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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여러 대의 마차가 도로를 줄줄이 달리고 있다. 하나 같이 화려한 외양의 육두마차로 문짝에 그려진 문장은 톨루즈 공작가의 것.

       

       딸 나이틀리가 재학중인 아카데미에서 교수에게 얻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 공작이 ‘학부모 상담’을 위해 아카데미로 이동중이었다.

       

       정확히는 분노가 아니라 ‘쾌재’라고 표현해야 할까.

       

       공작이 분노했던 적은 지금이 아니라 정략혼이 예정된 나이틀리가 아카데미로 도망쳤을 때다.

       

       현재 제국은 크게 두 파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은 기존에 제국을 주름잡던 귀족원, 그리고 반대편은 2황녀처럼 4년전쟁 동안 혁혁한 공을 세워 벼락출세한 지휘관 및 일부 소귀족들이다.

       

       전자의 경우는 4년전쟁 동안 그 무능함이 드러나 입지가 다소 흔들리고 있어 후자 세력들에게 상당히 밀리고 있는 상황.

       

       이럴 때일수록 내부결집이 중요하기에 고르고 고른 상대가문과 나이틀리를 혼인시키려 했건만 그만 나이틀리가 아카데미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것도 자신과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있는 2황녀가 관리하는 특수임무 아카데미로 말이다.

       

       처음에 공작은 나이틀리를 끌고 오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원칙적으로 외부의 개입으로 학생을 퇴학시키는 것은 불가하다는 아카데미의 답변이었는데 공작은 이게 분명 2황녀의 수작이라 믿고 있었다.

       

       귀족가의 자제를 볼모로 잡아 힘을 약화시키겠다는 그런 의도겠지. 안 그래도 일부 귀족들이 자녀들을 특수임무 아카데미에 진학시키며 기존 권력구도에서 이탈하려는 조짐까지 보이는 골치아픈 때에 하필이면.

       

       하지만 이제는 판이 다르다. 교수에 의한 학생 폭행이니 부모된 자격으로 강하게 항의하고 나이틀리를 데려올 요량이었다. 그러니 분노가 아니라 쾌재라는 것.

       

       제아무리 특수임무니 뭐니 해도 여기서까지 나이틀리를 데려가는 것을 거부한다면 분명 귀족원에서도 들고 일어날 것이다.

       

       마차에서 내린 공작은 위태롭게 서있는 검은 피부의 다크엘프 교장을 보자마자 혼신의 힘을 다해 퍼붓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막 퍼붓던 참이었다.

       

       그때 돌연 어떤 놈이 교장과 자신의 사이에 끼어들어 사령관이라 부르며 아는 체를 하는 게 아닌가? 감히 어떤 새끼야? 내가 누군줄 알고!

       

       그러나 그의 얼굴을 확인한 공작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녀석은… 디안 중위?!

       

       디안 중위와의 인연은 톨루즈 공작을 필두로 한 귀족 사병대 연합이 처참한 패배 후 후퇴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작된다.

       

       톨루즈 공작은 그때를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무능한 귀족 사령관들의 연달은 헛발질로 마왕군에게 전선이 무너진 귀족군은 무분별하게 후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꼬리를 잡혔고 지속적으로 병력을 소모하고 있는 상황.

       

       벼랑 끝에 선 귀족군의 임시주둔지에 두 명의 젊은 장교가 찾아왔다.

       

       자기들이 제국 어디 모 부서의 모 부대 소속이라 소개하며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기 왔다고.

       

       그것은 바로 전선의 골치덩어리인 화이트드래곤 힌드라스타 추적.

       

       한 달 전 갑자기 행방이 묘연한 후 계속 헤매던 중에 최근 놈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왔단다.

       

       “힌드라스타가 나타난 것과 자네들이 여기로 온 것의 상관관계는?”

       “귀족군의 후퇴경로상에 힌드라스타가 매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로를 수정하십시오.”

       

       처음에 톨루즈 공작과 지휘관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혼란한 상황에 귀족원을 약화시키려는 황성의 음모라고 치부하기까지.

