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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완전 완전 착하신 분!

         

       “경매 때 금화 1개? 그거 때문에 부른 건 아니야. 오히려 네 눈부신 수완을 듣고 블로섬이 생각나서 기분이 좋아졌었지.”

         

       턱을 괸 자세의 황제가 선선히 웃으며 손사래 쳤다.

         

       이렇게 마음이 넓으실 수가!

         

       완전 완전 따듯한 황제 폐하!

         

       황제가 포크로 사과 조각을 찔렀다. 그러더니 대기하던 시녀에게 내밀었다. 테이블을 돌아온 시녀가 파스텔에게 사과 포크를 건네줬다.

         

       “이것도 먹어봐. 캐머롯 가의 사과인데 제철이라고 맛있게 잘 익었어.”

       “와아!”

         

       분홍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저 멜리사네 사과 좋아해요!”

       “멜리사?”

         

       황제가 관심 밖의 주제를 들은 듯 기억을 되짚었다.

         

       “아, 차기 대마법사? 투자금 대비 성과가 잘 나오긴 했지. 좋아하는 품종이라니 잘됐네. 맛있게 먹어.”

       “네에!”

         

       파스텔은 완전 친절한 식사 자리에 볼이 발그레해졌다. 작은 접시에 뿌려둔 마석 가루를 콕 찍은 다음 사과 조각을 베어 물었다. 아삭이는 소리가 울렸다. 새콤달콤한 과육이 입안을 채웠다.

         

       우왕! 우왕!

         

       사과야! 사과사과!

         

       빵빵한 포만감이 찾아왔다.

         

       연어연어 스테이크도 맛있었고!

         

       토마토마토 스프도 좋았어!

         

       그 외에 이것저것 나온 초록초록 샐러드라거나 이런 것도 소스가 완전 상큼새콤 맛있맛있!

         

       경매 건이 너무 찔려서 차마 기대하지 못했지만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황실 만찬이야!

         

       최고급 식재료에 정상급 셰프가 경력과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해 맞춤 요리해 준 식사!

         

       혓바닥이 생애 동안 이것만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하는 진수성찬!

         

       뭔가 드디어 본래 받아야 할 대우를 받게 됐다는 만족감이 들어!

         

       허억.

         

       파스텔은 깨달으며 눈이 동그래졌다.

         

       나, 황실 체질인가 봐.

         

       왜 후작가에서 태어났을까? 황족이어야 하는 거 아님? 기왕이면 1순위 계승권자로.

         

       태생을 이해할 수가 없음.

         

       “잘 먹네. 야영할 때의 블로섬이 생각나고 보기 좋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초대할 걸 그랬어.”

         

       황제가 턱을 괸 채 미소 지었다.

         

       파스텔은 사과를 우물우물 꿀꺽 삼켰다.

         

       “저는 언제든지 좋아요!”

         

       만찬 초대 많이많이!

         

       “그럴까?”

       “네! 좋아요! 좋아요!”

         

       야호!

         

       황제가 웃었다.

         

       “하지만 파스텔 후작은 하늘섬에서 할 일이 많지 않아?”

       “그거언.”

         

       그렇긴 행.

         

       “그렇네요.”

         

       파스텔은 살짝 침울해졌다.

         

       황제 폐하가 이렇게 착하신 줄 알았다면 마석 가격이 저렴하다고 변방 하늘섬에 정착하는 게 아니라 황궁으로 달려가 구조 요청했을 텐데.

         

       이건 쪼끔 악마님의 판단 미스 같아.

         

       뿌뿌.

         

       황제 폐하께 도움을 요청하자고 말해주셨다면 많은 문제가 수월하게 해결됐잖아요!

         

       악마님이 질색하는 밀무역도 안 해도 되고!

         

       정말이지! 정말이지! 뿌뿌-!

         

       물론 생명줄을 남의 자비에 맡기면 이용당하기 딱 좋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착한 황제 폐하가 그럴 리 없으니까!

         

       사실 악마님은 내가 고생하는 걸 즐기시던 게 아닐까?

