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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선배, 또 위치노트 보심까?”

        “응? 어…….”

        “또 2과에만 단독 지령 내려왔슴까?”

        “아니. 그냥 친구한테 메시지 보내는 거야.”

       

        시엔은 정보 2과의 에이스였다.

        약관을 갓 넘긴 평민 출신 마법사가 입탑 5년 차에 마탑 행정부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이력이 그만큼 화려하다는 방증이었다.

        황금기수라 불리는 170기의 수석, 0년차 때 마법제에서 우승을 거머쥔 이후 파죽지세로 탑의 39층까지 뚫어버렸다.

       

        만약 정보부에 몸 담지 않았다면 지금쯤 상층 도전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천부적인 재능.

        어지간히 난해한 마법서의 해독이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보다 빨랐다.

        그러나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 저녁. 

        시엔의 손가락은 위치노트의 한 페이지에 머무른 채 한참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있잖아 릴리벨.”

        “네?”

        “이 옷 입은 거 어때 보여? 친구한테 보내려고 하는데.”

        “……켁, 뭡니까 이건?”

       

        룸메이트이자 정보 3과 소속 릴리벨은 그녀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 물고 있던 핫도그를 베개에 떨구었다.

        흰 천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원탁회 이후 점점 이상해지는 자신의 우상과도 겹쳐 보여 그대로 얼굴을 파묻었다.

       

        “창부같슴다.”

        “무, 무슨 말을!? 저번 잠입수사가 무도회장이어서 샀던 거란 말이야! 오히려 너무 눈에 띈다면서 못 입게 되긴 했지만.”

        “그런 걸 대체 왜 남에게 보내는 검까? 것도 얼굴까지 가려감서.”

        “그, 그야…….”

       

        이렇게 해야 갤러리에 올리는 글처럼 보이니까-. 라고 차마 이야기할 수 없어 시엔은 말끝을 흐렸다.

        클락과 연락처를 공유한 이후, 그녀는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하루 중 있었던 일이나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곤 했지만 전부 일방적인 독백으로, 그는 읽은 티도 내지 않았다.

        반면 이런 식으로 물어오면 1초 만에 답신이 도착하곤 했다.

       

        ====

        수련이최고야 : 나 갤러리에 저번에 산 드레스 올려도 돼?

        수련이최고야 : (사진)

        초전도체은발미소녀 : 안 돼 

        수련이최고야 : 왜? 자랑하고 싶은데…….

        초전도체은발미소녀 : 자랑은 영수증으로 해

        ====

       

        처음엔 영양가 없는 대화라도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반응이 시원찮으니 점점 수위가 올라갔다.

        릴리벨의 말처럼, 오늘 보낸 사진은 자극적이다 못해 스스로도 부끄러워 입에 침이 바싹 마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클락의 태도에 이번만큼은 기필코 답장을 받아낼 심산으로 시엔은 마구 메시지를 날렸다.

       

        ====

        수련이최고야 : 그러고 보니까 너 저번에 2층 올라갔다고 했지

        수련이최고야 : 학파는 정했어?

        수련이최고야 : 내가 아는 데 소개시켜줄 수도 있는데

        수련이최고야 : 나 2층은 폐쇄창구랑 관계자 전용통로까지 길도 다 알아

        수련이최고야 : 야아

        수련이최고야 : 너 자꾸 무시할래?

        수련이최고야 : 씨이, 계속 그러면 나 허락 안 받는다? 막 똑같은 글 계속 세 개씩 써서 올리고 그럴 거야!

        ====

       

        갤러리에 익숙한 유저의 입장에선 귀여운 수준.

        허나 본인 기준에선 협박에 가까운 마지막 문장이 의외로 통해서였을까.

        잠시 뒤 그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

        초전도체은발미소녀 : 그럼 와서 구경하든가

        초전도체은발미소녀 : 마침 17번가에 있음 신비 적성검사 진행하는 골목

        ====

       

        내용을 확인한 시엔은 허겁지겁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았다.

        2층 침대에 있던 릴리벨이 깜짝 놀라 늦은 밤 외출을 준비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 나가심까?”

        “이, 잊고 있었어 중요한 약속!”

        “예? 선배가요?”

       

        후배의 황망한 표정을 뒤로한 시엔은 검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21층에 위치한 정보부 관사까지 마력승강기가 도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마탑의 1층부터 10층까지를 일컫는 ‘시작의 층’은 수습생들을 맞이하기 위한 학파들의 육성회장이다.

