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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늑인족의 사랑은 그 어떠한 종족보다 더 짙고 무겁다.

     

    연인간 사랑도, 가족간 사랑도, 친구간 우정도 쉽게 잊지 않는 종족이었다.

     

    뒤집어 이야기한다면, 그 사랑을 깨는 자는 평생토록 용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본능 때문에, 네르는 평생을 고통받으며 자라왔다.

     

     

    늦둥이었던 네르는 태어날때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저주가 하나 내려졌다.

     

    바로, 출생과 함께 어머니었던 실린 블랙우드의 생명을 앗아간 것.

     

     

    네르가 태어난 날, 블랙우드 가문에는 축하나, 웃음소리는 없었다고 했다.

     

    오로지 눈물과 애도만이 울려퍼졌다고.

     

     

     

    네르는 자신이 미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8살이 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위로 있는 5명의 언니, 오빠들의 까칠한 반응과 건조한 대응이 자연스러운건 줄로만 알았다.

     

    때론 꼬리털의 색깔이 조금 달라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녀의 형제들은 윤기나는 회색빛 꼬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네르의 꼬리는 색이 다 빠진 흰색이었으니까.

     

     

    하지만 조금씩 자라가며 네르는 형제들이 자신만을 다르게 대한다는걸 느꼈다.

     

    네르의 형제들은 그들끼리 있을 때는 웃음꽃을 피웠다.

     

    그녀만 나타나면 모두가 싸늘하게 변하는 것이었다.

     

     

    패륜아, 패륜아.

     

    네르는 한 때 패륜아가 제 이름인줄로만 알았다.

     

    나이차이 많이 나는 언니, 오빠들이 그렇게 불렀으니까.

     

     

    하지만 유일하게 그녀를 따스히 대해주는 할머니의 부단한 노력에, 네르는 자신이 이름이 패륜아가 아니라는걸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아함은 이어졌다. 왜 자신은 다른 형제들처럼 다함께 녹아들 수 없는지. 왜 자신만 나타나면 웃음소리가 죽고, 다 뿔뿔이 흩어지는지.

     

     

    언젠가부터 이 의아함이 너무도 커져, 네르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언니, 오빠들이 네르만 피하는 것 같아.”

     

    “…”

     

    “…꼬리 때문에 그런건가…흙을 뒤집어 쓰고 다가가면 네르를 좋아해줄까? 꼬리 색이 달라서 조금 속상해…”

     

    네르의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꼬리는 아름답단다, 네르.”

     

    “그러면 왜 다들 나를 피해…?”

     

    “다들 아직 우리 귀여운 네르를 몰라서 그래.”

     

    “…왜 네르만 몰라주는 건데? 왜 네르만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야?”

     

    할머니는 한참을 고민하다 어렵게 답했다.

     

    “…네 어머니 이야기는 해줬지?”

     

    “응.”

     

    “네 형제들이 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그런거야. 시간이 지나면 우리 네르의 귀여움을 깨달을테니, 조금만 기다려보렴.”

     

    “얼마나 더?”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를수록 네르는 형제들과 녹아들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종족에 각인된 본능일지도 몰랐다.

     

    온기를 배운적 없는 그녀였지만, 온기를 갈구했다.

     

    무리를 지어다니는 늑인족은 어쩔수가 없었다.

     

    모두가 피우는 웃음꽃에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니 네르는 할머니의 말만 믿고 노력했다.

     

    애교도 피워보고, 심부름도 해보고, 선물도 건네봤다.

     

    아버지의 미약한 중재도 등에 업었다.

     

     

    하지만 그녀의 형제들은 네르를 언제나 귀찮아했으며, 껄끄러워했다.

     

    큰 언니에게는 꺼지라는 소리까지 들어야했다.

     

     

    네르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할머니의 말대로 형제들 사이에 끼어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노력하다가, 눈물이 흘러나왔다.

     

    “…?”

     

    이유 모를 눈물이 당황스러웠다. 이러한 눈물은, 사이좋게 지내는 형제들을 볼때면 자주 흘렀다.

     

    자신이 없을때마다 밝게 웃는 형제들을 보면 더더욱 심해졌다.

     

    네르는 그럴때마다 씩씩하게 눈물을 닦아낸 뒤, 언니 오빠들에게 다가갈 방안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이 깨지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걸 형제들에게 해주면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기에 주방에 들어가, 하루종일 하녀들과 노력해 벌꿀파이를 만들었다.

     

    이번이야말로 언니오빠들이 기뻐할거라 생각해, 그녀는 햇살을 만끽하며 모여있던 형제들에게 파이를 들고 다가섰다.

     

    “이…이거 네르가 만들었어. 같이 먹자…”

     

    용기를 끌어모아 건넨 마음.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이번에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팍!

     

    “꺼지라니까!”

