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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아럇―!!”

     

    기슈타가 패기를 뿜어내며 설인 대장에게 달려들었다.

     

    성인 남성 둘이 달려들어도 들기조차 버거운 거대한 철도끼를 나무몽둥이처럼 신속으로 내리친다.

     

    ―콰아앙!!

     

    천둥이 내리친다.

     

    충격파가 일며 여파로 그들이 서 있던 빙판에 금이 가고 얼음이 튀었다.

     

    ‘또 막았나!’

     

    으득, 기슈타가 이빨을 갈았다.

     

    설인 대장은 빙하족 중에서도 한층 진화한 상위 개체, 예티였다.

     

    한 마리가 나타나면 하룻밤 사이에 도시 하나가 사라진다는 재해급의 마물이다.

     

    지능적으로도 인간과 거의 유사할 정도라 야만인으로 분류될 정도다.

     

    ‘단단하다.’

     

    몇 번의 합이 지나갔지만 유효타는 넣지 못했다. 예티가 양손에 들고 휘두르는 거대한 광석 기둥이 지나치게 튼튼했다.

     

    더욱이 악마의 피로 광화한 적의 근력은 기슈타를 뛰어넘고 있었다.

     

    ―후우우우우!!

     

    예티가 기둥을 휘두른다. 묵직한 공격을 2합 방어해내는 기슈타였으나.

     

    “윽!”

     

    3격째를 복부로 받아내고 나가떨어진다.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리고 도끼로 땅을 찍어 착지해낸다.

     

    “하앗.”

     

    욱신거리는 통증이 뇌수를 덮친다. 뼈가 몇 개 부러진 듯했다.

     

    ―후! 후!

     

    먹인 일격에 기세를 부리는 예티.

     

    “아리리리!!”

     

    기슈타는 오히려 더 크게 포효하며 적의 기세를 짓눌렀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설인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침소를 중심으로 방어 진형을 펼치긴 했어도 얼마 버티진 못할 것이었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라스가 어머니를 치료하러 갔다.

     

    어머니가 눈을 떴다고 했다. 완치는 코앞일 것이었다.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해서야 천둥족의 이름이 아깝다.

     

    “아랴!!”

     

    멈추지 않고 예티와 경합을 벌이는 기슈타.

     

    싸울 때는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이기면 고기를 먹는다, 지면 잡아먹힌다.

     

    야생의 당연한 법칙이다.

     

    그저 지지 않으면 될 뿐.

     

    지금껏 그녀와 그녀의 부족민들이 지켜온 단순한 원칙이었다.

     

    ‘…하지만.’

     

    제국의 외부인들에게 물들어 버렸을까.

     

    조금은 다른 생각이 흘러들어 오롯하게 전투에 집중할 수 없던 기슈타였다.

     

    ‘라스가 어머니를 고치면 어머니도 이 땅을 떠난다.’

     

    이 싸움을 마지막으로, 자신이 얼음 평원을 지켜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애초에 공격해오는 적도 없어질 것이다.

     

    이런 척박한 얼음의 땅에 누가 용건이 있어 찾아오겠는가.

     

    그럼 그 다음엔?

     

    자신은 이 땅을 떠나야 할까, 떠난다면 부족민들과 함께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지.

     

    아니면 여기에서 계속 살아야 할지, 그럴 이유가 있기는 한지.

     

    태어나 오랜만에 생각이 많아졌다.

     

    마치 저 아래쪽에 사는 평범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기슈타는 라스를 따라가고 싶었다.

     

    라스는 아래 세상이 인정머리 없는 곳라고 이야기 해줬지만, 그와 함께라면 즐거울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라스는.

     

    ‘좋은 남자야.’

     

    그에게 이미 정해진 인연이 없었더라면 진즉에 먹어치웠으리라.

     

    남의 먹이는 손대지 않는다. 이미 라스의 몸은 황금의 소녀가 자신의 체취를 가득 묻혀놨다.

     

    용은 그 오랜 삶 속에서도 오직 서로 한 개체와만 짝을 짓는다. 강한 종족임에도 숫자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라스가 와 있는 동안은 꽤 즐거웠다.

     

    그가 평야에 찾아온 첫 외부인인 건 아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을 갖게 해준 이로는 처음이었다.

     

    처음 사귄 바깥 친구였다.

     

    그러니 그에게도 돌아갈 땐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게 해주는 게 응당 도리였다.

     

    그를 위해서 눈앞의 적을 쓰러트려야 했다.

     

    “아럇!!”

     

    쾅, 쾅!

     

    기슈타의 도끼가 더욱 빠른 궤적을 그리며 맹공을 이어갔다.

