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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0

       “-그래서 웬일이냐? 네가 안부 인사하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기특한 놈도 아닐 텐데?”

         

       …숨 돌릴 틈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혹평에 그는 움찔거렸다.

         

       “…저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 같습니다만.”

       “네가 어른들한테 예의 바를 관상은 아니잖아?”

       “관상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말투만 들어도 대략 무슨 뜻인지 짐작은 가는군요.”

       “뭔 거 같냐?”

       “생긴 거로 사람 판단하는 그런 게 아닐지….”

       “정확히 알아들었네. 똘똘한 놈이랑은 이래서 대화가 편해.”

       “…이게 소위 말해 병 주고 약 주는 행위입니까?”

         

       로엔 드미트리 드 라이오넬.

       북부의 소공자는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어 표정 변화가 잘 보이지 않았다.

       감정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이라고 할까?

         

       하지만 지금만큼은 떨떠름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잘 보였다.

       이런 기색을 이한도 읽었는지 끌끌 거리며 뻔뻔스럽게 웃었다.

         

       “그래서, 내 말이 틀렸냐?”

       “…분하게도 틀리지 않았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군요.”

       “원래 귀족 애들이 어른들한테도 싸가지 없는 법이지.”

       “……왜 교관께선 항상 숨 쉬듯 귀족 차별을 입에 담는지 모르겠군요.”

       “차별로 끝난 줄 알아서 다행이지, 주문쟁이가 너처럼 눈을 치켜들었으면 바로 눈부터 뽑았을 거다.”

       “음….”

         

       평소 로엔은 어떤 일에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편이며 감정 변화조차 극도로 희미한 편이다.

       타고난 성정도 성정이지만, 그의 신분은 고귀하다.

       하여 평생을 대접 받고 누군가에게 존대를 듣거나, 적일지언정 예의 어린 말투로 교묘한 비난을 날리는 상대밖에 없었기에 이토록 직설적으로 막 대하는 인간을 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었다.

         

       허나 저게 또 기분이 나쁘냐고 묻는다면….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군.’

         

       저열한 악의가 담겨 있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동생’처럼 대해주는 기분.

         

       어딘가 낯설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 …정말로.’

         

       기분이 불쾌하지 않은 것이 신기하긴 하였다.

         

       * * *

         

       “숙부와 겨루셨다고 들었습니다.”

         

       역시나, 이한의 예측대로 안부 인사나 하러 온 게 아니란 듯 검둥이 녀석은 깜빡이도 없이 들어왔다.

         

       “…좀 먹고 하자, 우리.”

         

       그래도 고급스러운 과일 세트를 비롯해 유명 디저트 장인이 만든 케이크를 산더미처럼 가지고 온 ‘성의’는 마음에 든다.

         

       꿀꺽!

         

       아몬드의 고소함과 부드러우면서도 농후한 맛이 감도는 고급스러운 커스터드 크림이 잔뜩 올라간 케이크 한 조각을 입안에 털어 넣으면서도 그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맛은.

         

       “흠 잡을 게 없네. 단 거 그렇게 안 좋아하는데도.”

       “이야기 값으론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돈이 있더라도 구할 수 없는 디저트니 말입니다.”

       “…인정.”

         

       저러한 당당함이 허용되는 훌륭한 맛이었다, 하여 이한은,

         

       “…네가 말한 숙부란 인간이 그 괴물 같은 양반을 말하는 거라면 맞을 거다.”

       “그럼, 맞겠군요.”

       “더럽게 세더라, …그리고 나쁜 인간은 아닌데, 그렇다고 좋은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고….”

       “…숙부께서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하지요.”

       “아니, 사과는 됐고. 나중에 보면 말해. ‘아무리 봐도 수지타산이 안 맞다고. 내 기술 훔쳐갔으면 그에 걸맞은 나머지 값을 치르라’고.”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막시무스와의 결투를 입에 담자 검둥이는 쓰게 웃었다.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은 간다는 듯.

         

       이한은 곁눈질로 그의 반응을 확인하며 그가 땅굴에서의 사태를 묻기 위해 찾아왔음을 확신했고, 동시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이걸 나한테 묻네?’

         

       자기 부친에게 묻는 게 빠를 터인데도.

         

       ‘저번에 보니까 대공과의 사이가 썩 긍정적이지 않았지.’

         

       부친과 어색한, 아니 적대감을 대놓고 표출하던 태도.

       가족 일이니 자세히 묻지는 않을 테지만, 참.

         

       ‘어느 세계를 가건 콩가루 집안이 많아.’

         

       이한은 이 왕국에 가정 방문 같은 문화가 없음에 안심했다.

         

         

       괜히 남 집안의 불화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 * *

         

       이한은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땅굴에 자리 잡은 광신도 집단과 반마인 육성, 거기도 거대 웜을 사육하는 신비라…. 하! 하나같이 왕국을 뒤흔들 끔찍한 얘기군요.”

