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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실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익숙한 얼굴이 보여 가던 길을 멈추었다. 

       

        “선생님?”

       

        깔끔하게 뻗은 은색 머리칼이 살랑거린다. 담임인 헤를라인 선생님이었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연구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빗자루질을 하고 계셨다. 교수가 웬 빗자루질인가 싶어 연구실 앞에 적힌 명패를 흘겨보았다.

       

        [클라이스 하스펠트]

        [상태 : 부재중]

       

        “…….” 

        “어머,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

       

        빗자루를 한쪽으로 던져놓고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헤를라인.

       

        틸레트에서 한 미모 하시는 분답게 걸음걸이도 고상하다.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오자 주변에 미묘한 플로럴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지계마도를 연구하는 헤를라인 선생님이 화계마도 연구실에서 청소라…….

       

        “선생님이야말로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세요?”

        “친구가 부재중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헤를라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슬며시 뜬 그녀의 눈빛에서 여러 감정의 편린을 엿보았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하스펠트 교수에게서 날 탈출시켜 준 은사이다. 그러나 하스펠트 교수 입장에서는 오랜 신의를 저버린 배신자 같은 존재나 다름없다. 헤를라인은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질 걸 알면서도 나의 입학을 도운 것이다.

       

        왜 그랬던 걸까.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구태여 물어보려 하지는 않았다. 물어보기엔 지나치게 실례인 것도 있었고, 이미 지나간 일을 벌집 들쑤시든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 로테랑 실험 하나 하고 나가려는 길이었어요. 그나저나 여긴 정말 오랜만에 오네요.” 

       

        얄팍한 호기심에 나는 하스펠트 교수의 연구실을 곁눈질했다. 입구에 특이하게 생긴 상자가 하나 있었다.

       

        “…저 상자는 뭔가요?”

        “개인적으로 쓰던 물품인가 봐. 아, 함부로 건드리진 말렴.”

        “안 그래요.”

       

        남의 물건 만져서 뭐 한다고. 피식 웃으며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저 그런 골동품들 사이에서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가장 위에 놓여있던 금속제 액자였다. 손바닥만 한 액자에는 두 여인이 찍힌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비교적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는 오른쪽의 여인은 딱 봐도 누구인지 알겠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하스펠트 교수와 똑닮은 걸 보면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 왼쪽에 있는 이 사람은 누구죠?”

        “클라라 하스펠트. 클라이스의 친언니야.”

        “정령마도 교재를 집필하셨다는 그분이시군요.”

        “그렇지. 나한테 일리야드 교환학생을 추천해주셨던 분이기도 하고.”

       

        이어지는 헤를라인의 말에 따르면 클라라 하스펠트는 학부 후반부를 일리야드에서 밟았다고 한다. 전에도 들었지만 상급정령 두 체와 계약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두 학교가 교환학생 협정을 맺은 건 이번 학기가 처음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건 반 학기 분량만 해당되는 거야. 선생님이 다닐 때도 한 학기나 1년 분량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있었어.”

        “그렇군요….” 

        “살리에르는 중간고사 끝나고 일리야드로 간다고 했지? 그때도 말하겠지만 거기 가서도 열심히 공부하렴. 알겠지?”

        “명심할게요.”

       

        더 할 말도 없겠다, 나와 로테는 인사를 한 뒤 바깥으로 나왔다. 벌써 저녁이었다.

       

        초가을이라 그런지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 로테가 옷깃을 여미며 물었다.

       

        “저녁 식사는 어디서 할까?”

        “아무 데나.”

       

         딱히 식욕이 없다. 아까 로테에게 거짓말을 해서 그런 걸까.

       

        나는 실험이 끝난 직후 로테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마수를 세상에서 몰아내고 평화로운 시대가 찾아오면 남은 삶을 한 영지에서 같이 보내자는, 그런 약속을.

       

        못 지킬 약속을 한 탓에 입맛이 쓰다. 이래서야 이중잣대에 불과하지 않은가.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설마 몸살이 또 심해진 건가?”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때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먼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자.

       

        우리는 구내식당까지 걸어갔다.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게 부는 바람에 뺨이 아릿하다.

       

        제국 대부분의 지역은 냉대기후에 속한다. 아직 9월 중순인데 벌써 한파가 찾아오고 있다.

       

        “으, 추워. 경비 서는 사람들도 고생이네.”

       

        이 와중에도 로테는 아카데미를 순찰하고 있는 경비병들 걱정을 하고 있다. 좋은 귀족의 자세다. 살리에르 백작은 자식 복이 있는 게 틀림없다니까.

       

        “응…?”

       

        기분 탓인지 순찰하던 경비 몇 명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경비병들은 왼쪽 어깨에 노란색 완장을 차고 있었기에 저녁에도 일반인과 구분하기 쉬웠다.

       

        “학생들, 뭐 하나만 물어보자.”

        “무슨 일인가요?”

       

        한국으로 치면 길 걷다가 갑자기 경찰에게 붙들린 꼴이다. 내가 뭔 잘못이라도 했나?

       

        그나마 잘못이라고 수 있는 것들을 꼽아보았다. 황태자 정수리 내리친 거, 안젤리카 정수리 내리친 거, 버멜 정수리 내리칠 뻔한 거…. 

       

        설마 특수폭행죄로 고발당한 건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던 사이 경비 한 명이 말을 이었다.

       

        “가지고 있는 플레어 스크롤이 있으면 전부 나라에 반납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령이 있으셨다. 자네가 에테르…. 그러니까 플레어 스크롤을 개발한 학생 맞지?” 

       

        …잠깐. 상황이 심상치 않다.

