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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벤스톤 백작의 별장 3층, 청소 메이드 비품실.

       

       오후 11시 20분 경.

       

       로데루스 -> 누구든 좋으니 벤스톤 백작을 조질 수 있으면 좋다.

       

       김루루 -> 로데루스를 돕기만 하면 좋다. (딱히 공적도 필요하지 않음)

       

       핑발레즈 -> 입 안에 들어오는 공적은 사양하지 않는 편.

       

       “그렇다면 제가 자료를 챙기고, 방위국을 통해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자료를 주워 먹고도 벤스톤 백작을 찌르는 데 실패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증거만 확실하다면 불도저로 밀어버릴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부분은 방위국이 깔끔하게 요리해 드릴 테니, 수도기사단은 물리적인 부분을 부탁드립니다.”

       

       “재만 남기면 되는 거지?”

       

       협의 종료.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누가 공적을 먹느냐’가 의외로 깔끔하게 해결되자, 작전은 가속을 받기 시작했다. 

       

       작전의 기본 뼈대는 로데루스의 것을 채용하기로 했다. 셋은 비품실로 숨어들었고, 여분의 메이드복을 찾아 환복한 상태였다.

       

       “변신.”

       

       여자 둘에 남자 하나가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여자만 셋이었다.

       

       유리 랜스터는 특정 부분이 꽉 끼는 메이드복의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며,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오대수에게 물었다.

       

       “이 저택의 주인은 상당히 호색한인가 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 메이드복, 일견 평범해 보입니다만. 구조적인 취약점이 존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등허리의 리본만 공략하면 단숨에 벗길 수 있겠군요.”

       

       “⋯⋯왜 그런 것만 생각하지?”

       

       유리 랜스터는 검지 손가락을 까닥이면서 말했다. 옷 다 벗겨지기 싫으면 리본 지키시라는 겁니다, 하고. 오대수는 서늘한 예감에 허리의 리본을 마력으로 강화했다.

       

       “저택의 보안 시스템은 어떻게 됩니까?”

       

       “본래는 2인 1조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순찰을 돈다만, 연회의 크기가 커져서 1인 1조로 바뀌었다. 게다가 귀족들이 몰린 무도회장에 인력이 집중되어 있어.”

       

       “마법적인 함정은 어떻습니까. 돈 많은 귀족은 하나쯤은 설치하는 법인데요.”

       

       “중요한 포인트에 깔려 있다. 백작의 방, 즈위디 벤스톤의 방, 지하의 마약 저장고. 사전에 등록된 마력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열리지 않고, 사이렌이 울린다.”

       

       마법의 문이라. 유리 랜스터는 몇 가지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벤스톤 백작이나 즈위디 벤스톤 본인을 납치해서 문을 열게 시키기. => 이건 잠입이 아니라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다. 그럴 작정이었으면 진작에 전면전을 꼴아박았을 테니까 기각.

       

       기깔난 마력 조작으로 마법 함정을 단숨에 해체하기. => 하늘이 내린 천재, 미친 마법사라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자신은 그 정도 마력조작이 불가능하니 기각.

       

       마법이 설치되지 않은 입구로 잠입하기. => 한다면 이쪽. 위층으로부터 바닥을 뚫어내고, 허리에 밧줄을 감아서 고정한 뒤에 방 안으로 숨어드는 방식. 

       

       거기까지 생각한 뒤에 유리 랜스터는 오대수에게 물었다. 함정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그 또한 돌파할 방법을 생각해 뒀을 테니까.

       

       “어떻게 돌파할 예정입니까?”

       

       “마법 함정에는 당연히 나도 등록되어 있어. 임무 실패로 강등당했을지언정, 벤스톤의 주인님이신 레드번 공작가의 사람이니까.”

       

       “와.”

       

       이래서 내부고발자가 있으면 일이 편해지는구나!

       

       유리 랜스터가 그 신비한 효용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김루루는 상기된 얼굴로 오대수의 손을 잡고 휙휙 잡아당겼다.

       

       “김루루, 왜?”

       

       “나, 나도⋯⋯ 그런 비밀요원 같은 거 해보고 싶어!”

       

       두근두근. 김루루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이번엔 사랑이 아니라 로망으로. 

       

       썬글라스 쓴 정부 요원들이 잠입하고, 비밀 금고도 뚫고, 폭발을 뒤로하며 탈출하고 하는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설레었던가. 

       

       “지금 장난칠 때가⋯⋯ 하아. 알았어. 음, 그러니까. 김루루 요원?”

       

       “응!!”

       

       “요원에게는 유사시를 대비한 후방 경계를 지시하고 싶⋯⋯.”

