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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레이놀즈 아카데미 본관 근처에 위치한 연무장.

       

       축구장들을 몇 개나 이어붙인 정도의 규모.

       

       이 엄청난 크기의 연무장은 레이놀즈 아카데미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최신식 설비와 마나를 흡수해 충격을 완화하는 외벽.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는 장비들과 포션들.

       

       혹여나 부상자가 발생했을 시에는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구축되어 있는 의무 시설까지.

       

       훈련에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는 환경이었다.

       

       

       그런 연무장에서 2학년 라파엘 반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참고로 라파엘 반이라는 학급명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성자들의 이름에서 따온건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도 된다.

       

       이 세계의 종교 얘기는 하도 복잡해서, 알아봤자 머리만 아프다.

       

       

       아무튼, 라파엘 반의 학생들은 각을 잡은 채로 오와 열을 맞춰 서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나도 있었고.

       

       우리의 시선은 대열 밖에 서있는 마른 체형의 남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오늘도 반가워요, 여러분.”

       

       

       스물 후반 정도로 보이는 녹발의 남성.

       

       ‘전투의 실전’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이자, 라파엘 반의 담임 선생님.

       

       루카스 랜드란토.

       

       옷소매로 드러나 있는 크고 작은 흉터와 잔근육들은, 그의 인생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살벌한 표식들과는 반대로 푸근한 분위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인성적이었지만.

       

       

       “지난 시간에 공지한 적이 있었죠? 오늘 수업은 학생들 간의 대련으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행될 수업을 설명했다.

       

       

       “각자 원하는 상대와 짝을 지으세요. 그 후에 한 팀씩 앞으로 나와서 대련을 펼치면, 제가 각자에 대한 평가와 보완점을 얘기해드릴게요.”

       

       

       루카스는 5분을 줄테니 그 시간 동안 파트너를 정해오라는 말을 하고는, 미묘한 웃음과 함께 우리를 지켜봤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쭈뼛대며 움직이지 않다가.

       

       이내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자신의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서.

       

       나는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어차피 나랑 짝하려는 사람도 없을텐데, 가만히 있다가 남는 한 명이랑 할 생각이다.

       

       나는 구석에 홀로 쪼그려 앉으며, 서로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을 빤히 바라봤다.

       

       고작 대련 상대를 정하는 일일 뿐인데, 저 나이대 아이들은 그것마저도 즐겁나보다.

       

       입가에 미소가 만개해 있네.

       

       

       “……”

       

       

       ……뭔가 부럽네.

       

       너희는 18살을, 18살답게 사는구나.

       

       나의 열여덟에는 지옥 같은 기억만이 가득한데.

       

       열여덟 뿐만이 아니라 열일곱도, 열아홉도.

       

       그 앞뒤의 경계를 넘어서까지도 전부.

       

       

       -휴식? 그딴 게 왜 필요하지?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라, 아직 한참남았다.

       

       

       귓가에 울리는 악몽의 목소리.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제한 시간이었던 5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내곁에는 한 명의 사람조차 서있지 않았다.

       

       

       ‘뭐… 당연한 거겠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냥 시간이나 빨리 지나가지.

       

       이렇게 혼자 서있는거 되게 뻘쭘한데.

       

       느껴지는 어색함에 괜히 연무장 바닥의 무늬나 바라보고 있던 때.

       

       별안간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시트 공자.”

       

       “……?”

       

       

       예상치 못한 부름에 고개를 들어보니, 의외의 인물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길게 늘어져있는 화려한 금발의 머리카락.

       

       푸른 하늘의 잔잔함을 녹여낸 듯한 청색 눈동자.

       

       마하렛과 비견될 정도의 미인이지만, 그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소녀.

       

       

       나는 그 소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신기하게도 내가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라이덴 뿐만이 아니라, 김나루 또한 알고 있는 사람.

       

       

       “1황녀…?”

       

       

       제국의 1황녀 루시 폰 리에트로였다.

