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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미안, 늦었지?”

       

       “허억, 허억···. 늦어···!”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무시하고 합류하기 위해 다가갔더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땀에 푹 젖어있었다.

       

       ···재능 있다고 다 좋은 건 아니네. 이렇게 고생이나 하고.

       

       나보다 훨씬 재능있다며 질투하던 예전의 내가 바보 같아졌다.

       

       재능이 있어서 오는 곳이 이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이라면, 재능 없는 게 오히려 나았을 것 같은데.

       

       지금은 무슨 일인지 나도 이곳에 있기는 하지만.

       

       

       “괜찮아?”

       

       “아니···! 죽을 것 같아···!”

       

       “괜찮은 모양이네. 진짜 힘들면 그런 말도 못 한다고 하던데.”

       

       

       수사관에게 두들겨 맞으며 항상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주자, 그녀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멜리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직접 겪어봤더니 사실이었거든.

       

       아라크네는 강해야 한다, 뭐다 하면서 강제로 수련할 때.

       

       진짜 죽겠다 싶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좋아. 말다툼할 시간은 없지. 빨리 도와줘. 지금 쟤 죽을 것 같은 거 안 보여?”

       

       “아냐. 조금 더 있어도 괜찮아.”

       

       “뭐? 저렇게 다 죽어가는데?! 네 동료 아냐?!”

       

       “엄살이 좀 심하거든.”

       

       “꺄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어!”

       

       

       매일같이 식충이 노릇을 하던 뱀년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진짜 죽을 것 같으면 비명도 안 지르는 녀석이니까.

       

       오랜만에 좀 쓸모 있네.

       

       본인은 괜히 왔다면서 후회하고 있을 테지만.

       

       표정만 봐도 뻔하지.

       

       뭐,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다음에 좋아하는 과자라도 몇 개 사다 주면 풀리겠지.

       

       

       “···그래? 그럼 좀 쉬어도 괜찮겠네.”

       

       “그렇다고 여기서 누워버려?”

       

       “뭐가? 괜찮다며.”

       

       “아니다···.”

       

       

       그래, 얘는 그런 녀석이었지.

       

       내가 아카데미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이 여자의 성격은 처음부터 유명했으니까.

       

       아가씨에 대한 환상을 품고 대화를 나누러 간 남자들의 환상이 박살 나는 꼴이 얼마나 유쾌했던지.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나누고 왔어?”

       

       “별거 아냐.”

       

       “별 거 아니긴. 이 상황에 대화를 그렇게 오래 하는데.”

       

       

       진짜 별거 아닌데.

       

       좀 심하게 얻어맞아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단장을 제정신으로 돌려놓은 것밖에 없는걸.

       

       내 인생이 어쩌고 하면서 자기 혼자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데.

       

       웃기기도 하지.

       

       하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설명한다고 믿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손짓했다.

       

       다행히 그녀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래서? 와준 건 고마운데, 저 괴물을 잡을 방법 같은 거 있어?”

       

       “글쎄. 모르겠는데.”

       

       “뭐?!”

       

       “우리는 수사관이 불러서 온 것뿐이야. 갑자기 여기로 들어오라고 몰래 들여보내서 얼마나 놀랐는데.”

       

       

       사유도 웃기기 그지없었다.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으니까 빨리 와라, 였던가?

       

       아직 무언가 일이 터지지도 않았는데 범죄자의 손이라도 빌리려고 이런 곳으로 밀어 넣는 녀석이 있다니.

       

       ···실제로 들어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수사관? 아. 선생님. 지금 어디 있는데?”

       

       “여기 있습니다.”

       

       “아, 안녕.”

       

       “오랜만이군요.”

       

       

       어느새 이곳에 도착한 걸까.

       

       주변이 살짝 흐릿하기는 했지만, 흙먼지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여자의 능력 때문이었나.

       

       

       “저걸 잡을 방법 같은 건 없습니다. 이렇게 붙잡고 있을 뿐이죠.”

       

       “뭐?!”

       

       “시우 학생이 며칠 전 갑자기 손이 비는 초인을 데려와야 한다고 할 때는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역시 능력이 좋기는 하군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모습이,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너무 태평해 보였기 때문일까.

       

       아멜리아가 잔뜩 당황했다.

