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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기초마석학.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과목.

       

        3년간 하스펠트 교수 밑에서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며 얻은 노하우 덕분인지 마석 관련해서는 배울 게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마석학 수업이 ‘지루한’ 이유지, ‘싫어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싫어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교수 때문이다.

       

        “…흠, 오늘은 자유롭게 여길 견학하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하겠어요.”

       

        일단 교수가 이 모양이니 수업도 재미가 없다. 아니, 재미만 없으면 몰라. 배우는 내용까지 출타해버렸다.

       

        “저, 교수님. 출석은 안 부르시나요?”

        “성적에 반영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기초마석학 교수의 특징은 방임주의 교육. 좋게 말하면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게 놔둔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월급루팡이다. 

       

        “저는 콜로퀴움이 있어서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면 TA에게 질문해 주시고….”

       

        그렇게 김모 교수는 우리 곁을 떠났다. 한 줌의 바람이 되어 탈주하고 만 것이다.

       

        [이런 시발. 이건 좀 심각한데.]

       

        대신 욕해줘서 고맙다, 양장본아.

       

        2주 전부터 레전드였지만 오늘은 황자나 로즈마리조차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 만큼의 대단함을 보여주셨다. 그냥 이 사람이 최종 보스 하면 안 되나?

       

        “…저 교수님 성함이 어떻게 되더라?”

        “몰라. OT 때 안 가르쳐주셨어.”

        “강의계획서에도 없어?”

        “기억 안 나는데…….”

        “허어.”

       

        한숨이 절로 나오는구나. 지금이라면 혈압만으로 하이드로펌프를 쏠 수 있을 것 같아.

       

        “이딴 게 전필이에요?”

        “그러게나 말이다.”

       

        로즈마리가 웬일로 맞는 말을 하는구나. 얼마나 심각했으면 얘까지 이래?

       

        “언니, 저만 이거 이해 안 돼요? 콜로퀴움이건 어디건 강의를 비워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휴강을 먼저 하고 나중에 보강을 잡는 게 상식 아닌가요?”

       “그렇지.”

        “그런데 왜….”

        “인간 중엔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도 존재합니다, 공녀님.”

       

        이런 부류의 사람은 대학 다닐 때도 있었다. 어째 과마다 한 명씩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이래서 인간들이란….”

       

        얜 또 뭘 멋대로 확대 해석하고 앉아있냐.

       

        “분명 귀족 출신일 텐데 이렇게 무책임한 태도라니. 진짜 최악이야!”

        “살리에르가 이런 말 할 정도면 진짜 심각한 건데.”

        “그러게 누가 틸레트 입학하라고 스태프 들고 협박이라도 하던?”

        “야, 지금 일리야드 편입 받아주냐?” 

       

        강의자가 사라지니 순식간에 반이 어수선해졌다. 반장 메이릴과 로테가 겨우 수습한 덕분에 그나마 질서를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마석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그래도 아직 조교가 남아있으니까 자체 공강을 선언한 친구는 없는 것 같은데….

       

        …잠깐만.

       

        “얘들아. 조교님 어디 계신지 알아?”

        “그러게…?”

       

        아, 어질어질하네.

       

       

        **

       

       

        아카데미 내부에 위치한 이 7층짜리 커다란 박물관은 박물관 말고도 물류 저장소의 역할을 겸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마석을 실험 및 교보재용으로 대여 및 증여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제값을 치르지 않고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일종의 특혜와도 같다.

       

        특히 동아리에 소속된 학생이 마석을 구매하려는 경우 그 금액을 대부분 학교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일정 선까지는 날강도짓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학생 상당수가 탈주한 이후로도 나와 몇 명은 박물관에 남았다.

       

        “실례합니다. 연성부 동아리 재학생인데요, 필요한 마석들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연구 및 물품 제작 목적으로요.”

        “물론입니다.” 

       

        동아리 가입 증서를 내밀자 흔쾌히 허락하는 담당자.

       

        그러고 보니 플레어를 만들 때도 여기서 도움을 받았다. 가르강튀아의 장갑을 빌려서 표적으로 사용했었지. 그 뒤로 반년 만에 무언가를 매매하는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강철, 미스릴, 오리할콘, 알루미늄, 산화타이타늄, 흑철석, 자주석…. 물량은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여기가 던전이라고 해도 믿겠다. 나는 핵융합을 하는 해님처럼 빵긋 웃으며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왔다.

       

        “세상에, 한 꾸러미네.”

        “이거 다 어디에 쓸 거야?”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을 검지에 가져가며 쉿 소리를 내었다.

       

        때마침 로즈마리와 눈이 맞았다. 푸르른 바다처럼 영롱히 빛나는 눈동자가 날 지긋이 쳐다본다.

       

        그러나 우리 둘의 눈싸움은 길지 않았다. 클리온의 푸념에 묻혀버린 탓이다.

       

        “정말 재미없군. 이런 수업은 노예년이라도 할 수 있겠어.”

       

        제2황자는 답이 없는 틸레트의 교육 현실을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속담이 사실이었구나.

       

        아무렴, 발화자와 메시지는 구별해서 봐야 한다. 생에 처음으로 황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던 사이였다. 클리온이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좁혀왔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 1m 간격은 유지해 줬으면 좋겠는데.”

        “너무하군.”

       

        풀이 죽은 클리온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그러게요. 너무하지 않나요, 황자님?”

       

        검은 깃털이 콕콕 박힌 부채를 흔들거린다. 로즈마리는 부채로 입을 가린 채 큭큭 웃어댔다. 로즈마리와 눈이 마주친 황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클리온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그, 그렇지. 요새 별 탈 없이 넘어갔더니 기어오르려는 것이 아주 괘씸하군…!”