     

    고함과 함께 그녀의 파이는 손에서 내쳐져 하늘 높이 날았다.

     

    노력해서 만든 파이가, 누구의 입에도 들어가지 않고 바닥에 떨어지며 뭉개지자, 네르는 결국 그 자리에서 평생을 참아왔던 눈물을 펑펑 터트렸다.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하는 서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흐아아아앙…! 흐아아아앙…!”

     

    그럼에도 누구하나 그녀를 거둬주지 않았다. 모두들 우는 네르만을 남겨둔채 자리를 떠났다.

     

    네르는 그렇게 제자리에서 몇 시간이나 오도카니 선 채 서럽게 눈물을 흘려야 했다.

     

    형제들의 사랑을 포기한 날이기도 했다.

     

     

    밤이 되어서야 그 소식을 들은 할머니가 찾아와주었다.

     

    이불을 꽁꽁 싸맨채 침대와 한몸이 된 그녀를, 할머니는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할머니…흐윽…흐극…”

     

    “…애들을 따끔하게 혼내고 오는 길이란다, 네르.”

     

    “흐읍…언니, 오빠들…흐윽…너무해…”

     

    “….”

     

    “네르 이제 노력안할거야…흐윽…”

     

    “…”

     

    네르는 이불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제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할머니는 그런 그녀를 꼭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네르는 그런 할머니의 온기를 느끼면서도, 가슴에 자리한 답답함을 할머니에게 풀어냈다.

     

     

    “할머니 네르한테 왜 거짓말 했어? 흐윽…”

     

    작은 주먹으로 약하게 할머니를 때리기도 했다.

     

    -…팍…팍…

     

    “다들…다들 네르 미워하잖아…노력해도 안되잖아…”

     

    “…”

     

    “미워…흐윽…그런 말만 안했으면…네르도 파이 따위는 안만들었을텐데…”

     

    네르는 할머니가 긴 한숨을 내쉬는 걸 느꼈다.

     

    “…딱한 것…내가 미안하구나…”

     

    꾸욱 그녀를 안아주는 할머니의 힘에, 작은 위로를 받는 그녀였다.

     

    네르도 많은걸 바란게 아니었다.

     

    이렇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랜 시간 네르를 껴안아주던 할머니는 결심한 듯 조용히 물었다.

     

    “…네르. 이 할미가 유명한 점쟁이라는 건 알고 있지?”

     

    “…응.”

     

    “우리 손녀의 점이나 한번 볼까?”

     

    “…봐서 뭐하게.”

     

    네르의 퉁명스러운 답에, 할머니는 그녀가 기뻐할 답을 돌려주었다.

     

    “미래에 우리 네르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 줄 수 있지.”

     

    “어?”

     

    네르는 곧장 귀를 쫑긋 세우며,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꼬리의 끝부분이 제멋대로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할머니는 인자하게 웃으시며, 네르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자…보자…”

     

    네르의 할머니는 눈을 꾹 감았고, 이내 그녀 주위로 주황 반딧불이 같은 불빛들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와아…”

     

    네르는 그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눈이 팔린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천천히 떠진 할머니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후훗.”

     

    가볍게 웃는 할머니.

     

    “…할머니 왜?”

     

    “우리 네르는 정말 어여쁘게 자라겠구나.”

     

    “…그런 말 말고. 네…네르 편은?”

     

    “역시나 있단다. 당연히 있고 말고. 우리 귀여운 네르를 남자들이 가만둘리 없지.”

     

    네르는 할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희망의 말에 깊이 집중했다.

     

    “너와 정말로 잘 맞는 아이가 하나 있구나. 용맹하고, 따스하고, 상냥해.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받을 남자야. 그럼에도 이 남자는 네게 깊이 빠지겠어. 너도 자연스럽게 이 아이에게 빠질거고.”

     

    “저…정말?”

     

    “그렇고 말고. 그 누가 오더라도 네 편이 되어주겠구나. 누구보다 든든하게 널 지켜줄거고.”

     

    “언니…오빠들한테서도?”

     

    “더 무서운 사람들에게서도 지켜줄거란다. 세상이 다 돌아서도, 그는 네 편이 되어줄거야. 온 세상에 둘만 남겨져도 행복하게 살 정도인걸? 이건 할머니도 놀랐단다.”

     

    “….와…”

     

    네르는 그게 참으로 멋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남자려나…? 후후…이런 멋진 남자는 드물단다?”

    “많은 사람을 구해…? 용사님 같은거야?”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뭐야 할머니…”

     

    “애매한 것들도 있단다, 네르. 그리고 귀족…그래, 귀족이구나. 어찌됐든, 우리 가문으로서는 문제가 없겠어.”

     

    “…귀족…”

     

    네르는 처음으로 생길 제 편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언니 오빠들에게 받은 상처는 어느새 잊혀 사라지고 있었다.

