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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기묘한 만남.

         

       남자는 뒷골목에서 주술사를 마주한 일을 그렇게 여겼다.

         

       “주술사란 족속들이 그렇게나 기인들이 많다고 했는데.”

         

       기인이란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사람들.

       그랬기에 그는 뒷골목에서 마주한 괴인의 차림새도, 모습도.

       그리고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도.

         

       그 모든 것을 ‘주술사는 기인이니까’라는 생각 하나로 이해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에게 내려진 주술의 힘.

       괴인이 말하는 ‘위대한 주술’의 능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 오오! 오오오오!”

         

       가장 먼저 그의 아침이 달라졌다.

         

       허구한 날 술을 퍼마시고 형님과 오야한테 시달리고, 채무자 놈들에게 시달리면서 들들 볶이는 그의 삶은 항상 과도한 스트레스와 비대해진 간이 함께했다. 알코올과 기름기에 찌들어버린 간은 남자의 피로를 해소해주기는 커녕 간신히 상태 유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했고, 과도한 스트레스는 남자의 피로를 가중했다.

         

       불면증.

       탈모.

       만성피로.

       근육통.

       게다가 아침엔 서지도 않았다.

       피곤하면 발기가 된다는 현상도 있다고 하는데 남자는 그 정도가 아닌지 아니면 몸이 너무 뒈질 것 같이 피곤해서 그런 것인지 아예 시무룩해진 상태 그대로였다.

       그 정도가 심해져서 이제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야동이라도 볼라 쳐도 제대로 서지 않을 때도 있어 위기감까지 느꼈다.

         

       “서, 섰다! 섰다고!”

         

       진지하게 비뇨기과에 갈까 고민하고 있던 시점.

         

       섰다.

         

       “씨발, 감사합니다! 주술사님 허벌나게 감사합니다!”

         

       겨우 이 정도에 뭐 이리 난리를 피우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

       남성.

       그것도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싸나이들에게 있어선 서느냐 안 서느냐는 정말 사활(死活)의 문제.

         

       ‘안 서는 새끼는 아무리 주먹이 쎄도 무시를 당한다고!’

         

       깡패, 건달들이 판치는 주먹세계.

       그곳에서 고자는 절대 대접을 받을 수 없다.

         

       머리가 빠지는 거야 그냥 시원하게 밀어버리고 다니면 되는 거고, 배가 불룩 나오는 거야 복주머니나 복살이라고 치면 그만이다. 빼빼 마르거나 육중하게 퍼지는 거야 헬스를 다니면 되는 거고.

       근데 안 서는 건 그야말로 정체성의 문제다.

       막말로 서지도 않는 놈이 그걸 달고 있을 이유가 있긴 하냐 이 말이다!

         

       “주술사님 만세!”

         

       그렇기에 남자는 진심으로 주술사에게 감사했다.

         

       피로가 사라지고 죽었던 것이 부활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그래서였을까?

         

       남자는 꼬였던 자신의 인생이 갑자기 활짝 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출근하는 길에 여자들이 자신을 보고 ‘어? 저 사람 좀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수금하러 다니던 중 만원을 주웠다.

       자신을 본척만척 공기처럼 취급하던 형님들이 ‘야 너 요새 와꾸 좀 피었다’라며 나중에 룸에 데려가 주겠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개떡같이 대하던 불량 새끼 하나가 군말 없이 할당량을 줬다.

         

       행운.

         

       그래.

       이건 행운이다.

         

       남자는 자신의 하루가 이토록 즐겁고 행복으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남자는 퇴근을 하면서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거기다가 돌아가는 길에 주운 만원으로 트럭에서 파는 전기통닭 한 마리를 사서 맥주 한 캔과 함께 까서 먹었다.

         

       그렇게 남자는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오, 계속 선다.”

         

       그다음 날 역시 마찬가지.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고, 한때 마음고생을 시켰던 분신 역시도 팔팔했다.

       그뿐이랴?

