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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2주 전.

       엘라의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차린 단원들은 그녀가 다시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여서 회의를 했다.

         

       그녀가 처한 상태에 대해서는 마야가 설명을 맡았다.

         

       “인간의 정신에 관한 신비는 다섯 가지 단계로 구분돼요.”

         

       표층의 상(想), 활발한 염(念), 투영의 정(精), 구조화된 의(意), 본질의 신(神).

         

       여기서 1단계인 ‘상’은 환상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신비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시각적인 정보로 구현하는 데 주로 사용됐다.

         

       “사신의 낫이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3단계인 ‘정’이에요.”

         

       서커스단 생활을 하면서 마야는 말을 쉽게 풀어서 해 주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단원들은 여전히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했다.

         

       다들 이해하지 못해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호기심 많은 우몬만은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덕분인지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요! 마야 누나, 아까 기억은 4단계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사실 사신의 낫이 건드리는 건 기억이 아니야. 감정이지. 사신의 낫에 간접 공격을 당했을 때, 어땠는지 기억나?”

         

       그녀의 질문에 단원들은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이상할 정도로 우울했어요.”

       “옛날에 있었던 안 좋은 일이 막 떠오르고…….”

       “핫핫, 재밌는 농담을 아무리 생각해내려 해도 좌절되더군요.”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의 낫은 엄밀히 말해 여러분의 기억을 끄집어낸 게 아니에요. 감정을 자극해서 여러분이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끔 유도한 거죠.”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말해준 정신계의 신비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단계인 ‘상’은 상상.

       2단계인 ‘염’은 사고.

       3단계인 ‘정’은 감정.

       4단계인 ‘의’는 기억.

       5단계인 ‘신’은 영혼.

         

       정신계의 신비는 단계 순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즉, 상상은 사고에서, 사고는 감정에서, 감정은 기억에서, 기억은 영혼에서 나온다는 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4단계가 5단계에 기반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직접 겪고 있는 일이니까.

         

       “정신의 작용은 보통 정방향으로 작용해요. 하지만 가끔 역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해요. 사신의 낫에 직격당한 사람은 3단계인 ‘정’에 거름망이 생겨요. 행복한 기억이 아래 단계에 작용하지 못하도록 감정의 벽이 생기는 거지요. 기억 자체는 뇌 속에 보존되어 있지만요.”

       “아.”

         

       이해가 빠른 몇몇 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감정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게 그 말이에요. 4단계인 ‘의’ 속에 기억이 아무리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어도 3단계에서 왜곡이 생겨버리면 우리는 2단계에서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어요. 현재 부단장은 사신의 낫에 반전의 권능이 더해져 ‘불행한 감정’을 자극하는 기억이 걸러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부단장의 사고를……바꿔놓은 거죠.”

         

       그 사고의 변화가 어떤 행동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아까 모두가 봤다.

         

       마야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장님의 품에 달려드는 부단장의 모습.

       그리고 그걸 웃으며 받아주는 단장님.

         

       왠지……왠지……기분이 이상했다.

         

       “기억 자체가 삭제되었다면 복구하기 힘들어요. 5단계인 영혼에서 끌어와야 하니까. 하지만 3단계의 감정에 의해 가로막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뿐이라면, 문제가 좀 더 간단해지죠.”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감정에 큰 자극을 주는 거예요. 감정에 동요가 생기면 거름망 역시 흔들리죠. 심리상담사들이 감정을 자극해 잠든 기억을 끌어내는 방법이 이것이죠. 그러나 부단장의 경우에는 이 방법은 쓰기에는 위험해요. 사신의 낫에 당한 거니까요.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가장 확실한 치료 방법은 마법이에요. 아까 단장님에게 말씀드린 것처럼.”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도 그녀가 말한 이론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핵심적인 내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신계 마법에 능한 마법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단원들을 둘러보며 결론을 말했다.

         

       “다음 도시로 가면 베르그송 자작님에게 정신계 마법사를 수배해달라고 부탁할 겁니다. 일단 엘라 양이 기억을 되살릴 때까지는 그녀가 기억하지 못 하는 과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합시다. 마야 양이 말한 대로 감정에 자극을 주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단원들 모두 단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자조했다.

         

       방금 그들에게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마야가 말한 치료 방법에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엘라의 억눌려있던 기억이 치료하는 마법사에게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원더스타인의 패악질 또한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문제를 처리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는 그 치료를 시도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안건의 결론이 나자, 회의는 두 번째 안건으로 넘어갔다.

         

       “저희 몸을 치료해주실 수 있나요?”

         

       다들 말을 꺼내길 주저하고 있는데 우몬이 단도직입적으로 들어왔다.

       단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

         

       원더스타인은 아까부터 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속으로 고민했다.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는 그들을 치료할 수 없었다.

       그들의 타고난 천형은 시스템의 힘으로도 조작할 수 없는 ‘고유 특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사실을 선뜻 털어놓기 힘들었다.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에는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희망이 넘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저들은 실망할 것이다.

         

       아니, 일단 자신의 말을 쉽게 믿지도 않을 것이다.

       애원을 하거나 거래를 하려 들지도 몰랐다.

       실망은 그다음 일이었다.

         

       보육원 친구들도 그랬다.

       누구보다 보육원 환경을 욕하고, 원장을 욕하고, 재단을 욕하고,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던 염세적인 아이들도 한 가지만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바로 그들의 몸을 치료해줄 수 있다고 약속했던 목사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이었다.