       

       라이덴의 오랜 절친이자, 이제는 악연이 되어버린 인연.

       

       원작에 잠시 등장하는 조연이자.

       

       앨런의 히로인, 제 2황녀의 누이되는 소녀였다.

       

       

       “……”

       

       

       소설과 라이덴의 기억 너머로만 보았던 그녀가 내 앞에 선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 반, 씁쓸한 마음 반으로 소녀를 응시하고 있으니.

       

       이내 손의 장갑을 벗어든 루시가 나에게 그것을 던지며 말했다.

       

       

       “리시트 공자, 결투를 신청합니다.”

       

       “……예?”

       

       

       나는 어깨에 떨어진 하얀색 천쪼가리를 보며 벙찐 소리를 내뱉었다.

       

       결투.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좀 봤다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겠지만.

       

       이 시대에서 결투라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는 꽤나 크다.

       

       

       쉽게 말해서 강제력이 조금 강한 내기 같은건데.

       

       각각의 참가자들은 원하는 바를 걸고 게임을 진행한다.

       

       진행 방식은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비무라고 보면 된다.

       

       결투의 패자는 승자가 원하는 바를 한 가지 이행해야 하며, 그것에 저항할 수 없다.

       

       다만 승자는 부당하거나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요구는 할 수 없다.

       

       오로지 선의 실현과 악의 배제를 기반으로 하는 요구만이 가능하다.

       

       

       분명히 루시도 다 알고 있겠지.

       

       이건 라이덴이 직접 루시에게 가르쳐줬던 내용이니까 말이야.

       

       그런데도 나에게 결투를 신청했다는 것은……

       

       

       “저에게 지면… 레이놀즈 아카데미를 자퇴하도록 해요.”

       

       

       그녀가 보기에, 내가 이 아카데미의 ‘악’이라는 거겠지.

       

       어지럽네, 진짜.

       

       

       루시의 폭탄 발언에 아이들의 시선이 은근슬쩍 모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뒤에서 수근되는 꼴들 좀 봐라.

       

       심지어는 루카스 교수조차 이쪽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근두근하다 못해 정신이 아찔해져 버리는 아카데미 이벤트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

       

       

       이걸 어떻게 해야되지…?

       

       황녀랑 결투를 하라고? 잘못 패면 황족 시해죄로 사형장에 끌려갈지도 모르는데?

       

       참고로 신청에 거절하게 될 경우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된다.

       

       사회적인 입지가 대폭 깎여나간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거절하겠습니다.”

       

       “에…?”

       

       

       거절해야지 뭐.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 당한 상황인데, 그 위에 흙 좀 더 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게 있으랴.

       

       거기다가 무려 황녀와의 결투라고.

       

       귀족 사회에서도 이 신청을 아무런 부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미친 새끼는 없을걸?

       

       대련도 아니고, 누가 황녀랑 결투를 해.

       

       아마 여기서 거절해도 다들 ‘그건 그럴만 했지.’ 하면서 넘어가줄거다.

       

       ……아님 말고.

       

       

       “이, 이런 겁쟁이가…! 결투를 피하려고 하다니!!”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부끄럽게도 어렸을 적부터 마음이 유약했던 탓에, 큰 일에는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

       

       “전하께서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능청스러운 나의 답변에 루시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열 받으라고 일부러 살짝 얄밉게 말한 것도 있었는데.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보다, 얘는 정말 내가 결투에 응할 거라고 생각했던건가?

       

       그냥 과거의 개새끼가 눈에 들어오니 꼽이나 한 번 주려고 이러는가보다 했는데.

       

       반응을 보니 진심이었던거 같기도…?

       

       아빠를 닮아서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잘 굴리는데, 가끔씩 보면 맹한 부분이 있다.

       

       아, 참고로 이건 내가 아닌 라이덴의 평가다.

       

       

       “그럼, 저는 다른 상대를 찾으러 가보겠습니다. ”

       

       

       제국의 애지중지 1황녀에게 꺼지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냥 내가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루카스 교수의 말이 내 소매를 붙잡았다.