        이곳에서 수습생들은 신비를 체득하고 자신만의 무기인 마장을 갈고 닦아 10층의 ‘대미궁’에 도전한다.

        그렇기에 2층에 발을 디딘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학파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아녜스가 후견인 신분으로 나를 마탑에 초대했으니 당연히 해주학파를 고르겠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손을 잡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본인의 호언장담과 다르게 막상 뚜껑을 열어봤더니 해주에 영 재능이 없을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낙하산으로 주목받는 건 싫었으니까.

       

        모험가 시절부터 어줍잖은 재능으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설치다가 목숨을 잃은 녀석들은 많이 봐 왔다.

        호들갑 떠는 대신 그냥 가서 조용히 신비만 익히고 나오면 된다.

        수년간 마탑 수뇌부는커녕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갤러리를 운영해 온 처세가 이런 데서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하루에도 수없이 올라오는 내 정체를 짐작하는 글 중에 정답에 도달한 건 하나도 없었다.

       

        ====

        [탑주 아니라는 가정하에 주딱은 무슨 학파일 거 같음?]

       

        갤러리 운영하려면 일단 차원 분리에 대한 이해도는 최소 8위계는 되어야 할 것 같고

        마탑에 대규모 마력 안정 지대까지 구축하려면 연금학이랑 점성학도 필수임

        원소는 뭐, 저번에 다크모드 만든 거 봐서 일단 섬광 계통인 루스리아의 고위 마법사 수준은 무조건 넘는데

       

        이러면 가장 가능성 높은 쪽은 소환인가?

       

        — 연구부에서 매년 위치노트 수거해서 소각해도 갤러리 안 없어지는 거 보면 그럴지도?

        — 누가 봐도 연금임 내 감이 그럼

        — 정령일수도 있음 정령계 진입하려면 차원에 대해서는 빠삭해야 하니까 

        — 이래놓고 해주면 갤 뒤집어질듯

         ㄴ 해주일 수는 절대 없는 게 분파도 아이테르 하나인데다 거기 창시자는 이미 등반 포기함

         ㄴ 맞지 나머지는 죄다 상층도 못 밟아 봤을걸? 그러니까 다른 데면 몰라도 해주는 안 됨

         ㄴ 해주는 범죄에요~

         ㄴ 범죄까지는 아니야 ㅅㅂ ㅋㅋㅋ

        ====

        ====

        [주딱이 절대 신성학파일 수는 없는 이유]

       

        주딱 : 걔들이 날 섬기던데?

       

        — 크

        — 찢었다

        — 그저 Goat

        —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 ㅋㅋㅋ

        — 일단 하나 제외하고 가자

        ====

        ====

        메테오는얼음마법

        [학파 떡밥인가요?]

       

        그럼 원소가 최고에요

        글레시아가 그중에서는 더더더 최고고

        메테오까지 쓰는 얼음마법이 제일 멋져요

        주딱도 그렇게 말했어요

       

        — 아이스메테오 :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ㄴ 메테오는얼음마법 : 동의해요 동의해요

         ㄴ 바로 왔네

         ㄴ 거 다중이 질도 좀 정성을 들여서 해라 ㅋㅋㅋ 아주 써 붙여놓고 다니네

         ㄴ 노트 하나는 또 어디서 구했음? ㅋㅋㅋ

        — 응 정작 5년 전에 열렸던 마법제(魔法祭)에서 우승은 연금학파가 타먹었죠?

         ㄴ 그거 아닐걸? 점성학파 쪽에서 이의제기해서 결국 뒤집었다고 들었는데

         ㄴ 나중에 흐지부지되긴 함 우승자가 정보부로 편입해 버려서

        ====

        ====

        [걍 주딱 탑주 맞는걸로 해 ㅅㅂ]

       

        해주랑 신성 제외해도

        소환 연금 점성 원소 전부 8위계 넘는 마법사가 있으면 그게 탑주고 그게 자연재해지 뭘 더 따져

        걍 오늘부터 주딱은 탑주인 걸로 반박 안 받음

       

        — 오늘부터? 너 유입이지

        — 정령도 넣어주면 안 될까?

        ====

       

        비현실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좁은 골목길.

        이곳이 학파들이 새로운 구성원을 받는 창구가 즐비한 마탑의 2층이었다.

        개중에는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하거나 학파 내부로부터 추천장을 받아야 열리는 곳들도 더러 있다.

        해주학파 역시 일반적으로는 접근이 어려워 좀 독특한 방법을 써야 했다.

