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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혹자는 말한다.

       

        ‘<비를 내리는>송수아, 그녀의 능력이 어떻게 Z급, 즉 랭커가 될 수 있나? 너무 올려치기 아니야?’

       

        사람들은 모른다. 직접 체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검은 비구름이 몰고오는 존재. 그 존재의 강력함이 어떤 성질을 띠고 있는지.

       

        ‘낙뢰’, 혹은 ‘번개’라는 명칭을 가진 대자연의 산물.

       

        시속 3억 6천만 KM.

        초속 약 10만 KM.

       

        가정에 공급되는 가정용 전력은 약 220 볼트.

       

        그렇다면…….

       

        1,000,000,000 볼트의 뇌전이 지상을 내달린다는 것은 어떤 재앙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류에게 축복인 점은, 그 위험천만한 대자연의 재앙이 비지속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연의 힘을 한 인간이 다스릴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

        .

        .

       

        대한민국 대전. 기상청 본부.

       

        유례없는 이상이 포착된 직후, 기상청은 비상 운영 체제를 선포했다.

       

        “청장님! 현재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상현상이 제주도 상공에서 발생했습니다!”

        “그게 무슨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자연계 괴수? 아니면 빌런인가!”

        “저, 적란운입니다. 섬 전체를…… 아니 한반도 전체를 뒤덮은 적란운입니다!”

       

        기상청 직원이 황급히 모니터 화면을 청장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청장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의 눈에 밟히는 모니터 화면엔 마치 태풍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폭풍이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비상 사태 선포해.”

       

        폭풍의 눈은…… 대한민국 최남단.

       

        제주도였다.

       

        .

        .

        .

       

        그 시간, 히어로 아카데미.

       

        위이이이이이잉-!

       

        평소에 들을 수 없었던 사이렌이 섬 전체를 울리고 있다.

       

        아카데미에 경보가 울리는 이유는 세가지에 한정된다.

       

        첫 번째, 종말을 야기할 괴수가 섬을 침공할 때.

        두 번째, 치명적 손상을 야기할 빌런의 공작이 포착됐을 때.

        세 번째…… 인류의 힘으로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이 들이쳤을 때.

       

        “이건…… 아니잖아!”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 <신속>의 최영웅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갑작스레 드리운 먹구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의 시커먼 구름이 대낮의 아카데미를 밤처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원인은 불보듯 뻔했다.

       

        갑작스레 난입한 여자, 저 여자가 만들어낸 것이 확실했다.

       

        “누구야?”

        “……뭐라고?”

        “너는 누군데…… 혜성이를……? 왜? 어째서?”

       

        부들부들.

       

        송수아의 작은 손이 잘게 떨렸다. 그녀와 인연이 없는 최영웅마저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초점이 사라진 공허한 눈의 송수아가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시야에 펼쳐진 것은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가 없는, 뻔한 장면이다.

       

        바닥에 쓰러져 눈을 감은 임혜성, 그 옆의 핏자국, 검을 휘두르는 괴인.

       

        “죽일거야.”

       

        비명에 가까운 고함이 송수아의 입에서 터져나온 직후.

       

        “……죽여버리겠어!”

       

        번쩍! 번쩍! 번쩍!

       

        쿠르르릉-

       

        섬광이 번쩍이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천둥이 울린다.

       

        마치 천신이 죽음을 선고하는 것처럼, 마치 영화 속 번개의 신처럼. 압도적 번개의 해일이 거칠게 주변의 대지를 잠식했다.

       

        파직! 파지직!

       

        최영웅은 깨달았다.

       

        자신의 앞에 선 존재가 누구이며, 삽시간에 하늘을 어둡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나, 나, 나는…… 그, 그게 아니라!”

       

        문제는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턱이 덜덜 떨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를 내리는>송수아.

       

        그녀가 분노했다. 그 분노는 오롯이 최영웅을 향하고 있다.

       

        [ 랭커? 그 허울 뿐인 자리가 뭐가 중요한가! 장담한다. 랭커 중에서도 3위까지를 제외하면, 내 일검을 받을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마치 주마등처럼, 과거 자신이 주변인에게 으스댄 기억이 떠올랐다.

       

        ‘겨, 격이 다르다. 이게 진정…… 나와 같은 종의 생물이라고?’

       

        현실의 벽은 지독했다. 그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절로 몸이 덜덜 떨렸다.

       

        거기다 힘이 풀린 하체가 축축한 것이, 아무래도 본인 모르게 소변을 지린 모양이다.

       

        빠직! 파지직!

       

        최영웅을 패닉으로 몰아넣은 원흉.