       

       

       “라이덴 학생. 유감스럽지만, 결투는 아니더라도 대련은 황녀님과 진행해야할 것 같네요.”

       

       “예…?”

       

       “주위를 둘러봐요.”

       

       

       나는 그 영문 모를 말에, 눈쌀을 찌푸리며 주변을 훑었다.

       

       파트너를 찾는 시간이 끝나, 이미 모든 학생이 자신의 짝을 찾은 상태였다.

       

       현재 남은 인원은 나와 루시 뿐이었다.

       

       

       “이런…”

       

       

       시발.

       

       나는 뒷말을 삼키며 이마를 짚었다.

       

       

       .

        .

        .

       

       

       나와 루시는 나란히 앉은 채로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의 순번은 다섯 번째.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네 번째 대련의 바로 다음  차례였다.

       

       루시는 대련을 구경하는 와중에도 가끔씩 내 쪽을 흘긋거렸다.

       

       손가락까지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을 보니, 내가 결투를 받지 않은 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나보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인상깊은 광경만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이번 대련은 법사들끼리의 대결이었는데, 생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마법들의 작렬을 보니 흥미가 돋았다.

       

       물론 라이덴과 동기화 되면서 마법에 관한 지식들을 대부분 습득하긴 했지만.

       

       전해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지.

       

       화염과 물보라, 섬광, 그림자들이 몰아치는 현장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감상이 떠올랐다.

       

       멋지다…

       

       

       ‘나도 내일부터는 마법이나 좀 연습해볼까.’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던 사이.

       

       -띵!

       

       대련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승패가 정해진 것이었다.

       

       

       “다음 순번의 학생들, 준비해요.”

       

       

       이윽고 들려오는 루카스의 목소리.

       

       나와 루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련장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가 다가오자 루카스는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기는 원하는 것으로 집도록 해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다양한 무구들과 장비들이 준비되어있는 거치대가 놓여져 있었다.

       

       

       “저는 창으로 할게요.”

       

       

       루시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창 한 자루를 집었다.

       

       그러고는 시험 삼아 그것을 몇 번 휘둘러보더니,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 검으로 하겠습니다.”

       

       

       나 또한 뜸 들이지 않고 거치대 구석에 놓인 검 한 자루를 잡아들았다.

       

       그것은 일태도 형태의 검이었다.

       

       훈련용이라서 그런지 날이 서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선택한 무기를 본 루카스가 살짝 눈을 빛냈다.

       

       

       “호오, 동방의 검인가요? 특이한 검을 골랐군요.”

       

       

       나는 이게 익숙한데.

       

       오히려 당신들이 쓰는 양날검이 나한테는 낯설다고…

       

       내가 고른 검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립감을 확인하고 있던 때.

       

       조용히 옆으로 다가온 루카스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나요, 라이덴 학생?”

       

       “예?”

       

       “황녀님과의 대련 말이에요. 꺼리는 것 같았는데.”

       

       “아, 예… 뭐…”

       

       “정 부답스럽다면 얘기해요. 인원 교체 정도야 해줄 수 있으니까요.”

       

       

       루카스는 가볍게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제안에 혹할 뻔 했으나 털어냈다.

       

       결투도 아니고 대련인 이상,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그리고 저 양반한테는 도움을 받기가 좀 그렇고 말이야.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주며 대련장 위로 올라섰다.

       

       커다란 원형 장내의 중심에는 이미 준비를 끝낸 루시가 서있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앞에 섰다.

       

       루카스는 들고 있는 종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종소리가 울리면 시작입니다. 두 사람 모두 준비.”

       

       

       그 말에 나는 심호흡과 함께 눈을 부릅떴다.

       

       루시 또한 나름의 준비 자세를 잡으며 창끝을 나에게로 겨눴다.

       

       

       “……”

       

       “……”

       

       

       대치 상태가 이어지며 잠시 이어지는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띵!

