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

   EP.13

     

   “시간이 없으니 빨리 설명 드리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임무에 대해 굳이 떠들지 않았다.

   작전 설명할 시간도 부족한데 내 인생이 얼마나 씁쓸한지 떠벌리다가 제한 시간이 지나버리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이 또 어디 있겠는가.

     

   “여러분들은 지금 바로 광화문역 5번 출구를 통과해서 최대한 경복궁과 가까운 지점의 출구로 나갈 겁니다. 혹시 몇 번 출구가 가장 가까운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나의 물음에 우물쭈물하던 남자 하나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2번 출구가 가장 가까울 겁니다. 자주 와봐서 알거든요.”

   “그럼 2번 출구와 가장 가까운 출구는요?”

   “특별히 가깝다고 할 만한 곳은 없습니다. 굳이 하나 꼽자면 광장으로 바로 통하는 출구가 있기는 한데…”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머릿속으로 짧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지상에서 난리를 피워 2번 출구의 좀비들을 후방으로 유인한다.

   여유가 된다면 광장으로 통한다는 출구의 좀비들까지 모집.

     

   그러고 나서 피리부는 사나이마냥 깡그리 긁어모은 좀비들을 이끌고 나 혼자만 5번 출구로 진입하면 완료였다.

     

   ‘그리고 지하도를 따라 2번 출구까지 달린다.’

     

   그 이후, 다른 생존자들을 따라 곧장 탑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플랜이었다.

     

   “그럼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그들의 동선을 읊어주었다.

   2번 출구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는 약 400m 남짓.

     

   나는 마지막으로 그들 중 가장 능력이 뛰어난 박조철에게 사람들의 안전을 부탁했다.

   내가 성공적으로 좀비들을 유인한다 해도 생존자가 4명 이상 죽어 버리면 내 목숨도 거기에서 끝이었으니까.

     

   “그럼 출발하시죠.”

     

   나의 말에 사람들이 광화문역 5번 출구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박조철이 사람들의 안내를 맡았고 남궁천호와 서세영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장을 확인한 한가민이 나를 보며 짧게 건투를 빌었을 때, 나는 고개를 돌려 광장을 바라봤다.

     

   몰이의 시작은 생존자들이 5번 출구로 들어간 직후가 될 것.

   나는 곧장 좀비들이 몰려 있는 광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처음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광화문의 입구’였다.

     

   2번 출구 앞에 자리 잡은 좀비들을 유인하더라도 생존자들 중, 누군가가 애먼 좀비에게 물리면 고생한 보람이 없어지기 때문.

     

   그렇게 나는 전속력으로 2번 출구를 지나쳤다.

   감염이 되기 전에 좀비들의 맛집이었던 것인지 온몸이 성한 곳이 없는 좀비 하나가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다.

     

   – 크아아!!!

     

   그리고 뒤이어 한 마리가.

   그리고 또 다른 한 마리가.

   그리고 또또 다른 한 마리가.

     

   내가 지나치는 길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의 좀비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발견한 놈들이 마치 떨어진 빵조각을 발견한 물속의 붕어 떼마냥 나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우왁!”

     

   정면에서 달려드는 좀비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며 나는 뒤를 돌아봤다.

     

   징그럽다.

   물론 튜토리얼#1에서 봤던 그 괴물도 미관상 썩 보기에 좋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형상이 조금 남아 있어서 그런지 좀비들이 더 징그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빠른 납득(D+)이 발동됩니다.]

     

   급격하게 맑아지는 정신.

   소중한 나의 스킬이 열일을 하고 있는 덕분에 긴장으로 실수를 할 일은 없었다.

     

   ‘이건 과하게 많아.’

     

   아니, 그냥 많은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많아지고 있었다.

     

   다른 좌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좀비가 두려워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던 그들이 시간에 쫓기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나타나 좀비의 머릿수를 늘리고 있었다.

     

   “뭐 이런 개같은 난이도가…!”

     

   마력을 제외한 평균 신체 능력치가 Lv.12 정도로 상승한 나였다.

   그런데도 이런 난이도라니… 만약 지하도가 없었다면 이번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나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뜩 든다.

     

   흐읍!

     

   나는 달리는 와중에 폐 깊숙한 곳까지 공기를 들이마셨다.

   드디어 나의 눈앞에 들어오는 광화문의 입구.

     

   아직 약간의 거리가 있었지만 더 이상 다가가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았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괴성을 질렀다.

     

   “아아아아!!!!!”

     

   – 크하?

   – 캬악?

     

   광화문 입구에 얼쩡거리던 좀비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나를 바라보는 텅 빈 동공. 가히 서스펜스 호러영화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광경에 나의 등줄기로 짜릿한 소름이 느껴졌다.

     

   – 키야아아아악!!!

   “끼야아아악!”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급격한 좌회전을 했다.

   빠른 납득이 있었기에 무섭지는 않았다.

   무섭지는 않았…

     

   두두두두!!

   두두두두!!

     

   “사람 살려!”

     

   아니, 무섭다. 개같이 무섭다.

   나를 따라오는 수백, 수천 마리의 좀비 떼.

     

   공포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배짱이 존경스러워진다.

   동시에 성공 보상이 짜다면 이번에는 진심으로 하늘에 쌍욕을 박겠다는 다짐까지 생겼다.

     

   쿠구구구…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들이 만드는 불규칙적인 굉음이 들려왔다.

   순간 땅이 흔들린다는 착각마저 들었지만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렇게 광장에 있는 대부분의 좀비를 대동하게 된 나.

   나는 목표지점인 광화문역 5번 출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

     

   평소 출퇴근길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지하도는 지상과는 반대로 더없이 고요하고 어두웠다.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박조철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발을 맞춰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역 중심에 깊어질수록 상태가 성한 조명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지하도 입구의 비상등은 깜빡거리며 기능을 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다 보니 이제는 길 찾기가 썩 여의찮았다.

