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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13.

       

       디에르반의 거리가 밤만 되면 형체 없고 그 성정이 날카롭기 그지 없는, 흉악한 무뢰배들에게 점령당한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지라, 자정이 가까운 지금 길거리를 거닐고 있는 자들은 바람과 성녀, 그리고 그녀의 호위기사 이렇게 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호위기사 혼자였다.

        

       성녀는 지금 데스나이트의 등에 업혀 있는 상태였으니.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고 있는 걸 걷는다 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은가.

        

       “푸후우우…….”

        

       아이처럼 약하게 투레질을 하며 에실리아는 추위를 쫓으려고 애를 썼다.

        

       무언가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자신의 정신이 휘청거려 눈 앞이 어지럽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공중에 떠 있기 때문인지 알 길은 없었다. 매섭게 자신을 베려고 달려드는 추위로 인해 결국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지만, 시야는 일렁거렸고 어둡기 그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에게 닿고 있는 단단하고 강인한 무엇인가에 몸을 맡겨야 했다. 몸을 기대니 좀 나았지만, 여전히 매섭게 달려드는 추위에 에실리아는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으우우….”

        

       이렇게 웅얼거리면 페레니아 언니는 숨 쉬듯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자신이 한 밤중에 뒤척이며 걷어차 버린 이불을 은은하게 덮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덮어주는 손길은 그렇게 은은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박한 편이었다. 페레니아 언니가 없다는 사실에, 에실리아는 눈을 떠 한 번 깜빡였다. 여전히 시야는 일렁거렸다. 투박하게 덮어준 손길 사이로, 냉혹함이 그녀를 엄습했다.

        

       이제는 없다는 냉혹한 현실의 급습은, 그녀를 알알하게 만들었다. 페레니아 언니는 없었다, 셰인도 없었다. 벨루크 선생님도 없었다. 자기 자신이 그들을 떠나 도망쳤으니까.

        

       페레니아 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이면 빵집 남자랑 혼례를 올렸을까. 성녀가 주례를 봐준다면 최고의 결혼식이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셰인은 반찬 투정을 끊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빨리 자란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 똑 부러진 성격이 더욱 똑 부러지지 않았을까. 몇 년 전만 해도 아장아장 걸으며 울음을 보채던 꼬마 아이는, 이제는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알았는데, 지금 그 아이는 얼마나 더 아름다워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벨루크 선생님은 지금의 자기를 보면 자신에게 아마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엄하게 꾸짖으며 어디에서 위험하게 뭘 하다가 이제 왔냐고 제대로 스스로를 돌보지도 못하는 아이가 무슨 성녀를 하겠냐고, 이럴 거라면 당장 성녀 자리 때려 치고 뜨거운 수프 한 그릇이나 먹고 어서 빨리 방으로 들어가 자라고 호통을 치겠지. 혀를 차며 그 수프를 다 먹기 전까지는 방으로 절대로 못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이실 것이다.

        

       주름살이 깊이 패인 노옹의 선생님은, 선생님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우상이 되기에는 약간 어설프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깊은 주름 사이로 눈물 자국이 여실할 것임이 뻔했다. 그 노옹의 선생님은, 비록 우상은 되지 못하지만, 모범이 되기에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약속했었다.

        

       성인이 되면, 셰인도 다 자라서 어엿하게 아름답고 고운 한 명의 숙녀가 되면, 선생님도 모시고 다 같이 수도의 중앙 광장으로 가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순수제(純粹祭)를 구경하자고. 그 약속을 한 것이 2년전이었다. 간신히 바쁜 시간을 쪼개어 겨우 10분 정도만 만난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1년만에 만난 가족들과의 화담은, 그렇게 10분의 만남으로 끝이 났다.

        

       “흐윽…흐으윽…!”

        

       성녀의 눈에서 물들이 방울 져 떨어져 내렸다. 언니랑 셰인도 축제를 한 번도 구경하러 간 적이 없다고 했는데, 벨루크 선생님도 12년 전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순수의 성녀랑 함께 즐기는 순수의 축제라, 그 보다 더 좋은 축제가 어딨냐는 벨루크의 선생님의 너털웃음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셰인에게도 축제의 행진을 보여주면 정말로 좋아했을 것이다. 순수의 성기사단이 일렬로 행진하는 그 모습은, 만설의 기사단과 비교해도 웅장함이 모자라지 않았으리라.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그 아이는 고기를 참 좋아했다. 특히, 오늘 먹은 붉은볏거위로 만든 요리를 참 좋아했……

        

       “흐흑……! 흐으으흑…! 흐으윽…! 끄흐으윽……!”

        

       그녀의 목에서 감정이 끓는 소리가 났다.

        

       “에실리아. 울고 있는 것이오?”

        

       성녀는 담담히 대답을 토해냈다.

        

       “흐으으윽…! 흐흑…!”

        

       이미 대답을 들었기에 호위기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업고 있는 손길을 더욱 단단하게 잡기만 했다. 투박한 손길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한 번도 느껴 본적이 없을 만큼 거칠었다. 그리고 거칠었기에,

        

       그녀 스스로가 한 번도 느껴져 본 적이 없을 만큼 굳셌다.

        

        

       –

        

        

       제르피에드는 조용히 여관의 문을 열었다. 모두들 축제를 즐기러 간 것인지, 여관은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미리 축제를 즐기고 온 듯, 매부리코가 인상적인 중년의 여관 주인이 접수처에 앉아 코를 골고 있었다. 유독 술을 좋아하는 드워프라 그런지 코가 시뻘겋다. 잠깐 그를 보다가 데스나이트는 방이 있는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2층 방문을 열었다. 방은 어둡고 적막했다. 오로지 방의 창을 통해서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성녀를 침대에 눕혔다. 눕히자 약한 신음 소리가 흘렀다. 샤르콧에 머무를 적처럼 도시의 야경을 보기 위해 천천히 앉아 있던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기사님…….”