         

       뿌우.

         

       친구도 많이 사귀고 즐겁긴 했지만 호르몬 친구에 의지해 줄타기 하는 삶이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더 쉬운 길이 있다면 선택지의 존재 여부라도 알려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뿌뿌.

         

       갑자기 올라오는 반항심.

         

       악마님이 먹을 거 챙겨오신다고 했던가?

         

       어차피 배도 부르니 한 입도 안 먹어야지!

         

       헤헤.

         

       “먹으며 들어.”

         

       황제가 손짓하자 시녀가 아예 그릇째 사과 조각들을 가져다줬다.

         

       파릇파릇 사과!

         

       마석 후추통을 돌려 가루를 솔솔 뿌리고 포크로 콕 찔러 와앙~! 베어 물었다.

         

       아삭아삭!

         

       “본래는 철도부설권 때문이 아니라 벨라몬트 가에 변고가 생긴 바람에 파스텔 후작의 협조를 구하고자 부른 거야.”

         

       오잉.

         

       갑자기 등장하는 벨라몬트 가문.

         

       앨시어 벨라몬트가 뭔가 말하면 멜리사가 귀를 세우고 신경 쓰듯 입안 속 사과 친구도 갑자기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래서 파스텔은 그냥 사과 친구를 아삭아삭 씹었다.

         

       사과 친구: 으아악!

         

       사과 친구가 조각나다가 깨꼬닥했다.

         

       미안!

         

       하지만 사과 친구까지 이 대화에 끼면 정신없잖아! 그냥 조용히 뱃속으로 들어가라구!

         

       응응!

         

       사과 시체를 꿀꺽 삼켰다.

         

       “벨라몬트 가문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직 숨기고 있지만…….”

         

       황제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장남이 죽었어.”

         

       으에?

         

       장남이면 아마 차기 가주 아닌가?

         

       그런 사람이 사망?

         

       으에에?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한 사유는 아직 조사 중이긴 해도 장남이 과격한 마족들에게 앨시어 벨라몬트의 암살을 요청했었다네.”

         

       과격파 마족이라면, 그 산탄총 들고 사격하던 무서운 사람들?

         

       “그런데 너무 과격한 아카데미 테러까진 예상 밖이었는지 테러 직후 거래를 끊어버렸고, 거기에 반발한 마족들이 찾아와 장남을 보복 암살해 버렸어. 거친 총격으로 고기 반죽을 만들었다나.”

         

       으에에!

         

       고기 반죽……!

         

       파스텔은 양손을 떨었다. 손에 쥔 사과 포크가 달달 떨렸다.

         

       완전 무서운 사람들!

         

       황제는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나는 마족을 특별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이러면 과격파 단속을 하긴 해야 해서 파스텔 후작을 부른 거였지.”

       “저, 저요?”

         

       황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후작은 아카데미 총장 대행도 뽑고 기사단도 정리하며 가문 재건을 위해 열심히 했으니까. 크래프트 가문이 원래 하던 일이기도 하니 적임자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큰 권력에는 큰 의무가 따른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산탄총 사격이 취미인 과격파를 단속하는 일 같은 무서운 건 하기 싫은데요오!

         

       “그런데 원래는 블로섬을 닮았다는 얼굴도 볼 겸 소소한 목적으로 부른 거였는데…….”

         

       황제가 시녀에게서 편지지를 받았다.

         

       뭔가 익숙한 편지였다.

         

       구체적으론 엘리가 마왕(가짜) 발견의 희소식을 온건파 핵심에 은밀히 알리겠다고 작성하던 암호 편지와 비슷했다.

         

       어라라.

         

       파스텔은 아직 듣지도 않았는데 식은땀이 나는듯했다.

         

       “후작이 오는 동안 급보가 왔어.”

         

       편지지가 살랑였다.

         

       “선황이 신생아를 100만 명가량 없앴는데도 결국 마왕은 안 죽었다네. 그것도 마족이 신병을 확보한 상태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던 얼굴과 별개로 다소 무관심해 보이던 금색 눈동자가 냉랭해졌다.