         

       출근하는 길에 여자를 스쳐 지나가면 그 여자가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얼굴을 맞대고 수금을 하러 가면 지금까지 부리던 진상 짓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얌전하게 자신에게 돈을 내밀었다.

       거기에 왠지 묘한 금속 냄새를 맡고 따라가 보니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울 수 있었다.

         

       “이야 이거 효험 쥑이네. 돈이 굴러들어오네, 굴러들어와.”

         

       행복의 절정은 퇴근 후 형님 중 한 명이 자신을 진짜로 룸에 데려갔을 때.

         

       “야, 내가 노리는 년이 있는데 걔랑 잘 될 수 있게 분위기만 좀 잡아라.”

         

       목표를 위해 자신을 바람잡이 겸 분위기 메이커로 쓰려는 것은 알았지만 남자는 그저 행복했다. 실제로 남자는 여자를 옆에 끼지는 못했지만 룸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만족했고, 언젠가 자신도 저렇게 여자를 끼고 놀 수 있다는 미래에 젖어 기쁘기만 했다.

         

       그렇게 싱글벙글 집으로 돌아간 남자.

         

       “금전운, 여자운, 출세운, 건강운. 캬아. 다 활짝 피는구나 활짝 펴. 역시 이러니까 주술사 주술사 하는 거지!”

         

       남자는 행복했다.

       꽉 막혀있던 운이 풀리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갔으니까.

         

       그런데 그가 씻고 자려고 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거지?’

         

       그건 타당한 의문이었다.

         

       아무리 ‘위대한 주술’이 효과가 좋다고 해도 평생 가지는 않을 것 아닌가.

       손전등도 건전지를 바꿔줘야 하고, 마법 물품도 계속 보수를 해야 하는 법.

         

       남자는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이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사라질 것이 두려웠다.

         

       그랬기에 남자는 다음 날 다시 뒷골목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주술사님, 주술사님.”

         

       그는 마치 몰래 램프의 요정을 부르듯 조용하게. 동시에 악마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애쓰는 사람처럼 그렇게 애타게 주술사를 불렀다.

         

       “크-흐. 어떠한가, 위대한 주술의 힘은.”

         

       괴인은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 그러했듯이 소리 없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림자가 뭉치며 형상을 이루듯 뒷골목의 가장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그늘에서 그렇게 나타나 가볍기 짝이 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꿀꺽.

         

       남자는 어둠 속에서 흘러나온 그 기괴한 형상을 마주했다.

         

       자신을 쳐다보는 곤충의 머리.

       튀어나와 있는 반질거리는 혹.

       어딘가 풍기는 향과 비슷한…. 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역겹고 끈적거리는 냄새.

         

       “주술사님. 주술의 힘은 끝내줬, 아니.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오감으로 자신을 위압하는 그 괴형(怪形)에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툭.

       툭.

         

       그러자 남자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남자의 앞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원하는구나.”

         

       크흐-흐.

         

       괴인의 숨소리가 마치 저 멀리서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웃음 같았고,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비웃는 광인의 소리와 같았다.

         

       “자네는 이 주술이 영원불멸하기를, 그리고 더한 행복을 얻기를 원해.”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거울처럼 비추는 괴인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들자 보인 것은 처음과 다를 바 없이 무기질적으로 굳어 있는 곤충의 형태.

         

       “그건 불가능하다. 세상에 영원은 오직 초월밖에 없는바, 자네에게 머문 운기(運氣)는 사라지고 마땅히 자네의 인생에 걸맞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네?”

         

       그 말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그게 사라져버린다고?

         

       운기가 사라지고 마땅한 삶을 누린다고?

       마땅한 삶이 뭔데.

         

       똘마니의 인생?

       여자를 안지도 못하는 고자의 삶?

       복권을 아무리 긁어도 돈벼락은 떨어질 기미도 안 보이고.

       하루하루 월급을 탄 것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데 쓴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무엇이 있을까.

       어디에나 널린 하류의 인생이다.

         

       그게 자신에게 걸맞은 삶인가?

       이 행운이라는 게 사라지면, 자신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건가?

