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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콰앙!

       

       엘프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대로 책상에 내리꽂았다.

       

       여러 마도구가 빛나며 피부 위로 얇은 역장을 형성한다. 나름의 방어 결계 같은 것이겠지.

       

       덕분에 상처 하나 없는 녀석이었으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해 눈이 동그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이름 모를 엘프의 눈앞에서 단검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하나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난 지금 너한테 뭘 물어보려는 게 아니야.”

       

       “그, 그럼 뭔데!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아?!”

       

       “이제부터 직접 알아내겠다는 소리였지. 그리고 무사한지 아닌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리디아 님이 정하는 거지.”

       

       퍼어엉!!

       

       내가 엘프녀의 머리를 내다 박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굉음. 사실상 폭발음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한쪽 벽이 허물어졌다.

       

       이 엘프녀는 전신에 마도구를 두른 것도 모자라, 상당한 실력의 호위까지 데리고 다녔다.

       

       내가 머리채를 휘어잡는 순간 개입하는 것도 당연한 일.

       

       하지만, 호위는 이쪽에도 있다. 장담컨데 이 판그레이브 전체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호위 기사가.

       

       “화살은 뽑지 말았어야지.”

       

       “지, 진짜 찌를 생각은 없었….”

       

       “시끄러.”

       

       퍽!

       

       “커헉!

       

       벽에 처박힌 채 피를 토하는 덩치 큰 엘프 궁수 눈나. 엘프답게 가슴은 없지만 대흉근은 엄청나게 펌핑한 그녀가 무어라 중얼거리려다 한 대 더 맞고 완전히 기절했다.

       

       쓰러진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다 이쪽을 돌아보는 리디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마워요 기사님!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도와주시겠어요?”

       

       “응.”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버티고 서는 리디아. 다만, 이런 광경을 보고도 끼어들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곳에 모인 이들이 하나같이 이름값 있는 클랜의 유망주와, 그 선배들이라 해도 주력이라 불릴 수준은 아니다.

       

       6층…하다못해 5층도 아니고 겨우 2층의 계층 수호자를 잡기 위한 브리핑. 길드 직원조차 대충 설명하고 넘기는데 고위 모험가가 올 이유가 어디 있는가.

       

       신입 뒤치다꺼리야 시킬 녀석이 넘쳐날 텐데. 애초에 여기까지 따라온 리디아가 특이한 거다.

       

       뭐어. 소란을 듣고 길드 소속의 모험가들이 몰려오겠지만, 그 전에 끝내면 그만이지.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 조용해진 방 안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죽일 생각은 없어. 아직은 말이야. 이 점을 잘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큿!”

       

       “난 지금 이브 씨를 찾고 있어. 그리고 넌 이브 씨의 행방을 알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그런다고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으음. 조금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네. 질문을 하는 건 나.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이해했지?”

       

       “퉷!”

       

       이게 뭐라고 오들오들 떨면서 침까지 뱉는 녀석. 잽싸게 목을 꺾어 피했지만 원치 않은 업계 포상에 기분이 팍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난 그냥 말로 끝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비협조적인 건지.”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3초. 상대방이 의아함을 느낄 시점에 기습적으로 단검을 내질렀다.

       

       노리는 것은 녀석의 왼쪽 눈 바로 위.

       

       카앙!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유니콘 단검이 대단해도 이만큼 겹겹이 쌓인 결계를 단번에 부수진 못한다.

       

       청량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퍼지는 불티.

       

       “힉! 흐이이익!”

       

       마치 눈앞에서 용접이라도 당하는 것 같은 녀석이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바둥댄다.

       

       “가만히.”

       

       “끼야아아아악!”

       

       침착하게 날뛰는 팔다리를 제압한 뒤에야 눈 위의 결계를 긁어대던 단검을 회수했다.

       

       “이, 이 미친놈이…!”

       

       “아이참. 이러면 제가 또 혀가 아니라 손을 쓸 수밖에 없잖아. 누나야. 우리 평화롭게 가자. 응?”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번에는 유니콘 단검을 녀석의 목 아래에 가져다 대고 톱질하듯 긁어대기 시작했다.

       

       카각. 칵. 카가각!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빛 알갱이. 안 그래도 이미 몇번 충격을 받았던 결계 하나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쨍그랑!

       

       “흐야아아악! 마, 말할게! 말할 테니까 멈춰!”

       

       “뭐를?”

       

       “뭐든! 물어보는 건 뭐든 답할 테니까!”