     

    연속공격에 당황한 예티가 방어 도중 움직임이 멈추었다. 기슈타의 계속된 압박에 발이 얼음 밑으로 박혀버린 것이었다.

     

    쿠웅!

     

    서로 휘두른 강력한 일격에 도끼와 기둥, 두 무기가 동시에 공중을 날았다.

     

    콰직, 뒤쪽에 박혀버리는 도끼.

     

    도끼를 주우러 갈 것인가, 적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인가.

     

    기슈타는 망설이지 않고 예티에게 달려들어 양팔로 허리를 꽉 졸랐다.

     

    ―후우우욱!!

     

    두꺼운 모피와 살을 뚫고 우드득, 예티의 척추에 금이 간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예티가 쾅쾅, 기슈타를 마구 두들겼다.

     

    맨몸으로 펼치는 근접 소모전.

     

    아직 기슈타에게는 무기가 하나 더 있었다.

     

    “지키는 자여!!”

     

    기슈타의 부름에 응답해 타냐가 크게 스텝을 밟았다.

     

    “흡.”

     

    섬광이 그어진다. 석영처럼 예리하게 정제된 검기가 지나가고.

     

    스륵, 예티의 두꺼운 피부에 금이 갔다.

     

    쿵, 거대한 덩치가 쓰러진다.

     

    기슈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움츠렸던 허리를 바로 폈다.

     

    “…하아.”

     

    “틈을 만들어준 덕분이오.”

     

    타냐와 기슈타가 주먹을 부딪쳤다.

     

    큰 산은 넘었다.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대장은 쓰러트렸으나 아직 설인은 수도 없이 있었다.

     

    침소에선 천둥족과 설인들이 얽혀 난투를 벌인다.

     

    누가 봐도 숫자는 이쪽이 훨씬 불리했다.

     

    천룡의 마나에 이끌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다. 악마의 피에 감염되어 광폭화까지 되었으니 죽기 직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대장을 잃은 사실도 모를 터였다.

     

    지름길은 없다. 하나하나 붙잡아 머리통을 부숴버릴 뿐.

     

    기슈타가 부상당한 몸을 억지로 이끌고 움직일 때였다.

     

    ―두두두두!

     

    멀리서 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평야 남쪽이다. 갑옷을 입은 수백 명의 기사가 말을 타고 진격해오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다! 전투태세로!”

    “적은 털로 덮인 야만족이다! 여성은 아군이다! 오인하지 마라!”

     

    중대장의 지휘하에 검과 창을 꺼내든다.

     

    “이건.”

     

    “도착했군. 선생님의 병력이오.”

     

    “전부 라스의 부하인가.”

     

    기슈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선생님의 호위로 돌아가겠소. 설인을 마저 부탁하오.”

     

    기슈타가 움직이려는 타냐의 팔을 잡았다.

     

    “나도 함께 가겠다.”

     

     

     

    ***

     

     

     

    “바깥 상황은?”

     

    “중대가 도착한 덕에 상황은 호각. 버텨내고 있습니다.”

     

    “좀 더 페이스 올리자고.”

     

    나는 의사들과 함께 마무리로 치유주문을 시전하고 있었다.

     

    ―――――――――――

    · 이름 : 천룡 칼라무트

    · 체력 : 1291 / ????

    · 상태 : 회복 중

    ―――――――――――

     

    부상 부위의 핵심 치료는 얼추 다 끝났다. 치유주문으로 체력을 채우고 보이지 않는 잔부상을 고치면 천룡은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입에 사탕을 물려주니 얌전해지기도 했다. 덩치가 덩치다 보니 들이부은 수준이지만.

     

     

    바깥 전투의 여파로 천장이 울리고 먼지가 계속 떨어진다.

     

    한창 치유주문에 집중하는데 별안간, 목소리가 들렸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천룡이 예고도 없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 바람에 침소 기둥이 몇 개 부서졌다.

     

    의사들이 모두 깜짝 놀라 기겁했다.

    설마 여기서 날아오를 생각인가?

     

    “비상! 전원 밖으로 대피해!”

     

    “아, 예!”

     

    의사들을 먼저 밖으로 내보내고 내가 천룡에게 말했다.

     

    “부상의 원인은 제거했으니 쉬면 자연치유가 될 겁니다. 당분간 안정하시고요.”

     

    ―훗.

     

    천룡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창세룡은 대륙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절대적이다. 설령 인족이나 마족 한쪽이 절멸하는 일이 있더라도.

     

    “흠, 그래요.”

