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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압축, 강화, 합성.”

     

    저택으로 돌아와서는 장미 사탕을 대량으로 만들었다.

     

    내 몸을 위한 것이니 몇 개를 준비해도 과하지 않다.

     

    작업을 반복한 덕에 [압축]은 E에서 D로 스킬 랭크가 올라 있었다.

     

    “이제는 사탕이 부족하네. 시버스에게 주문해 놓으라고 해야겠어.”

     

    아주 자극적이기만 하지도 않고 풍미 있게 달달한 게 오래 먹을 만하다.

     

    “주치의 시험까지 닷새 남았지.”

     

    고트베르크 가 기사단과 육성소 소속 치유사들이 함께 북부 숲으로 마물 토벌에 나선다고 했었다.

     

    후작령 북부에는 높은 성벽이 둘러쳐져 있다. 제국 북부는 미개척의 땅이라 마물이 많이 서식하기 때문이다.

     

    후작가 저택도 그 최전방에 위치한 건 영지가 그만큼 안전하다는 신뢰의 표시다.

     

    실제로 성벽은 고트베르크 가문이 창립한 200년 동안 구멍 한 번 뚫린 적 없었다고 한다.

     

    “숲에는 대단한 마물은 없기도 하고.”

     

    방심은 금물.

     

    지금 내 스탯으로는 최하급 마물에게도 얻어맞아 죽을 수 있다.

     

     

    ―――――――――――

     

    근력 : 6

    체력 : 6

    마력 : 1

    마나 : 14 (UP)

    신성력 : 22

    신앙심 : 100

     

    ―――――――――――

     

     

    “마나는 주문을 쓰다 보니 올랐어.”

     

    뭐든 연습하다 보면 늘어나는 법이다.

     

    다만 내게 마법 재능은 없으니 마력은 성장치가 절망적이다.

     

    “신성력은 쭉쭉 오를 테지만 안 쓸 거고.”

     

    혈통이 좋은 덕이지만 그것도 올라봐야 50 정도가 한계치다.

    10년 후에서 거기부턴 성장이 더뎠다.

     

    재능이 없으면 스탯도 스킬도 일정 수준에서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 내 재능은 연금술과 의학.

     

    “즉 마나는 한계치가 없다는 뜻인데.”

     

    연금술은 지식을 원천으로, 마나를 기반하는 주문 스킬이다.

     

    하지만 의학은 정확한 메커니즘을 모르겠다. 그냥 내가 아는 의학 그대로일까?

     

    “시험에서 기사단을 쫓아다니려면 이 근력과 체력으로는 부족해.”

     

    조금 더 키워놓을 필요가 있다.

    훈련을 시켜줄 만한 사람이 있으면 효율이 훨씬 좋아지겠지.

     

    “마침 적절한 인재가 가문에 있지.”

     

    내일은 그 기사에게 부탁해 봐야겠다.

     

    “그리고 시험에서 고득점을 따기 위한 치료 퍼포먼스도 필요한데….”

     

    지금 내게 주어진 무기는 체력 치료 효과가 있는 장미 사탕과 응급처치 스킬이다.

     

    “부족해.”

     

    사탕의 치료는 지속형이라 입에 넣어도 바로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응급처치도 마찬가지다. 부상이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치료가 되는 건 아니다.

     

    반면 치유술은 효율이 떨어질지언정 이펙트도 확실히 보이고 이 세상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이해한다.

     

    이 차이는 크다.

     

    “임팩트가 강한 치료기술이라. 그런 의학 스킬이 있으면 좋겠지만 닷새 안에 랭크가 오른다는 보장이 없어.”

     

    무엇보다 새로운 스킬이 뭐가 나올지도 알 수 없다.

     

    “치유주문으로 승부한들 이 스탯으로 육성소 에이스를 이길 것 같지도 않고, 별로 쓰고 싶지도 않고.”

     

    그럼 방법은 하나.

     

    “임팩트가 강한 약을 만들자.”

     

    연금술을 활용하는 게 빠르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디, 쓸만한 약재가….”

     

    장소가 저택이다 보니 재료는 한정됐다.

     

    창문을 열어본다. 뒷마당의 노란 장미밭은 이제 거의 대머리가 다 되어있다. 물론 내가 범인이다.

     

    그만큼 사탕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마음은 든든하다.

     

    ―파스스…

     

    솔솔 바람이 부니 잎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별관 근처에 잔뜩 심어진 버드나무 잎이 흔들리는 소리였다.

     

    “버드나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단검을 들고 바로 마당으로 뛰어 내려간다.

     

    가까운 버드나무의 밑둥에 칼집을 내 살살 껍질을 벗겨낸다.

     

    “이거다.”

     

    버드나무 껍질엔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 세상에서는 아니었겠지만, 옛날부터 상처에 둘둘 말아놓곤 하는 재료였다.

