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30

       

       

       

       

       “으음….”

       

       몸이 가볍다.

       

       깨지도 않고 잘 잤는지 상쾌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역시 자기 전 목욕이 최고라니까.’

       

       나는 어제 있었던 ‘드래곤 가족 목욕’을 떠올렸다. 

       

       좀 정신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피로도 풀 만큼 풀었고 무엇보다 이드밀라의 마나가 녹아든 물 덕에 몸 깊숙한 곳까지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당장 일어날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만 더 이 행복을 즐기기로 했다. 

       

       눈을 감은 채, 나는 내 품에 등을 지고 안긴 아르의 뚠뚠한 뱃살을 쓰다듬었다. 

       

       말랑.

       

       ‘으응? 근데 아르의 뱃살이 이렇게 들어가 있었던가?’

       

       물론 더 조그맸을 때보다는 굴곡이 덜해졌겠지만, 그래도 아직 뚠뚠하다고는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나와 있었는데….

       

       지금 내가 만지고 있는 뱃살은 굉장히 평평하고 마치 인간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헉.’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 붉은 머리칼이 보였다.

       정말 놀랍게도, 나에게 등을 지고 안겨 있는 건 아르가 아닌 이드밀라였다. 

       

       그리고 내가 만진 뱃살도, 자느라 옷이 말려 올라가 버린 이드밀라의 뱃살이었다. 

       

       ‘맙소사.’

       

       나는 얼른 손을 치우려 했다. 

       

       탁.

       

       “으응….”

       

       하지만 우연인지 마침 이드밀라도 자신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댔고, 내 손을 탁 잡아 버렸다. 

       

       ‘아, 안 돼.’

       

       만약 이 상태에서 이드밀라가 깨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감히 내 용신에 손을 대? 엄벌을 내리겠다!!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빼려 했다. 

       

       스윽.

       

       ‘오, 성공인가.’

       

       다행히 잠결에 잡은 거라 그런지 손을 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으으음….”

       

       하지만 그때, 별안간 이드밀라가 몸을 내 쪽으로 뒤집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를 꽉 껴안았다. 

       

       ‘켁.’

       

       아니, 갑자기 나는 왜 껴안는 건데…?

       

       어서 벗어나려 했지만 힘이 어찌나 세던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이드밀라 님?”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불러 봤지만.

       

       “으흐흐…. 아르야….”

       

       이드밀라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껴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꿈 속에서 아르를 껴안고 있는 모양.

       

       “흐으….”

       

       다행히 이드밀라는 곧 나를 놓고 이번에는 대 자로 누워 배를 벅벅 긁었다. 

       

       휴우….

       

       ‘이분 진짜 잠버릇 안 좋으시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심스레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반대편에서는 실비아가 평화롭게 아르를 안고 자고 있었다.

       

       “…….”

       

       분명 잘 때까지만 해도 나, 아르, 이드밀라, 실비아 순으로 누워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는 동안 격변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으음. 레온 씨, 일어났어요?”

       “뀨우.”

       

       실비아가 내 기척에 부스스 눈을 떴고, 아르도 실비아의 움직임에 뀨 소리를 냈다. 

       

       “뀨우…. 레온은 어디써…?”

       

       아르는 일어나자마자 날 찾았고.

       

       “나 여깄어, 아르야.”

       “레오오온…! 쀼.”

       

       아르는 잠이 덜 깬 상태로 나에게 데구르르 굴러 와 안겼다. 

       

       ‘그래, 이거지.’

       

       진짜 아르를 품에 안으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했던 고생이 사르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르가 잠을 깨는 동안 잠시 침대에 다시 누워 아르의 젤리를 만지작거리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헤헤…. 레온 조아….”

       

       그 모습을 본 실비아가 피식 웃으며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역시 아르는 레온 씨 껌딱지네요.”

       “껌딱찌?”

       “딱 붙어 있는다는 소리야.”

       “헤헤, 그럼 나 레온 껌딱찌 할래.”

       

       아르는 내 품에서 어릴 때 하던 꾹꾹이를 오랜만에 해 주었고.

       

       “그럼 저는 나가서 먼저 간단하게 아침 준비할게요.”

       

       실비아는 일어나 침실 밖으로 향했다. 

       

       “아침 준비요? 어차피 호텔 조식 있지 않아요? 굳이 직접 안 하셔도….”

       

       그 말에 실비아가 씩 웃었다. 

       

       “사실 다 직접 할 건 아니고, 메인들은 룸 서비스 시키고 몇 가지만 추가로 준비하려고요.”

       “아하. 그러고 보니….”

       

       시키기만 하면 방까지 가져다 주는 서비스가 있었지.

       

       VVVIP실은커녕 5성급 호텔 한 번 못 가 봤었다 보니 그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있었다. 

       

       “룸 서비스 들어올 때 아르가 안 보이게 닫아 놓을 테니 좀 더 쉬다 나오세요.”

       “고마워요.”

       “쀼우. 온니, 고마어.”

       

       아르는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레온 살 냄새 조아…. 헤헤.”

       “냄새는 우리 아르 손바닥 젤리 냄새가 최고지.”

       

       덩치는 벌써 이만큼 커 가지고, 내 품에 안겨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 속 깊은 곳까지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크으…. 좋다.’