       

        온몸에 번개를 휘감은, 푸른 안광의 송수아가 이제 지척까지 다가왔다.

       

        ‘위험하다!’

       

        살고싶다는,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비명을 내지른다.

       

        끝이 도래한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감각 속에.

       

        [ 절대 방심하면 안 됩니다. 당신의 능력을 벗어날 경우엔, 도주하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

       

        마치 신의 농간처럼…… <성녀> 안젤리카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래, 도망치자. 지금은 이 사지를 벗어나 다음 기회를 엿보자. 그게 최영웅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파직! 파지직!

       

        문제는 눈 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경이와, 그 압도적 공포에 삼켜진 그의 몸, 바닥난 체력.

       

        ‘움직여!’

       

        말을 듣지 않는 다리에 절로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이런 돌발상황이 벌어질 것을 알았다면 애진즉 체력을 아꼈을 것이다. 

       

        ‘설마 이것도 놈의 설계인가!’

       

        물론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임혜성, 그 미친 자식이 자신을 무시하고 낮잠을 퍼질러 잘 줄은 몰랐으니까. 터무니없이 거만한 꼴을 보고 최영웅의 꼭지가 돌아버린 것이다.

       

        “제, 제발!”

       

        최영웅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지금 상황에서 도주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선 다른 전략을 취해야만 했다.

       

        “사, 살려…… 줘!”

       

        패닉에 빠진 최영웅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의 능력인 <신속>을 사용해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참 눈물겨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하암! ……송수아?”

        “……!”

       

        그 절망적인 상황 속, 최영웅을 분노하게 만든 원흉… 임혜성이 하품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멍청한 놈!’

       

        바닥에 납작 엎드린 최영웅이 기함했다.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분노한 <비를 내리는>송수아는 고작 D급 능력자인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가깝다.

       

        차라리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한가롭게 잠이나 퍼질러 자는 것이 생존률을 높여준단 소리다!

       

        홱!

       

        송수아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

       

        최영웅의 몸이 얼어붙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일순간 죽음이 그를 비껴갔다.

       

        죽음의 순번이 미루어졌지만, 그다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임혜성. 놈이 죽은 다음의 타깃은 분명 그가 될 터.

       

        지금의 <비를 내리는>송수아는 이상을 좇는 빌런이오, 사냥감을 가리지 않는 괴수니까!

       

        그런데.

       

        “혜성!”

        “?”

       

        타닥!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 최영웅을 죽여버리겠다는…… 살벌한 저주를 퍼붓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헤헤.”

        ‘?????’

       

        최영웅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귀 뿐 아니라 자기 눈이 제대로 달려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사악!

       

        송수아의 작은 웃음 직후.

       

        금방이라도 최영웅을 구워버리고 싶은 모양으로 일렁이던 시퍼런 뇌전이…… 한순간에 모습을 감췄다.

       

        “뭐야, 언제 온 거야?”

        “방금! 그보다, 다친 것 아니었어? 몸은 괜찮아? 엄청 놀랐다구!”

        “다쳐? 내가? 그냥 피곤해서 낮잠 자고 있던 건데?”

        “후우우! 깜짝 놀랐어. 혜성이다 다친 줄 알고! 피가 있어서!”

        “아, 그거? 별 거 아니야. 비유하자면 실수로 혀를 깨문 거랑 비슷하지.”

        “엄청 놀랐어. 걱정했단 말이야!”

       

        ……걱정? …저건 뭐지? 내가 지금 뭘 보고 듣는 거지?

       

        인류에게 신벌을 내리는 저 심판의 여신 같던 송수아, 그녀의 애정 가득한 목소리.

       

        같은 사람인지 궁금할 정도의 급격한 태세전환에 절로 최영웅의 입이 벌어진다.

       

        최영웅은 마치 금붕어처럼,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일 수밖에 없었다.

       

        “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볼을 꼬집으니 얼얼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의 시야에 펼쳐진 장면은 간단했다.

       

        삽시간에 모습을 감춘 전격의 해일, 차츰 개어가는 하늘,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는 젊은 남녀.

       

        최영웅은 슬쩍, 곁눈질로 송수아를 보았다.

       

        방금까지 그를 죽이겠다던…… 그 섬뜩한 표정의 랭커가 저리 풋풋한 미소를 띠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하, 하하…….”

       

        안도와 동시에 허탈함이 몰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임혜성과 송수아는 청춘 러브 코미디를 찍고 있었다.

       

        “나, 팥빙수 사왔어!”

        “팥빙수? 저번에 거기?”

        “응! 혜성이랑 먹으려고! 조, 조금 녹았으려나?”

