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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산학협력?”

         

       카를로 교수가 계획서를 살펴봤다.

         

       파스텔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어디에 문제가?

         

       “서명은 한 곳 빼고 다 받았나.”

       “네.”

         

       카를로가 계획서를 내려놓았다. 진중한 눈동자가 시선을 마주쳤다.

         

       “학생회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좋아, 준비한 예상 범위 내의 질문.

         

       “학생의 의견을 종합하고 반영할 학생 기구의 역할은 필수적이니까요. 합리적 의견이 휘발되지 않도록 상시 기구가 존재해야 해요.”

       “연구와 수련에 그런 거창한 기구는 필요 없어. 불만이 있으면 소속 학부에 얘기하고 의견이 있으면 교수에게 건의하면 되지.”

         

       좋아, 예상 범위.

         

       “전체란 부분의 총합이 아니니까요. 누군가는 학부를 포괄하고 윤활제 역할을 해야 해요. 톱니바퀴 하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맞물린 톱니바퀴는 증기기관을 움직이죠.”

         

       카를로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증기기관이 뭐지?”

         

       에.

         

       교수의 눈동자가 생각에 잠기다가 답을 찾았다.

         

       “아, 그 순수공학부의 연구 분야. 상단 투자도 잘 안 들어오는 거던가.”

         

       잉, 망함.

         

       비유가 별로였네.

         

       계획서를 보던 교수가 종이를 펴더니 도장을 들었다.

         

       쿵.

         

       빨간 자국이 찍혔다.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성과가 없다면 학생회 제도는 폐지야.”

         

       오예.

         

       파스텔은 눈을 빛냈다.

         

       “열심히 할게요!”

         

       교수실을 나왔다.

         

       문을 닫고 흐느적 기댔다.

         

       흐아.

         

       “긴장해서 죽을 뻔했어요. 저 교수님 인상 너무 딱딱해.”

       『어이구.』

         

       악마가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말은 잘하더군. 고생했다.』

         

       헤헤.

         

       “저도 한다면 할 줄 안다고요.”

         

       의외로 유능.

         

       복도 저편에서 엘리가 걸어왔다.

         

       “파스텔, 과대표 선배님들 다 모였어. 어서 가야 해.”

       “벌써? 이런 적극성이라니! 알겠어! 어서 가자!”

         

       엘리를 잡아채고 달렸다.

         

       빌린 회의실에 도착하자 고학년들이 구석에 몰려 있었다. 인파의 중심에서 웬 과대표가 바닥을 구르며 걷어차였다.

         

       “악! 악! 내가 뭘 잘못했는데! 팔씨름도 못 이긴 너희가 문제지!”

         

       변명에 발길질이 더 가열차 졌다.

         

       마법학부의 과대표가 그 광경을 고고하게 지켜봤다. 입가에 미묘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마법사는 우월하게 커피를 홀짝.

         

       마법학부가 마침 들어온 학생회에 시선을 줬다.

         

       “응? 역시 학생회장은 바빠서 안 와?”

       “네, 제가 책임자예요.”

         

       파스텔은 혼란한 회의실을 둘러봤다. 회의 시작해야 하는데 고학년들은 사람 밟기에 열중했다.

         

       우아, 이거 어찌 수습하지.

         

       이 분위기에 신입생이 건방지게 입을 열어도 되나?

         

       으아아.

         

       마법학부가 대신 입을 열었다.

         

       “학생회 왔다! 정숙!”

         

       고학년들이 그제야 파스텔을 발견했다. 움찔하더니 황급히 자리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소란이 정리되고 회의 분위기가 됐다.

         

       우왕, 다들 신입생을 배려해 주는 착한 사람.

         

       파스텔은 마법학부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뭘, 회의 시작해.”

         

       긴 테이블의 상석으로 걸어가 앉았다. 좌우로 줄지어 앉은 과대표들이 시선을 줬다.

         

       오, 오우.

         

       으아으아.

         

       신입생이자 책임자라는 언밸런스한 조합이 어깨를 눌렀다.

         

       완전 하극상 구도.

