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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호국회와 홍익애국단은 같은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 성향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호국회는 힘만 강한 빡대가리 모임이고, 홍익애국단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 모임이다.’라고 할 정도로 둘은 달랐다.

         

       물론 한국이 발전함에 따라 둘의 성향 차이가 크게 좁혀지기는 하였으나, 두 단체를 이루고 있는 핵심 인사들, 기둥이자 반석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 건재하다 보니 둘의 성향은 비슷해질 듯하면서도 물과 기름처럼 분명히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지금.

       진성의 눈앞에 홍익애국단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 있었다.

         

       검귀 김종수.

       베트남 파병 당시 베트콩들에게 칼귀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이 그대로 별호처럼 굳어진 무인이었다. 당연히 그러한 별호가 붙은 만큼 검을 쓰는 솜씨가 기가 막힌 데다가,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녹슬기는커녕 더 강해지기까지 했다.

         

       회귀 전 일본과 싸울 때 큰 활약을 했다고 하는데, 그때 날뛰던 모습이 인간 백정 그 자체였다고 한다.

         

       “자네는 누구인가?”

         

       김종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나운 눈빛으로 진성을 노려보았다.

       진성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황금으로 이루어진 가면의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가면은 벌을 닮은 곤충의 형상이 되기도 하였고, 거미를 닮은 모습이 되기도 했다. 개미를 닮은 모습, 애벌레를 닮은 모습, 곤충이라기보다는 전설 속에 나오는 괴물과 흡사한 모양 등 가면은 계속해서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어가며 김종수의 시야를 현혹했다.

         

       계속해서 바뀌는 가면.

       황금으로 이루어진 거미의 다리.

       분명 사람인데 사람 같지 않은 기묘한 분위기.

         

       그 모든 것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은 그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 입을 열었다.

         

       “크흐. 질문이 틀렸다.”

         

       그의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기묘했다.

       소리가 잔뜩 울리고 변조되어 나온 듯한 소리.

       마치 비비 꼬아버린 파이프에 입을 대고 말한 듯한 소리였다.

         

       마치 나비가 둥글게 말린 입으로 목소리를 내듯이.

       음악에 미쳐버린 사람이 관악기를 입에다 꽂고 말을 하듯이.

         

       진성은 그렇게 기괴한 목소리로 모두의 귀를 현혹하려 하였다.

         

       하지만 김종수는 그러한 목소리에 현혹되지 않은 채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래. 다시 질문함세. 자네는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그것도 틀린 질문이다.”

         

       진성은 자신의 팔을 활짝 벌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애벌레의 형상을 하고 있었던 황금 가면은 어느새 메뚜기 같은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이는 정처 없이 떠돌다가 우연히 온 것도 아니오, 연이 닿아 이곳에 온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우연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명백한 의지가 개입한 것이나. 오직 나 스스로 왔으니 여기에 운명이나 숙명이라는 단어 역시 쓸 수 없을 것인즉.”

         

       황금 가면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은 마치 곤충이 웃음을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그 질문은 참으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가?”

         

       김종수는 담담하게 진성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문답을 나누는 것도 의미가 없겠구먼?”

         

       그는 그 말과 함께 번개같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그러자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무색투명한 기가 그대로 진성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김종수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진성의 목에 가느다란 선이 생겼다.

       숨을 살짝 고르자 선은 더더욱 선명한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을 때, 진성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툭.

         

       데구르르.

         

       “어르신! 이게 무슨!”

         

       김종수와 함께 왔던 장교는 절규했다.

         

       검귀가 다짜고짜 칼을 휘둘러 살인을 저지른 것에 비명을 질렀고,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고 즉결처분을 했다는 사실에 절규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진급에 먹구름이 가득 낄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장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검귀에게 달라붙었다.

         

       “보아하니 말이 통하는 사람 같은데 왜! 왜 목을 자르신 겁니까!”

       “흠.”

       “게다가 이건 명백한 과잉진압입니다! 중요 시설이긴 하지만 그냥 침입한 것으로 사람 목을 막 자를 수는 없습니다! 전시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런 짓을 하셨습니까!”

         

       장교는 원망이 가득 담아 따지듯 그에게 말했다.

       평소라면 꿈에서라도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과 자신의 꽉 막혀버린 진급길 때문에 이성을 반쯤 상실해버린 장교는 거침없이 무례를 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종수는 장교가 자신에게 달라붙어 투정하고 있음에도 굳은 얼굴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검을 꺼내 한 손으로 쥐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그는 슬쩍 한숨을 쉬더니 검 끝을 슬쩍 흔들었다.

       그러자 다시 한번 눈에 보이지 않는 기가 굴러다니는 머리통을 반으로 잘랐다. 그러자 마치 수박이나 배추가 칼질에 잘려나가는 것처럼 정확히 반절로 잘려나갔고, 그 사이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눈을 어지럽히는 황금이 가득 보였다.