        

       신음 같은 목소리가 데스나이트 위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르피에드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았다. 성녀가 반쯤 감은 눈을 힘겹게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 가냘픈 움직임에, 너무나도 무거워 감히 몸에 담지 못하는 액체가, 그 맑은 액체가 어린 소녀의 피부를 타고 밑으로 가라앉았다. 소녀의 피부 결은 조금씩 떨렸다.

        

       “…추워요….”

        

       제르피에드는 그녀가 덮은 이불을 더욱 위로 끌어올렸다.

        

       “…속도…좀…울렁거리는 것…같아요….”

       “음식을 많이 드시기는 했지, 술도 드셨고. 술에 약한 것 같던데 그러면서 왜 그렇게 무리를 한 거요.”

       “저…술 처음 먹어봐요….”

       “처음 드시는데 왜 그리 무리를 한 거요, 오히려 처음이면 더욱더 조심을 – “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말이라기 보다는 흐느낌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데스나이트는 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성녀의 눈에서 그 맑고도 무거운 액체가 방울이 져 추락한다. 성녀의 입가가 비틀렸다. 어쩐지, 그 비틀림은 웃음과 비슷했다. 그 비틀림에서 말에 가까운 흐느낌이 조각나 떨어져 내린다.

        

       “언제 또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언제 또 술을 마실 수 있을지 모르니까…! 언제 또 축제를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언제……”

        

       기어코 그녀의 입가에서 마지막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언제까지…내가…살아있을지 모르니까….”

        

       데스나이트는 가만히 성녀를 응시하기만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호위기사로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도 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스스로도 죽음에서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생존을 천박한 농담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천천히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성녀와 눈을 완연하게 맞추었다.

        

       월광이 억수처럼 쏟아진다.

        

       월광이 유리에 조각나 두 남녀에게 흩뿌려진다. 성녀는 정말로 자신의 호위기사가 달빛을 머금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창백한 광휘의 파편이 호위기사의 몸 위로 타고 흐르는 모습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성녀는 허공을 표류하는 달빛의 파편을 뚫고 데스나이트에게 손을 뻗었다.

        

       “…붙잡아줘요….”

        

       성녀의 눈물에는 이미 수많은 파편들이 표류하고 있었다. 그 차갑고 시린 파편들이 뺨을 넘어 온몸으로 알알하게 박혀온다.

        

       “…나를 붙잡아줘요….”

        

       제르피에드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자신을 향해 뻗어진 그 작고 가녀린 손을 그는 마주 붙잡았다. 거칠고, 투박하고, 단단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굳센 손길이었다. 에실리아의 입가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고마워요….”

        

       에실리아는 힘겹게 손을 뻗어, 자신을 감싼 제르피에드의 손등을 마주 감쌌다. 제르피에드는 어째서인지 가죽 장갑을 착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붙잡은 그 손이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황당하게도 자신은 이미 추위를 느끼지 않는 몸이지만, 추위가 사라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놓지…말아주세요….”

        

       그녀의 애원에 대한 답은 없었다. 그저, 쥔 손의 투박한 힘이 더욱 강해졌을 뿐이다. 입가의 희미하게 걸린 성녀의 웃음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그 부드러운 웃음은 눈가에서 흐르는 무거운 물에 조금씩 젖어 들어갔다.

        

       성녀의 눈이 한 번 슴벅였다. 성녀의 눈이 슴벅일 때 마다 열리는 간격은 점점 더 좁아져 갔다. 그럼에도 데스나이트는 성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저 참을성 있게 그녀와 눈을 계속 마주쳤다. 제르피에드가 눈을 계속 마주치는 것처럼, 에실리아의 입꼬리도 내려갈 줄 모르는 듯, 고집스러웠다.

        

       하지만, 성녀의 큼지막한 눈망울들은 참을성이 깊지 못해, 결국 감기고 말았다. 어느새, 성녀의 작달막한 몸이 규칙적인 숨소리에 맞춰 들썩였지만, 제르피에드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소녀의 눈에서 너무나도 무겁기에, 너무나도 맑은 물이 떨어지지 않게 되어서야, 그때가 되어서야 데스나이트는 성녀의 마지막 말에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그는 찬찬히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찬란하게 깨져버린 월광의 파편들이 허공에 수놓아져 제 스스로를 뽐내고 있었다. 스스로를 통해 뽐내는 그 모습은 가히 고결하다고 부를 수 있었다.

        

       이미 깨져버렸음에도 어찌 저렇게 고결한가. 살아있지 않은 자는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깨져 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니까. 그렇기에, 억지로 그러 모으고, 잇고, 붙이는 건 오히려 추악한 흉터만 남길 뿐이다. 끔찍한 기운 자국만 남길 뿐이다.

        

       마치, 그처럼.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파편들이 제 몸뚱아리를 타고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는 아릿하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른 편에 비해서 좀 짧은 편입니다만, 더 내용이 길어지면 전체적인 측면에서 너무 모호해지기에 부득이하게 여기서 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오늘 업로드는 이걸로 끝입니다. 이 편을 쓰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해 이어지는 내용이 다 애매하거든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이정도밖에 못 썼지만 이번 편은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이정도로 말이죠.
    부디 독자 여러분들도 그만큼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100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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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Knight Became The Saint’s Bodyguard

The Death Knight Became The Saint’s Bodyguard

데스나이트는 성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
Score 3.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trayed by her own Order*, the Saint begged the death knight to become her guard—the death knight who could destroy the world. *tl note: she was betrayed by the church, not her own doing. Author Notes: Contains Authentic fantasy, and wholesome love. I hope this brings you the reader a little bit of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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