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

       

       

       “검을 들어라. 오늘의 수업을 시작한다.”

       

       [으엑, 재미없는 선생. 재수 없어요.]

       

       

       선생님한테 왜 그래···.

       

       뭐, 수업이 재미없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선생님도 있고, 저런 선생님도 있는 법인데.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작가님으로서는 저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검술 수업 재미없다고 히로인도 버리는 마당인데.

       

       

       “자, 자. 선생님 이야기는 그만하고 학생으로 넘어가죠. 저 아이였죠?”

       

       

       옛 히로인 후보였던 학생을 바라보았다.

       

       보랏빛의 포니테일이 인상적인 여학생이다.

       

       들고 있는 무기는···태도인가?

       

       검술 수업에 들어온 학생답게, 잘 단련된 다부진 몸매가 매력적이었다.

       

       옛 히로인 후보답게, 다른 학생들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네.

       

       

       [으음, 그런데 조금 아쉬운 점이···.]

       

       “어떤 점이 아쉬울까요?”

       

       [그게요. 어떻게 아카데미에 잠입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생각나는 게 없어서요.]

       

       

       오오.

       

       작가님이 개연성을 신경 쓰기 시작하다니.

       

       굳이 개연성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그냥 누가 해킹해서 들어갔다고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작가님이 이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기 시작한 게 기뻤다.

       

       언젠가 내가 조언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작가님에게 조언해주기로 했다.

       

       

       “그럼 개연성을 조금 추가해볼까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네? 어떻게요? 세계 최고의 보안을 뚫는 방법이 있나···?]

       

       “입학할 적에는 빌런이 아니었다가, 입학 이후에 빌런이 된 거죠.”

       

       [···!]

       

       “어떻게 스파이가 숨어들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이런 걸로도 가능해요.”

       

       

       그래, 스파이는 꼭 잠입할 때부터 스파이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애초에 잠입이 아니었다면?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무렵에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가, 입학한 후에 빌런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묵묵히 연습만을 반복하던 학생.

       

       언젠가는 자신의 재능이 꽃필 거라 믿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 삼매경.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해도 도무지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실력.

       

       그런데도 자기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며 정도를 추구하다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거야.

       

       그 이유는···. 그래, 이런 건 어떨까.

       

       이번 입학생들은 주인공 세대.

       

       어느 아카데미 소설이든 주인공 세대는 재능 넘치는 학생들로 모여있다.

       

       주인공의 성장을 따라잡고, 주인공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

       

       주인공이 입학한 세대는 언제나 황금 세대. 밝게 빛나는 재능있는 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빛이 있다면 어둠도 함께하는 법.

       

       그에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지.

       

       

       “같이 입학한 동기들의 놀라운 재능을 목격하고, 질투심을 느끼는 거죠. 우연히 접촉한 악의 조직에서 ‘힘을 원하는가···?’ 따위의 말을 듣고, 그대로 전향. 어때요?”

       

       [대, 대단해요! 굉장해요!]

       

       “아카데미의 보안은 물론 훌륭하지만, 그 구성원이 배신한다면 틈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죠. 정석적이지만 재밌지 않나요?”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독자님은 신이다!]

       

       

       신은 너잖아.

       

       ···뭐, 이렇게까지 띄워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좋아, 설정은 끝냈어요! 자신의 재능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재능을 질투한 끝에 빌런으로 전향한 학생! 캬, 맛있다!]

       

       

       작가님의 말을 듣고 난 후에 학생을 바라보자,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검을 휘두르던 모습이, 마치 악에 받친 듯 조급함이 느껴졌다.

       

       검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그렇게 느낄 정도인데, 당연히 선생님도 느꼈겠지.

       

       다른 학생을 보면서도 그녀를 주시하던 선생님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라이라. 거기까지다. 내가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조급해하지 말라고.”

       

       “후으, 후으···. 하, 하지만! 저는 더 할 수 있어요!”

       

       “아니, 할 수 없다. 네 몸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아. 휴식이 필요해.”

       

       

       우와아, 괴리감 장난 아냐.

       

       조금 전까지 평범하게 무기를 휘두르던 애가 갑자기 저렇게 힘들어한다니.

       

       설정이 바뀌는 모습을 직접 본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괴리감을 지울 수 없었다.

       

       ···역시, 사람 같지 않네.

       

       저 기묘한 광경은 이 세계의 사람을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힘들게 만든다.

       

       

       “명령이다, 라이라. 휴식을 취해라.”

       

       “읏···.”

       

       

       선생님의 말씀에 기세가 한풀 꺾인 그녀의 고개가 꺾였다.

       

       아무래도 더 연습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억지로 수긍한 듯한 모습.

       

       

       “조급해하지 마라. 너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라.”

       

       “···네.”

       

       

       덕담을 건넨 후 돌아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라이라.

       

       그녀의 얼굴이, 설정이 바뀌기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차가웠다.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이 맞긴 하지.

       

       과거가 바뀌었는걸.

       

       

       “저기, 괜찮으신가요?”

       

       “···저리 가. 괜찮으니까.”

       

       

       반응이 좀 차갑네.

       

       그렇다고 한들 물러설 수는 없지.

       

       정말 설정이 잘 바뀌었는지 확인은 해봐야 하니까.

       

       만약 작가님이 실수해서 이상한 설정으로 바뀌었다면 대참사라고.

       

       

       “그나저나, 굉장하시네요. 그 끈기. 부러워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 굉장한 재능이 부러워서요.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하던데. 저희, 친해질 수 있을까요?”

