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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연금술사, 겔런 래니언은 금방 약품을 조제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서 금빛 액체가 찰랑였다.

       

       

       “요청대로 딸기맛으로 만들었습니다!”

       “아, 혹시 조제 비용같은 건 어떻게 계산하면 될까요?”

       

       “비용 말씀이십니까? 괜찮습니다! 이야기의 제작자께서 집필하신 소설 자체가 저한테는 반짝이는 영감이 되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의뢰까지 하면서 공짜로 받을 수는 없죠.”

       

       

       어지간히 비싼 비용을 청구한다고 해도 황자는 주저 없이 지불할 거다.

       

       그러니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오히려 작가님의 소설에서 튀어나온 영감으로 약품을 만들었으니, 제가 작가님께 돈을 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돈키호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코난 사가 전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잠시만.

       

       방금 연금술사가 뭐라고 했지?

       

       

       “코난 사가요…?”

       “작가님께서 쓰신 소설 아니셨습니까?”

       

       “어떻게 알았어요?”

       “영감의 색깔이 같아서 말입니다! 이이, 이 세계의 것 같지 않은 찬란한─ 그런 영감이었습니다. 하핫!”

       

       

       영감의 색깔이라니.

       

       내가 번역했다고는 하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던 작가들이 구상한 소설이다.

       

       그런데 그런 판타지적인 이유로 같은 작가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건가?

       

       

       “아, 이거 혹시 비밀이었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이래보여도 입이 무거워서 말입니다. 이크.”

       “…아, 네. 비밀로 부탁드릴게요.”

       

       

       아무리봐도 입이 무거운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뭐, 어차피 그렇게 대단한 비밀도 아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떠오르는 영감을 레시피로 정리해야해서 말입니다!”

       “네. 약품 감사해요.”

       

       

       약품도 공짜로 받았으니 이 정도는 믿어줘도 괜찮겠지.

       

       .

       .

       .

       

       ‘영혼 물약’으로 여자가 된 황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정 물약’까지 단숨에 마셔버렸다.

       

       

       “으음~. 두 약품 다 딸기맛이라 조금 단조로운 느낌이네요. 제작자의 취향인 걸까요?”

       “신체의 변화가 느껴지십니까?”

       

       “글쎄요? 하이드의 약품을 마셨을 때는 몸이 변하는 고통이 선명하게 느껴졌는데, 이 신체를 고정시키는 약품이라는 건 별 느낌이 없네요.”

       “‥‥‥.”

       

       

       공짜로 받아온 약품인데, 설마 불량품은 아니겠지?

       

       갑자기 조금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긴장을 눈치챈 것인지 황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후,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만약 약품이 불량품이라고 해도 작가님을 탓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이 신비로운 약품을 선물해주신 것도 작가님이시잖아요? 지금 무척 감사하고 있어요.”

       “황자 전하의 기쁨이 곧 저의 기쁨입니다.”

       

       “이제 황녀라고 불러야하는 거 아니에요?”

       “…황녀 전하.”

       

       “네~. 아! 한번 더 불러줘요.”

       “황녀 전하.”

       

       “후후, 한번 더요.”

       “황녀 전하.”

       

       “으하, 너무 좋네요. 중독성 있어….”

       “‥‥‥.”

       

       “앗, 방금 불경한 생각했죠? 미친년 같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귀신 같네.

       

       진짜 독심술이라도 있나?

       

       

       “맞는 것 같은데…. 뭐, 됐어요. 그보다 작가님.”

       “예.”

       

       “다음 작품은 언제 쓰실 생각이세요?”

       “…예?”

       

       “저 후원자잖아요. 이 정도는 물어봐도 괜찮죠?”

       “아.”

       

       “아? 잊고있었던 거 아니죠? 에이, 설마.”

       

       

       완전히 잊고있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식은땀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코난 사가’를 다른 필명으로 쓴 게 문제가 되려나…?

       

       

       “와, 정말 잊고 있었나보네요?”

       “…죄송합니다.”

       

       “나 그래도 후원금으로 꽤 많이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하긴, 돈이 곤궁해보이지는 않네요. 차라리 다른 걸 약속할 걸 그랬나?”

       “아닙니다. 후원금만으로도 과분한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프리덴 가주의 차남이었죠?”

       “…제가 본명을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에이, 그런 걸 꼭 말해야 아나요?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죠.”

       

       

       뒷조사했다는 말을 참 당당하게도 한다.

       

       황자라는 신분을 생각하면 아무나 함부로 만날 수는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프리덴 백작께서 중앙귀족 문제로 꽤 골치를 썩으시는 걸로 아는데… 도와드릴까요?”

       “저희 아버지를 말씀이십니까?”

       

       “문장원에 입적하실 수 있게 추천서를 써드릴 수 있어요. 아, 공식적으로는 제 추천이 아니라 저희 숙부… 아르티엔 공작님의 추천으로 되겠지만요.”

       

       

       문장원이라면 귀족들의 계보를 기록하고 공식적인 칭호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그 이름처럼 신흥 귀족에게 가문의 문장─ 심볼을 수여하는 역할도 한다.

       

       어느 귀족이든 공식적으로 작위를 물려받기 위해서는 이 문장원의 검수를 받아야만했다.

       

       실권은 별로 없지만, 만약 밉보이면 작위를 세습할 때 작위 수여를 질질 끌 수도 있는 탓에 웬만하면 잘 보여야하는 자리다. 일종의 황실 직속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때요? 꽤 괜찮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장원에 이름만 올려놔도 중앙 귀족들이 선물부터 싸들고 올 걸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한테는 필요 없는 자리다.