       

       

       “모, 못 잡아!?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당연하죠. 공격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하율은 스피라가 싸우는 장소를 가리켰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지만, 그런데도 하나둘 생기는 틈을 놓치지 않고 저 괴물의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뾰족한 돌덩이들.

       

       그러나 아무런 타격이 없다는 듯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보병 앞에 선 전차 같은 모습이었다.

       

       

       “제가 폐 속으로 물을 조금 넣어보기는 했습니다만···. 숨을 잘 쉬더군요. 어디 아가미라도 붙어있나 봅니다.”

       

       “···아가미가 붙으면 인간이라고 보기도 힘들지 않아?”

       

       “네. 그런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도망 다닐 수 있죠.”

       

       

       스피라를 향해 생각 없이 일직선으로 돌진하던 그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다시금 뱀처럼 기어 다니며 땅에 숨어드는 스피라를 공격하지 못한 채로 벽에 몸을 들이박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능력이 아주 많은 것 같군요. 덕분에 처리 속도에 과부하가 걸리는 모양입니다. 스펙만 좋은 깡통이다 이거죠.”

       

       “···하긴. 조금 전부터 움직임이 너무 단순하더라.”

       

       “너무 많으면 있는 것만 못하죠. 능력의 숙련도도 낮은 모양이니, 아직은 버틸 만 합니다.”

       

       

       확실히.

       

       인간이라면 여러 번 시도해도 통하지 않는 방식이 있고, 다른 시도할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시도해본다.

       

       그러나 저 괴물은 그저 하염없이 같은 방법을 사용할 뿐이었다.

       

       마치 지능이 퇴화한 것처럼.

       

       

       “마수 같네.”

       

       “저건 마수라고 불러야지.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저런 꼴이 되는 건지.”

       

       “···아.”

       

       

       하율의 푸념 섞인 발언에, 아멜리아가 무언가 떠오른 듯 화들짝 놀라 누워있던 몸을 튀어 오르듯 일으켰다.

       

       

       “용광로!”

       

       “···용광로?”

       

       “위버멘쉬 애들이 아카데미를 습격할 때 노리던 물건이라고 들었어! 잃어버렸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러고 보니, 위버멘쉬의 간부 두 명은 생사가 불명이었죠.”

       

       “한 명은 저기에 있고. 그렇다면···.”

       

       

       사람과 괴물을 반쯤 섞은 것 같은 저게 남은 한 사람이라는 걸까.

       

       저 뱀년은 자기 옛 동료도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니, 아니다.

       

       저런 모습이 옛 동료였다고 상상하기는 힘들겠지.

       

       

       “여러 생물을 도가니에 넣고 녹인 뒤에 굳힌 것 같은 모습이기는 하네.”

       

       “그렇지?!”

       

       

       용광로, 용광로라.

       

       그렇게 보니 저 수많은 능력이 이해가 간다.

       

       수많은 생명을 융합했다면.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 모습이니까.

       

       

       “···그렇다면 용광로를 파괴하면 해결이겠군요.”

       

       “하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아무리 봐도 그럴싸한 건 안 보이는데.”

       

       “심장이야.”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우리가 고개를 돌리자, 유시우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심장?”

       

       “그래. 용광로가 몸속에 있어. 심장이 있는 위치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목소리를 주워 담았다.

       

       이 녀석, 직감인가 뭔가 하는 능력이었지.

       

       그런 것까지 아는 거냐.

       

       직감은 여섯 번째 감각 아니야? 감각이 아니라고, 이 정도면.

       

       

       “하지만 그래도 우선 후퇴해야 해.”

       

       “뭐? 왜?! 지금 쓰러트리면···!”

       

       “잊었어? 지금은 본대도 위험한 상황이야.”

       

       “···아.”

       

       

       그 거미 떼를 말하는 건가.

       

       어떻게든 막고는 있는 모양이었지만, 슬쩍 보기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저걸 쓰러트리려면 커다란 한 방이 필요해. 자잘한 공격이 아니라.”

       

       “본대에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어떡···.”

       

       “없어도 괜찮아. 커다란 한 방을 먹여줄 사람이 아니라, 먹일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은 있으니까.”

       

       “···도로시.”

       

       

       세 명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나 혼자 겉도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마 일행 중 한 명인 것 같은데.

       

       걔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 맞지?

       

       대충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아르테는 어디로 갔어?”