         

       건방진 신입생의 괘씸죄에 뒷말 나오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런데 나만 모를 가능성이 100%인?

         

       으어어.

         

       비정한 교내 정치의 데스게임이 시작된다.

         

       희생양은 새내기.

         

       으아아, 나잖아.

         

       문득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넌 할 수 있다. 망설이지 말고 행동해도 돼. 스스로를 믿어라.』

         

       헛, 악마님.

         

       혼란하던 마음이 진정됐다.

         

       스승님의 응원에 없던 용기가.

         

       알겠어요.

         

       스승님이 바라신다면.

         

       까짓거 하죠!

         

       하극상!

         

       사실 난 하극상이 좋았어……!

         

       회의록 작성을 준비하는 엘리에게서 회의 자료를 건네받았다. 긴장을 털 듯이 자료를 탁탁 펼쳤다.

         

       정면을 바라봤다.

         

       파스텔 러브 크래프트.

         

       하극상 데뷔 시작합니다.

         

       소녀는 입을 열었다.

         

       “산학협력 진취를 위한 축제의 준비와 절차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에 돌입했다.

         

       으아아, 다 덤벼.

         

       “축제는 기존 학부 시연회의 확대판으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 학부가 아니라 학교 전체의 규모로 확대된 거야?”

         

       고학년의 여유로운 목소리?

         

       으아아.

         

       “아니요. 명확히는 그렇지 않죠. 학부 시연회는 타겟팅한 상단의 투자를 받으려는 핀셋 전략이 주됐잖아요. 상단이 좋아할 만한 주제와 성과에 집중한 다음 시연하는.”

       “축제는 다른 건가?”

         

       머리가 빙빙.

         

       “축제와 시연회는 뷔페와 정찬의 차이와 같아요.”

         

       준비한 자료를 펼쳤다.

         

       “무엇을 먹고 싶을진 사실 음식 앞에 가봐야 제대로 알 수 있죠. 좋아할 음식을 준비해 주는 건 분명 효과적일 거예요. 하지만 상단 스스로도 뭘 먹고 싶을질 제대로 알까요? 아니요. 시연 받는 대로 투자하는 거일 뿐이죠.”

         

       질문한 고학년생을 직시했다.

         

       “이번엔 정찬 대신 뷔페를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고르게 합니다. 수동적이던 투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투자를 유도할 거예요.”

         

       엘리가 회의록을 빠르게 작성했다.

         

       “많은 양은 높은 질을 보장합니다. 축제에선 질적 성과가 아니라 양적 다양성을 쏟을 겁니다. 다채로운 아이디어요.”

         

       상석의 소녀는 회의실을 둘러봤다. 과대표들과 한 명씩 시선을 마주쳤다.

         

       마주친 눈빛마다 이채가 감돌았다.

         

       “각 학부에선 단일화된 참여가 아니라 개인 단위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세요. 취미 삼아 연구하던, 하지만 외면받던 무언가를 꺼내게 하세요. 결정과 책임은 여러분이 하지 않습니다. 투자자가 합니다.”

         

       회의실에 조용한 수군거림이 일었다.

         

       마법학부가 부산해진 회의실을 둘러봤다. 그리고 입을 달싹이다가 말을 꺼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여전히 시큰둥하면서도 생각이 복잡해진 표정이었다.

         

       “설익은 아이디어와 정제되지 못한 성과는 오히려 상단을 질리게 할 거야. 좋은 성취가 잡동사니 속에 묻히고 버림받겠지.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일부는 그렇겠죠. 하지만 더 많은 아이디어가 반짝일 거예요.”

         

       분홍 눈동자가 회의실을 둘러봤다.

         

       “제가 책임집니다.”

         

       목소리가 울렸다.

         

       “추진하세요.”

         

       소녀는 명령했다.

         

       시선들이 천천히 고개 숙였다.

         

       각종 사안이 지체 없이 처리됐다.

         

       얼마 뒤 회의가 끝났다.

         

       과대표들은 생각이 복잡해졌지만 기분은 상기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갔다.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에에.

         

       으에에에.