       

       “정지. 전방에 순찰입니다.”

       

       유리 랜스터가 주먹을 쥐고 들어 올려 정지 수신호를 보냈다. 루루와 놀아주려던 오대수도 낯빛을 굳히고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셋은 복도 모퉁이에 숨어 몸을 가렸다.

       

       “내가 파악한 순찰 루트와는 다른데. 변동이 있었나?”

       

       “저 병사의 일탈로 보입니다. 술을 마신 것처럼 얼굴이 빨갛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군요. 취해서 정규 루트를 벗어난 게 아닌지.”

       

       “제압할까?”

       

       “속여서 돌파하죠. 소란은 없을수록 좋습니다.”

       

       오대수와 유리 랜스터는 표정을 가다듬고, 태연하게 카트를 밀며 복도를 걸었다. 김루루는 엇, 어엇, 하고 얼을 타다가. 두 사람의 뒤를 후다닥 따라갔다.

       

       “히끅, 어엉?”

       

       취한 병사가 술 냄새 나는 눈으로 세 사람을 흘겨보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이렇게 물어왔다.

       

       “여긴 파티장이 아닌데, 너희⋯⋯ 어디로 가는 거냐?”

       

       유리 랜스터는 꽃이 피어나듯이 표정을 바꾸었다.

       

       완만하게 기울어진 눈꼬리, 비음 섞인 나긋나긋한 목소리. 움직임 하나하나에 여유가 묻어났으며, 그러면서도 약간의 색기가 느껴졌다.

       

       “밤시중을 들러 가고 있답니다, 병사님. 아시잖아요. 늦은 밤에 필요한 시중도 있다는 거.”

       

       “그런데, 못 보던 얼굴인데⋯⋯.”

       

       “백작님의 다른 저택에서 일하다, 이번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셔서 오게 된 거라⋯⋯ 아마 처음 뵐 거예요. 멋진 병사님.”

       

       또각. 유리 랜스터는 한 걸음 다가서서 병사의 옷깃을 가지런히 정돈해 주었다. 훅 들어오는 고혹적인 향기에, 병사는 벌겋게 물든 얼굴로 어쩔 줄을 몰랐다. 

       

       “오늘은 바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이만 지나갈게요.”

       

       “어, 그, 그래⋯⋯.”

       

       또각또각.

       

       유리 랜스터는 루루와 오대수를 이끌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병사는 3인조의 뒷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원래 순찰 루트로 돌아갔다.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온 유리 랜스터가 중얼거렸다.

       

       “감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고전적인 미인계로군.”

       

       “김루루, 남성의 옷깃이나 넥타이를 정돈해 주는 동작은 상당히 포인트가 높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참고하시죠.”

       

       “루루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라⋯⋯!”

       

       김루루는 마음속 노트에 메모했다. 다음에 로데루스랑 만나면 해야 할 것 : 옷깃 정리해주기.

       

       세 사람은 순조롭게 난관을 돌파하여 벤스톤 백작의 방에 도달했다. 문손잡이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자, 녹색의 마법진이 허공에 떠올라 마력을 읽어 들였다.

       

       “물러서. 열 테니까.”

       

       오대수는 마력을 불어넣어 잠금을 해제했다. 차랑! 문은 손쉽게 열렸다.

       

       스르륵. 관리가 잘된 경첩은 열릴 때 소리도 나지 않았다. 문 너머에는 커다란 침대 하나와 책장 몇 개, 여러 장식물이 전부였다.

       

       “구역을 나누어서 수색하죠. 제가 책장을 맡겠습니다.”

       

       “내가 장식물들을 맡지.”

       

       “저, 나는?! 나는 뭐 할까?!”

       

       “넌⋯⋯ 침대를 조사해 줘. 베개 아래에 뭐가 있을 수도 있잖아.”

       

       수색이 시작되었다. 유리 랜스터는 일정한 속도로 책을 꺼내어 내용물을 살피고,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꽂아 두었다. 기계와도 같은 절도 있는 반복 작업이었다.

       

       반면 오대수는 움직임이 빨랐다. 다소 흔적이 남더라도 시간을 아끼려는 동작이었다. 그녀는 비밀 통로나 아티팩트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면서, 장식물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김루루는 방 탈출 카페를 탐험하는 여중생처럼 조사했다.

       

       약 10분 후, 그들은 결론을 냈다.

       

       “없습니다.”

       

       “없어.”

       

       “어, 나 요술 지팡이 비슷한 거 찾았어!!”

       

       위이이잉. 김루루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야밤의 요술지팡이의 모습에, 오대수는 조용히 빼앗아서 원래 자리에 던져두었다.