         

       잘린 단면은 다른 이의 시선이 부끄럽다는 듯 꿈틀거리며 모양을 바꾸었고, 이윽고 자그마한 벌레 형상이 되어 머리 형태를 무너뜨리고 바닥에 우글거리며 모였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딱정벌레를 닮은 벌레와 지폐로 이루어진 날벌레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눈을 어지럽혔다.

         

       모인 벌레들은 뿔의 형상을 이루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피라미드의 가장 윗부분에 입이 달린 것 같은 형상이었다.

         

       “크-흐.”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에 김종수는 자신의 옆에서 넋을 잃고 있는 장교에게 물었다.

         

       “저래도 말이 통하는 놈 같으냐?”

       “아니, 말은 모르겠는데….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르신….”

       “사람은 맞다. 아니, 맞았다. 뭔가 끔찍하긴 했는데 사람은 맞았다.”

         

       김종수는 황금 벌레를 재료로 삼아 다시 몸을 만드는 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는 사람 기척이 분명히 느껴졌으니 사람은 맞다. 그런데 어느새 도망을 치고는 숨어서 저것이나 조종하고 있구나.”

       “도망을, 말입니까?”

         

       장교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십 명의 군인.

       TOD, 위성, 드론, CCTV, 저격 스코프 등의 감시체계.

       거기에 한국에서 강자를 꼽으라고 하면 반드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무인인 김종수까지.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몸을 뺄 수 있는가?

         

       “한낱 동물도 제 목숨줄을 붙이기 위해 도망 솜씨를 기르는데, 사람이라고 다르겠느냐?”

         

       김종수는 그렇게 말하곤 눈을 감았다.

       그리곤 몸에서 기를 뿜어내어 기감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옅게.

       거미줄처럼 민감하게.

       무엇보다도 가벼우면서도, 오직 자신의 의지로만 움직일 수 있게.

         

       “찾았다.”

         

       김종수는 눈꺼풀이 만들어낸 어둠을 직시하며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강아지풀을 쥔 듯 가볍기 짝이 없었다.

         

         

        * * *

         

         

         

       검날은 형체가 없는 것처럼 바람 사이를 가르며 움직이고.

       빛이 모였다가 사라지듯 그것은 참으로 덧없는 궤적을 그리니.

         

       그 궤적이 그려진들 흔적이 남지 않는다면 검이란 어찌 휘둘렀음을 알 수 있는가?

       기는 흩어지고 궤적은 잔상도 남기지 않으며 오직 잘린 것만 그 존재를 증명한다면 오직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것이니.

         

       그러하다면 휘두르고 잘리는 것이 전부라면.

       그 외의 것은 중요치 않으리라.

         

       

         

        * * *

         

         

       김종수의 느릿한 횡 베기와 함께 마을 어딘가가 잘렸다.

         

       툭.

         

       데구르르르.

         

       우물 어귀에서 휘둘렀던 김종수의 검은 공간을 뛰어넘어 마을 어딘가에 숨어있던 어떤 존재의 목을 정확하게 잘랐다. 아까 그러했듯 반듯한 선을 그리며 비스듬히 목을 자르고, 더는 붙어있을 수 없게 된 머리통을 바닥에 떨궜다.

       하지만 굴러떨어진 머리통은 그를 조롱하기라도 하는 듯 다시 한번 분해되며 황금으로 만들어진 벌레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소-용없-다.”

       “그래. 소용이 없구만.”

         

       김종수는 비웃는 듯한 음성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형태를 이리저리 바꾸는 황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크-흐. 올바른 질문을 한다면, 흐. 답해주겠네.”

       “아니. 됐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부르는 것이 어떠한가? 어차피 여기 있는 이들로는 나를 잡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한데, 다른 이라도 불러서 나를 찾아 붙잡으려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김종수는 자신의 귀를 간지럽히는 음산한 목소리가 거슬린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혓바닥으로 사람 홀리는 재주가 있는 것 같은데….”

         

       혀를 뽑지도 못하고 모가지를 자르지도 못했으니 아쉽구먼.

         

       그는 그렇게 나지막이 중얼거리곤 옆에 장교에게 시선을 슬쩍 돌리곤 말했다.

         

       “지원을 요청해라. 여기 살인 용의자가 있다고.”

         

       장교는 김종수의 말에 눈을 끔뻑였다.

         

       살인?

       살인 용의자?

         

       그 무겁기 짝이 없는 다섯 글자에 장교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동시에 흥분 때문에 그의 눈동자와 손이 살짝 떨렸으니.

         

       이는 살인 용의자를 잡으면 막힐 뻔했던 자신의 진급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고속도로처럼 뻥뻥 뚫릴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사채업자 쳐 죽였던 미친 주술사가 여기 있다고 말해. 증거는 저기 벌레처럼 날아다니는 지폐들 일련번호라고 꼭 말하고.”

       “넵!”

         

       진성은 레토나 뒤에 숨어서 신나게 보고를 하는 장교와 자신을 경계하듯 검을 들고 있는 김종수를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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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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