     

    ―하지만 그대가 요청할 때, 나는 오직 한 번 그대를 도와줄 것을 약속하마. 필멸자여, 이름을 밝혀라.

     

    “라스 고트베르크, 의사입니다.”

     

    ―기억했다. 사탕도 준비해 놔라.

     

    “아, 그 소원권 말인데 지금 써도 되면…”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천룡이 거대한 날개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콰아앙!

    천장을 뚫고 순식간에 날아오르는 천룡.

    무색의 마나가 아름답게 그녀를 중심으로 휘몰아친다.

     

    “가는 길에 마왕이나 치워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 정도 소원까지는 안 들어주나. 하긴 돌도 일곱 개가 아니라 하나밖에 없고.

     

    “돌.”

     

    폭풍석. 대문의 잠금부에 박힌 채다.

     

    천룡이 날아가면서 다 박살내놔서 이제 잠금도 뭣도 의미는 없어졌지만.

     

    ―쿠르릉!

     

    덕분에 여기도 무너지기 직전이다.

     

    “라스!”

     

    반가운 목소리다. 기슈타였다.

     

    그녀는 천룡이 부수고 나간 천장 구멍에서 훌쩍 뛰어내려 내 앞에 착지했다.

     

    내 허리를 휘감고 층계를 순식간에 오르는 기슈타.

     

    “기슈타, 천룡은?”

     

    “하하하하! 어머니는 떠나셨다! 침소를 더럽히는 해충들이 불쾌하셨는지 빛을 발해 빙하족을 한 번에 청소하시고는 서쪽으로 훨훨 날아가셨지!”

     

    설인은 전멸시켰나.

     

     

    ―――――――――――

    No. 035 : 야만족 침공 8% → 0%

    No. 039 : 폭풍의 눈 4% → 0%

    No. 064 : 병력부족 12% → 0%

    No. 070 : 대악마 군세 11% → 0%

    13개 엔딩이 삭제되었습니다.

    ―――――――――――

     

     

    “후우.”

     

    좋아, 됐다.

     

    이로써 대악마가 대륙에 나타날 일도 없어졌고, 야만족과 싸우게 되는 이벤트도 사라졌다.

     

    쓰러트려야 할 사천왕 하나가 줄고, 변수가 많은 야만족 이벤트가 없어진 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었다.

     

    “라스, 여기는 곧 무너진다. 꽉 잡아라. 탈출한다!”

     

    “잠깐, 폭풍석을 가져가야 해.”

     

    “그게 있었지!”

     

    문을 나서는 찰나, 기슈타가 급히 브레이크를 잡고 몸을 틀었다.

     

    ―쿠르릉!

     

    그 순간 바닥이 무너지며 기슈타가 문짝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어이!”

     

    나는 난간을 붙잡고 섰다.

     

    매캐한 먼지가 일고 무거운 돌덩이의 잔해가 시야를 가리던 찰나.

     

    콰앙!

     

    돌무더기 안에서 기슈타가 벌떡 일어서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부상도 잔뜩 입은 채로 무너지는 석문 아래로 뛰어들어 꽤 아플 텐데, 그녀는 아랑곳 않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성큼성큼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꽉 쥔다.

     

    “여기 있다, 라스. 네게 중요한 물건이었지.”

     

    내 손에는 그녀가 가져온 폭풍석이 들려 있었다.

     

    “거 참 터프하네.”

     

    막무가내도 정도가 있지.

     

    폭풍석을 사이에 두고 겹쳐진 그녀의 손을 다시 한 번 잡아 악수를 청했다.

     

    “고마워, 친구. 잘 쓸게.”

     

    “하하하! 물론 그래야지!”

     

    나와 기슈타는 함께 계단을 올랐다.

     

     

    지상으로 나아간다.

     

    “선생님,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타냐와 브루노가 나를 맞아주었다.

     

    월광궁의 의사들도.

     

    그리고 설인 토벌에 성공해 승리에 도취된 기사단이 있었다.

     

    “끝났구만.”

     

    춥디 추운 외지에서 사람도 아니고 용을 고치겠다고 얼마나 고생한 건지.

     

    지친 몸을 어서 벽난로 뗀 방에 눕혀 쉬이고 싶었다.

     

    “끝났다, 라스.”

     

    기슈타가 내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어딘가 아련하게 얼음의 평야를 바라봤다.

     

     

     

     

     

    그리고.

     

    상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주의

     

    · 당신은 기로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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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엔딩 리스트

     

    · ■■■ ■, 다시 ■■에서   21%

    · 녹아내려, ■■고, 이어지다 85%

    · ■■■ ■■                       0%

     

     

     

     

     

     

     

    · 엔딩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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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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