       

       “…쩝.”

       

       아직 결계가 세 겹은 더 남았는데 벌써 고분고분해질 줄이야.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말 잘 듣지.

       

       입맛을 다시며 단검을 회수하자 미친놈 쳐다보듯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 마구니로 가득 찬 뒤통수를 살살 단검으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름은?”

       

       “로, 로즈마리.”

       

       “나이는?”

       

       “125살.”

       

       “이러니까 장생종이란….”

       

       “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은…그래. 키는?”

       

       “177cm….”

       

       “어휴 크기도 해라. 그럼 쓰리 사이즈는?”

       

       “그…그런 게 대체 왜 궁금한 거지?”

       

       “됐으니까 대답이나 해.”

       

       단검의 검면으로 정수리를 콩콩 두드리자 빠릿해진 로즈마리가 다급히 대답했다.

       

       “몰라! 애초에 사이즈 조절 마법이 걸린 옷만 입어서 그런 거 신경 써본 적 없다!”

       

       “뭣.”

       

       이런 부르주아 자식.

       

       빨갛게 물드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신상 명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경험 인수는?”

       

       “경…험?”

       

       “야스 말이야.”

       

       “진짜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냐?!”

       

       “쓰읍. 대답 안 해?”

       

       “둘…아니, 셋! 이 나이 먹고 처녀일 리가 없잖나!”

       

       “머리카락 하나 뽑아. 판단은 네가 아니라 얘가 할 거야. 단검아 단검아. 진실을 알려주련?”

       

       유니콘 단검을 들이밀어도 전신에 밀착한 얇은 결계 때문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다. 하여, 머리카락을 하나 뽑으라고 시킨 것.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올 뽑는 로즈마리.

       

       녀석이 잡고있는 머리카락을 향해 단검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파앗!

       

       “흠. 그 나이 먹고 처녀인가.”

       

       “뭐뭣!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음해냐! 나는 비처녀란 말이다!”

       

       “허세는 안 통해. 이거 통짜 유니콘 뿔을 갈아 만든 단검이거든. 다른 건 몰라도 순결 여부는 확실하단 말이지.”

       

       “유니콘…? 거, 거짓말 마라. 그게 정말 유니콘 단검이라면 어떻게 네놈이 멀쩡히 잡고 있을 수 있는 거지?”

       

       “그야 내가 순결한 몸이니까?”

       

       “믿을 수 없다!”

       

       “못 믿겠으면 이브 씨가 마탑이랑 공방의 장인에게 맡긴 의뢰를 확인해 봐. 순도 높은 유니콘의 뿔로 단검을 만드는 의뢰가 있을걸?”

       

       “……!”

       

       이미 알고있던 건지 눈을 크게 뜨는 로즈마리. 그녀의 눈동자가 멍하니 순백의 검신에 집중된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검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화아아악!

       

       로즈마리 본인이 닿았을 때보다 몇 배는 밝은 빛을 뿜어내는 유니콘 단검.

       

       “이제 알았지?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나쁜 남자가 아냐.”

       

       “그런…그럼 대체 여왕님은 어째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축 늘어진 로즈마리. 이제야 제대로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은 녀석을 향해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리 사이에 오해가 바로잡혔으니,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게. 이브 씨는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아직 판 그레이브에 계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며 어딘가로 향하셨는데 기밀이라 어딘지는 나도 몰라.”

       

       “흐응. 그 뒤에는?”

       

       “뭐?”

       

       “판 그레이브에서의 일이 끝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건지 아는 거 있냐고.”

       

       “자세히는 들은 게 없지만, 엘븐 포레스트로 간다고 하셨어. 거기서 다시 한번 옥좌에 앉아 엘프를 위대하게 이끄실 거라고….”

       

       그리 말하는 로즈마리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광신에 가까운 충성심에 취한 사람처럼.

       

       로즈마리 녀석을 진심으로 이브를 생각하는 충신이라고 가정하면, 왜 그렇게 내게 공격적이었는지 이해가 간다.

       

       …솔직히 나도 내가 이브에게 좀 심했다는 자각은 있거든.

       

       다만 대체 왜 말도 없이 사라진 건지, 무얼 하려는 거길래 판 그레이브 어딘가에 숨은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이브라면 혼자 침울해져 있거나, 잠깐 가출해도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올 텐데 말이지.

       

       “진짜 몰라? 톱질 다시 한번 들어간다?”