       

       맑게 울리는 종소리였다.

       

       

       .

        .

        .

       

       

       사람들은 말한다.

       

       현대의 검도는 실전성이 떨어진다고.

       

       검도는 속검과 정확한 타격에 치중되어있는 일종의 스포츠.

       

       실전에서 다른 무기들과 웨폰 레슬링을 펼치는 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검도보다 중세의 검술이 압도적으로 뛰어난가?

       

       그것 또한 아니다.

       

       깔끔한 동작들로만 이루어진 검도에 비해 불필요한 잔기술들이 많고.

       

       틀에 갇혀있기에 부드러움이나 자연스러움이 결여되어 있다.

       

       한 마디로 그냥 거기서 거기다.

       

       한쪽은 싸움에 적합하지만 구식이고.

       

       한쪽은 신식이지만 싸움에 적합하지 못하다.

       

       물론 당연하게도.

       

       평범하게 훈련을 받은 선수들과 중세의 기사들이 검을 나눈다면 후자의 승률이 더 높겠지.

       

       현대의 검도는 실전에 낯선 편이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훈련을 받은 선수들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쐐애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며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오는 창날.

       

       그것이 내 얼굴을 강타하기 직전.

       

       나는 살짝 고개를 틀어 그것을 흘려냈다.

       

       그리고는 가볍게 검을 움직여 곧바로 이어지는 연계를 튕겨냈다.

       

       

       -팅!!!

       

       창과 검의 파열음 치고는 너무나도 얇은 소음.

       

       그것은 나의 검이 루시의 창끝을 정확하게 타격했기에 날 수 있는 소리였다.

       

       웅웅거리는 진동과 함께 손끝으로 전해지는 무게감, 나는 그에 입꼬리를 살짝 비틀었다.

       

       

       ‘오랜만인걸.’

       

       

       내가 김나루였던 시절.

       

       매일을 훈련 속에서 보내던 나는 열 일곱 즈음에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미 기술은 더 이상 등반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점에 도달해 있었고.

       

       육체의 힘이나 유연성 또한 일반인들과는 비견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폼이 올라있었다.

       

       한 마디로, 성장의 한계치에 닿아있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훈련을 이어가도 더 이상 실력이 더 향상되지를 않자, 지켜보던 아버지는 나에게 새로운 훈련 방식을 주입하셨다.

       

       

       -오늘부터는 이 사람들과 대련해라.

       

       -한 명 씩이 아니라, 전부. 동시에.

       

       

       그것은 바로 대련.

       

       일반적인 검도와의 대련 뿐만이 아니라.

       

       창, 양날검, 한손검, 세검 등 다양한 종류의 냉병기들과의 대련.

       

       아버지는 온갖 무기에 관련된 달인들을 끌어모아 내 앞에 세웠다.

       

       나의 기술이 최고점에 도달하자, 이제는 내 몸에 싸움에서의 본능과 반사신경 그 자체를 새겨넣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두 세명 씩이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한 번에 대 여섯명을 상대하게 하기도 했다.

       

       

       “……”

       

       

       …..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는 제대로 나사가 빠진 광인이었다.

       

       이건 훈련이라기보다는 고문에 가까운 형태의 압박이었으니까.

       

       처음에는 규칙을 벗어던진 날것의 싸움에 적응하지 못해서 대련 시간 내내 쳐맞기만 했다.

       

       그렇게 구타의 시간이 이어지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되었을 때 쯤.

       

       

       나는 싸움으로서의 검도에 완전히 적응했다.

       

       일주일에 다섯 번 꼴로 진행되는 1대 6 대련도 어느 정도 합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세계 대회에 나갔던 22살 쯤에는 9할 이상의 승률을 차지하기까지 했다.

       

       

       나한테 쳐맞고 뻗어버린 달인들 중 한 명은 나를 보고 ‘괴물이 되어버렸다’ 라며 두려워하기도 했다.

       

       웃기지도 않지.