       

       “그렇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두면 귀족원의 사병대를 몰살시킬 절호의 기회인데 뭐하러 굳이 이런 정보를 드리겠습니까?”

       

       디안 중위가 어깨를 으쓱했다.

       

       “전쟁 내내 늘 그래왔듯 오만과 독선으로 부대를 이끌고 드래곤의 아가리 속으로 그대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우리는 상관없어요.”

       

       안 그래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지휘관들이 분노하며 칼을 뽑아들었지만 젊은 장교들은 눈썹 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디안 중위라고 했나?”

       

       그 모습을 본 톨루즈 공작이 입을 열었다.

       

       “좋아. 힌드라스타가 매복하고 있다고 치자고. 그런데 자네 말마따나 황성 특임대가 어째서 우리를 도와주는 거지?”

       “저는 반대했는데요. 여기 이 친구가 그건 사람 새끼가 할 짓이 아니라고 해서.”

       

       디안 중위가 옆에 서있는 금발벽안의 훤칠한 라이너스 중위를 가리켰다.

       

       “정의 신봉자. 아시죠? 앞뒤 꽉 막혀서는 자기 신념대로만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디안 중위는 낄낄댔고 라이너스 중위는 엄격근엄한 표정으로 그런 디안 중위를 빤히 쳐다봤다. 뭐지, 저것들.

       

       “여튼 진로를 바꾸십시오. 우리는 확실히 말한 겁니다.”

       

       두 명의 장교가 떠나고 지휘관들은 이것을 놓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결론은 진로수정.

       

       어쨌든 후퇴는 해야만 하고 아까 두 명의 눈빛을 본 톨루즈 공작은 그들을 믿어 보기로 결심한 것.

       

       그리고 다음날, 그들의 말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힌드라스타가 매복했다는 계곡을 귀족군이 우회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땅을 흔드는 진동과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끔찍한 괴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저쪽 계곡 사이에서 거대한 날개 같은 것이 언뜻언뜻 비추고 무시무시한 불길이 치솟는다. 콰광, 콰과광. 크아아아아아악!!

       

       모두가 그 모습에 아연실색해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잠시 후 화이트드래곤의 거체가 빠르게 계곡 위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본래 하얀색이어야 할 피부는 그을음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힌드라스타가 귀족군의 위를 도망치듯 날아가자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톨루즈 공작은 아직까지도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수소문 끝에 그 장교들 중 한 명이 훗날 마왕을 죽인 대륙의 영웅 라이너스라는 것을 알아냈고 보답으로 큰 사례를 하려 했지만 라이너스는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나머지 한 명인 디안이라는 자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오리무중. 아무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목숨을 구해준 빚을 갚고 싶었는데, 생각도 못한 여기 아카데미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 # # # #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디안?”

       “그게 또 그렇게 됐습니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시죠. 다른 교수들 바빠요.”

       “뭐? 하하, 그래! 들어가자!”

       

       톨루즈 공작과 교장 그리고 이론수석교수인 엘프 이스메라와 함께 교장실로 들어갔다.

       

       차가 나올 때까지도 공작은 교장에게는 시선조차 두지 않고 디안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틀리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이 나를 보고는 벌써 까먹어 버린 것 같다.

       

       “전투수석교수라고? 대단하군! 그래, 너 같은 놈에게 딱 어울리는 자리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사실 원해서 온 건 아니고 끌려 왔어요.”

       

       우리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본 키르린은 영문을 모르고 고개만 갸웃거렸고 이스메라는 혼자서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잠시 가만히 있던 이스메라가 표정을 바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간만의 재회로 기뻐하시는 모습 정말로 보기 좋습니다. 아마 따님을 보신다면 더욱 그러하시겠지요.”

       “응? 딸이라니요? 아아, 그렇지. 그거 때문에 왔지.”

       

       그제서야 자신이 나이틀리 때문에 여기 왔다는 것을 상기한 공작이 헛기침을 했다.

       

       “키르린 교장.”