         

       “이러면 소소한 사안이 아니게 되지.”

         

       으아아!

         

       엘리이!

         

       기밀이 다 새어나가고 있는데?!

         

       너희 파벌에 스파이 있는데?!

         

       분홍 눈동자가 흔들렸다.

         

       파스텔은 허둥대며 살짝 과장되게 손뼉을 짝 부딪쳤다.

         

       “그렇게나 큰일이!”

         

       사악한 마왕이라니!

         

       정말 큰일!

         

       너무 큰일!

         

       진짜진짜 착한 파스텔은 백만 배 공감할 수 있었다. 얼마나 공감되는지 여기서 당장 뛰쳐나가 하늘섬에 돌아가고 싶었다.

         

       마왕 파스텔 살려……!

         

       “걱정이 많아. 후작은 블로섬에게 안 배워서 모르겠지만 예언엔 마왕의 등장과 함께 제국의 붕괴도 나와 있어.”

         

       황제가 나른하게 한숨 쉬었다.

         

       “붕괴가 단숨에 가능하려면 지리적으로 마계 단독으론 안 되니 제국 대귀족 중 대규모 사병을 보유한 누군가가 마왕에 붙어야 하는데, 감이 안 잡히거든.”

         

       허억, 배신!

         

       파스텔은 단번에 화난 표정이 됐다. 작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콩 찍었다.

         

       콩-!

         

       “그런 나쁜 사람이!”

         

       마왕 말고 그 나쁜 배신자부터 찾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렇네. 나쁜 사람이지. 그래도 마침 잘됐어. 적임자를 불렀잖아? 마왕 수색에 크래프트 가문만큼 안전한 적임자는 없지?”

         

       오잉.

         

       황제가 턱을 괴며 미소 지었다.

         

       “마왕에 붙고 싶어도 과거사 때문에 붙을 수가 없으니까. 블로섬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이렇게 돌아오다니. 참 아이러니하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스텔이 얼결에 따라 일어나자 어느새 들어온 기사에게서 검을 받더니 파스텔 앞에 섰다.

         

       “하늘섬 총독직을 부활시키고 그 자리에 크래프트 후작을 임명한다.”

         

       오이잉.

         

       “그리고 총독에게 마계 무역상 연합 주식회사의 사병과 그 제반 사항을 운용할 권한을 주겠다. 하늘섬과 마계에서 마왕 색출에 전념하도록.”

         

       황제의 검이 건네졌다.

         

       허억.

         

       파스텔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파스텔 총독 각하.

         

       최고 권력자가 인정한 진짜 권력자.

         

       법률적으로 제도적으로 정치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권력자.

         

       볼이 발그레졌다.

         

       오늘부터 파스텔 총독 각하!

         

       산탄총 쏘기가 취미인 마족과 부딪혀야 하는 무서운 미래는 머릿속에서 휘리릭~ 사라졌다.

         

       남은 건 분홍분홍 파스텔에 걸맞은 분홍 미래뿐이었다.

         

       분홍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어디서 들은 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으로 황제의 검을 받아 들었다.

         

       “명을 받듭니다.”

         

       손바닥에 검의 무게가 느껴졌다.

         

       넘겨받게 된 권력의 무게처럼 무거운 감촉이었다.

         

       파스텔은 그 무게만큼 감동해 버렸다.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평소에 황제 폐하는 어쩜 저리 황제답게 태어나셨는지 생각하며 존경했는데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충신을 알아보는 혜안까지 갖추신 게 분명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나도 저런 권력자가 될 수 있었으면!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한치의 마음도 변치 않는 충성심!

         

       마왕!

         

       이런 황제 폐하께 위기감을 주다니!

         

       나쁜 마왕!

         

       지엄한 명을 받들어 너를 체포하고 말겠어!

         

       얍! 얍!

         

       머릿속에 배신이라는 단어는 한 톨도 존재하지 않는 충신 파스텔은 굳게 다짐했다.

         

       사악한 마왕!

         

       이 충신 파스텔이 용서치 않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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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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