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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단약이란 여러 재료들을 조합해, 보다 기를 내공으로써 받아들이기 쉽게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영약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무턱대고 먹으면 몸에 좋은 보약에 불과하다. 단약을 먹은 이상, 집중해 그 기를 내공으로 변환하여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스으…. 후우….”

   

    그리고 강제로 단약을 입에 쑤셔넣어진 춘봉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기껏 얻은 단약을 똥으로 배출하지 않기 위해 그녀가 운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 될 이유가 없어.’

   

    서준은 즉시 춘봉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등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붙이고 집중하니 그녀 내부에서 흐르는 내공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기는 사람의 심상에 영향을 받는다. 할 수 있다 확신하면 정말로 할 수 있어.’

   

    물론 안 될 수도 있긴 한데, 그러면 아쉬운 거고. 어차피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해봐야 단약 하나 버리는 게 끝이다.

   

    춘봉의 체내 내공 흐름에 집중하던 서준은 이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청운신공은 황운신공에서 파생된 무공이니만큼 그 흐름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약간의 차이를 빠르게 습득하고, 흑목단의 기가 춘봉이의 내공에 편입되는 과정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중립에 가까운 기가 음기로 바뀐다.’

   

    청운신공의 음기다. 하지만 이내 그렇게 흡수한 음기가 기맥을 틀어막고 있는 음한지기에 의해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결국 기를 체외로 배출하는 수밖에 없겠지.’

   

    지금이다. 저 변환 과정에 개입해 흑목단의 기를 열양지기로 치환한다.

   

    “춘봉아, 오빠 믿지?”

   

    응. 멋대로 상상한 대답과 함께 서준의 몸에서 금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음기와 양기는 무엇이 다른가. 음은 정靜하고 양은 동靜動하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열에너지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물체를 구성하는 입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면 그 에너지가 증가하고, 역의 경우 감소한다.

   

    그것은 곧 입자의 진동이다. 기라는 것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는 모르지만, 대충 그렇게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라? 그러면 태극은 열평형 상태인가?’

   

    잠깐 다른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뒤로 미뤄뒀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무공을 과학의 틀에 딱 떨어지게 맞추는 건 불가능하기에 얕은 지식으로 그저 확신만을 가졌다.

   

    ‘뜨겁고 활발하게.’

   

    차갑게 얼어붙어가는 흑목단의 기를 붙잡고 뺨을 후리자 잠잠해지던 기가 날뛰기 시작했다.

   

    “으음….”

   

    기가 날뛰자 춘봉이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온다. 이대로라면 춘봉이의 몸에 무리가 간다.

   

    기가 날뛰는 정도를 통제하며 청운신공의 경로를 따라 춘봉이의 소주천을 도왔다.

   

    얼어붙은 기맥의 아주 미세한 틈으로 기가 지나다니는 것이 느껴진다. 

   

    ‘오케이.’

   

    감 잡았다.

   

    서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감을 잡았으니 모든 이론을 폐기한다. 이제부터는 그저 느낌이 가는 대로 행할 뿐.

   

    ‘이름을 뭐라 할까.’

   

    이미지를 확립시키는 데 이름을 지어주는 것 만한 게 없다.

   

    ‘아, 그래.’

   

    음양반전陰陽反轉

   

    이 이름이 좋겠다.

   

   

    *

   

   

    금희는 내부의 기가 제멋대로 이끌리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기인데도 다른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통제된다. 그 이질감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이야.’

   

    경악하면서도 심법의 운용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흑목단의 기가 음한지기에 의해 얼어붙어가는 게 느껴졌다.

   

    ‘결국 이렇게 됐나.’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물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게 당연한 일이다.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자신을 위해주는 그의 마음에 가슴이 아려왔다.

   

    ‘멍청한 놈. 그냥 자기가 먹었으면 훨씬 더 보탬이 됐을 텐데. 그랬으면 천하백대고수에도 한 걸음 가까워졌을 것을….’

   

    천하백대고수가 된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괜히 자신이 뿌듯함을 느낀다. 이상하기도 하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란 게 조금 아쉬울 뿐이다.