     

    “베타 글루코사이드를 추출해서 압축과 강화를 쓰면 살리신이 나올 거야.”

     

    쉽게 말해 진통제를 만들 수 있다.

     

    방으로 가져와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버드나무 껍질을 쌓아놓고 마나를 고르게 흩뿌리듯 가라앉힌다.

     

    “압축.”

     

    나무껍질이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알약 형태로 뒤바뀐다.

     

    상태창을 확인한다.

     

     

    ―――――――――――

     

    버드나무 진통약 (연성됨)

     

    효과 : 5분간 통증을 약간 가라앉혀줍니다.

     

    ―――――――――――

     

     

    성공이다.

     

    이제 주문진을 그려넣는다.

     

    아셀라가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 도형의 꼭지점이 많을수록 주문의 효과가 좋아진다고 한다.

     

    도형은 정다각형일 필요가 있다. 각 변의 길이가 다르면 오히려 역효과란다.

     

    그래서 원이 가장 좋다나.

    꼭지점의 개수가 없는 건 무한한 것과 다를바 없다는데, 잘은 모르겠다.

     

    아직은 연습 중이니 사각형으로.

     

    “강화.”

     

    빛이 일어난다.

    주문진이 천천히 회전에 들어간다.

     

    “…오래 걸리네?”

     

    장미약과 다르게 시전에 시간이 꽤 걸린다.

    마나가 주문진 외곽을 타고 가는 게 지렁이 기어가는 속도다.

     

    최적화 덜 된 게임의 로딩 같네.

     

    “한참 걸리는데.”

     

    좋은 물건을 만들려면 그만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뜻인 모양이다.

     

    집중이 흐트러지니 속도가 더 느려진다.

     

    원, 귀찮아 죽겠네.

     

     

     

    그렇게 집중하기를 두 시간, 간신히 첫 번째 시전이 완료됐다.

     

     

    ―――――――――――

     

    강화된 버드나무 무통약 (연성됨)

     

    효과 : 5분간 통증을 많이 가라앉혀줍니다.

     

    ―――――――――――

     

     

    “단어가 바뀌었잖아?”

     

    그렇게 효과가 좋단 뜻인가.

     

    망설임 없이 약을 입에 넣고 삼켰다.

     

    “흠.”

     

    손가락을 깨물어본다.

     

    “오.”

     

    치과에서 부분마취에 들어갔을 때 감각이다. 신경이 얼얼한 느낌만 살짝 남았을 뿐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이거면 임팩트가 있겠어.”

     

    치유술은 통증을 없애진 못한다.

    오히려 치유 중에 신체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통증이 배가 되어서 쇼크사하는 경우도 있다.

     

    뭐, 버드나무로 만든 진통제도 이 정도 효능은 없었겠지만.

     

    “연금술 쓸만하네.”

     

    강화 스킬로 상승한 효능은 상식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때 상태창에 알람이 떴다.

     

     

    ―――――――――――

     

    · 스킬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 합성 E → 합성 D

     

    · 성질변화 E 가 개방되었습니다.

     

    ―――――――――――

     

     

    “연금술 스킬트리의 다음 스킬이 개방됐어.”

     

    이거지, 이거.

    열심히 하는 보람이 생긴다.

     

    성질변화의 스킬 설명을 읽어본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더 떠올랐다.

     

    약, 하면 바로 그 약이 대표적이지 않겠어.

     

    남자들에게 아주 친숙한 약이다.

     

    “그게 없으면 섭하지.”

     

     

     

    ***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에 움직였다.

     

    그 기사는 워낙 성실한 성격이라 일찍부터 움직이니 지금이 아니면 바쁠 게 뻔했다.

     

    ‘여기였지. 호위기사들 병영.’

     

    저택 뒤쪽의 기사단 병영을 찾는다.

     

    후작가의 직속 부대답게 나름 상당한 규모로 조성되어 있었다.

     

    숙박 시설도 꽤 고급이었고 훈련 시설도 신식으로 갖추어놨다.

     

    다만 병력 자체는 많지 않다.

     

    고트베르크 후작령은 치유사를 주로 육성하는 방향이기도 하고, 제국 황실은 반란을 경계하느라 지방 귀족이 큰 규모의 기사단을 운용하는 걸 금지한다.

     

    마물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시즌이면 주로 길드와 협업해 모험가들을 고용하는 형태라고 알고 있다.

     

    ‘이런 땅에서 이만한 인재가 나온 것도 상당히 우연이야.’

     

    내가 기사단 연병장으로 들어서려 하자 불침번을 서던 보초 기사가 경례를 했다.

     

    “도련님? 새벽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그는 대놓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나타나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안에서 운동하려는데 문 좀 열어줘.”

     

    “운동이요? 그건 도련님 저택에서 하시죠. 아직 기사님들 활동 시간이 아닙니다.”

