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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전투마도 평가에서는 수험자가 다치지 않도록 사전에 쳐 두는 장치가 있다.

         

       [상급 고유마도 ─ 배리어(Barrier) X 3]

         

       시험장 내부에 들어오면 몸에 무형무색의 방패 세 개가 수험자 주변을 공전하며 몸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이 방패는 최상급을 제외한 마법을 최대 세 번까지 막아낸다고 한다.

         

       원소마도엔 이런 게 없을 테니까 아마 감독관 중 누구의 고유마도겠지.

         

       링 밖으로 벗어나면 방패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남은 시간과는 상관없이 시험이 곧바로 종료되고, 선을 넘은 수험생에게는 추가적인 점수 차감이 들어간다.

         

       감독관은 이어서 심사 기준을 설명했다.

         

       “자신의 방패가 하나씩 깨질 때마다 점수를 2점씩 차감합니다. 또한 상대 방패를 깨부수면 본인은 개당 1점을 득점할 수 있습니다.”

         

       헤를라인 교수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것 말고도 수험생에겐 따로 알려주지 않는 자잘한 팁이 있었지.

         

       예를 들어, 너무 수동적으로 방어만 하면 2점을 깎는 내규가 있다거나.

         

       “준비되셨습니까?”

       “잠시만요.”

         

       입에 마력초를 물고 감독관의 도움을 받아 불을 지폈다.

         

       “이제 됐습니다.”

         

       후우우─.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매연을 올려다보며 자세를 잡았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에 전용 스태프를 소환했다.

         

       “저 금안족이 쓰는 스태프 말이야, 본 적 있어?”

       “아니. 처음 보는 모양인데 되게 신기하게 생겼네.”

       “어차피 금방 끝날 텐데. 저런 거 꺼내봤자 의미가 있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곧이어 뎅, 하고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시험이 시작되었다.

         

       “불렛.”

         

       맨 처음은 탐색전이다. 상대방이 쏜 화탄을 피하며 거리를 좁혔다.

         

       마력량이 뛰어나다며 주변에서 띄워주던 것과는 달리 여학생은 내가 단숨에 제 코앞까지 도달하자 백스탭을 밟아서 뒤로 물러났다.

         

       베틀메이지나 아크위저드였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아마 캐스터겠지.

         

       캐스터 상대로는 최대한 거리를 좁혀 싸우는 것이 우선이다. 한 시라도 영창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나는 2m에 육박하는 스태프를 휘두르며 만루 홈런을 준비했다.

         

       페인트였다.

         

       고개를 숙여 스태프를 피한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무영창으로 불덩이를 소환했다.

         

       현역 마도사들도 하기 힘들다는 ‘스택’과 ‘멀티 캐스팅’이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걸 보아하니 나에게 첫 화탄을 쐈을 때 미리 장전해 둔 것이 틀림없었다.

         

       카앙─!

         

       순식간에 방패 하나가 깨졌다. 이걸로 2점 차감.

         

       정공법이 먹히질 않는다. 머릿속이 잠시 멍해졌다. 긴장해서 더 그러는 걸 수도.

         

       순간 헤를라인 교수가 누누이 얘기했던 말이 떠올랐다.

         

       ─ 실기에선 다른 학생이랑 싸우게 될 거야. 절대 마수를 제압하겠다는 감각으로 덤벼선 안 돼, 알았어?

         

       이제 좀 알겠다. 그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상대는 나처럼 사고하고 발전할 줄 아는 지적 생명체다. 캐스터라고 해서 항상 동료의 보호만 받으며 원거리 지원만 해 주는 야포는 아니라는 뜻이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나름의 대비책을 세워온 건 저쪽도 똑같다는 의미겠지.

         

       이 소녀는, 그래. 현대전으로 치면 자주포였다.

         

       그것도 연발 사격이 가능한 최신형 자주포.

         

       나는 숨을 골랐다. 공전하는 방패가 두 개 남은 것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플랜 B를 세웠다.

         

       방어 태세로 전환하면 점수가 깎인다. 그렇다고 공격적으로 나가면 자칫 점수가 미달 날 수도 있었다.

         

       당장 목표는 과락을 면하는 것이다. 금안족의 몸을 한 채로 40점 이상을 받는 것 자체가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 상황에서 몇 점 더 얻겠답시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탐색전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붉은 머리의 여학생은 본격적으로 다중 영창을 하기 시작했다.

         

       페르미 추정으로 대강 셈해보니 50개가 넘어간다. 그만한 수의 불덩이가 살벌한 열기를 내뿜으며 다가왔다.

         

       퇴로는 없다. 졸지에 십자포화의 표적이 되어버렸다.

         

       가능한 폭이 넓은 곳으로 달려갔지만 상대방은 그곳에 추가 영창을 시전했다. 다루는 마법이 상급이었더라면 당장 최전선에 보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재능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얘는 어쨌든 합격이겠구나.

         

       실기에서 나름 벽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좌절을 겪은 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무런 도구나 제약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몰려왔다. 마치 현대사회에서 나 혼자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못 쓰는 기분이었다.

         

       최대한 몸을 돌려 피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맞아버렸다. 방패가 하나가 추가로 깨졌다.

         

       마지노선이 슬슬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끝난다면 분명 과락이었다.

         

       그렇지만, 계산 내였다.

         

       때마침 마력초에 농축되어있던 마력이 몸에 흩어졌다. 스크롤이나 다른 마도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온몸을 마소의 흐름으로 꽉꽉 채우는 것뿐이었다.

         

       물론 투입구가 있으면 배출구도 있어야 하는 법. 과부하가 걸리기 전에 마소를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 방대한 마력을 전부 어디로 내보내느냐?