       

       나를 괴물로 만든 건, 누구도 아닌 당신들이었으면서.

       

       그렇게 나는 일반적인 검도 선수가 아닌.

       

       한 마리의 괴물로서 또 다시 정점에 오르기 시작했다.

       

       

       -텅!!!

       

       날카롭게 파고 들어오는 공격을 다시 한 번 쳐냈다.

       

       이를 악물고 창을 휘두르던 푸른색 눈동자에는 기어코 경악이 서리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주변에서도 슬슬 술렁이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막았어…!!

       

       -저거 진짜 리시트 공자가 맞아…? 분명 체술에는 재능이 없는걸로 아는데…

       

       -어떻게 라파엘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황녀님의 공격을 저렇게 쉽게……

       

       

       나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창날을 칼등으로 흘려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다섯 손가락이라고…?

       

       확실히 힘도 있고 기술도 어느정도 날카로운 것 같지만, 딱 그 정도인데.

       

       시선 처리도 엉망이고, 스탭도 간결하지 못해.

       

       각각의 식 자체는 봐줄만 하지만, 그 식들을 자연스럽게 이어붙이지 못해서 툭툭 끊어지는 느낌도 들고.

       

       

       “……”

       

       

       하긴, 반에서 5등이니까 그런 건가.

       

       세계대회만 보다가 고교 수준으로 돌아와버렸으니 그런 걸지도 몰랐다.

       

       

       ‘……내가 세계 대회 예선전에서 만났던 상대가 이것보다 훨씬 나앗던거 같은데.’

       

       

       한 마디로.

       

       좆밥이라는 말이었다.

       

       

       -카드드득…! 캉!!!

       

       창자루와 맞대고 있던 검을 가볍게 긁어내리며 손을 공격했다.

       

       상대는 예상했다는 듯이 한 쪽 손을 떼어냈지만.

       

       미안한데, 나는 거기까지도 예상했거든.

       

       

       “흡…!!”

       

       

       창을 잡고 있는 손이 둘에서 하나로 줄어드는 순간.

       

       나는 오른발을 휘둘러 창대를 강하게 걷어찼다.

       

       그 반동으로 인해 창을 쥐고 있던 루시의 손이 옆으로 튕겨져나가며 복부 전체가 공격 범위로 노출됐다.

       

       

       “읏…!!’

       

       

       루시는 낭패라는 표정으로 방어식을 취하려 했지만.

       

       나는 기회를 놓쳐줄 생각이 없었다.

       

       몸에 붙어있는 가속과 회전력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한 바퀴를 돌았고.

       

       이어 깔끔한 뒷차기를 그녀의 복부에 찔러넣었다.

       

       

       “커헉…!!”

       

       

       밭은 신음과 함께 뒷쪽으로 나가떨어지는 루시.

       

       어…

       

       조금 세게 찬 것 같기도 한데…?

       

       근력도, 체격도, 속도도 전생과는 너무 다른 몸이라 그런지 조절이 쉽지가 않았다.

       

       체근민 스탯이 심각할 정도로 낮으니까, 그냥 온 힘을 다해서 차버리면 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기술이 들어가다보니 꽤나 파괴력이 생겨버린 모양이었다.

       

       

       “어, 어어… 황녀님? 괘, 괜찮으십니까…?”

       

       “……!!”

       

       

        당황 반과 걱정 반이 섞인 물음.

       

       정말 미안한 마음에서 던져본 물음이었으나, 루시는 그걸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윽, 으… 조롱, 이라니… 변함없이 경박스러운 모습이군요.”

       

       

       아니, 아니.

       

       그거 아닌데.

       

       진짜 미안한건데…?

       

       

       루시의 깊은 눈동자는 푸른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해명을 늘어놓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창을 쥐어들며 소리쳤다.

       

       

       “오늘 어떻게서든지…! 당신을 무릎 꿇리고 말겠어요…!!”

       

       

       진짜.

       

       미치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2.16
    리메이크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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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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