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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131 – 학습된 무기력>

     

    오크노디는 불쌍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고 주관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불쌍한 애를 가혹할 정도로 학대하다니.

    양심이라는 게 있는 걸까?

    모브는 처음으로 소망이 생겼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것은 친구인 자쿠를 따라 들어온 것, 그게 다였어.’

     

    이제는 다르다.

    그에게도 그만의 목표가 생겼다.

     

    ‘오크노디를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싶어.’

     

    암살자의 운명을 벗어나서 자신의 인생을 산다.

    그런 평범함을 누릴 자격이야 차고도 넘친다.

     

    “모브. 요즘 꽤 의욕적이네.”

    “너도 한 번 들어봐. 암흑상회에서 하는 멘토링이 생각보다 정말 많이 도움이 돼.”

    “멘토뽑기 운이 따라줘서 그런 거 아니야?”

    “상급반 학생이 도와주는 거 아니면 보통은 2학년 선배들이 도와줘. 도움이 더 되면 더 됐지, 덜 되지는 않을 걸?”

    “그래?”

     

    자쿠의 얼굴은 그다지 밝아지지 않았다.

    하급반의 낙제후보생.

    모브처럼 극적인 감점을 받지 않고도 순수하게 재능이 부족해서 뒤처지는 처지.

    자쿠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줄 알았다.

    모브가 낙제위기인 것과 자쿠가 낙제위기인 것은 처지가 다르다.

    모브는 노력에 가르침이 더해지면 충분히 낙제를 면할 수 있다.

    자쿠는 달랐다.

    감점도 없이 순수한 실력 하나만으로 뒤처져서 열등생이 되고 있다.

     

    “밑져야 본전이잖아. 한 번 들어봐.”

     

    모브는 그런 친구가 안타까웠기에 자신이 얻은 기회를 그 또한 누렸으면 했다.

     

    “고맙다. 모브.”

    “뭘 이런 걸로.”

     

    그래도 이건 빼놓으면 안 되겠지.

     

    “혹시 선배들이 뭘 먹으라고 주면 그건 먹지 마.”

    “왜?”

    “아무튼 먹지 말라면 먹지 마.”

     

    아카데미에서 먹을 건 앞으로 내 돈 주고 사먹는 음식뿐이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몸으로 고생하며 깨우친 모브였다.

     

     

    * *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인 모브가 자쿠는 정말 좋았다.

     

    “짜식. 그렇게 내 표정이 말도 아니었나?”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이 된 자쿠.

    사제들도 발을 들이기 꺼려하는 역병지대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고아와 마주쳤다.

    모브.

    허접한 느낌이 드는 자신과 별 반 다를 것 없게 느껴지는 만만한 녀석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그 험난한 역병지대에서 함께 살아갈 동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브에게 느꼈던 우정은 열등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밑바닥 인생에도 재능의 차이는 있다.

    손이 얼마나 날랜가.

    배움이 얼마나 빠른가.

    암기력이 얼마나 좋은가.

    모든 분야에서 모브는 자신보다 뛰어났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알 수 있었다.

    모브는 자신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다.

    우정이라는 허울 좋은 관계도 영원할 수는 없다.

    대등한 관계도 언젠가 끝난다.

    사실 대등함 따윈 진즉 끝났다.

    모브가 착하기에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자쿠는 몇 년 전부터 모브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는 않을지, 혼자서도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무리겠지.’

     

    장성한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다 큰 맹수는 자신의 영역을 찾아 무리를 떠난다.

     

    -강해지고 싶다고?

     

    초조함을 느끼던 그에게 때마침 눈에 띄었던 떠돌이 용병이 있었다.

    노골적으로 수상한 이였지만 그때는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뭐라도 해서 강해지지 않으면 다시 혼자가 되고, 쓸쓸히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강해지고 싶다고.

     

    -친구의 곁을 떠나야 한다.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해도 몇 년은 죽도록 고생하고, 어쩌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강해지고 싶다면 나를 따라와라.

     

    자쿠는 결심했다.

    그 용병을 따라가겠다고.

     

    -모브. 난 저 사람을 따라가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

    -그래도 우리의 우정이 변치 않는다면 우리가 처음 만난 그곳에서 다시 보자.

    -몇 년 뒤가 될지는 몰라도 새해 첫날이면 다시 만나는 거다. 약속이야.

     

    그날의 약속으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스스로도 모브가 기다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10년이다.

    강산도 변하는 세월에 어린 시절의 약속이라고 계속될 수 있겠는가.

     

    “여. 많이 컸다?”

    “모브. 너냐?”

    “왜. 너무 잘생겨져서 못 알아보겠냐?”

     

    키도 자라고 살과 근육도 제법 붙었다.

    겉모습만으로는 예전의 그 코흘리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모브.

    그러나 변치 않는 것도 있었다.

    전과 다르지 않은 너스레.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우정.

    그리고… 그 옛적에 느꼈던 열등감이 그랬다.

     

    ‘10년의 훈련을 받았다.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그런데도 너조차도 따라갈 수 없단 말이냐?’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재능이었다.