       

       “저, 정말이래도! 극비 시설이라 아는 게 없을 뿐이지, 그곳에 그분이 계시는 건 확실하다!”

       

       “흠. 뭐, 좋아. 일단 그렇다고 치자. 나는 대체 어떻게 찾아온 거지?”

       

       “…너는 그 멍청한 쌍둥이를 믿나?”

       

       “…….”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지.

       

       레몬과 애플이 나쁜 놈들은 아니다. 근데 멍청한 녀석들이라는 점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떠벌리고 다녔다기보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를 흘려버린 거겠지.

       

       “에휴.”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로즈마리에게 물었다.

       

       “이브 씨의 위치나 목적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알겠어. 그럼 마지막 질문이야.”

       

       “휴우….”

       

       의외로 깊은 질문은 없어서일까. 로즈마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지.

       

       “판 그레이브에도 엘프들끼리의 회합이 있을 거 아냐? 그거 언제 어디서 열려?”

       

       “…….”

       

       “이것까지 모르겠다고 잡아떼지는 않겠지? 네가 지금까지 말한 정보를 보면, 너도 회합의 일원인 것 같은데 말이야.”

       

       “읏…!”

       

       당황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로즈마리.

       

       이 녀석이 모를 뿐, 엘프 고위직은 이브의 행방을 안다. 알고 있으니까 대화하던 게 로즈마리의 귀에 흘러 들어간 거겠지.

       

       그렇다면 그 연놈들을 찾아내 이브에게로 가는 길을 알아내면 된다.

       

       당초의 목적보다 훨씬 거친 방법이 되겠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법 아니겠는가.

       

       다만, 로즈마리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예상치 못한 것이긴 했다.

       

       “내, 내가 이번 미노타우로스 토벌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회합이 열릴 거다.”

       

       “? 너 하나 축하하자고 엉덩이 무거운 거물 엘프들이 움직인다고? 너 뭐 돼?”

       

       한참을 입술만 오물거리던 녀석이 단검의 반짝임을 보고 울상을 지었다.

       

       “나, 나는 크레이들 상회주의 딸이다!”

       

       “아.”

       

       현시대의 엘프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의 딸내미라고?

       

       이 쫄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절하러 가겠습니다…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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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EP.130





       콰앙!


       


       엘프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대로 책상에 내리꽂았다.


       


       여러 마도구가 빛나며 피부 위로 얇은 역장을 형성한다. 나름의 방어 결계 같은 것이겠지.


       


       덕분에 상처 하나 없는 녀석이었으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해 눈이 동그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이름 모를 엘프의 눈앞에서 단검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하나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난 지금 너한테 뭘 물어보려는 게 아니야.”


       


       “그, 그럼 뭔데!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아?!”


       


       “이제부터 직접 알아내겠다는 소리였지. 그리고 무사한지 아닌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리디아 님이 정하는 거지.”


       


       퍼어엉!!


       


       내가 엘프녀의 머리를 내다 박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굉음. 사실상 폭발음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한쪽 벽이 허물어졌다.


       


       이 엘프녀는 전신에 마도구를 두른 것도 모자라, 상당한 실력의 호위까지 데리고 다녔다.


       


       내가 머리채를 휘어잡는 순간 개입하는 것도 당연한 일.


       


       하지만, 호위는 이쪽에도 있다. 장담컨데 이 판그레이브 전체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호위 기사가.


       


       “화살은 뽑지 말았어야지.”


       


       “지, 진짜 찌를 생각은 없었….”


       


       “시끄러.”


       


       퍽!


       


       “커헉!


       


       벽에 처박힌 채 피를 토하는 덩치 큰 엘프 궁수 눈나. 엘프답게 가슴은 없지만 대흉근은 엄청나게 펌핑한 그녀가 무어라 중얼거리려다 한 대 더 맞고 완전히 기절했다.


       


       쓰러진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다 이쪽을 돌아보는 리디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마워요 기사님!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도와주시겠어요?”


       


       “응.”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버티고 서는 리디아. 다만, 이런 광경을 보고도 끼어들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곳에 모인 이들이 하나같이 이름값 있는 클랜의 유망주와, 그 선배들이라 해도 주력이라 불릴 수준은 아니다.


       


       6층…하다못해 5층도 아니고 겨우 2층의 계층 수호자를 잡기 위한 브리핑. 길드 직원조차 대충 설명하고 넘기는데 고위 모험가가 올 이유가 어디 있는가.