       

       “왜?!”

       

       “이건 증거가 아니야. 일단⋯⋯ 벤스톤 백작이 일을 안 한다는 건 알겠군.”

       

       “예. 즈위디 벤스톤이라고 했나요? 약 관련 업무는 그에게 이관한 것이 아닐지.”

       

       “⋯⋯놈의 집무실은 4층이다. 서둘러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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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스톤 백작의 별장 4층, 즈위디 벤스톤의 집무실 문 앞.

       

       새벽 12시 10분 경.

       

       3인조는 즈위디 벤스톤이 여전히 무도회장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체크한 뒤에, 집무실로 진입 시도를 했다. 그러나.

       

       띠릭.

       

       <비활성화된 마력 패턴입니다 : 들개는 필요 없어!>

       

       녹색 마법진은 로데루스를 거부했다. 오대수는 이를 갈았다.

       

       “이 새끼가⋯⋯.”

       

       “어떻게 된 겁니까?”

       

       “즈위디 벤스톤과 불화가 있었다. 그 새끼가 내 마력패턴을 예외 처리해 둔 모양이야.”

       

       “알림이 울리지는⋯⋯ 않은 것 같군요. 그나마 다행인 일입니다.”

       

       내부자라서 손쉽게 돌파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잠금장치는, 그날의 기 싸움이 불러온 스노우볼에 의해 난관이 되었다. 

       

       “이제 어떡해? 그냥 내가 날려버리고 들어갈까?”

       

       “아니. 가능하면 들키지 않게 돌파할 필요가 있어. 고발에 필요한 증거를 꺼내오더라도, 그 사실이 발각되면⋯⋯ 수도기사단이 출동하기 전에 증거를 지우려고 들 거다.”

       

       “그러면 고발은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커집니다. 그는 레드번 공작의 비호 아래에 있으니까요.”

       

       “방법이⋯⋯ 방법이 없나?”

       

       오대수와 김루루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유리 랜스터는 가만히 고민하다가 치트키를 꺼내 들었다.

       

       “수는 있습니다. 다만, 비밀을 지켜주셔야 할 겁니다.”

       

       “⋯⋯그래, 여기를 돌파할 수 있다면. 그게 뭐든 간에 입을 다물어주지.”

       

       “아는 마법사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나죠. 세간에서는 그를 『미친 마법사』라고 부릅니다. 그에게 협조를 구할 겁니다.”

       

       “⋯⋯그 사람이 어디 살길래 협조를, 아니, 그 이전에, 괜찮은 거 맞아?”

       

       어떻게 사람 이명이 미친 마법사.

       

       오대수와 김루루는 광기에 찬 돌아버린 마법사의 이미지를 상상하고는,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게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지금부터 통신을 연결할 겁니다. 조용히.”

       

       핑발레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가 시도하려는 것은 꿈을 통한 원격 TRPG 연구의 부산물, 장거리 통신이었다. 

       

       몽마의 특성을 이용하여 꿈을 경유하는 신호를 보낸다. 잠시 기다리자, 아카데미의 미친 마법사와 연결되었다.

       

       -무슨 일 있어? 이번에도 오팬무 물어보는 거면 끊는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미친 마법사님. 마법 함정을 경보를 울리지 않고 해제해야 하고, 출입한 흔적이 남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환상 마법 전공인데⋯⋯ 일단 보여줘 봐.

       

       핑발레즈의 눈을 통해 마법을 들여다보던 미친 마법사는, 순식간에 계산을 마치고 답안지를 불러줬다.

       

       -마력 인식 시작하고 왼쪽, 오른쪽, 왼쪽. 그리고 우하단의 룬을 통해서 쇼트 내고 들어간 다음에, 마법진 중심에 접속해서 데이터를 고쳐 쓸 거야. 기억 데이터 보낼 테니까 그대로만 해. 오케이?

       

       “오케이. 카피 댓.”

       

       -나 외롭다. 얼른 끝내고 와.

       

       띠리릭.

       

       꿈을 통해 잘 포장된 기억 데이터가 도착했다. 핑발레즈는 마법진 위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움직였다. 왼쪽, 오른쪽, 왼쪽.

       

       미인가 마력에 반응한 마법진이 점차 붉게 물들고, 알람 마법을 준비했다.

       

       김루루는 긴장으로 침을 꼴깍 삼키고, 오대수는 레이피어를 소환할 준비를 했다. 알람이 울리면 전투를 벌이며 뚫고 나가야 할 테니.

       

       그러나 유리 랜스터는 차분했다. 미친 마법사가 틀릴 리가 없으니, 자신만 잘하면 방범 장치는 뚫릴 거다.