       

       “···!”

       

       

       이런, 무서워라.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깜짝 놀랐을 거야.

       

       예쁜 얼굴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가 있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재능 없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노력의 재능이니까.

       

       노력도 재능이다?

       

       하, 정말 재능 없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처음 꺼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기꺼이 죽일걸?

       

       노력하냐 마느냐는 결국 자신의 의지. 재능이랑은 하등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하다.

       

       ···조금만 더 확인해 볼까?

       

       그녀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척, 속을 한번 더 긁어보기로 했다.

       

       

       “저는 끈기가 조금 부족한 편이라서요···. 항상 오랫동안 무언가를 하기 힘들었거든요. 요령을 알려주신다면 고맙겠네요.”

       

       “···꺼져.”

       

       “네?”

       

       “꺼지라고!”

       

       

       크게 울려 퍼진 그녀의 목소리에 학생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당연히 선생님도 황급히 이쪽으로 뛰어왔고.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르테?”

       

       “아뇨, 선생님. 제가 무언가 말실수를 했던 모양이네요. 별일 아니에요.”

       

       “···그래. 주시하고 있을 테니 싸우지 말도록.”

       

       “네. 걱정하지 마세요.”

       

       

       미심쩍은 듯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이 약간 상처였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소리를 친 건 라이라인데, 왜 내가 의심받아야 하는 거지.

       

       다행히 라이라도 잔뜩 당황한 상태라 무언가 더 행동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그렇게 소리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그럼, 라이라 양. 다음에 또 뵐게요. 후후, 그때는 고민하던 게 해결되신다면 좋겠네요.”

       

       

       작가님의 설정이 멀쩡하게 적용된 것도 파악했으니, 지금 하는 고민은 해결될 거다.

       

       악의 조직답게 너에게 강함을 안겨줄 수 있을 거야.

       

       부작용은 잘 모르겠네.

       

       악의 조직이 주는 게 제대로 된 강화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어디에서나 그렇잖아?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는 법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준다는 무언가를 가져가기 위해서도, 그걸 가져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법.

       

       하물며 공짜도 그런데, 악의 조직이 건네주는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지.

       

       그때 가서 새로운 고민이 생기는 건···.

       

       글쎄.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아, 그러고 보니 작가님. 악의 조직···이름이 필요하지 않나요? 정해두신 거라도?”

       

       [있어요! 그게, 능력자들은 다들 초인이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이름이···.]

       

       

       작가님이 생각했다는 이름을 듣고 웃음이 배어 나왔다.

       

       

       “괜찮네요. 그러면 그걸로.”

       

       

       작가님, 생각보다 이름은 잘 짓는다니까.

       

       

       

       ***

       

       

       

       “···찾았다.”

       

       

       시우는 확신했다.

       

       저 여자.

       

       아르테가 직접 다가간 저 여학생.

       

       저 학생과 아르테가 꾸미고 있는 모종의 계획이 연관이 있으리라고.

       

       아르테는 여태껏 자신이 직접 학생에게 다가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처음 만나는 여학생에게 다가간다고?

       

       

       “아멜리아와 이야기해 봐야겠는데.”

       

       

       시우의 머릿속에서, 행복한 상상이 떠올랐다.

       

       아르테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평범한 아카데미 생활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며 시우는 맑게 웃었다.

       

       

       

       ***

       

       

       

       “하아···.”

       

       

       라이라는 아카데미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한숨을 내뱉었다.

       

       너무 심했나?

       

       ···아니, 심하지 않아.

       

       오히려 잘됐어. 저 여자, 나를 우롱하다니.

       

       입학식에 벌어졌던 마수 습격 사건.

       

       그 사건의 해결자라며 아카데미에서 표창장을 수여하는 모습까지 직접 봤는데, 뭐?

       

       끈기가 부족해?

       

       ···무언가를 오래 하기 힘들어?

       

       그럼 나는 뭔데?

       

       매일같이 손에 물집이 잡혀도, 상처가 생겨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잡았던 나는?

       

       내가 3급 마수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라이라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 마수를 혼자서 쓰러트린 여자가, 자기 입으로 끈기가 없다고 말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재능이 넘쳐나는 걸까.

       

       나는 그렇게까지 재능이 없는 걸까?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꽈아악.

       

       비참함에 주먹을 꽉 쥐자,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래, 고민할 게 뭐가 있어? 힘을 준다잖아.”

       

       

       너무 수상해서 먹지 않고 버리려고 했던, 품속의 환약을 들어 올렸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검은 색.

       

       마치 그 여자의 머리카락을 보는 것 같아서 순식간에 분노가 치솟았다.

       

       울분을 담아 환약을 씹어 삼키고 난 직후.

       

       마치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끄, 끄윽···?!”

       

       

       사,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나는 그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고통에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고 있자,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 살려···.”

       

       “먹었군. 우리와 함께하기로 한 모양이야.”

       

       

       아.

       

       이 목소리, 기억에 있다.

       

       환약을 준 사람.

       

       내게 힘을 주겠다며 다가온 사람.

       

       

       “위, 버멘쉬···.”

       

       “그래, 우리는 초인. 위버멘쉬다.”

       

       

       

       하얀색의 코트를 두른 남자가 씨익 웃은 것 같다고, 라이라는 느꼈다.

       

       

       “앞으로 네가 몸담을 곳이니, 잘 기억하도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위버멘쉬의 초인은 초능력자를 뜻하는 초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진짜 초능력자가 있으니까 그 초인으로 써도 된다고 하네요

    아무튼 됨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