       


       신입 뒤치다꺼리야 시킬 녀석이 넘쳐날 텐데. 애초에 여기까지 따라온 리디아가 특이한 거다.


       


       뭐어. 소란을 듣고 길드 소속의 모험가들이 몰려오겠지만, 그 전에 끝내면 그만이지.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 조용해진 방 안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죽일 생각은 없어. 아직은 말이야. 이 점을 잘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큿!”


       


       “난 지금 이브 씨를 찾고 있어. 그리고 넌 이브 씨의 행방을 알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그런다고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으음. 조금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네. 질문을 하는 건 나.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이해했지?”


       


       “퉷!”


       


       이게 뭐라고 오들오들 떨면서 침까지 뱉는 녀석. 잽싸게 목을 꺾어 피했지만 원치 않은 업계 포상에 기분이 팍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난 그냥 말로 끝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비협조적인 건지.”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3초. 상대방이 의아함을 느낄 시점에 기습적으로 단검을 내질렀다.


       


       노리는 것은 녀석의 왼쪽 눈 바로 위.


       


       카앙!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유니콘 단검이 대단해도 이만큼 겹겹이 쌓인 결계를 단번에 부수진 못한다.


       


       청량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퍼지는 불티.


       


       “힉! 흐이이익!”


       


       마치 눈앞에서 용접이라도 당하는 것 같은 녀석이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바둥댄다.


       


       “가만히.”


       


       “끼야아아아악!”


       


       침착하게 날뛰는 팔다리를 제압한 뒤에야 눈 위의 결계를 긁어대던 단검을 회수했다.


       


       “이, 이 미친놈이…!”


       


       “아이참. 이러면 제가 또 혀가 아니라 손을 쓸 수밖에 없잖아. 누나야. 우리 평화롭게 가자. 응?”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번에는 유니콘 단검을 녀석의 목 아래에 가져다 대고 톱질하듯 긁어대기 시작했다.


       


       카각. 칵. 카가각!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빛 알갱이. 안 그래도 이미 몇번 충격을 받았던 결계 하나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쨍그랑!


       


       “흐야아아악! 마, 말할게! 말할 테니까 멈춰!”


       


       “뭐를?”


       


       “뭐든! 물어보는 건 뭐든 답할 테니까!”


       


       “…쩝.”


       


       아직 결계가 세 겹은 더 남았는데 벌써 고분고분해질 줄이야.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말 잘 듣지.


       


       입맛을 다시며 단검을 회수하자 미친놈 쳐다보듯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 마구니로 가득 찬 뒤통수를 살살 단검으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름은?”


       


       “로, 로즈마리.”


       


       “나이는?”


       


       “125살.”


       


       “이러니까 장생종이란….”


       


       “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은…그래. 키는?”


       


       “177cm….”


       


       “어휴 크기도 해라. 그럼 쓰리 사이즈는?”


       


       “그…그런 게 대체 왜 궁금한 거지?”


       


       “됐으니까 대답이나 해.”


       


       단검의 검면으로 정수리를 콩콩 두드리자 빠릿해진 로즈마리가 다급히 대답했다.


       


       “몰라! 애초에 사이즈 조절 마법이 걸린 옷만 입어서 그런 거 신경 써본 적 없다!”


       


       “뭣.”


       


       이런 부르주아 자식.


       


       빨갛게 물드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신상 명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경험 인수는?”


       


       “경…험?”


       


       “야스 말이야.”


       


       “진짜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냐?!”


       


       “쓰읍. 대답 안 해?”


       


       “둘…아니, 셋! 이 나이 먹고 처녀일 리가 없잖나!”


       


       “머리카락 하나 뽑아. 판단은 네가 아니라 얘가 할 거야. 단검아 단검아. 진실을 알려주련?”


       


       유니콘 단검을 들이밀어도 전신에 밀착한 얇은 결계 때문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다. 하여, 머리카락을 하나 뽑으라고 시킨 것.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올 뽑는 로즈마리.


       


       녀석이 잡고있는 머리카락을 향해 단검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파앗!


       


       “흠. 그 나이 먹고 처녀인가.”


       


       “뭐뭣!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음해냐! 나는 비처녀란 말이다!”


       


       “허세는 안 통해. 이거 통짜 유니콘 뿔을 갈아 만든 단검이거든. 다른 건 몰라도 순결 여부는 확실하단 말이지.”