       “히익?! 네, 넵!”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키르린 교장이 바짝 허리를 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어떤 미친놈이 우리 딸을 흠씬 두들겼다는 소식을 들었소.”

       “아, 그, 그게….”

       “아무리 그 역사가 짧다고 한들 여기는 제국에서 공인한 아카데미.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단 말이오?”

       

       키르린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고 이스메라는 그런 키르린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포착할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공작 각하.”

       

       바들바들 떠는 키르린을 다독이며 이스메라가 입을 열었다.

       

       “최근에 아카데미에서는 전투학과의 교육방식을 대거 개편했습니다. 보다 실전적으로 훈련을 하겠다는 취지로 키르린 교장이 승인을 한 사안이지요. 그 과정에서 약간의 잡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 저것 봐라. 때리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말리는 시누이라 이거지. 이번 일의 책임을 온전히 키르린에게 뒤집어 씌울 작정이군.

       

       “그래서, 내 딸을 팬 그놈이 대체 누구요? 교수? 조교? 아니면 같은 동기생?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감히 톨루즈 공작가의….”

       “아아, 그거 말이죠. 그거 제가 그랬습니다.”

       

       하하 웃으며 입을 열자 공작이 멀거니 나를 쳐다봤다.

       

       “디안 네가 내 딸을 때렸다고?”

       “예, 공작님. 대련을 통해서 가장 우수한 학생은 교수와 직접 대련하고 그에 걸맞는 가산점을 주기로 했습니다. 따님께서 당연하게도 1등을 하셨는데요. 갑자기 과목교수가 아니라 저를 지목하는 거지 뭡니까? 보는 눈이 있어서 봐주기도 좀 그렇고 해서….”

       “그렇다면 맞아도 싸지!”

       

       내 말을 잠자코 듣던 공작이 버럭 소리치자 키르린이 화들짝 놀랐고 이스메라조차 움찔했다.

       

       “잘했다, 디안! 맞아! 귀족 자제라고 봐주기만 하면 제대로 배울 수 있겠나! 오히려 잘된 일이야!”

       

       공작이 껄껄 웃으며 자기 무릎을 탁탁 내리쳤다.

       

       “어디 허접 나부랭이였으면 작살을 내놓으려고 했는데 네가 나이틀리를 가르치고 있었다니. 차라리 여기 아카데미를 계속 다니게 하는 편이 낫겠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님. 그런데 제가 수석교수라 직접 가르치는 건 아니고….”

       “앞으로도 우리 나이틀리를 잘 부탁한다, 디안.”

       

       공작이 내 손을 덥썩 잡고 흔들었다. 스읍, 이거 얼떨결에 담임교수 같은 것으로 오해를 받아 버렸네.

       하지만 식은땀을 닦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키르린을 보고 있노라니 당장 그런 거 아니라 하기도 좀 어려워서 네네, 하면서 웃기만 했다.

       

       

       # # # # #

       

       

       “안녕히 가십시오, 공작님.”

       “잘 지내라, 디안. 내 조만간 한번 더 오마. 그때 제대로 이야기 나누자고.”

       

       마차 창문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공작. 그리고 거기에 대고 마주 손을 흔드는 전투수석 디안 교수.

       

       그것을 보면서 이스메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예상했던 그림이 아니다. 아카데미를 찾은 공작이 모든 것을 뒤집고 황성에서는 옳다됐다 키르린을 자르고 대리자인 이스메라를 교장으로 승진시킨다는 뻔한 전개가 아니었어.

       

       “왜 그러세요, 이스메라 교수님?”

       “네? 뭐가 말인가요?”

       

       갑자기 디안이 말을 걸자 이스메라가 황급히 표정을 바꾸며 미소를 지었다.

       

       “아뇨. 속이 좀 안 좋으신 것 같아서요. 어디 불편하세요?”

       “그런 거 아닙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톨루즈 공작께서 오신다고 하니 긴장을 조금 했나 봅니다.”

       “그러세요? 어엇, 교장님!”

       

       이마를 짚으며 쓰러지는 키르린을 받아드는 디안을 놔둔 채 이스메라는 조용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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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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