       

       “먼저 보냈어. 치유가 필요한 상황이고, 섬유가 없어서 딱히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

       

       “위험할 텐데.”

       

       “괜찮을 거야.”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또 그놈의 직감이니 뭐니 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저렇게까지 확신을 가질 이유는 그것 외에는 없었다.

       

       

       “···좋아. 우선 본대를 도와주는 건 그렇다고 쳐. 다 같이 갈 수는 없어.”

       

       

       슬슬 정말 위험한지,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스피라의 모습을 흘깃 바라본 아멜리아가 말했다.

       

       

       “지능이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이라, 눈에 보이는 녀석을 노리는 것 같지만···.”

       

       “반대로 말하면, 집요하게 쫓아온다는 이야기죠.”

       

       “맞아.”

       

       

       ···누군가는 남아야 한다.

       

       우리는, 한 명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딱히 지치지도 않는 것 같은데, 본대를 도와주는 것도 금방 끝나는 일은 아니야. 거리도 조금 있고.”

       

       “제가 남죠. 저는 공격받아도 살아남을 방법이 있으니···.”

       

       “불도 쓰던데, 안개 정도는 금방 증발할걸?”

       

       “···.”

       

       “내가 남을게. 나 엄청 빠르니까, 잡히기는 힘들 거야.”

       

       “아니.”

       

       

       서로 자신이 남겠다고 주장하는 장소에서, 소년이 조용히 선언했다.

       

       

       “내가 남을게. 너희는 먼저 가.”

       

       “야! 나는 분명히···!”

       

       “너는 빠르기는 해도, 한 번 피할 때마다 많이 움직여야 하잖아. 금방 지칠걸.”

       

       “···윽.”

       

       “그에 비하면 난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 괜찮아.”

       

       “하지만···!”

       

       

       아멜리아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네가 말했었지. 친구를 버리고 도망가는 녀석이, 영웅을 목표로 할 수 있겠냐고.”

       

       “그, 그래! 그러니까 내가···!”

       

       “그러니까 내가 남을 거야.”

       

       

       한 때 영웅을 꿈꾸었던 소년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곳에 남으면 모두 죽을 거야. 나는 알 수 있어.”

       

       

       시우는 알 수 있었다.

       

       더는 직감이라고 부르기 힘든 능력. 자신도 그 실체를 알기 힘든 능력이지만···. 그 능력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남아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남는다.”

       

       

       분명 괴롭겠지.

       

       정말 잘못하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한 시간, 두 시간 정도만 버티면 되는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하루 종일 저 괴물과 어울려야 할지도 몰라.

       

       한 번이라도 한눈을 파는 순간, 그대로 목숨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짓.

       

       그렇지만 소년은 이곳에 남기로 했다.

       

       

       “빨리 가.”

       

       

       저 녀석으로 인해 누군가 죽는다면, 사랑하는 소녀가 크게 상심할 것을 알기 때문에.

       

       드디어 세상을 세상으로 바라볼 기회가 생긴 소녀가, 마음을 닫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시우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대신 빨리 와줘. 근육통 생기면 한동안 고생하니까.”

       

       “···알았어. 살아있어야 해.”

       

       “걱정하지 마.”

       

       

       아멜리아가 재빨리 다 죽어가던 여성을 챙기고 달아나자 자연스럽게 괴물의 시선이 시우에게 쏠렸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인간의 형상마저 점점 잃어가는 모습.

       

       저대로 둔다면 최후에는 끔찍한 괴물로 변이할 터.

       

       안타까움에 표정이 구겨졌다.

       

       점차 자아를 잃어가는 저 사람을 구해주는 방법은, 편하게 해주는 방법밖에는 없겠지.

       

       

       “···그럼, 열심히 해 볼까.”

       

       

       한때 영웅을 꿈꿨던 소년, 아니.

       

       영웅이 된 청년은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을 향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들 음습시우니 뭐니 하지만, 우리 시우가 얼마나 대협이게요

    성장형 주인공 답게 멋있게 성장했답니다

    예전에 아르테 속옷 냄새 킁카킁카 한 것 정도는 사소한 거에요

    ***

    아틀리에에 유시엘 님께서 올려주신 팬아트가 하나 더 생겼답니다

    다들 한번 구경해주세요

    동글동글 귀여워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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