       

       

       “어, 왜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중앙 귀족들 뒷담하는 걸 삶의 낙으로 여기시는 분이셔서말입니다. 자식이 되어서 아버지의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푸흫, 뭐예요. 그게. 어이없어. 진짜 그게 이유예요?”

       “예.”

       

       

       반쯤은 사실이다.

       

       우리 아버지─ 프리덴 백작은 천성이 한량이다. 일하는 걸 싫어하고, 서류에 서명이라도 하라고 하면 티나게 질색한다.

       

       그런 양반한테 문장원같은 귀찮은 일자리를 던져줘봤자 오히려 나를 패륜아라고 욕할 거다.

       

       

       “그러니 전하의 제안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안이 아니라 선물이었는데… 뭐, 좋아요. 싫다는 걸 억지로 줄 수는 없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 다음부터는 제가 후원자인 거 잊으면 안 돼요? 다음 소설도 빨리 쓰고요.”

       

       “예. 알겠습니다.”

       “후후, 기대할게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리던 황자가.

       

       곧 호위기사와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문 너머에서 빼꼼 머리를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작가님! 황자 전하 가셨어요!”

       

       

       출판사의 사장, 돌링 킨더슬리였다.

       

       

       “진짜 피곤하네요….”

       “헤헤…. 수고하셨습니닷!”

       

       “저 지금 식은땀을 너무 흘려서 죽을 것 같은데 물 한 잔만 주실래요?”

       “그러실줄 알고 미리 떠왔습니닷!”

       

       “아, 감사해요.”

       

       

       돌링 사장님이 건네준 잔을 받아서 한번에 원샷했다. 

       

       시원하네. 출판사에 마법 정수기라도 설치한 건가.

       

       

       “사장님.”

       “네!”

       

       “편집자 일, 맡아주셔야겠는데요.”

       “…서, 설마, 그 말씀은!”

       

       “네.”

       

       

       마침 쓰고싶던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이 기회에 출판해버려야겠다.

       

       

       “신작을 쓰려고요.”

       “흐아으아아─!!! 지, 진짜죠?! 저 버리시는 거 아니죠?!”

       

       

       돌링 사장님이 호들갑을 떨 건 예상했는데.

       

       그 내용이 뭔가 이상하다.

       

       

       “버린다고요…?”

       “그, 그게, 저를 두고 하프 앤 하프같은 싸구려 잡지에 작품을 내셨으니까, 그, 제가 부족해서 그런줄 알고… 막 눈물도 나오고… 헤헤. 저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아.”

       

       

       하긴, 사장님 입장에서는 갑자기 최고 인기 작가가 대뜸 다른 출판사와 계약한 거니 놀랄 법도 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괜찮아요. 앞으로도 웬만하면 킨더슬리 출판사에 맡길 생각이라서요.”

       “가, 감사합니닷!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박살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닷!”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니까요….”

       

       

       역시 호들갑이 심한 사람이다.

       

       .

       .

       .

       

       코난 사가는 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조상이다.

       

       플롯은 직선적이고, 이야기는 단순하며, 인물들은 전형적이고, 문장은 직관적이며, 각각의 에피소드는 옴니버스 형식을 띤다.

       

       즉, 읽기가 쉽다.

       

       ‘하프 앤 하프’는 다른 잡지에 비해 훨씬 값싸기도 했던 탓에, 코난 사가의 독자들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았다.

       

       

       “엄마!”

       “또 친구들이랑 놀다 왔니? 힉, 무릎이 그게 뭐야? 어으, 무릎 다 까졌네! 이러고 돌아다녔는데 아프지도 않아?”

       

       “바바리안은 아프다고 멈추지 않아!”

       “아프면 멈춰야지. 다쳤는데도 계속 노는 건 그냥 미련한 거야. 상처 다 덧나겠다.”

       

       “헤헤.”

       

       

       명예롭고 고결한 영웅 ‘코난 더 바바리안’ 놀이는 요즘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는 놀이였다.

       

       나뭇가지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었다. 웃통은 그냥 벗어던지면 그만이다.

       

       문제는, 영웅 놀이에 심취한 아이들이 종종 뛰어놀다가 다치고는 했다는 거다.

       원래 아이들은 그냥 놔둬도 자기들끼리 놀다가 코가 깨지는 법이었지만, 부모들에게는 이게 다 ‘코난 사가’라는 소설 탓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에휴, 그놈의 바바리안인지 뭔지 참.”

       “글을 배우는 건 좋은데… 좀 제대로 된 책을 읽으면 좋겠어요. 잡지같은 건 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글밖에 없잖아요.”

       

       

       두껍고 삽화가 들어있는 동화집은 부유층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평범한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건 싼 값에 살 수 있는 잡지, 얇은 소설책 정도가 전부다. 아니면 아버지가 용돈 모아서 산 돈키호테도 읽을 수 있긴 했다. 읽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지만.

       

       

       “하아…….”

       

       .

       .

       .

       

       “동화를 쓸 겁니다.”

       “동화…요?”

       

       “네.”

       “어, 구전되는 이야기를 모은 동화집같은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뇨. 당연히 제가 직접 창작하는 거죠.”

       

       

       정확히는 전생의 작품을 표절하는 것이지만, 이제 나도 제법 뻔뻔해졌다.

       

       이 정도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동화를요…? 동화집에 수록될 이야기 몇 편을 쓰시는 게 아니라…?”

       “일단 직접 읽어보시면 알 겁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표절한 명작들 중에서도, 이 ‘동화’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나라들에서 팔릴 것이다.

       

       한때 아이였던 어른이라면 이 동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에는 어떤 작품이 나올지 다들 알고계실 것 같아, 굳이 물어보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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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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