         

       회의 동안 뭐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

         

       으아아.

         

       긴장감에 휩쓸려 아무 말 대잔치나 하는 학생회는 폐지돼도 괜찮은 거 아닐까?

         

       허윽.

         

       심장을 부여잡았다.

         

       너무 정당한 소리.

         

       누군가 부정해 줘.

         

       파스텔은 몸을 비틀고 손을 떨었다.

         

       이건 분명 뒷말 나온다. 무조건 나온다.

         

       에에, 신입생이 하극상했대요.

         

       수군수군.

         

       으아아.

         

       너무 정당한 뒷말.

         

       전 긴장해서 회의 동안 뭐했는지 기억도 잘 안나요. 새내기의 재롱으로 한 번만 봐주세요.

         

       으아아.

         

       제발 뒷말만은.

         

       나만 모르는 새에 별의별 뒷말이 나돌지 않길……!

         

       1학년 친구들아 도와줘.

         

       나가지 않던 마법학부가 다가왔다.

         

       복잡한 눈빛이 파스텔을 내려봤다.

         

       “역시 크래프트, 겉과 속이 달라.”

         

       마법학부가 몸을 돌렸다.

         

       “무섭네.”

         

       마법사 로브가 펄럭였다. 마법학부가 떠났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으에.

         

       역시 크래프트?

         

       우리 가문이 좋은 의미로 쓰이던가? 전혀 아닌데. 아무리 되짚어도 좋은 소리가 아니네.

         

       이건 그거지? 진짜 그거지?

         

       진짜 뒷말 나온다.

         

       당사자만 모르는 뒷말 나온다아!

         

       수군수군.

         

       으아아.

         

         

         

       #

         

         

         

       마공학부.

         

       예산, 지원, 투자 1위에 빛나는 삼관왕.

         

       “축제의 메인은 우리일 수밖에 없지.”

         

       과대표가 학부를 안내해 줬다.

         

       파스텔은 진지하지만 어딘가 맹한 표정으로 따라 걸었다.

         

       학부생이 철포환 하나를 끙끙대며 들고 왔다. 과대표가 자랑스럽게 포환을 가리켰다.

         

       포환 겉면엔 마석 가루가 마법진 무늬로 새겨져 있었다.

         

       “축제에 선보일 새 포환! 무려 마석 사용량을 동일 성능 대비 2% 줄였지!”

         

       뿌듯해하는 표정.

         

       모인 학부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다크서클 상태로 뿌듯뿌듯.

         

       파스텔은 대포용 포환을 바라봤다.

         

       잉.

         

       대단한 건가?

         

       금괴나 마찬가지인 마석의 사용량을 줄였으면 분명 대단하긴 한데…….

         

       2%는 뭔가 미묘한?

         

       『호오, 훌륭한 성과군.』

         

       아 그래요?

         

       파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부 차원의 참여는 잘 봤어요. 훌륭하세요. 그럼 이제 개인 참여를 볼 수 있을까요?”

         

       미묘한 반응에 과대표가 당황했다. 그러더니 학부생들과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축제의 메인 자리를 사수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반짝였다.

         

       개인 참여작이 하나씩 보여졌다.

         

       『별로다. 별로군. 별로지.』

         

       악마가 가차 없이 단언했다.

         

       잉, 그런가.

         

       뭐 절차상 확인하러 온 거니까. 결정은 상단이 하겠지.

         

       파스텔은 생각이 깊어졌다.

         

       그래도 학생회 차원에서 엄청난 아이템을 밀어줘서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싶은데.

         

       뭔가 없나.

         

       구석에서 소란이 일었다.

         

       “진짜 보여주겠다고?”

       “어린 신입생에게 이거 아니면 뭘 보여줘? 효과 직방이라니까.”

       “에라이, 크래프트에 뭔. 그냥 혼자 죽어!”

       “아아!”

         

       나오려던 고학년생이 끌려갔다. 딸려 오던 거대한 받침대도.

         

       오잉.

         

       파스텔은 총총 다가갔다.

         

       “뭐예요?”

