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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무심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에 음식을 나눠주던 이예나의 선언이었다.

        

       말을 마친 이예나는 자리에서 부드럽게 일어나고는,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미닫이문을 열고 방에서 나섰다. 대답이나 호응을 기다릴 생각이 없다는 듯이.

        

       화장실이라면 같이 가자고 하려 했는데.

       

       갑자기 앞접시 위에 올라온 고기에 당황한 탓에 타이밍을 놓친 아크는, 다시 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어째서인지, 이예나가 자리를 비운 자그마한 룸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대화를 리드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예나님 혼자 가셔도 괜찮을까요? 술 많이 드신 것 같아서.”

        

       원인모를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건, 레반이었다.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한 마디에는 정작 행동은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섞여있었다. 이 상황에서 남자가 따라가는 건 속보이는 플러팅으로 오해받을 것이 뻔하니.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리 갈 사람도 없었다.

         

        ‘아리는……완전히 잠들었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가져왔다고 신을 내며 사진을 찍어대던 별포크는,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는 듯이 한 쪽에서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으니까.

         

        ‘어째 많이 취한 것 같더라니.’

         

        “제가 따라가 볼게요.”

         

        이예나도……저렇게 취한 상태는 아니어야 할 텐데. 조금 전까지 취한 기미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만취 상태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주변에 음식을 나눠주면서, 정작 본인은 메로구이 몇 점 외에는 음식에 손도 안 대고 맥주만 들이켜고 있었으니.

         

        대체 얼마나 마신 건지. 

        

       화장실부터 확인해보았으나, 이예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소리를 높여 그녀를 부르고, 열린 칸을 일일이 열어가며 찾아보았음에도.

        

       ‘밖으로 나가셨나?’

        

       걱정되는 마음이 불쑥 커졌다. 가뜩이나 상식적인 경계심이 옅고 도발이 패시브로 달려있는 이예나가, 만취 상태로 홀로 거리에 나갔다니. 당장 누군가에게 헌팅이라도 당하고 있다면……제대로 대처하기는 할까. 아크의 머릿속에서 영 좋지 않은 시나리오들이 둥실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신발을 신고, 가게에서 나섰다. 번화가의 메인 거리에서 세 골목 정도 떨어진 가게의 앞에는 흐린 가로등이 듬성듬성 놓여있었다.

       

       ‘그렇게 멀리 갈 시간은 없었을 텐데.’

        

       부족한 불빛 아래에서 취객이 몇 걸어다니고 있었을 뿐, 이예나는 보이지 않았다.

        

       아크는 다급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찾았다. 마음만 급한 탓일까. 항상 바로 손에 잡히던 휴대폰이, 어째서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휴대폰을 꺼내 들 수 있었다. 전화번호- 전화번호가 있던가. 미리 물어볼 걸. 후회를 삼키며, 보이스톡 연결 버튼을 눌렀다.

        

       ‘안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올라가서 모두한테 말하고, 가까운 거리부터 찾아봐야-’

        

       -따다다 딴.

        

       그런 생각이 모두 무색하게도, 벨소리는 그녀의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예나가 있었다.

        

       “……예나님? 어디 가셨었어요?”

        

       “살 게 있어서요. 지니님은요?”

        

       “……어디 가셨나 궁금해서 잠시 나와봤어요.”

        

       막상 설명하자니, 조금은 머쓱해졌다. 다 큰 성인이 술자리에서 잠깐 나간 게 뭐 그리도 걱정할 일이라고. 그 순간에는 왜 그렇게 덜컥 겁이 났는지.

        

       이예나의 시선에 의아함이 깃드는 것을 견디기가 힘들어, 아크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뭐 사셨어요? 아이스크림?”

        

       “아. 종이랑 펜, 사왔어요. 편의점에서 마땅한 종이를 안 팔기는 했는데.”

        

       깜빡, 깜빡- 머리 위에서 가로등의 불빛이 가벼이 점멸했다. 오래된 거리의, 노후한 가로등.

        

       어둑한 밤, 가게의 밝은 빛에 익숙해진 눈으로는 마치 이예나와 주변의 모든 것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듯 보였다. 깜빡, 깜빡- 하다가, 불이 꺼지듯이 사라질 수 있는……그래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람.

        

       “지니님.”

        

       깜빡.

        

       다시 들어온 불빛 아래에서, 이예나는 작은 수첩과 펜을 내밀고 있었다.

        

       “네, 네?”

        

       “사인, 받을 수 있으려나- 해서요.”

        

       “……제 사인이요?”

        

       “네.”

        

       “사인, 은 왜…….”

        

       “말했잖아요.”

        

       작은 미소. 입꼬리가 올라가며, 두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리 무심해 보이던 사람이, 저렇게 활짝 피어날 수 있구나. 아크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수첩을 받아 들었다.

        

       깜빡, 깜빡.

        

       “팬, 부터 시작하기로 했어요.”

        

       글씨가 흔들린 건, 부실한 조명 탓이었으리라.

        

       * * * *

        

       “노래방- 노래방 갈까요. 4차는 원래 노래방인데.”

