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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이게…… 누구죠?”

        

       방 안으로 들어간 앨리스도, 나도 침묵에 잠겨있자, 미아 크로우필드가 다소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상황 자체가 어떤지 파악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그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바닥만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사실 영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 남자가 나를 팼던 것은 사실이다. 아마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정신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 직후에 다시 깨어났으니까.

        

       클레어가 원작에서 살아서 탈출할 수 있었으니, 나를 그렇게 곤죽으로 만들었던 건 문자 그대로 ‘가공’이었을 뿐일 거다. 만약 시체 성애자한테 팔 거라면 그 자리에서 죽여서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데리고 가서 죽인 뒤 신선한 상태로 넘기는 게 나았을 테니까.

        

       머리채를 잡아서 고개를 들게 만들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 남자 눈에 내 치마 안이 훤히 다 보일 테고. 더불어서 서있는 앨리스나 미아 크로우필드도……. 아니, 이 두 사람은 교복 차림은 아니라 상관없으려나.

        

       허.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했던 인간을 눈앞에 두고서 이런 생각이나 할 정도로 내 원한이 얕은 것이었나?

        

       “…….”

        

       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그날 밤, 내가 아니었다면 다른 여자애가 그런 꼴을 당했을 거다. 고아원은 우리가 있는 곳 말고 다른 곳도 있었으니까.

        

       “10년쯤 전.”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불타버린 고아원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당신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

        

       남자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남자가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억합니다.”

        

       존댓말이었다.

        

       우리가 누구인지, 왜 이러고 있는지는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건물에 들이닥치는 기사들의 갑옷에 선명하게 그려진 황실의 문장, 그리폰을 알아보지는 못할 수 없다. 간첩은 둘째치고 옆나라 평민들도 알아볼 문양이니까.

        

       이렇게 직접, 가까운 곳에서 볼 일은 거의 없는 문장이긴 하지만.

        

       “그 근처에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왜 이런 것을 물어보는지는 알고 있을까? 아마 그냥, 이 상황에서 똑바로 대답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당신 옆에 여성이 하나 있었을 겁니다. 그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습니까?”

        

       얼핏 보면 귀부인 같은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어딘가 지나치게 화려하게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여자. 아이를 선별하고 가공하는 것은 이 남자의 몫이었지만, 그 여자도 중요한 역할이었기에 아마 그 근처에 같이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제도에 있었습니다.”

        

       “…….”

        

       나는 입을 다물고 남자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숱이 많았다. 고생이라는 것을 전혀 해보지 않은 것 같은 사람의 머리처럼 보였다. 뭐, 그런 역할을 하면서 살았으니 ‘정말로’ 고생을 안 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떳떳하지 못한 돈을 벌어 당당하게 쓰면서 살았겠지.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남자에게 시선이 고정되는 바람에 미처 살피지 못했던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억에 없는 모습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와는 그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하긴, 그렇겠지. 이렇게 고급스럽게 꾸미기 위해서는 벽지 정도는 새로 발라야 했을 거다. 10년이나 지났고, 그때 그 집 안의 벽지는…… 아편 연기와 사람의 몸에서 나온 체액에 여기저기 얼룩이 졌을 테니까.

        

       “이 집은, 당신의 소유인지요.”

        

       나는 천천히 걸어서 방 안을 빙 돌면서 물었다. 방 안에 있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당연했고, 심지어 나를 이곳에 데려다줄 때까지만 해도 당당한 태도를 보이던 앨리스나 남자 위를 무릎으로 누르고 있는 기사마저.

        

       “……그렇습니다.”

        

       “열심히 일하셨나 봅니다.”

        

       일반적인 임금으로는 이런 집의 한 호실이라도 구매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땅값이 비싸니, 집값이 비싸니 하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그 좋았던 시절, 벨 에포크가 아니던가.

        

       자본주의의 극한을 달리는 시대. 누구나 일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성실하게 번 돈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그리고 돈을 주는 사람조차도 원하는 대로 그 액수를 조절할 수 있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 따위는 없다. 월세를 내기 위해서는 하루에 열네 시간씩 노동을 해야 했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면 졸리기 마련이다.

        

       졸다 보면 프레스기에 손이 잘린다. 손이 잘리면 직장도 잘린다. 그러면 노동자는 남은 돈을 털어 아편굴로 들어가거나, 술을 마시며 삶에서 현실을 잘라낸다. 골목길을 전전하며 구걸해 받은 돈으로 아편을 피우고 술을 마시다가, 결국 위장과 간이 버티지 못하게 되면 마침내 가늘게 남아있던 삶마저도 잘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위대한 조국, 아제르나 제국의 품에서.