        “그동안 나를 피하는가 싶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네?”

        “아, 아닌데! 전혀 안 피했는데! 진짠데!”

        “그래그래. 빙수나 먹으러 가자.”

        “응응!”

       

        호다닥 달려나간 송수아가 땅에 떨어진 흰 봉투를 집어 든다.

       

        “…….”

       

        그렇게, 사이좋은 두 남녀가 멀어진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은 뭐야?”

        “그냥 떨거지. 신경 안 써도 돼.”

        “응! 알았어.”

       

        D등급 학교의 운동장, 그 구석에 털썩 주저앉은 최영웅.

       

        그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떨거지 취급을 받았으나.

       

        도리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링 위에서 모든 걸 새하얗게 불태운 권투선수처럼, 힘 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갠다. 이윽고 한겨울이라고 믿기지 않는, 따스한 햇살이 그의 뺨을 간질였다.

       

        “이게 뭐냐고…….”

       

        축축하게 젖은 바지가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인 걸 증명한다.

       

        그렇기에 한참이나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괜스레 슬퍼진 덕분일까? 그의 눈에는 투명한 이슬이 맺혀있었다.

       

        * * *

       

        꿈을 꾸었다.

       

        <자각몽>, 혹은 <루시드 드림>.

       

        자신이 겪는 것이 꿈이라는 걸 인지한 상태로 꾸는 꿈이다.

       

        꿈의 무대는 히어로 아카데미였다. 

       

        초능력을 수련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교육하는 교수진들. 또 온갖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복잡한 사회를 이룩한 미래지향 도시.

       

        꿈 속의 히어로 아카데미는 회색빛 도시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빛을 품고 있었다. 다만 안타까운 사실은 그 온기가 한미해 회색의 도시 전체를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녀는 회색 도시를 걸었다.

       

        당당한 걸음으로 한참을 회색빛 도시를 서성이는데, 저 멀리서 따스한 빛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

       

        소녀는 강렬한 호기심에 휩싸였다.

       

        저 온기는 뭘까? 도대체 누가, 저런 밝은 빛을 뿜어내는 걸까.

       

        꿈이라는 걸 의식하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성큼성큼 빛을 향해 걸어간 소녀는 이내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막 다섯 살쯤 되었을까? 채 허리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키에, 마치 찹쌀떡처럼 빵빵한 볼이 깜찍한 어린이 둘이었다.

       

        “우응? 엄마?”

        “엄마다!”

        “……?”

       

        두 아이들이 곧장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엄마? 엄마라고요? 이 내가?”

       

        소녀는 당황스러웠다.

       

        아이를 가진 적이 있던가, 하는 고민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소녀는 살면서 또래 남자의 손을 잡아본 적도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엄마라니?

       

        “응! 엄마아!”

        “어디갔다 이제 와써?”

       

        텁.

       

        그녀의 다리를 하나씩 붙든 아이들이 혀 짧은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무언가…… 이상한 사실은, 처음 만나는 두 아이의 귀여운 얼굴이 자신을 퍽 닮았다는 것이다.

       

        “…….”

       

        지금 이 회색 공간이 꿈이라는 걸 알았기에, 소녀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꿈? 환상? 아니면, 평행세계? <성녀>가 점지하는 ‘예지’와 비슷한 걸까요?’

       

        슥슥.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은 두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부드러운 촉감이 마치 비단을 연상시킨다. 그런 따스한 손길이 그리 좋았는지, 커다란 ‘빛’을 품은 두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그러던 중, 소녀는 깨달았다.

       

        시간이 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문득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저는 이제 가야해요.”

        “어, 어? 엄마 가? 왜? 어디로?”

        “가지마! 가지마…….”

       

        두 아이가 서운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

       

        왜일까? 자신은 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 아이들이, 이토록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질까.

       

        아이들이 서운함을 내비치자, 절로 가슴이 미어지는 감각마저 느껴졌다.

       

        “아빠가 금방 온다고 했는데.”

        “……아빠라고요?”

        “어? 저기 아빠다. 아빠아아아!”

        “……!”

       

        아이들의 외침에 소녀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이 회색 도시는, 짐작컨대 가까운 미래를 그리는 ‘예지몽’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 아빠란 남자는, 분명…… 미래의 반려가 아닐까.

       

        화아악!

       

        몸을 돌린 소녀가 정면을 직시하고, ‘아빠’라는 작자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

       

        익숙한 천장의 풍경, 난장판이 된 침대의 이불.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

       

        그 사이에서 깨어난 소녀는 스윽, 상체를 일으켰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개꿈이죠?”

       

        그리고 멍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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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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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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