         

       [최상급 고유마도 ─ 마소 조작(Element Operation)]

         

       어디긴 어디야, 스태프지. 나는 마소 조작을 사용하여 철제 스태프로 마력을 옮겨 담았다.

         

       스태프 끝자락에는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만들어놓은 회로를 사전에 장치해 두었었다. 이 회로는 스크롤이 아니니 딱히 부정행위라고 볼 수도 없었다.

         

       스태프 끝에 장치한 회로는 3개월 전부터 연구해오던 팔정도 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RPG 게임으로 치면 마법사 장비에 스킬 슬롯을 여덟 개 장치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소마법을 구성하는 4대원소가 핵물리학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신 그걸 안 순간부터 팔정도 개념을 전투에 적용할 수 있었다.

         

       팔정도는 외각으로는 여섯 지점을, 중앙에 해당하는 내측에서는 중첩된 상태의 두 지점을 경유한다. 여기서 임의의 한 지점은 아이소스핀 연산자를 통해 다른 지점으로 도약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스태프만 있으면 내 맘대로 저장해 둔 마법들을 교차해가며 쓸 수 있다는 소리다.

         

       비록 시간이 부족해 스태프에 응집시킨 스킬은 두 개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시험에서 기준치 이상의 점수를 받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나는 극대점까지 마력을 충전했고, 그대로 상대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학생도 내가 포화를 뚫고 달려올 거라 예상하진 못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영창을 읊었다.

         

       눈앞에서 막대한 열기가 쏟아져나왔다. 불꽃에서 나오는 복사열이 뜨겁다지만 이 경우는 상상을 뛰어넘는 정도였다. 목덜미를 타고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내 스태프는 철제다. 쓸데없이 열전도율이 뛰어났다.

         

       가열되는 스태프를 양손으로 꼬나쥐며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손바닥이 익는 감각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소녀는 재빨리 불꽃으로 된 벽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벽을 후려치면서 밋밋한 소리로 영창했다.

         

       팔정도(八正道) 제1식(式).

         

       “쇼트(Short Circuit).”

         

       소녀의 회로와 나의 회로, 두 마력회로가 맞닿는다.

         

       “윽……!”

         

       불쾌한 감각일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 정신을 움켜쥐고 있는 듯한 느낌일 테니까.

         

       나는 연결된 회로를 통해 감속재를 집어넣었다.

         

       원자로를 가동할 때 넣는 중성자 감속재 같은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마력회로 자체를 파괴하는 감속재를.

         

       카아아아앙─!!

       

       내 마지막 방패가 깨졌다. 스태프에 있던 마력이 순간적인 방전을 일으키며 생긴 여파 때문이었다.

         

       상관없었다. 해제된 건 내 방패만이 아닐 테니까.

         

       ‘쇼트’가 일으키는 합선 범위는 수십 미터다. 비록 거기까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인질로 잡고 있는 마력회로는 상대 여학생 뿐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의 회로, 대기하고 있던 수험생들의 회로, 그리고 감독관의 회로까지.

         

       모든 회로의 작동을 무차별적으로 ‘셧다운’ 시켜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상대방이 쐈던 화염 마법뿐만 아니라, 링을 감싸고 있던 방어마법과 충격감쇄마법까지 동시에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험 중지! 중지!”

         

       감독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뛰쳐나왔다.

         

       “두 학생의 평가는 끝났습니다! 장외로 이동해주시고,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즉시 근처 감독관에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마력이 빠져나간 스태프를 붕붕 휘두르며 주변 연기를 걷어내자 털썩 쓰러져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그녀도 모든 방패가 떨어져 나간 채였다. EMP를 먹은 탓에 3개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나는 괜찮냐는 말을 물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은 영애께서 천천히 일어나셨다.

         

       “어떻게, 했어요?”

       “제 고유마도에요.”

       “금안족이 어떻게 그런 마법을…….”

         

       대화는 거기서 더 이어지질 않았다. 감독관이 곧바로 우리 점수를 고지했기 때문이다.

         

       “우선 로테 살리에르 양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마력도 출중하시고 페인트를 넣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마지막 대처가 미흡했군요. 베리어 세 개가 동시에 깨졌으니 규정대로 6점을 감점하고, 대신 상대 방패로부터 점수를 얻어 3점을 추가하겠습니다.”

       “그럼 총점은….”

       “네. 22점입니다.”

         

       자기 점수를 확인한 여학생은 어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에 나는 혼자서 내 점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에테르 양입니다.”

         

       전투마도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점수는 25점.

         

       마력초 사용으로 시작부터 5점을 깎였으니 초기 점수는 20점이 된다.

         

       여기에 방패 세 개를 모두 잃어버렸으니 2점을 세 번 손실. 20에서 다시 6을 빼 버리면 14점.

         

       또한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로 2점을 손실. 이로써 유실된 점수만을 따지면 총 득점은 12점이 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상대 방패를 모두 깨부쉈으니 규정대로 3점을 참작하겠습니다.”

         

       상대방의 방패를 하나 부술 때마다 1점 증가. 그걸 동시에 3번 진행했으니 3점을 얻게 된다.

         

       12점에 3점을 더하면 15점.

         

       마력측정에서 0점, 연금술과 스크롤 작성에서 각각 12점과 13점을 얻어 25점.

         

       이 25점과 방금 마지막 시험에서 얻은 15점을 합치면…….

         

       “도합 40점. 아슬아슬하게 과락은 면했군요. 음, 실기가 이런데 합격하실지는 미지수겠지만……. 필기를 잘 보셨다면 또 이야기가 다르겠죠. 부디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일단 숨을 돌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남은 건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시험 있는데 소설 쓰느라 공부를 안 했다.

    남은 건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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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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