        

       제국의 길바닥에서.

        

       그리고 이 남자는 그 삶을 잘라내는 일을 참 열심히도 했을 거다. 일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이 세계를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어리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을 재료로 쓰면서.

        

       “…….”

        

       남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삶에 찌든 노동자들이 편안할 수 있도록 환상을 파셨지요.”

        

       아편을 통해.

        

       “…….”

        

       “그냥 두었다면 아무런 가치 없이 길바닥에서 얼어 죽어갔을 어린아이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알맞은 고용주와 계약할 기회를 주었죠.”

        

       몸을 팔 기회를.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걸 생각하기에도 너무 어린아이들에게.

        

       “…….”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하는 걸까? 내 말속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들었기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위대한 제국의 어두운 부분을 환하게 밝혀주는 사람은, 당신과 같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어느새 나는 방을 한 바퀴 돌아 남자 앞으로 와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뒤통수만 보였다.

        

       방 안의 벽지는 결코 싼 가격의 벽지가 아니었다. 책장과 책상에 쓰인 원목도.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마력석 조명도.

        

       커튼, 매트리스, 책장에 가득 꽂힌 생가죽으로 된 양장본 책들, 비단 커튼,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고급 셔츠,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손목시계와 회중시계까지.

        

       단 하나도 싼 것이 없었다.

        

       이 좁은 방 안에서 그 비싼 것들이 어우러져서 얼핏 보면 소박하고 정겨워 보였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사치를 부리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그랬지.

        

       입고 있던 코트에 달린 모피. 들고 있던 지팡이.

        

       무엇 하나 값싸 보이는 게 없었다.

        

       뭘 팔아서 그렇게 돈을 벌었는지, 나는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저택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

        

       “누구한테 소개받았습니까?”

        

       미아 크로우필드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내 머리는 여전히 그 남자의 뒤통수를 향해있었다.

        

       “혹, 이 땅의 누군가와 친분이라도 있었습니까?”

        

       “황—”

        

       내 말에 미아 크로우필드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오면서 큰 소리를 냈지만, 앨리스가 막은 모양이었다. 나오던 말은 중간에 잘렸다. 한순간 날아갔던 이성이, 앨리스가 어깨를 잡으면서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 모양이지.

        

       “…….”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쾅!

        

       큰 소리가 났다. 뒤쪽에서 작은 비명이 들렸다. 순간 남자의 팔을 지그시 누르고 있던 기사도 나를 올려다보았다. 투구 슬릿 사이로 놀란 듯 둥그렇게 떠진 눈이 보였다.

        

       남자의 머리가 마루에 크게 소리를 내며 부딪힌 다음, 위로 튀어 올랐다.

        

       잘 정리되어있던 뒤통수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깨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다행인가? 깨져도 되돌리면 그만인데.

        

       남자의 얼굴이 어떻게 되었을까. 마루에 그대로 찍혀서 코뼈가 부러졌을까?

        

       끙, 하고 작게 앓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아래로 축 처지지 않은 것을 보면 딱히 기절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으로 다시 발을 내려다 두고 천천히 물었다.

        

       “대답하십시오.”

        

       “…….”

        

       속으로 5초를 세기로 했다.

        

       5, 4, 3—

        

       “너무하십니다.”

        

       2초를 남겨두고, 남자가 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나오던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땅에 갈리기라도 한 듯 거칠었다. 게다가 이를 악문 듯 잇새로 새어 나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너무?”

        

       내가 되물어보자, 남자는 말을 이어 나갔다.

        

       “……황실도, 이미 알고 있던 일이 아니었습니까.”

        

       “…….”

        

       방 안이 고요해졌다.

        

       나는 시선을 다시 기사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아까 내가 발을 휘둘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크게 뜨인 눈이 보였다.

        

       “이 남자를 포박하고 잠깐 나가주시겠습니까?”

        

       내가 차분한 어조로 말하자,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이분이 나간 뒤에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제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해리포터를 처음 읽던 때부터 쭉 작가라는 것이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기회를 얻어서 이렇게 작가로 일하고 있네요. 물론 전업 작가는 아니고 본업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있으니 이쪽도 분명히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유료로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요. 올해는 솔직히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도 꽤 있었지만, 이렇게 제가 쓴 글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안좋은 일을 전부 덮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직업과 다르게, 작가라는 직업은 스스로 자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어야 작가가 될 수 있는 거겠죠. 제가 작가일 수 있는 이유는 여러분께서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서 선물해주신 그 직책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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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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