       

        발연기라서 그런지 화도 안 난다. 로테와 프레이도 비슷한 감정인지 무심한 표정으로 황자를 흘겨보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가자, 얘들아.”

       

        오늘 수업은 망했다.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응?”

       

        모퉁이를 도니 웬 처음 보는 거울이 떡하니 서 있었다.

       

        이상하다. 박물관 내 모든 전시품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 내 기억상으로는 여기엔 이거 말고 다른 거울이 있어야 하는데.

       

        그 거울이나 이 거울이나 비슷한 크기다. 다만 이 거울이 5cm 정도 더 높다. 틀림없이 다른 거울이다.

       

        그렇지. 이걸 찾고 있었다.

       

        때마침 뒤를 따라오던 프레이가 등에 머리를 박고 ‘아얏!’ 하는 소리를 냈다. 커다란 마녀모를 고쳐 쓴 프레이는 툴툴거리며 물었다.

       

        “깜짝이야! 왜 갑자기 멈춰?”

        “자루에 머리카락이 걸린 것 같아서.”

       

        급조한 변명으로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긴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머리를 굴렸다.

       

        눈앞에 놓인 거울의 이름은 ‘내면의 거울’. ‘내’가 아닌 진짜 에테르의 기억을 확률적으로 되찾게 해 주는 액티브 아이템이다.

       

        여기서 ‘확률적’이라는 말은 ‘부분적’이라는 말을 포함한다. 즉 내가 이 거울을 봐서 기억을 되찾더라도 일부만 되찾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이 정보의 출처는 엘프다.

       

        이 세계의 무대가 되는 게임, <다키스트 아카데미아>에는 확률성 요소가 짙다. 단순히 주사위 놀음 한 번으로 전세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박성 아이템과는 웬만하면 상호작용하지 말라고 그러더라.

       

        이는 어디까지나 충고에 불과하다. 이 세상을 확률에 의존하는 게임으로만 보면 안 풀리는 문제도 있다. 

       

        지금처럼 플레어를 못 만들게 된 상태에서 유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또 다른 나와 동화하여 대체 연구방안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다.

       

        [이거 조금 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겠지. 하지만 리스크 이상의 어드밴티지가 있다.

       

        [연구가 급한 건 아시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불리할지도 몰라요. 먼 미래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신중하게 하는 편이….]

       

        신중하게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이거다. 버멜 말로는 원래 에테르가 나와 하는 짓이 비슷하다고 했으니 딱히 위험하지도 않을 거다.

       

       애초에 위험한 성격이었으면 기억 지우고 인간들 틈에 섞이려고 발버둥치지도 않았겠지.

       

        [큰일이다! 대학원을 두 번 다녔더니 이 사람 완전 맛탱이가 가 버렸어…!!]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나 머리 좀 정리하고 따라갈게.”

        “늦으면 구내식당으로 와!” 

       

        아주 잠깐이었지만 로즈마리의 얼굴이 밝아지는 걸 확인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갈 때까지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호랑이처럼 거울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간다. 잔잔한 연못처럼 티끌 하나 없는 거울에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백발금안의 소녀였다.

       

        소녀가 웃는다.

       

        나도 따라 웃어주었다.

       

        그리고….

       

       

        **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서, 나는 깨어났다.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하다. 다키스트(Darkest)라는 영단어에 딱 알맞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아주 캄캄한 건 아니었다. 즉 광원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이마저도 천장 어딘가에서 흩뿌려져 내려오는 빛 하나가 전부였다.

       

       보이지 않는 손이 등을 떠밀었다.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저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발을 질질 끌며 속도를 어떻게든 줄였다. 겨우 걸음을 멈출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빛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저번에 꾸었던 꿈과 비슷한 감각이다. 어딘가를 쳐다보는 것 외에는 몸을 멋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왜 하필이면 이런 곳인가.

       

        아무런 의미 없는 고민을 하던 중 빛이 모스 부호처럼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깜빡. 깜빡. 깜빡.

       

        -아…. 아아아……. 아아….

       

        등이 꺼질 때마다 들려오는 비명. 빛이 있는 동안에는 그저 그런 리미널 스페이스에 불과하던 공간이, 불빛이 사라진 매 순간마다 절규가 뒤섞인 곳으로 탈바꿈한다.

       

       -아…. 아아아……. 아아….

       

        검은색. 흰색. 검은색. 흰색.

        비명. 침묵. 비명. 침묵.

       

       -아…. 아아아……. 아아….

       

        백. 흑. 백. 흑.

        삶. 죽음. 삶. 죽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수명이 다 된 형광등처럼 한참을 깜빡이던 빛줄기는 이윽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 탓에 원래 자리가 어둠으로 물들어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를 환청처럼 맴돌았다.

       

       뛰어가야 한다.

       

       나는 정신없이 내달렸다. 지옥 같은 이 비명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이 끔찍한 소리가 듣기 싫어서 조명이 내리쬐는 곳으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달려갔다.

       

        얼마나 뛰었을까.

       

       불과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를 남기고 광원은 뚝 멈추었다. 그러더니 이전보다 더욱 밝은 광량으로 주변을 비춘다. 죽음을 노래하던 소리는 어느덧 경계 저편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틀어막고 있던 귀를 슬며시 푼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광원이 비추고 있는 곳에는 호화롭게 장식된 옥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흑발의 소녀가 한 명.

       

        […왔구나.]

       

       로즈마리와는 격이 다른 위압감을 내뿜으며 염화를 걸어오는 소녀가 있다.

       

       [여기가 네 무덤이다.]

       

       틀림없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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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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