     

    “여기도 내 저택이야. 상식 없는 행동은 안 할 테니 걱정 마.”

     

    걸음을 옮기려니 기사가 나를 팔로 막아 저지했다.

     

    “어허, 거 참. 또 술 먹다 밤새셨죠? 또 가주님 귀에 들어가십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푹 자고 왔어. 아, 까먹을 뻔했네.”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포장을 뜯었다. 입안에 달그락 집어넣으니 당분이 확 퍼진다.

     

    “하, 진짜 미치겠네.”

     

    “길 비키면 안 미치잖아. 비켜.”

     

    “아니….”

     

    “무슨 일인가.”

     

    진중한 목소리가 나와 보초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셨군.’

     

    잘 아는 얼굴이다.

    다만 당연히 내가 보던 것보다 훨씬 젊다.

     

    불타는듯한 정열의 적발.

    눈매는 대조적으로 차분하다.

    날렵해 보이는 몸을 가진 그녀는 구보 중이었는지 뺨에서 땀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좋은 아침이야, 타냐 단장.”

     

    “도련님.”

     

    고트베르크 기사단의 단장, 타냐가 가볍게 눈짓해 내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지금 고작 스무 살이지만 벌써 소드익스퍼트의 경지에 도달한 검의 신동이다.

     

    그녀는 얼마 안 있어 제국군에 스카우트되고 소드마스터의 경지까지 올라 승승장구할 인물이다.

     

    ‘양쪽 눈이 다 있으니 조금 어색하네.’

     

    타냐는 우리 가문의 멸문 사건 때 함께 부당한 의혹을 사게 된다.

     

    그때 그녀는 우리 가문이 아닌 제국 기사단에 소속된 몸이었지만, 굳이 옛 인연에 충의를 바쳐 저항하다가 불구가 되었다.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다. 우리 가문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0년 후에서는 은거 중인 고수로 용사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이었다.

     

    앞으로 잘나가실 분이니 기왕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어떤 용무십니까? 기사단의 운용시간은 오전 아홉시부터입니다만.”

     

    “땀은 새벽에 흘려야 제맛이잖아. 그래서 단장도 해도 안 떴는데 뛰고 있던 거 아니었어?”

     

    “…맞는 말씀입니다만.”

     

    타냐가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요즘 체력이 워낙 안 좋아서 말이야. 이러다 객사하게 생겼어. 닷새 후 마물 토벌에 나도 같이 가게 됐거든.”

     

    “들었습니다. 주치의 시험을 보신다죠.”

     

    “그때를 대비해서 최소한 조금만 훈련 시켜줄래? 검도 알려주면 좋고.”

     

    “검이라고 하셨습니까.”

     

    타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검에 대해서는 항상 진지하기에 함부로 주제를 꺼내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을 위해서라도 강하게 나갈 때다.

     

    “그래. 단장 탓은 하지 않을게.”

     

    “그 이전의 문제입니다.”

     

    “이전의 문제라 하면?”

     

    타냐가 차갑게 대답한다.

     

    “도련님께서는 기초적인 몸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십니다. 검을 잡기 전에 달리기부터 하셔야 합니다.”

     

    “시험 도중에 마물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칠 순 없잖아.”

     

    “도망치시죠. 목숨이 아까우시다면.”

     

    난 주치의 시험에서 도망치는 게 곧 지옥으로 뛰어가는 길이라고.

     

    말해봐야 이해시킬 수도 없다.

     

    원하는 걸 제시해서라도 꼬드겨야겠다.

     

    “타냐 단장, 내가 누구와 약혼했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확실히 무인들은 정치적인 계산에 약하다.

    그녀가 인지하지 못한 점을 하나하나 일일이 짚어주기로 했다.

     

    “내가 아셀라 제3 황녀의 주치의가 되어 황실로 들어갔다 쳐보자고. 이게 좀 특수한 상황이거든.”

     

    “특수하다?”

     

    “백작가 이상의 귀족이 관직을 얻어 황실에 입궁할 때는 자신의 호위기사를 데려갈 수 있어. 두 명까지야.”

     

    내 말에 타냐의 눈이 조금 커졌다.

     

    타냐는 검술의 경지에 대해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황실 기사단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왔을 때도 실력 상승을 목표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우리 후작가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당신이 내 호위를 맡아줘야 하지 않나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제겐 고트베르크 기사단장의 의무가 있습니다.”

     

    “단장도 큰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경험해야지, 안 그래? 혹시 알아, 내 약혼녀가 단장을 스카우트할 수도 있고, 황실 기사단의 고수들과 부대끼다 보면 소드마스터에 도달할지도 모르잖아.”

     

    내가 도발하듯 그녀에게 속삭였다.

     

    “검에 그리 자신 있다면 말이야.”

     

    내 말을 곱씹은 타냐가 이윽고 보초에게 명령했다.

     

    “목검을 꺼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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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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