     

   처음에는 거의 뛰다시피 움직였건만 이제는 바닥에 켜진 등을 따라 걷는 것도 쉽지 않은 느낌.

   어두워지는 와중에 바닥도 많이 뒤집어진 상태라 걸음을 옮기는 게 더욱 불편한 상황이었다.

     

   저벅. 저벅.

     

   “어? 저기 비상손전등.”

     

   가장 후방에서 손전등을 발견한 듯한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다가 벽에 설치되어 있던 비상손전등으로 손을 가져가는 남자.

     

   “그거 건드리지 마세요. 지하철 비상손전등은 뽑으면 경보음이 울립니다.”

     

   하지만 곧장 이어진 박조철의 말에 중년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손전등에서 손을 뗐다.

     

   “소리를 듣고 출구 쪽에 좀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저희 다 끝장입니다.”

     

   김시인이 말한 정보가 확실하다면 지하도로는 좀비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을 통과하는 것이 아닌 탑의 영역 안으로 무사히 들어서는 것.

     

   지금 당장 앞이 안 보여서 한 걸음도 때지 못할 위험한 상황이 올 것 같지는 않았으니, 굳이 경보음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박조철 씨 말이 맞습니다. 일단 계속 움직이죠. 주변도 천천히 밝아지는 것 같으니.”

     

   박조철의 말에 경직되어 버린 남자를 보며 남궁천호가 나름의 격려의 말을 던지며 그를 이끌었다.

   조금 전부터 어둠에 적응이 된 것인지 사람들의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음? 아저씨, 옆에 저거 안내판 아니에요?”

     

   전방을 주시하던 한가민의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깜빡이는 조명과 함께 천장에 보이는 작은 안내판 하나.

     

   —

   나가는 곳 [2]

   —

     

   그렇게나 찾고 있던 2번 출구로 나가는 안내판이 마침내 나타났다.

   하지만 좋은 일이 생기면 그에 상응하는 나쁜 일이 생기기도 하는 법, 그 순간 생존자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안내판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츠츠츳.

     

   꽤 멀리 있는 안내판이 한가민의 시야에 잡혔던 이유.

   안내판의 옆으로 익숙하게 봤었던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끄으으…!

     

   흐드러지게 기지개를 켜며 등장하는 이족보행의 짐승.

   하지만 이번에 푸른 포탈이 열리며 나타난 것은 그들이 익히 봐오던 토끼가 아닌 고양이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 …으으잉?

     

   러시안 블루를 닮아 온몸이 회색털로 덮인 고양이다.

   그런 놈이 기지개를 켜던 자세 그대로 굳은 채, 생존자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하게 뜬 눈.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3초의 정적.

     

   잠시 후, 정면에 나타난 고양이는 털을 바짝 세우며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박조철을 향해 거친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 당신들 여기 왜 있어?! 아, 아니. 어떻게 있는 거야? 이 좌표는 튜토리얼이 끝났을 텐……데?

     

   말을 하며 천천히 말끝을 흐리는 고양이.

   푸른 불꽃이 피어나며 모습을 환하게 비춘 덕에 놈이 지금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가 눈에 훤하게 보였다.

     

   하지만 놈이 당황할수록 생존자들 또한 굉장히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도우미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불특정 다수에게 속삭인 한가민의 말에 사람들이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들은 것인지 고양이가 한가민을 바라봤다.

     

   – …당신들 혹시 지금 튜토리얼#2 진행하고 있어요?

     

   고양이의 말에 박조철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놈을 빠르게 지나치기 위해서는 바로바로 답변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 으악! 망했다! 닫아놨어야 했는데 내가 이런 큰 실수를…!

     

   박조철의 반응에 고양이가 혼비백산하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좌표가 왜 열려 있었냐는 둥,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는 둥. 떠들기 시작하는 고양이.

     

   하지만 가만히 듣고만 있기에는 이어진 놈의 말이 생각보다 위협적이었다.

     

   – 거기! 지금 당장 여기에서 나가요! 여기 문 닫아야 하니까! 아아… 성좌님들 그게 아니라…!

     

   놈이 우리에게 윽박을 지르다 말고 하늘을 향해 혼잣말을 시작했다.

     

   문을 닫아?

   갑자기 그게 무슨…

     

   고양이의 말에 박조철의 머릿속에 다양한 의문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런 의문이 사라지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띠링.

     

   —

   『탈출 – 脫出』

   주제 : 탈출

   난이도 : D-

     

   설명 : 해당 광화문역 좌표는 이미 튜토리얼이 끝난 지역입니다. 이곳에 머무르지 마십시오. 해당 좌표는 1분 후에 파괴됩니다.

     

   임무 : 이곳에서 탈출하자.

   제한 시간 : 1분

     

   보상 : 없음

   실패 페널티 : 사망

   —

     

   생존자들의 얼굴에 피어오른 당혹감.

   하지만 더 이상 망설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 죄송하지만 플레이어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나가주세요! 아… 시말서 쓰게 생겼네 이거.

     

   [남은 시간 : 00:00:59]

     

   박조철의 앞에 떠오른 새로운 타이머 하나.

     

   쿠구구구…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이전, 박조철은 곧장 벽으로 달려가 가만히 붙어 있던 손전등을 힘으로 잡아 뜯었다.

     

   삐익-! 삐익-!

     

   그때 지하도를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당장 그 소리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다들 뛰어요!”

     

   출구를 향해 정면으로 비춰진 손전등.

   남은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달려야 할 길만을 바라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출구가 나타났을 때, 모두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들을 위해 미끼가 되어 준 남자.

     

   김시인의 퇴로가 차단됐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