       


       “유니콘…? 거, 거짓말 마라. 그게 정말 유니콘 단검이라면 어떻게 네놈이 멀쩡히 잡고 있을 수 있는 거지?”


       


       “그야 내가 순결한 몸이니까?”


       


       “믿을 수 없다!”


       


       “못 믿겠으면 이브 씨가 마탑이랑 공방의 장인에게 맡긴 의뢰를 확인해 봐. 순도 높은 유니콘의 뿔로 단검을 만드는 의뢰가 있을걸?”


       


       “……!”


       


       이미 알고있던 건지 눈을 크게 뜨는 로즈마리. 그녀의 눈동자가 멍하니 순백의 검신에 집중된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검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화아아악!


       


       로즈마리 본인이 닿았을 때보다 몇 배는 밝은 빛을 뿜어내는 유니콘 단검.


       


       “이제 알았지?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나쁜 남자가 아냐.”


       


       “그런…그럼 대체 여왕님은 어째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축 늘어진 로즈마리. 이제야 제대로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은 녀석을 향해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리 사이에 오해가 바로잡혔으니,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게. 이브 씨는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아직 판 그레이브에 계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며 어딘가로 향하셨는데 기밀이라 어딘지는 나도 몰라.”


       


       “흐응. 그 뒤에는?”


       


       “뭐?”


       


       “판 그레이브에서의 일이 끝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건지 아는 거 있냐고.”


       


       “자세히는 들은 게 없지만, 엘븐 포레스트로 간다고 하셨어. 거기서 다시 한번 옥좌에 앉아 엘프를 위대하게 이끄실 거라고….”


       


       그리 말하는 로즈마리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광신에 가까운 충성심에 취한 사람처럼.


       


       로즈마리 녀석을 진심으로 이브를 생각하는 충신이라고 가정하면, 왜 그렇게 내게 공격적이었는지 이해가 간다.


       


       …솔직히 나도 내가 이브에게 좀 심했다는 자각은 있거든.


       


       다만 대체 왜 말도 없이 사라진 건지, 무얼 하려는 거길래 판 그레이브 어딘가에 숨은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이브라면 혼자 침울해져 있거나, 잠깐 가출해도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올 텐데 말이지.


       


       “진짜 몰라? 톱질 다시 한번 들어간다?”


       


       “저, 정말이래도! 극비 시설이라 아는 게 없을 뿐이지, 그곳에 그분이 계시는 건 확실하다!”


       


       “흠. 뭐, 좋아. 일단 그렇다고 치자. 나는 대체 어떻게 찾아온 거지?”


       


       “…너는 그 멍청한 쌍둥이를 믿나?”


       


       “…….”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지.


       


       레몬과 애플이 나쁜 놈들은 아니다. 근데 멍청한 녀석들이라는 점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떠벌리고 다녔다기보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를 흘려버린 거겠지.


       


       “에휴.”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로즈마리에게 물었다.


       


       “이브 씨의 위치나 목적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알겠어. 그럼 마지막 질문이야.”


       


       “휴우….”


       


       의외로 깊은 질문은 없어서일까. 로즈마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지.


       


       “판 그레이브에도 엘프들끼리의 회합이 있을 거 아냐? 그거 언제 어디서 열려?”


       


       “…….”


       


       “이것까지 모르겠다고 잡아떼지는 않겠지? 네가 지금까지 말한 정보를 보면, 너도 회합의 일원인 것 같은데 말이야.”


       


       “읏…!”


       


       당황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로즈마리.


       


       이 녀석이 모를 뿐, 엘프 고위직은 이브의 행방을 안다. 알고 있으니까 대화하던 게 로즈마리의 귀에 흘러 들어간 거겠지.


       


       그렇다면 그 연놈들을 찾아내 이브에게로 가는 길을 알아내면 된다.


       


       당초의 목적보다 훨씬 거친 방법이 되겠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법 아니겠는가.


       


       다만, 로즈마리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예상치 못한 것이긴 했다.


       


       “내, 내가 이번 미노타우로스 토벌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회합이 열릴 거다.”


       


       “? 너 하나 축하하자고 엉덩이 무거운 거물 엘프들이 움직인다고? 너 뭐 돼?”


       


       한참을 입술만 오물거리던 녀석이 단검의 반짝임을 보고 울상을 지었다.


       


       “나, 나는 크레이들 상회주의 딸이다!”


       


       “아.”


       


       현시대의 엘프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의 딸내미라고?


       


       이 쫄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절하러 가겠습니다...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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