       

        “기, 기다렸어!?”

       

        마석에 휘발성 기체를 조합해 푸르게 빛나는 가스등 아래서 위치노트를 보던 중, 시엔이 다가왔다.

        급히 내려왔는지 가볍게 상기된 볼과, 평소와는 다른 차림이 눈에 띄었다.

       

        “치마 입었네?”

        “으, 응? 그냥 옷장에 있길래. 안 어울려?”

        “어울리긴 하는데…… 아니, 평소보단 낫다.”

       

        나는 그녀가 정보부 정복을 차려입고 나오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지금부터 신분이 노출되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했으니까.

        데이트라도 나온 듯 하늘하늘한 옷차림으로 주위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까진 예상 못 했지만…….

       

        ‘저거 입고도 나보단 잘 뛰겠지 뭐.’

       

        미로같은 골목의 한쪽에는 수습생들의 신비 적성을 검사하고 그에 맞는 학파를 안내하는 데스크가 있었다.

        각 학파의 창구와는 다르게 어떤 길을 걷더라도 직선으로만 이동하면 끝으로 반드시 도착하는 장소였다.

        달리 말하면 마땅히 고를 학파가 없거나, 자신의 재능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맞춰주는 대로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다른 창구들이 아닌 곧장 그곳으로 향하는 나의 걸음에 옆에 붙어있던 시엔이 조심스레 물었다.

       

        “마음에 정해둔 곳이 딱히 없었어?”

        “아니.”

        “그럼 가입 제의를 못 받았어?”

        “너는 어땠는데?”

        “나!? 나는 좀…… 정신없었지, 하하.”

       

        그랬겠지.

        백여 개가 넘는 학파에서 단체로 러브콜을 보내 2층에 수습생보다 위에서 내려온 마법사가 더 많았었다니까.

        예전부터 그녀는 누구나 손에 넣고 싶어하던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었다. 

        갤러리의 주인을 처단하려는 정보부 소속만 아니었다면 나도 지금보다는 가까워지려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안내 데스크에서는 대부분 좋은 평가는 못 받는다던데…… 그냥 내가 아는 곳 소개시켜 줄까?”

        “됐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여기서 잠깐 기다려. 나중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으면 사줄게.”

        “저, 정말? 네가 나한테? 갑자기 이런 시간에 불러내더니 설마…….”

       

        나는 어딘가 감동한 듯한 그녀를 밖에 세워두고 홀로 데스크로 향했다.

        모험가 조합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로 된 가건물 안 들어가자 여직원이 지극히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신비 적성검사를 진행하러 오셨나요?”

        “네.”

        “찾으시는 학파가 있을실까요? 구체적인 분파를 말씀해주셔도 되고, 7대 학파 중에서만 고르셔도 됩니다.”

        “해주학파요.”

       

        매우 짧은 순간, 나의 말을 들은 여직원이 그대로 굳었다.

        마치 강도가 들었을 때 창구에 있던 은행 직원 같은 반응. 이유는 간단했다.

       

        해주학파는 마탑 최악의 비인기 학파다.

        매년 제국에서 악명을 떨치는 수배자를 배출하며, 쥐꼬리만 한 지원금은 모조리 졸업생들의 목에 걸린 현상금으로 빠져나가는 곳.

        그렇기 때문에 마탑에서 해주학파에 가입하려는 수습생은 둘 중 하나였다.

       

        “호, 혹시 본인이나 지금 같이 살고 계시는 가족분께 건강 문제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타인이나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서이거나.

       

        “그, 그럼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담당자를…….”

        “스스로 왔습니다.”

       

        혹은 가끔 불쌍한 행색으로 구내식당을 배회하는 키 작은 망령에게 멋모르고 밥을 줬다가 질질 끌려왔거나.

       

        위와 같은 루트로 해주학파에 가입하게 될 경우, 탑을 오르는 내내 마탑 행정부로부터 집요한 추적을 받게 된다.

        언제 저주술사로 폼 체인지 해버릴지 모르는 위험분자이니만큼 경계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해주가 너무 좋아서요.”

        “꺄아아악! 치안대에에에에!!!”

       

        만약 그런 취급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지금의 나처럼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뭐, 뭐야!? 벌써 끝난 거야? 안에서 무슨 소리가……!”

        “일단 뛰어.”

       

        나는 여직원의 비명을 듣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시엔의 손을 붙잡고 곧장 반대편으로 달리며 말했다.

       

        “저쪽에서 알아서 찾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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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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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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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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