         

       주변 고학년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얼굴에 언뜻 격렬한 수치심이 스쳤다.

         

       뭐길래?

         

       끌려가던 고학년이 붙잡는 팔들을 의기양양하게 풀더니 다가왔다. 받침대의 바퀴가 드르륵 울렸다.

         

       면포에 덮인 거대한 무언가가 엄청 높은 천장까지 닿은 채 받침대에 올려져 있었다.

         

       “이걸 보고도 우리 학부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지!”

         

       고학년생이 면포에 손을 뻗었다.

         

       머뭇거리던 과대표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이, 이건 아니야! 막아!”

         

       고학년들이 달려들었다.

         

       “전부 이 자식 막-!”

         

       면포가 걷혔다.

         

       드러난 건 거대한 판타지 파충류의 형체.

         

       허억.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여기서 본 것 중 가장 별로군. 이게 장난도 아니고.』

         

       노란 파충류 눈동자가 번쩍.

         

       날카로운 송곳니가 크앙.

         

       웅장한 날개가 펄럭.

         

       파스텔의 입이 빠르게 달싹였다.

         

       “드, 드, 드, 드!”

         

       고학년생이 슈퍼울트라 결과물을 가리켰다.

         

       “봐라! 이것이!”

         

       드래곤이 번쩍였다.

         

       “최강 생물이다!”

         

       파스텔은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우와앙!”

         

       드래곤이다!

         

       슈퍼 짱짱 드래곤……!

         

       감탄사가 공간을 휩쓸었다.

         

       고학년생들이 얼빠져 했다.

         

       혼자 신난 제작자가 막대 지팡이를 꺼냈다.

         

       “신입생, 잘 봐라! 더 있다!”

         

       지팡이가 휘둘러졌다.

         

       실내 광원이 전부 나갔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드러났다.

         

       제작자가 비명 지르듯이 외쳤다.

         

       “이것이 바로……!”

         

       파충류 피부를 타고 초록빛이 번쩍였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형상이 홀로 빛을 냈다.

         

       초록색이 번쩍번쩍.

         

       “허어억!”

         

       지팡이가 말하라는 듯이 파스텔을 가리켰다.

         

       파스텔은 숨을 들이켰다.

         

       가슴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양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힘껏 소리쳤다.

         

       “야광 드래곤이다아아!”

         

       슈퍼 울트라 짱짱 야광 드래곤!

         

       최강 생물 완전체 야광 드래곤!

         

       양팔을 번쩍 들었다.

         

       “우와아앙!”

         

       내가 바라던 엄청난 아이템은 이거야!

         

       드래곤! 드래곤! 야광 드래곤!

         

       이걸로 축제를 성공시키겠어!

         

       제작자와 파스텔 둘만의 광란이 흘렀다.

         

       별세계를 둘러싸듯이 정적이 흘렀다.

         

       벙찐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뭐, 뭐냐.』

         

         

         

       #

         

         

         

       과대표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진정된 제작자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이 엄청난 결과물에 문제가?

         

       지팡이가 드래곤의 파충류 눈을 가리켰다.

         

       “본래 저기선 광선이 나와.”

         

       뭐라고요?

         

       드래곤에서 눈알 광선이 나온다고요?

         

       광선 빔~.

         

       초천재 제작자가 침울해졌다.

         

       “하지만 비행생명체 때문에 마계에서 올 재료가 지금 못 오는 중이야. 축제 전엔 도착이 안 되겠지.”

       “그럴, 그럴 수가.”

         

       말도 안 돼.

         

       제작자의 손이 분홍 머리를 눌렀다.

         

       “신입생, 안타까워하지 마. 우리 드래곤은 지금으로도 엄청나니까. 어른은 만족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드래곤은 현실 앞에 완성됐어.”

       “그런, 그런.”

         

       파스텔은 쓸데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의 드래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한 팔을 번쩍 들었다.

         

       “학생을 위해 학생회가 있습니다!”

         

       마계 특급 배송?

         

       “학생회가 하겠습니다!”

         

       밀무역과 함께.

         

       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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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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