       

       지지직. 보안 취약점을 지지고 마법진의 핵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미친 마법사가 전송한 데이터를 흘려보냈다.

       

       위이이이잉──!!

       

       마법진이 새빨갛게 변하고, 저택 전역에 침입자 경보를 울리기 직전.

       

       삐리릭!

       

       마법진이 순식간에 녹색으로 변하며, 유리 랜스터를 사용자로 인식하고 문을 열었다. 달칵. 

       

       “흐아아으⋯⋯.”

       

       김루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녹아내렸다.

       

       “녹고 있을 때가 아니야. 김루루. 아직 작전이 끝난 것도 아니고, 중요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수색해!”

       

       “진입하겠습니다. 제가 왼쪽을 맡죠.”

       

       텅.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빈 병이 굴러다니거나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등, 전체적으로 너저분했다.

       

       유리 랜스터와 오대수는 즉각 행동했다. 자료를 이 잡듯이 뒤져 보며, 마약 거래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 들었다. 김루루는 잠깐 멍때리다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팔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자기도 뭔가를 해내고 싶었다. 뭔가, 뭔가 멋있게⋯⋯.

       

       “분명 영화에서는⋯⋯?”

       

       김루루는 슬금슬금 다가가서 바닥의 카펫을 들췄다. 그러자 비밀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루는 놀랍고 기뻐서 펄쩍 뛰었다. 

       

       “나, 나 금고 찾았어!!”

       

       “⋯⋯찾았다고?!”

       

       광산 노동자 착취 문서를 읽던 유리 랜스터와, 즈위디 벤스톤의 약 컬렉션을 관찰하던 오대수는, 들고 있던 걸 내팽개치고 루루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내가 어쩐지 여기에 있을 것 같애서, 일케, 이렇게 딱 들췄더니!! 팍 하고!!”

       

       “잘했다. 잘했으니까 조금만 목소리 낮추면서 신나 하자 루루야.”

       

       “미스릴 합금으로 만든 금고군요. 사람의 힘으로는 열 수 없는 물건이니, 열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즈위디 벤스톤은 등신이지만, 그런 중요한 열쇠는 몸에 지니고 다닐 거다. 차라리 금고째로 옮겨서⋯⋯.”

       

       사람의 힘으로 열 수 없는 물건.

       

       “⋯⋯⋯⋯.”

       

       “⋯⋯⋯⋯.”

       

       유리 랜스터와 오대수는 동시에 김루루를 바라보았다. 마침 옆에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초인이 있었지 않은가!

       

       쏟아지는 기대의 시선에, 루루는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면서 쭈뼛거렸다.

       

       “어, 열까⋯⋯?”

       

       “부탁드립니다.”

       

       우드드드득.

       

       살아있는 중장비가 금고를 뜯어냈다. 안에는 여러 값비싼 보석들과 장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유리 랜스터는 장부의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평했다.

       

       “대어를 낚았습니다. 누구와 어떻게 뭘 거래했는지, 전부 적혀 있어요.”

       

       “그거면 되겠나?”

       

       “예. 벤스톤을 밀어버리기에는 충분합니다. 잘했습니다, 마법소녀 『퓨어 로데오』.”

       

       “헤, 헤헷⋯⋯!!”

       

       유리 랜스터는 김루루의 머리를 마구마구 쓰다듬었다. 오대수는 그 모습을 보고 속이 더부룩하고 아니꼬워서, 유리의 손을 쳐 내고 김루루를 당겨 왔다.

       

       “⋯⋯⋯⋯.”

       

       “⋯⋯⋯⋯.”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질 무렵.

       

       문밖에서 즈위디 벤스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방에 멋진 물건이 많습니다! 멋진⋯⋯ 약도요. 저급품은 창고에 보관하지만, 고급품은 제 방에 따로 보관하고 있거든요.”

       

       “다른 귀족의 컬렉션을 관람하는 건 즐거운 일이지. 초대에 감사하오.”

       

       “⋯⋯⋯⋯!!”

       

       오대수와 유리 랜스터가 빠르게 방 안을 훑었다. 침대 아래, 창문, 천장 구석, 책상 아래, 그리고 옷장.

       

       옷장?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 랜스터가 금고를 닫아 두고 카펫을 도로 정리하는 사이, 오대수는 김루루를 옆구리에 끼고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앗⋯⋯!!”

       

       “소리 내지 마.”

       

       그리고 비좁은 옷장 안에 추가로 유리 랜스터가 들어왔다. 문을 닫았다. 옷장 안에는 어둠이 드리웠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날카로운 순애 각을 보았다. 