        

       “……새벽 3시예요. 너무 늦기 전에 들어가셔야죠.”

        

       “벌써요오? 킹갓박스 노래 라이브 듣고 싶었는데에……예나랑 듀엣으로…….”

        

       “다음에 불러드릴게요. 이자카야에서도 잠드셨잖아요. 얼른 들어가서 편하게 주무세요.”

        

       “그러면 자장가로 불러주세요!”

        

       “……아무리 봐도 리틀 아따먹을 만든 거 같은데. 아무튼, 다들 술도 많이 드셨고……들어가서 쉬어요. 택시 잡을 테니까 방향 말씀해주세요.”

        

       “노래방 파티 구해요. 잔소리 많이 하는 나무꾼 사절.”

        

       “아니, 진짜……아, 아! 뭐, 뭐해요?”

        

       “핸드폰 뺏으려 했는데. 아쉽네요.”

        

       “진짜 뭐하는지 물어보는 게……아, 진짜 안 되겠네. 진희님. 진희님?”

        

       “네? 네, 네!”

        

       “이예나씨랑 저 추종자 통제만 좀 해줘요. 나머진 제가 할 테니까…….”

       

       “아, 맞다! 폴라로이드! 사진! 다시 찍어요!”

        

       “아리야, 우리 아까 많이 찍었어…….”

        

       “아직 필름 남았어요! 일부러 챙겨왔는데…….”

         

       취객들의 저항이 거셌다. 차라리 깽판을 치는 남자들이었다면 힘으로 제압해서 택시에 구겨 넣었을 텐데. 자꾸 사진을 찍고는 폴라로이드를 나눠주는 사진사 꿈나무는 그렇다 치고, 잠시만 방심하면 ‘노래방은 이쪽이에요’라고 속삭이며 사라지려 드는 주정뱅이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어디 붙잡을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길쭉하게 뻗은 손가락도, 약간 차가워 보이는 손도, 꽉 쥐면 깨질 것만 같이 가느다란 손목도-

        

       “저 안 취했어요.”

        

       “만취한 사람 대사잖아. 마무리 사케라면서 시킨 병 혼자 3분의 1은 드신 거 다 봤어요. 무슨 자작을 그렇게 해.”

        

       “……위스키가 다 깨서 그랬어요. 술자리 중간에 술 깨면 얼마나 힘든데……전장 한복판에서 버프 풀리는 느낌이야.”

        

       샐쭉한 표정.

        

       왜 혼자 술자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익숙한 핀잔이 시훈의 입안에서 맴돌았다. 이미 답을 들은 것만 같은 기분에, 가만히 입을 닫았지만.

        

       인적없는 밤거리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아크와, 피로와 알콜에 쩌든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는 고라박스. 그 옆에서, 드디어 노래방 원정을 포기한 듯한 예나도 팔짱을 낀 채 서있었고- 별포크는 어느새 예나의 뒤에 붙어 다시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별포크가, 이미지와는 달리 장녀라고 했던가. 독립하기 전까진 매일 아침마다 여동생들 머리를 땋아주었다더니. 과연, 제법 잘 어울리는 묶음머리를 순식간에 만들어냈다가 풀어내고는, 다시 화려하게 머리를 땋아나가고 있었다.

        

       꽤나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특히 저 질색하는 표정이.

        

       “그럼, 편의점에서 뭐……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먹고 갈까요.”

        

       어쩐지 급격하게 지친 예나의 목소리였다. 무한 머리 스타일링에서 벗어나기 위한 핑계겠지. 그래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번화가 인근인 만큼 편의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선선한 날 번화가의 편의점이 으레 그렇듯이, 펼쳐진 테이블 위에는 선객이 가진 술자리의 잔해가 흩뿌려져 있었지만.

        

       과자 봉지며 술병을 대강 정리하고 있자니, 그새 안에 들어갔다 나온 예나가 무언가를 슥 내밀었다.

        

       “노래방만은 못해도, 4차로 아슬아슬하게 괜찮네요. 자. 우리 레반씨는 고리타분하니까 바밤바로 먹어요.”

        

       대체 무슨 소린지. 심지어, 정작 내민 아이스크림은 바밤바도 아니었다. 반박할 기운도 나지 않았지만.

         

       -아삭.

        

       얌전히 포장지를 벗겨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며, 시훈은 편의점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5명을 잠시 둘러보았다.

        

       온라인으로 미리 교류를 제법 한 덕분일까. 술자리 한 번에 제법 거리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술이 깨고 나서도 그럴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특히…….’

        

       시선은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기 전부터 이미 영락없는 취객이었던 예나에게 옮겨갔다.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널브러진 품새가, 숫제 잠들기 직전이었다.

        

       오프라인으로는 처음 만나는 모임임에도 경계심이나 내숭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는 모습.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시훈은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걸 느꼈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반쯤 눕다시피 한 예나는 고개를 의자 뒤로 넘겨 젖힌 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좋네요.”

       

       별이 잘 보이지도 않는 서울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하듯, 조용히. 

       

       “나오길 잘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모조아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공사다망 님, 1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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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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