         

       목사가 경찰들에 의해 끌려가는 길을 막아서고 달려들던 장애인들을 두고 언론은 ‘사이비 종교에 세뇌당해서 그렇다’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피부가 일그러진 환자를 치료하는 목사님의 안수 치료.

       그것은 보육원 친구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공연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희망 포르노였다.

         

       다들 아마 어렴풋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환상에 취하는 걸 즐겼다.

         

       유튜브도 그렇지 않은가?

         

       <세계가 한국 정부에 고개를 조아리는 이유!>

       <백인 여자들? 한국 남자라면 껌뻑 죽는다!>

       <김치의 매력에 반한 외국 배우들!>

         

       말도 안 되는 통계와 부풀리기로 애국심을 불어넣는 소위 ‘국뽕 유튜버’들.

       사람들은 가짜 뉴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즐겼다.

         

       흠뻑 취하면서 잊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자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순간이지만 희망이라는 마약에 취하고 싶었다.

         

       목사가 정말 사기꾼이라는 증거들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교도 중에는 자살하는 이들도 많이 나왔다.

         

       교단에 바친 몇천만 원의 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몇 년 동안 매달려왔던 희망이 짓밟혔다는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이 하루 이틀 품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짐작은 사실이었다.

       단원들은 예전부터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의 능력이 뭔지 목격했을 때부터.

         

       물론 알고 나서는 한동안 그가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했다.

       무서움이 가시고 나서도 혹시나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올까 봐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혹시나 올 그날을 기다리며.

         

       그렇게 오늘이 왔다.

         

       원더스타인은 그들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네. 가능합니다.”

         

       그는 자신이 그런 대답을 한 것에 그 자신도 놀랐다.

       그리고 서둘러 이유를 찾아 붙였다.

         

       그편이 그들의 호감도를 올리기 쉬우니까.

       그편이 그들의 의욕을 불태우기 쉬우니까.

       그편이 그들을 통제하기 쉬우니까.

         

       그렇게 스스로 되뇌어 봤지만, 역시 가장 큰 동기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나왔다.

         

       그들의 희망을 꺾기 싫었다.

         

       그는 함성을 지르려는 단원들을 제지했다.

         

       “하지만 바로는 안 됩니다. 아직 부작용 없는 치료는 힘들어서요. 그러니까……앞으로 2년입니다.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오르는 걸 도와주세요. 그동안 저도 여러분의 몸을 정상으로 만들 방법을 더 연구해보죠.”

         

       그의 말에 단원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죠!”

       “왠지 그럴 거 같았습니다! 예전부터 의심했어요! 굳이 저희를 왜 모았나 싶었죠!”

       “너 저번에 단장님이 우리를 흑마법 제물로 쓸 거라고 말했잖아!”

       “윽, 내가 언제?”

       “핫핫, 단장님이 고생이죠! 저희는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혹시나 2년으로 시간이 부족해도 말하기 어려워하지 마세요!”

       “맞습니다! 10년 정도는 단장님의 수발을 들어드리겠습니다!”

       “그건 너무 길고!”

         

       회의는 왁자지껄한 상태로 끝났다.

         

       결국, 원더스타인은 ‘웃는 남자’에 대해 밝히지 못했다.

         

       그것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고, 또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것을 털어 넣을 각오를 했을 때는 나름 단원들과 더는 벽을 쌓아두기 싫다는 마음이 작용했다.

         

       하지만 벌써 2가지 기만을 해버렸다.

         

       엘라의 회복에 대한 것을 속였다.

       단원들의 치료에 대한 것도 속였다.

         

       여기서 “솔직히 말할 게 있어요.” 따위의 소리는 때려 죽어도 못하겠다.

       웃는 남자의 얼굴을 달고 있다고, 마음이 뻔뻔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그동안 괴물서커스단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엘라도 웃고, 단원들도 웃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원더스타인도

       ……웃었다.

         

       “단장님……?”

       “아, 유라크네 씨.”

         

       보라색 머리카락을 비녀로 묶어 올린 여인이 다가왔다.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최근 들어 가장 마주하기 편한 상대였다.

         

       그녀와 나누는 대화가 편했고, 그녀가 타주는 차가 편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눈빛이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숭배하는 것처럼 그를 바라보는 다른 단원들과 달리 그녀는 이전과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다른 단원들이 그가 한 약속에 들떠 있을 때, 유일하게 차분하게 굴었다.

         

       겉모습이나 기능에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지 않는 몸을 타고나서일까?

       그녀만은 그가 내건 약속에 흥분하지 않았다.

         

       “왜 그러시죠?”

       “그……엘라의 상태에 대해 연금술사님이 말씀하실 게 있다고…….”

         

       연금술사.

       그는 요즘 새로 급부상하고 있는 원더스타인의 또 다른 고민거리였다.

         

       예테린푸르크에 도착한 그는 아나이스에게 기억 치료에 대해 문의했다.

       물론 정신계 마법사를 섭외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아나이스가 제안한 것은 연금술 길드의 방식이었다.

       연금술 길드에는 약초를 태우고 약물로 향을 피워 정신계 신비에 작용하는 비전이 있다는 것이다.

         

       마야에게는 정신계 마법사를 구하지 못했다고 둘러대고, 연금술 길드의 고문을 초청했다.

       연금술 길드의 몇 안 되는 마스터 계급이라길래 제법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그는 연락이 간 지 며칠 만에 예테린푸르크에 도착했다.

         

       마치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아나이스 옆에서 조르고 있던 사람처럼.

         

       “영감님.”

         

       원더스타인은 별장 별관의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연금술 길드의 본초학 마스터이자 전직 토마토 온실의 관리자인 가스통 할리우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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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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