       

        “앞으로 플레어 스크롤의 개발 및 운용은 필리우트 제국에 귀속하기로 하였다. 제국 국민인 이상 법에 따르지 않으면 엄중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로테는 입을 닫지 못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제국 헌법에 ‘모든 사람은 마법 개발 및 스크롤 소지의 자유를 지닌다’라고 쓰여있잖아요!”

        “오늘부로 개헌하기로 하였다. 그 때문에 우리도 적잖이 피곤해.”

        “무슨 공표 기간도 없이…….” 

       

        그래,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나는 힙색에서 스크롤을 꺼내며 이를 악물었다. 콩알만큼 남은 식욕조차도 전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로즈마리 이 미친년이.

       

        “…….”

       

        아, 옆구리가 허전하구먼. 마전지가 단체로 사라지니까 어깨도 한층 가볍고 말이야.

       

        “…이제 어떡해. 플레어 자체를 못 만들면 소형화도 못 하는 거 아니야?” 

       

        로테의 말대로다. 나는 한숨을 픽픽 내쉬면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아.”

        “왜 그래?”

        “맞다. 그게 있었어.”

       

        …조금 도박이지만, 한번 해 봐야지.

       

       

        **

       

       

        황금으로 도배된 블랜튼 공작의 집무실.

       

        이곳은 황태자의 방만큼이나 호화롭고 사치스럽다. 찬연하게 빛나는 샹들리에와 은하수처럼 수 놓인 진열대의 장신구들. 포도주를 홀짝이며 감상하기엔 안성맞춤인 공간 아닌가.

       

        “간만에 단맛이 사는구나!”

       

        로즈마리는 술잔을 비우며 개가를 올렸다.  

       

        -황제 폐하! 재고해 주십시오! 왜 갑자기 헌법을 바꾸시려는 것입니까!

        -소식을 들은 마도사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블랜튼 공작, 그러니까 7석 ‘오를레이앙’의 활약 덕에 개헌에 성공했다. 이제 필리우트에서 플레어 스크롤의 개발 및 제작은 전부 국가가 관리한다.

          

        어디 그뿐인가? 정령인이 깃든 종이돈을 사용하겠다는 개혁파 귀족의 위신도 꺾어버렸다. 다른 것도 아닌, 황제의 명령만으로 말이다.

       

        “전제군주제 다루기 참 편하단 말이야.”

       

        황제와 그 측근들 자리만 장악하면 이리도 쉽게 풀린다. 로즈마리는 실실 웃으며 킹사이즈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침대 구석에는 검은 바다거북 인형이 있었다. 로즈마리는 거북이 인형을 주워 품에 꼭 껴안았다.

       

        “조만간이야.”

       

        곧 틸레트로 도착하는 로드스톤만 탈취하면 제국에는 볼 일 없다. 그때가 필리우트 가문 멸망의 날이라고 봐도 되겠지.

       

        -덜컥

       

        “오, 금방 왔네?”

        “네. 맡기신 일을 모두 처리하고 왔습니다.”

       

        방문을 굳세게 잠그고 들어온 블랜튼 공작이 품 안에서 스크롤 스무 장을 꺼냈다.

       

        “2석에게서 가져온 플레어는 이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뭔데 이걸 스무 장씩이나 들고 다녀?”

        “저흴 잡아내려는 목적이겠지요.”

        “소름이 다 끼치는군.”

       

        로즈마리는 스크롤을 하나씩 점검하며 피식 웃었다. 스크롤 전문가인 그녀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건 틀림없는 플레어의 구축식이었다.

       

        “그 어려운 걸 슥슥 훑어보고 판단하시는군요. 대단하십니다.”

        “행성으로도 스크롤을 만드는데 이 정도 분석이야 껌이지.” 

       

        받아쓰기에서 만점을 받은 유치원생처럼 의기양양해 하는 로즈마리. 그러나 블랜튼 공작의 낯빛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아직 기뻐하시기엔 이릅니다.”

        “그래. 알고 있어.”

       

        현재 로즈마리가 에테르에 관해 두고 있는 가설은 두 가지다.

       

        1. 기억을 잃어버린 채라 자신이 인간인 줄 착각하고 있다.

        2. 기억을 되찾았어도 마왕군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어서 인간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채라면 되찾게 해 주면 그만이야. 우릴 아직도 미덥지 않아 한다면 인간이 그런 쪽으로 더 심각하다는 걸 알려주면 될 뿐이고 말이야.”

        “그렇군요. 플레어를 압수했으니 이번 반응으로 기억 상태를 떠볼 수도 있겠습니다.”

        “맞아. 플레어를 빼앗았는데 나한테 화를 낸다면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떠보는 것’일 뿐, 기억상실 유무를 알지 못해도 된다.

       

        “자, 보자. 내일 특별활동이 있어. 기초마석학 교수가 교내 박물관에서 수업한다고 했거든. 그때 내가 언니를 잘 구슬려서 거기에 가져다 놓은 ‘내면의 거울’에 의식을 집중하게 하는 거야. 그거면 확실해질걸?”

       

        얼마 전 스스로 만든 던전에서 배치해 놓은 내면의 거울. 그 거울이 지닌 힘은 신묘하다. 

       

        거울을 바라본 이는 기억상실을 비롯한 온갖 정신계 관련 디버프에서 해제되며, 말 그대로 자신의 ‘내면’과 대화할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더욱더 솔직해지게 되는 것이다.

       

        내면의 거울을 일반 골동품처럼 위장해 놓았다. 언니는 별다른 의심 없이 거울을 관람하리라.

       

        “내일이 기대되는걸.”

         

        로즈마리는 입매를 비튼 채로 침대에 풀썩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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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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