   

    가문의 독문무공을 펼치며 무림을 활보하는 서준. 온 무림이 그의 이름 석 자에 호들갑을 떨 생각을 하면 가슴 떨리는 설렘이 기분 좋게 온몸에 퍼진다.

   

    ‘뭐, 내 제자나 마찬가지인데. 그럴 만도 하지.’

   

    포기하고 기를 내보내려던 찰나였다.

   

    두근-!

   

    심장이 크게 뛰며 몸 안이 따스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경악한 그녀가 기의 흐름을 자세히 살폈다.

   

    청운신공의 내공으로 변환했던 흑목단의 기가 이렇다 할 전조도 없이 양기로 바뀌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애초에 이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일 텐데?’

   

    하지만 그녀가 경악하건 말건, 양기는 투명한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빠르게 번져갔다.

   

    이내 그 양기가 바늘구멍만 한 기맥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그 틈을 넓히기 시작한다. 양기의 따스함이 음한지기를 녹이는 것이다.

   

    ‘몸이….’

   

    녹는다. 항상 겨울 속에 살던 몸에 따스한 봄날의 햇볕이 내리쬐는 것만 같다.

   

    체내를 흐르는 따스함에 홀린 듯 기를 이끄니 점차 내공의 흐름이 부드러워져간다. 

   

    숨이 막힌 듯 답답하던 속이 트이고, 시리던 손끝이 말랑하게 풀어진다.

   

    잊고 있었던 따스함. 몽롱하게 흐름에 몸을 맡긴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

   

   

    “후우….”

   

    크게 숨을 내쉰 서준이 눈을 떴다. 전신이 땀에 젖은 그의 표정은 영 개운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걸 바랐나.”

   

    이번 기회에 아예 절맥을 낫게 하고 싶었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였다.

   

    혀를 찬 서준이 어느새 잠든 춘봉의 몸을 안아들었다. 

   

    “새끼. 웃기는.”

   

    배시시 웃는 게 이제야 제 또래 아이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그녀를 바닥에 똑바로 눕힌 뒤 손끝 발끝을 만져보니 확실히 온기가 돌아왔다. 

   

    전에는 수족냉증마냥 차갑고 딱딱했는데, 이제는 따뜻말랑해서 완전 애기 피부다. 열일곱이나 먹은 주제에.

   

    낄낄 웃던 서준이 미친놈마냥 인상을 찌푸리며 춘봉의 옆자리에 냅다 드러누웠다.

   

    음양반전. 거창한 이름만큼이나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웃고 있긴 한데 머리가 당장이라도 반으로 쪼개질 것 같았다.

   

    “…나중에 효도해라 금춘봉.”

   

    서준의 의식이 끊겼다.

   

   

    *

   

   

    짹짹-, 새가 우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서준은 멍하니 일어나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으음….”

   

    어제 너무 무리했나?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음양반전은 확실히 주제 넘은 짓이긴 했다.

   

    ‘뭐, 그래도 두통 정도로 끝나면 별거 아니긴 하지.’

   

    털어넘기고 손을 뻗어 근처에 있던 물통을 쥐었다. 어느 정도 돈이 생기자마자 바꾼 것이 바로 이것. 수질이다.

   

    꿀꺽-

   

    “크으….”

   

    여전히 좆같긴 해도 이전에 마시던 구정물보다는 삼천이백만 배 낫다.

   

    “어유 이 좆같은 세상.”

   

    우물물을 돈 받고 팔다니. 확 머리를 깨버릴까 보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다리에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새끼.”

   

    춘봉이가 그의 다리를 꼭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데…,

   

    “야, 야! 야 씨발! 빨리 일어나봐!”

    “무, 뭐, 뭐야!”

   

    벌떡 일어난 춘봉이가 주변을 휙휙 둘러본다. 서준은 그녀의 머리를 가리켰다.

   

    “너 흰머리! 얘가 왜 새치가 이렇게 났어!”

    “새치…?”

