠다고 내 뒷조사를 하다가 위조 학력에 위조 신분이라는 게 걸릴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레갈리아가 대뜸 자기 연구소에 낙하산으로 꽂아 넣은 과학자라면 어디서든 주목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적적인 확률로, 정말이지 비논리적인 억측으로 내가 장난감 회로의 개발자라는 사실을 들킬 수도 있다. 인간의 집요함은 때때로는 이론을 초월하기 마련이니까.

     

   “좋네. 그럼 뭘 하고 싶은 게지?”

   “자그마한 가게 하나 내서 거기서 바깥 공기나 쐬고 싶네요. 한산한 가게로.”

   “흐으음- 한산한 가게라…….”

   “적당히 만물수리점 같은 건 어떨까요.”

   “……거기서 또 사고를 치는 건 아니겠지?”

   “에이- 고작 물건 좀 고친다고 사고가 나겠어요?”

     

   레갈리아는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한참 노려보다 한숨을 푸욱 내쉰 그녀는 곧장 준비하겠다며 손을 휘적거려 나를 내쫓았다.

     

   회장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간쯤 내려가자 보안을 위해 가려져 있던 벽이 통유리로 변한다. 내 눈앞에 E 시의 풍경이 화아악- 펼쳐졌다.

     

   아름다운 도시다. 공해 따위로 오염되지 않았기에 더더욱.

   이제 나는 진정으로 이 도시의 주민이 될 것이다.

   악의 과학자가 아니라, 작은 수리점 하나를 운영하는 주민이.

     

     

   * * *

     

     

   부스스…….

   박살난 콘크리트 조각 따위가 먼지와 함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눈을 뜬 히어로 니베르나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 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크하하하하-!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주마! 다음엔 더 단련해서 돌아오도록!

   “아…….”

     

   그제서야 니베르나는 자신이 갈름의 주먹에 얻어맞아 멀리까지 날아갔음을,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끝끝내 기절까지 했음을 떠올렸다.

     

   건물에 박혀 있던 니베르나는 애써 건물 벽을 탈출해 지상으로 내려왔다. 부들거리는 다리로 몇 걸음 걷던 그녀는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더불어 그녀에게 힘을 주던 히어로 슈트의 동력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가, 졌나?’

     

   동력이 망가졌다면 혼자서 슈트를 벗을 수조차 없었다. 본부로 돌아가 특수한 장비와 그곳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문제는 그곳까지 갈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 심지어 슈트가 망가지며 통신 장치 따위도 같이 맛이 간 건지 본부와 연락이 되질 않았다.

     

   물론 그녀가 되돌아가지 않으면 본부에서 금방 사람을 보내 그녀를 구조하러 오겠지만, 과연 자신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가 의문이었다.

     

   “하아, 하아-.”

     

   맞은 곳이 좋지 않았는지 숨쉬기가 어렵다. 이 답답한 슈트를 빨리 벗어 던지고 싶거늘 혼자서는 벗을 수도 없다. 이렇게 상태가 악화되다 재수가 없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리라. 그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니베르나는 벽을 짚고 애써 걸으며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향했다. 누가 봐도 히어로인 그녀가 쓰러져 있다면 경찰이나 소방서에 신고해주겠지란 생각에서였다.

     

   그리 걷던 니베르나는 어떤 가게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가게 문이 열려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진다. 사람이다.

     

   ‘빨리, 도움을…….’

     

   저벅저벅-.

   가게 안으로 슈트 입은 그녀가 들어서자, 안쪽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

   “히어로, 니베르나입니다. 지금 통신 장치가 모두 고장나서 그런데- 제가 여기 있다고 대신 신고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히어로?”

     

   남성은 그녀가 히어로란 말에 잠시 멈칫하다가, 알겠다는 듯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에 전화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신고를 끝마친 남성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답답해보이시는데, 슈트는 벗으시는 게 어떤가요?”

   “죄송, 합니다만. 슈트가 고장 나서…….”

   “아, 그러시군요.”

   “그리고 하나 더, 죄송합니다만. 잠시 누워서 쉬어도 되겠습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남성은 가게 안쪽, 방 안에 있는 침대에 눕기를 권했다. 더러워진 슈트를 입은 채로 남의 침대에 올라가는 건 평소라면 거절했을 일이었지만 고통에 찌든 그녀는 그런 걸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운 순간, 그녀는 전신이 침대 매트리스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촉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눈을 떴을 땐, 퍽 익숙한 천장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히어로 협회 본부였다.

     

   “깨어났나?”

   “……소장님?”

   “깨어났으면 됐군. 보고서 작성하고 돌아가서 쉴 수 있도록.”

   “아, 예. 감사합니다.”

     

   소장을 본 니베르나는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제 슈트가 벗겨져 있는 걸 확인했다. 협회 직원들이 그 사이 벗겼나보지. 그렇다면 제 슈트가 망가진 것도 알고 있으리라.

     

   그녀는 슈트를 박살냈다는 죄책감에 소장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슈트를 망가뜨려서…….”

   “엥? 그게 무슨 소리냐?”

   “예? 슈트가 망가졌다고 했습니다만.”

   “아니, 네 슈트 멀쩡하던데?”

   “……그게 무슨?”

     

   니베르나가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소장을 바라보자, 소장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군. 보고서는 내일 써도 되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서 쉬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니베르나는 말을 아꼈다.

   그깟 일말의 호기심보다 칼퇴근이 더 중요했다.

   칼퇴근은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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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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