         

       힘들게 얻은 정보였고, 멍청하게 이걸 케이크 몇 조각 때문에 부냐고도 할 수 있으나, 이한이 아는 검둥이는….

         

       “-한데 저 또한 우연치 않게도 비슷한 이들을 발견한 것 같군요. 최근 괴멸시킨 어느 노예 상단이 있는데, 그들이 광신도들과 연관되어 있던 것 같았습니다. 특히, 귀왕 그 괴물을 소환하기 위해 쓰였던 막대한 숫자의 죄수들, 그들을 운반한 곳이 그 노예상단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거 참, 어마어마한 우연의 일치네.”

         

       “예,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봐라,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의 모범이 아닌가.

         

       괜찮은 정보와 견해가 쏟아지며 인색하게 굴지 않은 대가가 돌아왔다.

       

       “흠,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게 있군요. 협력자는 대략 수십 년 이상 전부터 남부 대륙의 음지를 모두 장악한 상태일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땅굴을 비롯한 노예 상단들이 협력할 리는 없을 테니.”

       “이런 세력을 만들 수 있는 놈들이 누가 있을까?”

       “대귀족이라 불릴 만한 이들 중에서도 갈라하드와 라이오넬, 그리고 트리스탄을 제외한다면 셋 정도 후보가 있을 것이며, 상인 연합이나 용병 총합 정도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밖에 생각나는 거물들은…, 흠, 못해도 다섯 정도 더 있군요.”

       “…용의자 한번 더럽게 많네.”

       “동시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들뿐입니다.”

       “흐음….”

         

       이한은 볼을 긁적였다.

       들을수록 머리만 아파지는 기분인지라.

         

       쯧!

         

       ‘됐어, 내가 고민해서 어쩌라고, 누님이 알아서 하겠지.’

         

       전 직장 동료를 갖다 줬으니 알아서 빼먹지 않겠는가.

       자신은 해줄 만큼 해준 셈이며, 이 앞으론 높으신 분들의 역량이라며 관심을 끄기로 했다.

         

       “교관께서 이번과 같은 업적을 몇 번만 더 쌓는다면 그 높으신 분이 얼마든지 될 수 있을 겁니다.”

       “일 없다. 칼잡이 놈이 권력을 얻어서 뭐하라고.”

       “그래도 분하지는 않으십니까? 아렌 팬드래건에게 모든 공을 빼앗기는 이 상황이.”

       “…나보단 네가 더 불만인 것 같은데?”

       “그 무능한 자가 명예를 얻고 얼마나 더 설칠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불쾌하여서 그렇습니다.”

       “얼씨구.”

         

       왕족에 대한 통렬한 비난.

       만만치 않은 적의가 느껴졌고, 이한은 새삼스럽단 시선을 던졌다.

         

       ‘검둥이 녀석, 금쪽이랑도 악연이 있나 보지?’

         

       하긴, 금쪽이 놈이 검둥이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부류는 아니었다.

         

       검둥이가 야생의 벌판에서 악전고투를 치르며 살아남은 늑대라면, 금쪽이는 온실 속에서 키워진 치와와 같은 놈이 아니던가.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나 성장 배경도 다를뿐더러, 마주칠 일이라도 있다면 대번 서로를 향해 적의부터 내리라.

       적어도 이한이 봤을 때 그러했고, 만약 부딪쳤다면…!

         

       ‘일방적으로 금쪽이가 처맞았을 가능성이 크겠네.’

         

       확신하건데, 저놈이 회귀하기 전 무조건 두세 번은 싸웠을 것이다.

         

       뭐, 이 건은 나중에 태창이에게 물어보면 될 터이니, 일단은.

         

       “다시금 말하지만, 난 권력이나 명예 같은 허상은 그다지 필요 없어. 난 오히려 실리적인 게 더 좋으니까.”

       “…마음에 드는 대가를 얻으셨습니까?”

         

       이한의 말투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걸까.

       그는 되물었고, 이한은….

         

       “……어느 정도는.”

         

       검둥이를 달래듯 중얼거리며 시선을 슬쩍 옮겼다.

         

       “이 케이크 장난 아니게 맛있네? 뭐지…, 중세 주제에 왜 이렇게 수준이 높아?”

       “아이린 영애, 차도 좀 드세요. 목이 메이시겠어요.”

         

       두 소녀가 재잘거리듯 떠들고 있었고, 그의 시선은 유독 물결 빛 머리칼을 가진 소녀에게 향한 상태였다.

         

       “뭐, 합당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난.”

       “그렇, 습니까.”

         

       …로엔은 보았다.

         

       일순 그의 시선에 감도는 만족스러움을.

       그리고 떠올린다.

       자신의 수하들이 감시 중이던 ‘폴트 가’의 사람들이 갑작스레 간질 환자마냥 몸을 떨고 거품을 물며 기절하는 일이 생긴 것을.

         

       또한.

         

       ‘얼굴과 목, 등으로 화상처럼 문신이 새겨졌다고 했지.’