     

    “언제…언제 만날 수 있는데?”

     

    “그것까지도 알 수 없구나. 그리고…아.”

     

    조금은 어두워지는 할머니의 표정.

     

    “…?”

     

    할머니 주위를 둘러싸던 불빛들이 사라진다.

     

    다시금 어두워진 방안에서, 할머니는 네르를 곧게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물어온다.

     

    “…이 아이가 나타나면, 잘해줄 수 있지?”

     

    “다, 당연하지. 파이도 맨날 만들어줄거야.”

     

    “정말 잘해줄 수 있겠지? 너처럼, 상처가 좀 있는 아이 같아 보이는구나.”

     

    “응…! 네르가 아픈거 다 없애줄게! 상처도 다 핥아줄거야…! 엄청 소중히 대할거야!”

     

    “그래. 그러면 걱정 없겠다. 네르, 웬만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응?”

     

    “그 아이를 놓치면 안된단다.”

     

    네르는 할머니의 경고가 그 어떠한 기억보다도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조금은 겁을 집어삼켰기에 그런걸지도 몰랐다.

     

    “이 남자를 놓치면…네가 너무도 많이 슬퍼할테니. 네가 이 남자아이보다 사랑할 존재는 없을지도 몰라. 늑인족은 단 한명의 짝을 사랑한다는 걸 너도 알고 있지?”

     

    “응. 그 이야기가 너무 좋아.”

     

    “그래….”

     

    “…할머니?”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짓던 할머니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다시금 네르를 위로하며 등을 토닥였다.

     

    “자, 점은 끝. 네르. 아범이 네게 차가워도, 어렵겠지만 이해해줘야 한단다. 네 어머니를 정말로 많이 사랑하셨거든.”

     

    “…응. 그래도 아빠는 나 괴롭히지 않아.”

     

    “언젠가는 너를 따스하게 대해줄 날이 올테니, 조금만 더 참자.”

     

    “…응.”

     

     

    이후로부터 네르는 마음을 강하게 먹을 수 있었다.

     

    언젠가 나타날 자신의 짝을 생각하면 그게 가능했다.

     

    형제들의 무시도 더는 예전만큼 아프지 않았다.

     

    그녀의 짝이 나타난다면, 형제들의 사랑 따위는 필요 없어질게 분명했다.

     

    외로움이 견디는게 수월해졌다.

     

    할머니의 예언은 그녀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어디엔가 그는 존재했다.

     

    언젠가는 만날 것이었다.

     

    첨탑에 갇혀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님처럼, 그 희망의 날을 그리며 네르는 버틸 수 있었다.

     

     

    네르는 그 날 이후부터, 힘든 일이 있을때마다 달을 통하여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짝궁도, 저 달을 보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녀가 찾아오지 않는 짝궁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네르 조금 힘들어. 빨리 나타나줬으면 좋겠어.”

     

    꼬리를 꼭 부여안은채,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나타나면 네르가 정말 잘해줄게. 그러니까 빨리 와서 네르 편이 되어줘.”

     

     

    나이가 들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몇 년이 지나더라도, 그녀는 그 운명의 상대를 기다렸다.

     

    달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마치 신에게 기도를 올리듯, 대답없는 달을 보며 하루의 감정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더 힘들었어.”

     

    고민을 토로하고, 아픔을 밝혔다.

     

    “얼마나 더 있어야 네가 나타날까? 한 달? 일년?”

     

    만나보지도 못한 그를 그리워했다.

     

    하나의 친구를 만든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존재는 그녀의 갑옷이 되어주었다.

     

    행복한 미래가 있다는걸 아는만큼, 점차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언니, 오빠들이 괴롭힘이 노골적으로 변해도.

     

    꼬리색을 손가락질 받아도.

     

    다른 외향적 특징들 때문에 영지내에서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돌아도.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 속 씁쓸함을 감지해도.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영지가 마물들에게 짓밟혀도.

     

     

    네르는 전부 꾹 참고 버텼다. 언젠가 올 행복을 기다리며.

     

    언젠가 나타날 자신의 짝을 기다리며.

     

    .

    .

    .

     

    “….네?”

     

    하지만 그 모든건 어느날 내려진 아버지의 명령에, 수포로 돌아갔다.

     

    “다, 다시 한번만…”

     

    네르가 21살이 되는 해였다.

     

    “혼인을 해야한다고 했다, 네르. 영지를 위해서야.”

     

    네르는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거대한 충격에 그녀의 기반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상대는 인족, 용병이고.”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그와 사랑에 빠진다고 했다. 상대는 귀족이라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제안한 갑작스러운 혼인은, 그 무엇도 부합시켜주지 못했다.

     

     

    그녀가 오랜시간 품었던 꿈과 희망을, 모두 깨트리는 혼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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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넵 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힘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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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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