         

       “크-흐. 자네에게 위대한 주술을 베풀어 주었을 때 말한 바가 있다. 무어라 했는지 떠올려 보아라.”

       “그, 그…. 아! 행운이 필요하다면, 더 필요하면, 말하라고….”

         

       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러했다. 그리고 또한 무어라 말했는가.”

       “아, 대가! 대가가 필요할 거라고….”

         

       그래.

       그리 말했노라.

         

       괴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에게 속삭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라. 그리하면 자네의 운기는 강해지고, 누릴 수 있는 시간 역시 길어지게 될 것이다.”

         

         

         

        * * *

         

         

       남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자신이 언제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았다.

       남자는 이 행복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을 알았다.

         

       그랬기에 남자는 괴인의 거래를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해하기 쉽다.

         

       그는 주술사가 요구하는 것을 가져다준다.

       주술사는 그 대가로 남자의 몸에 걸린 주술을 연장해주고, 그 효과를 강화해준다.

         

       단지 그것뿐이다.

         

       다행히 주술사는 남자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크-흐, 살-아있는 오징어. 그래. 오징어를 가져오라. 그 숫자는 한 축이어야 할 것이다.”

         

       남자는 주술사의 요구를 듣고 수산시장으로 가서 살아있는 오징어 한 축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주인장이 그에게 챙겨준 것은 다리를 움직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오징어 스무 마리.

         

       한 축이 한 박스나 수백 마리쯤 될 거라 여기고 쫄아있던 남자로서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숫자였다.

         

       “여기 있습니다.”

         

       괴인은 남자가 오징어를 가져오자 자신의 주술을 보여주었다.

         

       찌이이익-!

         

       괴인은 허공을 움켜쥐는 듯 석고 같은 손을 쥐었고, 그러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라도 찢기는 듯 그가 쥐고 있던 봉지가 난도질이 되며 물이 바닥으로 줄줄 샜다. 그리고 그렇게 새나가는 물 사이로 오징어 역시 같이 밖으로 빠져나왔고, 오징어는 무언가에 잡히기라도 한 듯이 허공에 둥둥 떠서 괴인을 향해 날아갔다.

         

       “허, 헉!”

         

       그렇게 해서 이어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파악!

         

       남자가 다시 한번 손을 움켜쥐자 허공에 떠 있던 스무 마리의 오징어의 눈이 일제히 뽑혀버린 것이다. 한때 희번들하게 뜨고 있던 오징어의 눈은 그대로 별개의 생물인 양 허공에 둥둥 뜬 채 괴인의 앞까지 다가갔고, 이윽고….

         

       콰득!

         

       괴인의 입속으로 들어가 짓이겨졌다.

         

       “욱!”

         

       풍기는 비릿한 냄새.

       눈알을 잃은 채 허공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오징어들.

       괴물의 아가리를 연상케 하는 괴인의 입속에서 연신 부서지는 눈알들….

         

       남자는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는 비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언가, 무언가 자신의 본능이 혐오스러운 것을 멀리하려고 하는 듯한….

       인간이라는 종이 눈앞의 상황을 거부하려는 듯한 그런 현상이었다.

         

       “크-흐, 자네는. 자네는 말이야. 정신에 비해 본능은 강한 편이구먼. 나쁘지 않아. 아암, 나쁘지 않고말고. 참으로 좋은 일이야….”

         

       괴인은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남자에게 건네며 남자의 배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끅!”

         

       그가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배에 약한 통증이 일었다.

       뾰족한 것에 찔리는 것과는 다른 통증.

       불에 데는 것도, 차가운 물체가 닿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남자가 난생처음 겪는 고통의 종류였다.

         

       하지만 그건 마치 벌레한테 쏘였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남자는 자신의 배에 잠깐 나타난 검은 점이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괴인에게 물었다.

         

       “이, 이번 건 어느 정도 효험이 있습니까?”

         

       그 물음은 저번과 같았다.

         

       “직접. 직접 겪어보도록 하시게.”

         

       그리고 그 대답 역시 저번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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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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