       

       이번엔 진짜 아르의 뚠뚠한 뱃살을 주물주물 만지고 있는데, 문득 뒤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

       

       그리고 그곳엔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이드밀라가 있었다. 

       이드밀라는 나를 지그시 노려보더니, 곧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나도 아르를 껴안고 싶다!”

       “으아악!”

       

       ***

       

       침대에서 티격태격하던 우리는 곧 아침이 준비되었다는 실비아의 목소리를 듣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섰다. 

       

       “쀼우! 아르 배고파!”

       

       아르가 제일 먼저 도도도 달려가 팔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 열자, 거실의 커다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오호!”

       

       명절 차례상을 방불케 하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많은 접시.

       

       그 접시들 위에는 차례상보다도 훨씬 호화로운 음식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어제 그 뷔페라는 곳에는 없던 음식도 많이 보이는구나!”

       

       이드밀라는 눈을 빛내며 얼른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나와 아르도 음식이 사라지기 전에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이야, 통 도도 구이까지 있네요.”

       

       치킨보다도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는 도도 고기는 남부에서는 더더욱 귀해 구하기 힘들다.

       

       뷔페에 내놨다간 물량이 받쳐 주질 못할 게 뻔해서인지 어제는 구경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아예 테이블 중앙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슬쩍 다리살을 뜯어 간 나는 도도 구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과장 조금 보태서 치아가 고기에 닿자마자 마술처럼 뜯겨져 나왔다.

       

       ‘진짜 부드럽네.’

       

       간이 적절히 배어 있고 고기가 숙성되어서인지 예전에 아르랑 서부 숲에서 도도를 잡아 불에 구워 먹었을 때보다도 더 부드러웠다.

       

       치킨처럼 기름에 튀기지 않고 통으로 구운 건데도 불구하고, 튀긴 게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구운 고기 특성 상 조금 물기가 적어 뻑뻑할 법도 한데…. 이건 그런 것도 전혀 없네.’

       

       이드밀라는 도도 가슴살을 뭉텅이로 뜯어 가더니, 먹으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 도도를 먹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구나. 도도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는데, 이렇게 구워 놓으니 더 일품이야.”

       

       …생으로 먹다니. 역시 드래곤인가.

       

       이외에도 뷔페에는 나오지 않은 각종 희귀종 고기와 요리들, 그리고 대량으로 만들어서 소분해 놓는 디저트가 아닌 제대로 만들어 가져온 디저트들이 테이블에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게다가….

       

       “실비아 씨, 아까 따로 준비하신다던 게 이거였어요?”

       

       나는 각자의 앞에 하나씩 놓인 김치찌개 뚝배기를 보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추지 못했다. 

       

       “후후, 어때요? 이럴 때 딱이죠?”

       

       실비아가 미소를 지었다. 

       

       “온니표 김치찌개다!”

       

       기름진 음식만 먹던 아르도 마침 김치찌개가 나오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김치찌개…? 그게 무엇이더냐?”

       

       오직 이드밀라만이 심각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정체불명의 음식을 바라보았다. 

       

       “하하. 이게 바로 제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 자주 해 먹던 음식입니다.”

       “오호…. 이세계의 음식이라 이거군. 맛이 궁금하구나.”

       

       이드밀라가 잠에서 깨어나 딸기 크림 케이크라든지, 각종 발전한 요리들을 먹고 감탄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존에 있던 음식들의 조리 방법 등을 개선시켜서 ‘더’ 맛있게 만든 거였다. 

       

       하지만 이 김치찌개의 경우 아무리 이드밀라라 할지라도 이 페룬 대륙에서는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했을 터. 

       

       “그럼 어디….”

       

       이드밀라는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김치찌개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오오…! 뭔가 매콤하면서도 칼칼하니 맛있구나!”

       “맘에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혹여나 이드밀라의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던 실비아는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드밀라는 국물을 연신 숟가락으로 떠서 먹고는, 이어서 김치찌개에 들어간 고기와 김치를 한 숟가락에 떠서 입에 넣었다. 

       

       “이 짭짤하고 칼칼한 국물이 잘 배어 들어간 부드러운 고기에, 적절하게 씹히는 채소의 식감까지….”

       “거기에 밥까지 한 번 넣어서 드셔 보시겠습니까?”

       

       실비아가 미리 준비해 둔 흰 쌀밥을 말아서 고기와 함께 먹은 이드밀라의 눈이 커졌다. 

       

       “허어…!”

       

       챱, 챱챱.

       

       이드밀라는 더 말을 꺼낼 것도 없이 그대로 김치찌개 한 뚝배기를 전부 해치웠다.

       

       “맘에 드신 모양입니다.”

       “기름진 고기나 풍성한 크림, 과자, 케이크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데도 이런 굉장한 맛을 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구나. 한 그릇 더 있느냐?”

       “물론이죠!”

       

       실비아는 환한 표정으로 얼른 김치찌개를 한 뚝배기 가득 퍼서 이드밀라에게 내밀었다. 

       

       ‘실비아 씨, 진짜 뿌듯해 하시네.’

       

       생각해 보면 실비아의 부족은 대대로 드래곤의 조력자였다. 

       

       자신의 요리가, 천 년 전 마신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고룡들 중 하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실비아에게는 큰 영광일 터.

       

       ‘그래, 음식 잘 만들어 주는 것도 엄청난 조력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치찌개를 퍼 먹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페퍼로니가득피자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