         

       그리고 그 문신은 틀림없이….

         

       ‘원래 잔에게 있어야 할 문신이었군.’

         

       이제는 볼 수 없는 그의 친구.

       허나 볼 수 없기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아무래도.

         

       ‘진정으로 자유를 찾았나 보구나….’

         

       로엔은 다행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근심걱정 없는 친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기에.

         

         

       ‘축하한다, 잔, 아니…. 레비.’

         

       한 평생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 진심 어린 축하를 마음으로 건네며 그는 침묵했다.

         

       여운을 즐기듯이.

         

       * * *

         

       ‘…[저주 넘기기]라, 하여튼 신기한 걸 많이 아는 누님이야.’

         

       이한은 더는 제자에게 불온한 저주 따위가 없음을 안다.

         

       정확히는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9할은 제거한 수준이라고 했었나?

         

       – ‘저주 넘기기’는 말 그대로 타인에게 저주를 떠넘기는 수법이다. 허나 이 수법을 쓰기 위해선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대가도 제법 필요하지. 고마운 줄 알거라, 너를 위해서 여가 제물과 대가를 모두 짊어져 주었으니. 액수로만 따진다면 금화 10만 개는 썼을 것이다.

         

       – ……그거 나는 왜 안 해줍니까?

         

       – 고얀 놈! 고마운 줄 알아야지, 반론부터 하더냐!

         

       – 아니, 나도 해줘요, 그거!!

         

       – 무리다. 네놈이랑 네 제자가 같은 줄 아느냐? 그 아이야 완전히 몸과 하나가 되지 않고 문신이란 정해진 형태가 있지만, 넌 아예 네 몸속에 흐르는 피와 하나가 된 것과 같은 저주지 않더냐. 물론 피를 모두 뽑아 그 저주만 제거한다면 모를 터이지만, 흐음, 살 확률이 2%밖에 되지 않는데도 도전해보겠느냐?

         

       – …차라리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럽니까?

         

       – 사실만을 말한 것이다. …흠, 말장난은 여기서 끝내고. 그래도 아직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저주 넘기기를 통해 저주를 넘겨받은 대상에게 완전히 정착하기까지 5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 5년이란 기간 중 만약이라도 저주를 떠넘겨 받은 대상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다시금 숙주에게로 돌아갈 테니 말이다.

         

       – …저주를 넘겨받은 놈들이 5년 동안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면, 그 넘겨받은 놈들을 얼려서라도 보관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 …가끔 보면 내 의동생의 발상은 참으로 무식하다 싶구나. 얼린 고기를 해동하면 그게 멀쩡하더냐?

         

       – …냉동 인간 안 되는 거예요?

         

       – ……기사는 바보일수록 우수하다고 하더니, 내 의동생은 틀림없이 우수한 기사가 맞구나, 호호.

         

         

       “……으음.”

         

       중세 왕녀한테 상식으로 지적 받은 것을 떠올리며 그는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참으로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허나.

         

       “5년이라, 흠…. 혹시 그들을 얼려두면 되겠습니까? 그 편이 관리하기 쉬울 터인데?”

       “…….”

       “…왜 그렇게 따뜻한 눈길을 주는 겁니까?”

       “아니, …너도 우수한 기사란 생각이 들어서.”

       “?”

       “그런 게 있다.”

         

       이한은 ‘우수한’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어느 정도 얘기가 정리된 상황.

         

       석양이 지며 어스름이 마당에 찾아오려 한다.

         

       로엔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대화가 길었군요, 이제 가보겠습니다.”

       “얻을 거 다 얻었으니, 가는 거냐? 매정한 놈.”

       “…저녁 식사라도 대접해 드립니까? 최근 연 식당이 있긴 한데.”

       “식당?”

       “중앙 귀족 거리에 새롭게 열었습니다.”

       “…거기 땅값 비싸지 않냐?”

       “투자비용이 좀 들긴 했지만, 그만큼 이익을 뽑을 자신이 있으니 말입니다.”

       “……내 주위 녀석들은 왜 하나같이 부자밖에 없는 거지?”

         

       이한은 구시렁거렸다.

         

       어째 가난뱅이는 자신밖에 없는 것 같다며.

         

       허나.

         

       “저녁은 됐고, 식전 운동이나 하고 가라.”

         

       이한은 그의 재산이나 다른 무언가보다 흥미로운 게 있다며 제안 하나를 꺼냈다.

         

       “…식전 운동이라면….”

       “저녁 먹기 전 가벼운 운동인 거지, 뭐.”

       “……결코 가벼운 운동이 아니게 될 것 같군요.”

       “그거 마음에 드는 말이네.”

         

       이한은 그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다.

         

       그도 그럴게.

         

       “거절을 안 해서.”

       “…저 또한 몸을 풀고 싶을 때가 있는지라.”

         

       검둥이 녀석은 어느 순간 칼을 뽑아들고 있었고, 이한은 만족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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