    상급반의 진짜 괴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모브조차도 따라갈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 재능으로는 아카데미에 합격하더라도 1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교관은 말했다.

    너 정도 되는 애송이는 널리고 널렸다고.

    그런데도 그가 10년 전, 자신을 거두어준 이유는 오직 하나.

    우정조차 저버리고 모험을 떠날 것을 각오한 그 독기에 있었다고.

    그때의 독기를 다시 발휘할 것을 요구받는 순간이 다가온다.

     

    달그락.

     

    손 안에 든 작은 약병.

    이것만 삼키면 보유마력을 상승시킬 수 있다.

    물론 말단에게 주는 약품이다.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닌 것이 당연했다.

    미완성품.

    실험품.

    복용 시 부작용은 막대하다.

    생체적성이 맞지 않으면 복용자는 죽는다.

    어설프게 적성이 있으면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광하는 끝에 죽는다.

    조금이나마 봐줄만한 적성이 있다면 끔찍한 고통은 따를지라도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

    운 좋게 적성이 따른다면 극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어느 정도의 확률일까.

    30%?

    9.9%?

    0.1%?

     

    ‘기대 따윈 접어라. 내게 재능 따윈 없어.’

     

    10년을 조직에서 구른 끝에 깨달았다.

    이 약을 복용하는 순간이 자신의 최후일 거라고.

    교관도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쫓겨난다면 네 남은 인생에 더 이상의 자유는 없다. 조직의 개가 되어 살아갈 것은 각오해야 할 거다.

     

    모브와는 두 번 다시 재회할 수 없다.

    음지의 세계.

    피비린내가 감도는 어둠을 헤매는 삶이 기다린다.

    그는 아주 긴 내리막길의 초입에 섰다.

    이미 몇 발을 앞으로 내딛은.

    안간힘을 쓰며 저항한다면 어쩌면 입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그렇지만 너무 늦어버리면 급경사에 빠져서 다시는 예전의 길로는 돌아갈 수 없는 내리막길에.

    급경사는 바로 코앞에 놓였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끝장이다.

    그 한 걸음이 손 안의 약병에 담겨있다.

     

    “자, 1학년 친구들. 그리 울상 짓지 말라고. 우리가 어떻게든 도와줄 테니까.”

     

    약병을 쥔 손이 품으로 돌아갔다.

    이걸 복용하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자.

    모처럼 모브가 그를 위해 찾아낸 기회가 아닌가.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 *

     

     

    새로운 이벤트에 한 몫 거든 것이 도움이 되기는 했나보다.

    이맘때면 당연히 터져야 할 하급반 사건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지젤. 정말 아무 소문도 없어요?”

    “혹시 기다리는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비밀이에요!”

     

    무조건 있다는 표정이구나.

    그렇게 말하듯이 비밀을 숨기려는 아이를 보는 부모처럼 훈훈하게 웃는 지젤.

    어른스러운 그의 모습에 괜히 심술이 났다.

     

    “알려줄까요? 그렇게 궁금하면.”

     

    조금 놀란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신 지젤.

    그의 실눈이 부드럽게 휘며 곡선을 그렸다.

     

    “저는 못된 어른이라서 남의 비밀을 듣는 일에 관심이 많답니다. 부디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좋아요! 저랑 지젤 사이인데 머. 특별히 공짜로 알려드릴게요.”

     

    사실 천기누설은 함부로 할 것은 못 된다.

    NPC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안다고 뭐든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을 막겠다고 더 큰 사고를 치기도 하고.

    경상으로 끝날 사고가 중상 내지 사망으로 악화되기도 하니까.

    그래도 지젤은 자기관리에 철저한 지능형 캐릭터니까 괜찮겠지?

     

    “이번 주에 하급반 낙제생이 인명사고를 일으킬 예정이에요.”

    “…흥미로운 정보군요. 출처에 대해서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으으음.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그건 비밀로 할래요!”

     

    고민에 빠진 지젤.

    그의 관심이 내게서 멀어졌음을 깨닫자 나 또한 흥미가 사라졌다.

    강의나 열심히 들어야지!

     

     

    * *

     

     

    오크노디의 뒷모습을 보며 이사벨이 물었다.

     

    “어땠어?”

    “아카디아의 말대로군요. 재단에서 이번 주에 인명사고를 일으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크노디도 그걸 알고 있었다고?”

     

    단순히 이용만 당하는 것과 범죄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설마… 공범인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겁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네요.”

     

    지젤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크노디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겁니다. 곧 일어날 인명사고에 대해서요.”

    “어째서…? 오크노디는 착한 아이잖아.”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그게 뭔데.”

    “어차피 안 될 거니까. 어차피 변하지 않을 거니까. 노력이 무가치해졌을 때,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마음을 접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가 보기에 오크노디의 방관적인 태도는 학습된 무기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겪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막아보려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 반응도 이해가 갑니다.”

     

    아이가 겪어도 좋을 일이 아니다.

    어른이라도 마음이 무너지고도 남을 가혹함.

    듣기만 해도 두려움이 치민다.

    암살자 교육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이사벨은 아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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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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