   

    멍청하니 눈을 뜬 춘봉이가 꿈실거리며 제 머리칼을 손으로 모아 눈앞에 내렸다.

   

    흑발과 백발이 반쯤 섞인 머리칼. 그걸 멍하니 보던 춘봉이 헛웃음을 지었다.

   

    “음한지기 때문에 이러나 보네.”

    “뭐 잘못된 거야?”

    “아니, 별거 아니야. 그냥 머리색만 이렇게 된 거니까.”

   

    춘봉이가 제 팔을 붕붕 휘둘렀다.

   

    “몸은 완전 멀쩡해. 힘이 막 넘치는데?”

   

    그러면서 헤헤 웃는데 확실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안심한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키도 좀 큰 거 같다?”

    “응?”

   

    빼꼼 고개를 든 춘봉이의 머리가 가슴 어림쯤 온다. 일 년 사이 서준의 키가 훌쩍 자랐음을 생각하면 하룻밤 사이에 한두 뼘은 자란 셈이었다.

   

    “어, 어어?”

   

    이번에는 화들짝 놀란 춘봉이가 서둘러 제 가슴을 더듬었다.

   

    텁, 텁-

   

    공허한 소리가 맴돈다. 키는 자랐지만 가슴은 여전히 완벽한 절벽. 그녀가 고개를 툭 떨궜다.

   

    “…씨발.”

    “괜찮아. 의외로 그런 가슴도 수요가…, 악! 왜 때려!”

    “닥쳐 그냥!”

   

    건강한 것 같으니 다행이다.

   

   

    *

   

   

    있지도 않았던 가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해낸 춘봉이는 새삼 눈이 뚫어져라 시선을 마주쳐오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워.”

    “뭐?”

    “고, 고맙다고….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는데….”

   

    꾸물대던 춘봉이가 자그마한 손으로 소매를 꼭 붙잡아왔다.

   

    “흑호문에 쳐들어간 것도 그렇고…, 단약을 양보해준 것도 그렇고…, 또,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음기를 양기로 바꿔준 것도 그렇고….”

   

    힐끔, 눈을 치켜뜬 춘봉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 오, 오…, 오빠 덕분이야!”

    “…….”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춘봉이가 어버버대며 빽 소리쳤다.

   

    “뭐,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하지!?”

   

    굳어있던 서준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안착한 손에 콱 힘이 들어가고, 이내 그녀의 몸이 번쩍 들렸다.

   

    “요! 요 귀여운 새끼! 이노무 자식이 드디어 나를 오빠라 불러주는구나!”

    “이, 이거 안 놔!? 오빠에 뭐 한이라도 맺혔냐!?”

    “아이구 귀여운 자식!”

   

    끌어안고 볼을 마구 부비니 춘봉이가 기겁을 하며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노, 놓으라고 개새끼야!”

    “악!”

   

    발에 급소를 얻어맞은 서준이 제자리에 엎어졌다. 깨졌나…? 더듬어보자 다행히 무사하다.

   

    “끄으윽….”

    “괘, 괜찮냐…?”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춘봉이가 꼬리뼈를 툭툭 두드렸다.

   

    “나쁜년….”

    “야, 그…. 미안하다 진짜.”

   

    사과하니까 봐준다. 떨어지기 직전인 눈물을 닦아낸 서준이 애써 웃었다.

   

    “…아무튼 나중에 영약 하나 더 구해서 완치시키자. 한동안은 괜찮을 거 같지?”

    “으, 응…. 그보다 진짜 괜찮아? 깨진 거 아니지?”

    “멀쩡해. 만져볼래?”

    “미친 새끼 아니야!”

   

    바락 화를 낸 춘봉이가 이번에는 참았다. 진짜 미안하긴 했나 보다.

   

    “됐다 그럼.”

   

    어쨌든 이제 흑호문도 반쯤 정리했겠다. 뒷골목 통일이나 해볼까?

   

    ‘그 여자 행방도 알아보고.’

   

    무림에 떨어진 첫날 만났던 여인.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조금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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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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