       

       아리따운 여자에게 추근덕대고 다니더라도 유리 랜스터의 본질은 순애파. 그녀는 일부러 오대수를 등으로 밀었다.

       

       “너⋯⋯!!”

       

       “좁아서 그렇습니다. 두 분, 좀 더 붙어 보시죠.”

       

       “이미 충분히 붙고 있어⋯⋯!!”

       

       “서로의 배꼽 사이에 공간이 남잖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꾹꾹.

       

       물리적인 외압에 의해, 오대수와 김루루는 서로 빈 공간이 남지 않게 딱 붙어버렸다. 맞붙은 가슴을 통해 서로의 심장소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루루는 조용히 소곤거렸다.

       

       “나, 난⋯⋯ 괜찮으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 하지 마⋯⋯!”

       

       “쉿.”

       

       유리 랜스터는 한창때의 남녀 마음에 폭풍을 일으켜놓고, 옷장 틈새 사이로 바깥을 염탐했다. 즈위디 벤스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약이 담긴 상자를 열며 상품을 소개했다.

       

       “이게 바로, 한 알로 사흘 밤낮을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허어⋯⋯.”

       

       영업의 대상은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이었다. 요새 도통 서지 않는 남자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

       

       유리 랜스터는 숨을 깊게 빨아들였다. 기억에 남은 익숙한 냄새가 났다. 마약으로부터 나는 냄새였다. 

       

       몽야환(夢惹丸).

       

       혹은, 『서큐버스의 초대장』.

       

       서큐버스의 체액을 정제하여 만드는 약으로, 복용한 자가 깊은 잠에 빠지도록 유도하며, 몽마가 침입할 수 있도록 정신을 활짝 여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냄새로 유추하건대 약의 순도는 최상에 가깝다.

       

       그리고, 이만한 몽야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서큐버스 퀸의 체액뿐. 

       

       서늘하게 뜬 유리 랜스터의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감돌았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수확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단서를 발견하게 될 줄은.

       

       사지를 찢어 죽이기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금, 즈위디 벤스톤의 목에 사슬을 걸고. 약의 출처를 느긋하게 물어보면 종적을 쫒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저기, 무슨 일 있어?

       

       귓가에 속삭이는 나비의 목소리에, 유리 랜스터는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래, 자색 마탑주가 지켜보고 있었지. 지금은 작전 중이고.

       

       “⋯⋯괜찮습니다.”

       

       유리 랜스터는 입술만 달싹거려 자색 마탑주에게 말을 전하고.

       

       조용히 기다렸다. 조용히.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

       

       벤스톤 백작의 별장 1층, 정원.

       

       오후 12시 40분 경.

       

       유리 랜스터는 장부를 흔들면서 말했다.

       

       “확보한 장부는 상부에 직통으로 올려, 최대한 빨리 움직이도록 해보겠습니다. 신변 보호가 필요하십니까, 로데루스?”

       

       “괜찮아. 오히려 아무것도 알리지 마라. 공작에게 의심을 사서는 안 돼.”

       

       “⋯⋯오대수는 내가 지켜줄게!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래, 고맙다 김루루.”

       

       김루루는 실제로 수도기사단이 『푸른 장미』를 쫒을 때마다,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서 그를 놓아주었다.

       

       덕분에 『푸른 장미』는 승화급의 강자라는 괴소문이 돌아서 돌아버릴 것 같다는 게 문제지만. 

       

       “그럼, 습격 작전 때 다시 보겠군요.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2황자님이 안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신다면, 당장 새벽에라도 움직일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시길.”

       

       “확인했다.”

       

       유리 랜스터는 고개를 끄덕이고 밤의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제 둘만 남았다. 김루루는 잠깐 눈치를 보다가.

       

       “⋯⋯시, 시간 남았으면 우리, 같이 춤이라도 출까?!”

       

       “⋯⋯춤 신청은 남자 쪽에서 해야 하는 거다.”

       

       “오, 오대수 여자잖아!”

       

       “내 말은, 그런 말이 아니라⋯⋯!!”

       

       결국 췄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넉넉하게⋯⋯ 아유, 예, 슬슬 생색은 그만 낼 때 됐죠! 언제나 제 변변찮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어기, 조회수 300만 달성 도전과제를 완료하면, 명함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고걸 신청을 해가지고 요전번에 받았는데.
    이름 아래에 문구를 적을 수 있드라고요. 그래서 친구의 아이디어를 빌려 ‘유어 프렌드’ 적어달라고 신청을 넣었습니다.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감사드립니다 마이 프렌즈. 내일 푹 쉬고,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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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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